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정요셉(2)
야심한 시각, 잠이 오지 않았다. 정요셉의 트라우마가 계속 생각나서.
나는 이정진이 자는 모습을 보고는 조심스럽게 방에서 나왔다. 거실로 향하자 TV를 보고 있는 정요셉이 눈에 들어왔다.
“요셉 형, 왜 안 자고 있어요?”
“…그러게~ 잠이 안 오네~”
나는 정요셉을 빤히 쳐다보았다. 정요셉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고민이 많은 모양.
“우리 막내, 왜 그렇게 쳐다봐~?”
나는 그 옆에 앉으며 말을 툭 던졌다.
“그냥, 요셉 형 얼굴 보고 싶었어요.”
“흐음~ 우리 막내가?”
“…뭐.”
정요셉이 나를 보면서 한숨 쉬듯 웃었다.
“내가 걱정됐어?”
당연하지. 나는 정요셉의 눈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우리 막내가 걱정이 됐구나. 너무 티 났어?”
“…네.”
정요셉을 설득하는 건 쉽지 않았다. 정요셉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나를 보더니 다짐하는 것처럼 미소를 지었다.
“흠, 어디서부터 말해볼까~?”
천천히 심호흡을 하고는 정요셉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 내가 부모님 때문에 억지로 연기를 시작했거든. 처음에는 저 작은 상자에 내 얼굴이 나온다는 생각에 들떠서 촬영장에 갔어. 하지만 어린 나이에 사회생활을 하는 건 어렵더라고.”
“…….”
“거기다 감독님이 나 몰래 엄마한테 내가 연기를 못한다고 말하더라. 어린 마음에 충격을 받았어. 주변에서 잘한다는 말을 듣고 자랐던 내가 다른 사람한테 못한다는 말을 들으니까.”
“…….”
“그냥 못한다는 말에서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연기를 못했을 때마다 감독님이 사사건건 인격 모독을 했거든. 그러다가 한번은 감독님이 내 이마를 툭 치더라.”
어린아이인데?
“그건… 폭력이죠.”
“알아.”
정요셉이 살포시 웃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러면 안 됐는데. 계속 NG가 나니까 그랬던 것 같아.”
“형, 그런 건 이해 안 해도 돼요.”
“…지금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데. 그때는 이렇게라도 이해해야 그나마 괜찮았거든.”
처음으로 봤다. 정요셉의 무표정.
“탐정 요셉이의 시청률이 올라갈수록 나는 연기가 무서워졌어. 사람들은 연기가 늘었다며 좋아했지만…….”
정요셉의 연기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차세대 아역이라는 평도 받았었고.
“그리고 언젠가 엄마한테 울면서 말했거든. 연기가 싫다고… 그랬더니 엄마는 차라리 연습생을 해보래. 그러면 마음이 안정됐을 때 연기도 할 수 있으니까.”
정요셉의 시선이 내려와 침대에서 자는 주이든에게로 향했다.
“낙하산처럼 들어온 나를 멤버들은 친철하게 가르쳐 줬어. 노래는 이렇게 부르면 되고, 춤은 이렇게 추면 된다고.”
“…….”
“그렇게 조금씩 노력을 하니까 폼이 좋아지더라. 그래서 부모님한테 말했어. 아이돌이 되고 싶다고. 근데 부모님은 연습생 생활을 그만하라고 하더라.”
“…나쁘네요.”
“그치? 나쁘지?”
나는 눈동자를 굴리는 정요셉을 보면서 생각했다. 정요셉은 매번 누구보다 열심히 연습한다. 나한테도 어떻게 하면 노래를 잘 부를 수 있는지 물어볼 정도였으니까. 그 어린 시절에 정요셉이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을지 머릿속에 그려졌다.
“막내야, 재밌는 사실 하나 알려줄까?”
“뭔데요?”
정요셉이 머릿속으로 재밌는 상상을 하는지 입꼬리를 한껏 올렸다.
“평생 부모님한테 받은 칭찬보다 멤버들한테 받은 칭찬이 더 많았다는 거.”
…멤버들이 성장하는 데 도움을 줬구나. 네스트가 끈끈한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가… 멤버들한테 받은 게 있어서 나는 처음부터 우리 막내도 싫지 않았어~”
“…네?”
“처음 보자마자 잘해주고 싶었거든.”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나를 사로잡았다.
“우리 막내는 어떻게 생각해? 내가 연기를 할지 말지.”
“음…….”
나는 정요셉이 드라마를 한다고 해도 별 상관이 없었다. 데뷔에 차질이 생기는 것도 아니니까. 나한테는 정요셉의 선택이 제일 중요했다.
“저는 형의 선택이 우선이에요.”
“그 말이 더 무섭다~”
“진짠데…….”
강요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는데, 정요셉의 눈에는 그렇게 안 보였던 모양이다. 정요셉이 입꼬리를 한껏 올렸다.
“그래도 막내한테 속마음을 말하니까 속은 시원하네. 우리 막내, 고맙다.”
그런데 이대로 놔둬도 되는 걸까? 정요셉의 모습은 아직 불안정해 보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방에 들어가서 베개랑 이불을 들고 거실 바닥에 놔뒀다.
“오늘은 거실에서 잘래요.”
“왜?”
“지금 방에 들어가면 정진 형 방해하는 것 같아서요.”
“우리 막내, 나랑 더 친해지고 싶은 거야~?”
“그건 아니거든요?”
나는 바닥에 눕고서 눈에 안대를 썼다.
“잘 자요, 형.”
좋은 꿈도 꾸고요.
***
이백수는 오늘 음방 떡밥을 기다리고 있다가 봉변을 당했다.
[돌연프 정요셉, QTQ 방송국 막장 드라마의 사용법 주인공 동생 역할로…]
[정요셉, 다시 연기로 부활하려는 신호인가?]
[AA 엔터 아이돌 데뷔는 물거품?]
[네스트라는 팀명만 있는 AA 엔터]
-요셉이 막장 드라마의 사용법 주인공 동생 역할로 들어간다는데?
└ 아 조마조마했는데; 벌써 연기 시작한다고?
-그 드라마 찍으면 우리 데뷔도 뒤로 밀릴 수도 있겠는데?ㅎ
└ 아이돌은 아이돌 활동만 신경 쓰지
-이래서 그룹에 연기멤이 있으면 안 됨
└ 조금 공감
└ 본업은 아이돌인데 부업을 연기로 한다니 ㅋㅋ 본업도 못하면서 연기하려는 아이돌들 망해야 함
-정요셉 어릴 때 PD한테 뺨 맞으면서 촬영했다는데 ㅋㅋ 연기가 그렇게 하고 싶나?
└ 루머 ㄴㄴ
└ 루머가 아니라 탐정 요셉이에 나왔던 원로 배우가 말해줌 ㅇㅇ
└ 그 원로 배우가 말했다는 증거는 있음?
└ ㅋ 없으니까 저런 말을 하는 거임
정요셉이 연기를 그만둔 이유에 대해서는 팬들끼리 의견이 분분했다. 이백수도 어느 정도는 공감이 갔다.
-아 ㅋㅋ 정요셉이 팬들 걱정도 해주면 좋겠다~ 제발 데뷔 떡밥이나 올려 블로그에 이상한 사진 올리지 말고 ㅋㅋ
└ ㄹㅇ 차라리 계정을 만들지 웬 폐쇄적인 블로그 ㅇㅈㄹ
└ 탈덕 마렵다ㅎ 아이돌 덕질 초반부터 탈덕 마려운 거 ㅋㅋ 처음이네
-사진은 팬들 때문에 올리는 건데 올리지 말라는 심보는 뭐임?ㅋㅋㅋㅋㅋ
└ 갠팬 ㅇㅇ
└ 갠팬이지 뭐ㅋㅋ 탈덕 마렵다면서 선동한 다음에 올팬들 물갈이하려는 의도 아니겠어? 이런 거 한두 번 당함?
└ ㅋㅋㅇㅈ
└ 멤버들이랑 상의하고 했겠지 단독으로 했겠음? 올팬들 난리 났다; 응원 안 해줄 거면 악플이라도 달지 말든가 맨날 선동과 날조에 당해서 ㅠ 인생 ㅆㅎㅌㅊ
댓글을 보다가 질려서 커뮤니티 글을 보는데 이상한 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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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트] 오늘 음방 요셉 나비 없음
목현 정진 이든은
밖으로 나와서 팬들한테 손 흔들어주는데
나비랑 요셉이는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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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야 멤버들 편의점 가는데 요셉만 없었음
└ 엥 ㅋㅋ
└ 벌써부터?
└ 미쳤음?
-근데 나비도 안 나왔던데?
└ ㅋㅋㅋㅋㅋ 이건 또 뭐야
└ 진짜임?
└ ㅇㅇ 홈마 프리뷰에 요셉이랑 나비만 없음
둘이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이백수는 걱정부터 앞섰다.
“제발 나쁜 일은 아니면 좋겠는데.”
***
오늘은 QTQ 방송국에서 음악 방송 리허설을 하는 날. 대기실에서 메이크업을 하고 의상을 갈아입는데 김연호가 정요셉을 급하게 불렀다.
“요셉아, 오늘 감독님이 미팅하자고 하시더라.”
“곧 공방 리허설하는데?”
“그래서 10분만 보자고 하시더라고.”
이 근처에 막장 드라마의 사용법 스튜디오가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내일 보면 되는데.”
“어, 안 그래도 그랬거든? 그런데 감독님이 요셉이랑 친하기도 하고, 빨리 보고 싶다는 말을 하셨어.”
일방적인 친한 척 아닌가. 정요셉의 입꼬리가 살짝 떨렸다.
“그래서 지금 만나러 가면 되는 거예요?”
“응, 지금 당장.”
스튜디오가 바로 옆이니까. 미팅을 안 할 수도 없고.
“아직 리허설 전이니까. 바로 인사하고 나오면 될 것 같은데. 요셉아, 어떻게 할래?”
“…가야죠.”
그런데 정요셉만 갈 필요는 없지 않을까.
“저도 가면 안 돼요?”
“응?”
“아, 저는 드라마 촬영장이 궁금해서요.”
나는 정말 드라마 촬영장이 궁금한 사람처럼 눈을 껌뻑였다. 김연호는 고민을 하더니 이윽고 괜찮은 것 같다며 스튜디오에 같이 가자고 했다.
“요셉 형, 진짜로 괜찮아요?”
“응, 뭐… 괜찮을 것 같기도.”
전혀 안 괜찮아 보이는데… 그렇게 김연호의 뒤를 따라서 막장 드라마의 사용법 촬영 장소로 향했다.
***
막장 드라마의 사용법 스튜디오. 나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스튜디오에서 감독을 보고 허리를 숙였다.
“감독님, 정요셉 씨 오셨대요.”
“…어? 요셉아!”
중년인 듯한 감독은 정요셉을 보자마자 친근하게 어깨에 팔을 둘렀다.
“저… 감독님, 미팅은 왜?”
“너 연기해야지.”
“…아, 연기해야죠.”
“그 정도 인지도 쌓았으면 이제 배우로 넘어와. 연기도 좋았잖아.”
어릴 때 구박했던 감독이 할 말이 맞는지?
“지금은 모르겠어요. 최근에는 연기를 안 해서.”
“아~ 괜찮아, 괜찮아. 다시 연기력을 올리면 돼~!”
감독은 가는 곳곳마다 정요셉을 자신이 키운 배우라고 소개하면서 돌아다녔다. 그리고 스튜디오에 있는 배우들한테 정요셉을 다 소개해 주고 나서야 나에게 관심이 생겼는지 나를 흘겨보았다.
“근데 얘는 누구?”
“아, 같은 그룹 막내예요.”
“오~ 마스크가 괜찮네?”
나는 인위적인 미소를 지었다.
“칭찬 감사합니다.”
“배우 할 생각은?”
“없습니다. 아이돌이 좋아서요.”
“아이돌? 어차피 아이돌 생활 끝나면 연기나 예능 쪽으로 갈 거면서.”
“아니요. 제가 얼굴은 되지만, 연기는 별로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뭐, 그래. 나중에 배우로 전향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연락하고. 어차피 넘어오게 되어 있으니까.”
넘어간다는 말은 안 했는데.
감독의 말처럼 아이돌로 인지도를 쌓고 배우로 넘어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렇다고 그 아이돌을 욕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것도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는 방법 중 하나니까. 그러나 저 감독의 말처럼 아이돌 생활이 끝나면 무조건 배우로 빠다는 편견은 별로였다.
“아니, 저는…….”
감독은 내 뒷말을 끊고는 정요셉의 어깨를 잡으며 물었다.
“요셉이도 언젠간 배우로 전향하고 싶은 거 아니야?”
“에이, 감독님. 아닌데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아이돌 생활은 별로야. 안정적으로 배우로 가야지.”
어디서 정요셉을 꼬시라는 임무라도 받은 건가. 계속 정요셉한테 주입식 교육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정요셉은 최대한 감독의 말을 한 귀로 흘리고 있었지만, 표정이 썩 좋지는 않았다.
‘…촬영하는 내내 이럴 것 같은데.’
감독은 계속 떠들어댔다. 감독은 멈출 생각이 없는 듯 계속 말을 하다가 정요셉을 불쌍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그 뭐냐… 아이돌은 사생팬도 있다며?”
“…네?”
정요셉이 당황했다.
“내가 지나가다가 듣긴 했는데 말이야.”
“…….”
“팬들이 집도 따라다니고 스케줄도 따라다니고.”
정요셉은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대답이 없어 정요셉이 수긍하는 줄 알았던 감독은 정요셉의 등을 두드렸다.
“그런 팬들이 있는 이유를 알았다, 요셉아.”
“……?”
“아이돌이 딴따라라서 그런 거네.”
딴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