66. 정요셉(3)
딴따라라는 말을 듣자마자 이 감독이 누군지 떠올랐다.
연예계에서 ‘입멍청이’라는 별명을 가진 감독으로, 무리한 드라마 진행 때문에 한 스태프가 폭로를 한 적도 있었다.
그때도 아이돌 딴따라 발언을 했었지. 감독은 사과문을 올리고 드라마에서 하차했으나, 나중에 아이돌이 출연하는 드라마를 맡으면서 대중과 기 싸움을 벌였지.
“감독님, 요즘 딴따라는 말 하면 안 돼요.”
“아~ 요즘은 딴따라라는 말에 예민하지?”
정요셉의 말에 짜증이 났는지 감독의 표정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렇긴 해도 맞는 말 아닌가.”
“…감독님.”
“그럼 다른 사람한테도 한번 물어보면 되겠네.”
정요셉은 화를 꾹 참으며 자기 할 말을 다 했다. 감독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고개를 돌려 화살을 나에게로 향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저요?”
“그래, 너. 같은 멤버라고 줏대 없이 동의하는 건 아니지? 말해봐.”
자기가 원하는 대답을 듣고 싶어 하는, 그런 꼰대였다. 최대한 정요셉한테 불이익이 생기지 않도록, 나는 사회성 짙어 보이는 비즈니스 미소를 지으며 머릿속으로 개꼰대가 아니라는 말을 준비했다. 준비를…….
그렇게 주문을 걸고 입을 열었더니,
“저도 개꼰대라고 생각합니다.”
“…뭐? 개꼰대?”
아, 실수. 나는 다시 말을 정정했다.
“말이 헛나왔네요. 개꼰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감독님.”
“그래? 너도 개꼰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지?”
“당연하죠.”
감독의 얼굴을 보자 ‘개꼰대’라는 말이 튀어나오면서 말실수를 해버렸다. 그런데 이런 날 도와줘야 할 사람은 도와주지도 않았다.
“아…….”
정요셉은 말을 잇지 못하더니 웃음을 꾹 참고 있었다.
“근데 이상하다?”
되레 나한테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한 감독은 나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너, 너……! 몇 살이야?”
“19살입니다.”
“19살?”
자기 생각보다 어려서 놀랐는지 감독은 무어라 말을 못 하고 물고기처럼 입만 벙긋거렸다.
“어디 가서 개꼰대라는 말 하면 안 돼. 알겠어?”
“네, 제가 어려서 잘 몰랐어요. 죄송합니다.”
“그래,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 그럼 스튜디오를 한번 둘러볼까?”
감독이 주변을 둘러보자고 했을 때 김연호가 끼어들었다.
“감독님, 죄송합니다. 곧 리허설 무대가 있어서요.”
“어, 어? 그래.”
타이밍이 좋았다.
“음악 방송은 펑크 내면 안 되지.”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배려는 무슨. 요셉이가 우리 드라마 배우인데.”
“그럼 저희는 가보겠습니다.”
“그래, 가봐. 요셉이는 다음에 보자~”
김연호가 재빠르게 치고 빠져서 감독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스튜디오와 멀리 떨어지자 정요셉이 벽에 머리를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내가 잘되면 두고 보자.”
“요셉 형, 잘되면 어떻게 할 건데요?”
“글쎄다.”
내 물음에 정요셉이 침음을 흘렸다.
“…아직은 잘?”
흠… 나도 정요셉과 똑같이 벽에 머리를 박으며 고민에 빠졌다. 감독의 태도를 보아하니 팬들이 커피차 같은 서포트를 하지 않는다면 계속 괴롭힐 것 같았다. 팬이 없다는 둥, 배우를 하라는 둥.
더군다나 감독은 정요셉이 아이돌이 된 것도 자신의 드라마에 출연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으나 내가 직접 커피차를 보내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팬들도 정요셉을 탐탁지 않아 할 것이다. 데뷔하기도 전에 연기부터 시작하니까.
“우리 막내, 나를 따라 하는 거야~? 형이 하는 행동이 그렇게 좋아 보였어~?”
“그건 아닌데요…….”
정요셉을 따라 하면 머리가 맑아질 것 같아서 벽에 머리를 박긴 했다. 물끄러미 나를 본 정요셉이 손가락으로 내 머리를 지그시 눌렀다.
“내가 하는 행동이 좋아 보여서 그런 거 맞네.”
“아니거든요.”
“아니긴~ 아주 살짝은 마음에 들었지~?”
사실 벽에 머리를 박고 머리가 맑아지기는 했다. 그래서 저 말에 부정할 수는 없었다. 입을 다물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정요셉의 웃음이 귓가에 들렸다.
“그래도 우리 막내한테 싹 다 말하니까~ 속은 편안하네.”
“원래 속을 털어놓으면 시원하잖아요.”
“정말 우리 막내 말은 잘해? 응?”
그제야 정요셉의 입꼬리에 장난기 서린 미소가 지어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드디어 웃네요, 형.”
“…응? 그랬나?”
내 볼을 잡아당기는 동시에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정요셉의 아이돌력이 대폭 올라갑니다. F → D】
【정요셉의 상태:o(=´∇`=)o 행복모드】
※자존감을 회복합니다.
정요셉의 자존감이 회복되었다. 다행스러운 점은 아이돌력이 올라가면서 정요셉의 외모가 확 살아났다는 거였다.
역시 등급이 올라가는 순간 바로 티가 나는구나.
“얘들아, 이제 리허설 가야지.”
“아, 맞다. 연호 형~!”
본래대로 돌아온 정요셉은 김연호를 끌어안으며 입꼬리를 내렸다.
“역시 연호 형이야. 타이밍 좋게 잘 빼줘서 고마워.”
“뭘.”
김연호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정말 잘 치고 빠졌다. 더 있었다가는 감독에게 계속 붙잡혀 있었을 것이다.
“내일 투두 네스트 방영하는 날인 거 알지?”
“와아~ 내일 투두 네스트 0화 나오는 날이다!”
그 폐공장 납치사건… 아직도 또렷한 기억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떻게 편집해서 나올지 궁금하긴 하네.
“우리 막내, 멤버들이랑 투두 네스트 볼까? 너무 무서워서 우리 막내가 혼자 못 볼 수도 있으니까?”
“…뭐, 네.”
“숙소에 들어가서 먼저 자면 안 된다?”
“네…….”
나는 정요셉의 뒤를 따라가면서 김연호를 천천히 살폈다.
‘…잘하시네, 매니저.’
***
“오늘 그거 하는 날인가?”
김올팬은 무심하게 실시간으로 방영되는 투두 네스트를 틀었다.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가 끝나고 시작하는 네스트의 단독 예능이었다.
“…예고편을 너무 잘 뽑았어.”
투두 네스트 예고편에서는 네스트가 폐공장에서 탈출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갑작스럽게 폐공장의 문이 터지면서 예고편이 끝나는 바람에 안 볼 수가 없었다.
-이제 돌연프의 늪에서 벗어나나 싶었는데 투두 네스트가 옴 ㅎ
└ ㄱㄴㄲ
└ 예고편 존나 재밌게 잘 짰음
-네스트 납치된 건가? 그런 건가?
└ 납치됐으니까 그렇게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짓지 않았을까?
└ ㄹㅇ 납치한 듯?
예고편이 뜬 뒤로 납치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했다. 김올팬도 납치가 됐다고 생각은 했으나,
[돌연프 우승하고 차에 올라탄 네스트]
[정요셉 : 안녕하세요~]
정요셉이 먼저 차에 오르면서 카메라에 대고 인사를 했다. 피곤한 기색은 없고 오히려 신나 보였다.
[화목현 : 오늘 예능 찍으러 무인도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
[이정진 : 한숨 자도 되겠지?(무기력)]
[화목현 : 한숨 자도 되지 않을까?]
네스트를 태운 차는 고속도로를 지나서 어디론가 음습한 공간으로 들어갔다.
[납치]
-진짜 납치였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ㅅㅂ 진짜 납치였어
└ 저래도 돼?라고 하지만 입꼬리는 올라간다 ㅎ
└ 아 예능은 이런 재미지
차가 폐공장 안으로 들어가더니 입구가 폐쇄됐다.
[범나비 : 형들, 일어나 봐요.]
범나비가 멤버들을 깨우면서 차에서 내렸다. 한결같은 보부상 가방을 메고서.
“근데 저 상황에 몰입할 수 있을까?”
이런 탈출 예능은 출연자의 과몰입이 필수였다. 과몰입을 안 하면 재미가 없으니까. 거기다가 과몰입하는 척을 하다가는…….
“노잼사지.”
그러면 오늘 이후로는 투두 네스트를 절대 보지 않을 것이다. 요즘은 아이돌 예능을 이런 식으로 연출해서 해외 진출을 노리기도 하던데.
-저 보부상 가방은 무슨 타투야?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타투긴 타투지 나비와 떨어질 수 없는 거니까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ㅅㅂ
납치된 상황을 알아버린 정요셉이 멀뚱히 앉아서 말했다.
[정요셉 : 우리 납치된 거야~?]
[주이든 : 납치된 거냐고 그렇게 가볍게 말하지 마!]
[정요셉 : (억울)가볍게 안 말했는데.]
[주이든 : …미안.]
정요셉이 범나비의 어깨에 얼굴을 올리며 억울하다고 칭얼댔다.
-동갑즈 귀엽네ㅎㅎ
└ 동갑즈 존나 좋아
└ 티격태격하는 맛이 있지
-나비 무신경한 거 개웃기네
└ 그만큼 익숙하대 ㅋㅋㅋㅋㅋ
멤버들이 차에서 내리자 범나비가 주변을 살펴보라고 말했다. 멤버들은 흩어져서 폐공장의 이곳저곳을 살폈다. 그랬는데도 아무런 소득이 없자,
[범나비 : 차…….]
범나비가 혼자서 차 쪽으로 가더니 곳곳을 뒤졌다.
-오 나비 똑똑해
└ 나도 차에 뭐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 누구나 생각할 것 같긴 하지만 원래 저런 상황에선 잘 생각나지 않는 법
범나비가 차 밑을 뒤져서 나온 것은 검은색 봉투였다. 범나비는 멤버들을 모으고는 봉투 안에 있는 종이를 꺼내서 읽었다.
-엥? 1억 안 주겠다는 거임?
-미친 ㅡㅡ
-그건 에바다 진짜
-존나 개양아치;
김올팬은 예능은 예능일 뿐이라고 생각했기에 재밌는 내기라고 생각했다. 이미 김올팬은 예능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었다..
-예능은 예능으로 보자;
-ㅋㅋㅋㅋ 뭐 그럴 수도 있지
-설마 진짜로 안 주겠음?
-돌연프가 양아치긴 하지만 ㅋㅋ
폐공장 밖에서는 빗소리가 들리더니 다급한 BGM과 함께 차가 폭발하는 소리가 났다.
“뭐야?”
[펑-!]
[주이든 : 무슨 소리야!]
[이정진 : 뭔가 터지는 소리.]
[범나비 : 빨리 나가죠.]
네스트는 침착하게 열쇠를 가져와 옆 공간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통로로 들어갔다. 김올팬도 떨리는 마음에 다리를 떨며 침을 삼켰다.
-ㅁㅊㅁㅊ
-뭐야? 이래도 돼?
-투두 네스트 스케일 너무 크다;
-목현이 형이라고 앞장서서 가는 모습 멋있네…
-갑자기 개무서워 ㅅㅂ
그렇게 원래 있던 공간에서 무사히 빠져나온 네스트는 다음 방에 도착했다.
최후의 만찬을 유추해 내고 얼마간 고민하던 네스트는 갑자기 다 같이 음식을 먹었다.
“허?”
김올팬은 갑작스러운 전개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배고프긴 하겠지ㅋㅋㅋㅋ
-ㅅㅂㅋㅋㅋㅋㅋㅋㅋ갑자기 먹방
-아 무서웠는데 먹방에서 빵터졌네
-제작진도 이렇게 잘 먹을 줄은 몰랐을 듯 ㅋㅋㅋㅋㅋㅋㅋ
맛있게 파스타를 먹던 범나비가 젓가락질을 멈추고 파스타를 옆으로 밀어냈다.
[범나비 : …형들?]
[정요셉 : 왜?]
[범나비 : 형들 그릇에는 글씨가 없어요?]
《당신은 곧 죽습니다.》
-?
-뭐야 나비가 죽는다니
김올팬도 심하게 몰입해서 미간을 찌푸렸다. 뒤이어,
[정요셉 : 왜 이렇게 최후의 만찬 같냐~!]
정요셉의 목소리에 맞춰 화면이 까맣게 변했다.
-????
-뭔데????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너희들은 다 계획이 있었구나?
김올팬도 TV가 꺼진 줄 알고 TV를 확인할 뻔했다. 다시 화면이 나타나더니 벽에 적혀 있는 붉은색 글씨가 보였다.
[범나비 제외한 전원 탈출 VS 범나비 혼자 탈출]
-헐?
-ㄹㅇ?
-와씨 ㅁㅊ
멤버들은 글씨를 보자마자 인상을 구겼다.
[화목현 : 나비를 혼자 두라고?]
[이정진 : …이건 좀.]
그때 범나비가 손을 들더니 평온하게 말했다.
[범나비 : 형들, 저를 버리세요.]
“…진짜로?”
김올팬은 자신의 도덕성이 안 좋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범나비를 폐공장에 혼자 갇히게 하는 엔딩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안 돼!!!!
-결사반대
-나비 겨우 19살이라고
멤버들이 범나비를 설득하려고 했으나 형들이 자기를 구해줄 거라고 믿는다는 그 말에 김올팬은 할 말을 잃었다.
-와 얼마나 멤버들을 믿으면?
-돌연프 제작진들 범나비로 어그로 잘 끌려서 좋아하더니 또 이런 컨셉 잘 잡았네 ㅅㅂ
-안 그래도 범나비 빼라는 말 많은데 미친 새끼들아
└ 진심?
└ ㅇㅇ 말 많음
범나비의 선택에 따라서 멤버들과 범나비는 갈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범나비가 발견한 종이를 본 김올팬은 욕이 저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선택과 집중》
1. 자신을 희생한다.
2. 1억을 버린다.
“돌연프… 1억 주기 싫지?”
김올팬은 간악한 돌연프의 만행에 진절머리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