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폐공장 납치사건(2)
“얘들아, 가까이에 있지?”
화목현의 질문에 멤버들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드디어 꺼졌던 조명이 켜지고 서서히 눈앞이 선명해질 때. 주이든이 정면을 보며 외쳤다.
“벽에 저거 뭐야.”
한쪽 벽면에 글자가 생겨 있었다.
《범나비 제외한 전원 탈출 VS 범나비 혼자 탈출》
※5분 뒤, 두 개의 문이 열립니다.
탈출을 원할 시 왼쪽으로 가면 됩니다.
그 밑에 5분 타이머가 작동하고 있었다. 나는 글자를 보자마자 결정했다.
“형들, 저를 버리세요.”
멤버들이 먼저 탈출하고 나를 구하러 오면 되지. 그러나 멤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비야, 버리라는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돼.”
“…그래도 목현 형, 우선 형들이 탈출하는 게 좋지 않나요? 어차피 저는 혼자 남아도 무섭지도 않고.”
“안 돼.”
벽처럼 단호해서 어떤 설득을 해봐도 안 통할 것 같았다. 그래도 최대한 설득은 해봐야겠지.
“형들이 구해주러 오면 되잖아요.”
“응~? 우리 막내, 우리를 신뢰하고 있네.”
“요셉 형, 제 형들이잖아요.”
멤버들이 나를 버리고 갈 성격은 아니다. 내가 버리고 간다면 모를까.
“…그래도.”
어느새 화목현은 내 말에 반쯤 넘어와 있었다.
“나도 범나비 말에 동의.”
가만히 보고만 있던 주이든이 내 편을 들어주었다.
“이든아, 왜?”
“효율적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가 범나비를 구하러 오는 게 좋지. 쪽수가 많은 우리가 우선 탈출하면 좋잖아.”
이게 현실적인 방법이다. 화목현이 이번에는 이정진한테 물었다.
“정진아, 너는?”
“나는 개인의 생각을 존중하는 편. 막내한테 무슨 생각이 있겠지.”
이정진은 중립이라는 뜻이고.
“음~ 나는 우리 막내의 말이 맞는 것 같은데.”
정요셉이 말을 덧붙이며 나섰다.
“전자는 우리 막내 혼자서 탈출을 하는 거고, 후자는 우리 네 명이 탈출하는 거잖아? 혼자 탈출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요셉아, 나비 겨우 19살이야.”
“목현 형. 우리도 그렇게 어른스럽지는 않아~”
객관적으로 보면 나머지 멤버들도 거기서 거기였다. 단지 성인이 되었을 뿐이고.
“목현 형, 저는 괜찮아요.”
“…하.”
요즘 들어 화목현이 나를 과보호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았다. 화목현이 고심을 하고 있자 주이든이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솔직히 범나비 혼자서도 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믿음이 있지 않아?”
“…제가요?”
“잘 견뎌줄 것 같은, 그런 믿음?”
…언제 나한테 믿음이 생긴 거지? 주이든은 내 눈을 보면서 씩 웃었다.
“어쩌면 범나비가 우리 중 제일 어른일 수도 있어.”
이제 1분이 남은 시점에서 나는 화목현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믿어달라는 듯이.
“혼자 있을 수 있겠어?”
“네, 혼자 있을 수 있어요.”
제작진이 준 5분이 지나고 문이 열렸다.
“우리 막내, 나 없으면 울고 그러잖아~”
“안 우는데요.”
“그래? 알았어, 알았어~”
정요셉이 내 머리를 꾹 누르더니 왼쪽으로 가버렸다. 홀로 오른쪽으로 걸어가면서도 딱히 무섭지도, 떨떠름하지도 않았다.
원래 혼자가 익숙했으니까.
“…혼자네.”
아무도 없는 공간에 있는 테이블에 다가갔다. 의자에 앉자마자 문이 닫혔다. 밖에서 멤버들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마치 나를 부르는 것처럼.
‘이렇게 혼자 있는 건 오랜만이네.’
조용한 공간에 홀로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건, 익숙했다. 일상이었으니까. 심연 아래로 내려가 있다가 나를 찾는 목소리에 깨면 된다. 그게 내가 누군가를 기다리는 방법.
그때 천장에서 나풀나풀 떨어진 종이를 발견했다.
“뭐지?”
의자에서 일어나 바닥에 떨어져 있는 종이를 읽었다.
《선택과 집중》
1. 자신을 희생한다.
2. 1억을 버린다.
내가 종이의 내용을 읽은 동시에, 밖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범나비!”
적막이 흐르던 공간에 주이든의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뒤로 돌렸다. 창문을 보니 밖에 있던 멤버들은 옹기종기 모여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형들?”
내가 다가가자 주이든이 말했다.
“너, 희생한다는 선택지 고르기만 해봐!”
“그걸 고르면요?”
“씁! 그러면 안 돼.”
그러자 화목현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우리는 탈출했어. 제작진이 말하기를, 네가 희생하면 1억 상금을 주겠대.”
내가 희생하면? 그러면 나는 1억을 못 받는 거나 다름이 없겠군. 어차피 돈은 벌면 된다. 물욕도 딱히 없고.
“나비야, 결정했어?”
“…네.”
나는 멤버들이 보는 앞에서 외쳤다.
“저는 1번을 고르겠습니다.”
대답을 마치자 닫혀 있던 문이 열렸고, 멤버들이 들어왔다.
“나비야!”
처음으로 화목현이 소리를 질렀다.
“…어, 목현 형?”
“나비가 미쳤구나.”
“예?”
“돈이 뭐라고 그걸 골라.”
화목현의 목소리가 스산했다. 그러면서 화목현의 손바닥이 내 팔뚝을 때렸다. 아파… 내가 손으로 팔뚝을 문지르자 주이든이 혀를 찼다.
“너는 맞아도 싸다.”
주이든도 말리지 않았다. 정요셉과 이정진은 고개를 돌리며 내 시선을 피했고.
“형들이 받으면 좋을 것 같아서…….”
“그걸 받으면 우리가 좋아할 것 같아?”
“아니, 죄송해요…….”
“그런 말을 하라는 게 아니라.”
그러면 뭘까. 화목현의 마음을 잘 모르겠다. 이런 상황은 회귀 전에 없었으니까. 복잡한 와중에, 정요셉이 손으로 내 머리를 헤집었다.
“우리 막내, 목현 형 말은 널 희생하지 말라는 뜻이잖아~”
“…네?”
“네가 1억을 가져도 우리는 딱히 상관없어. 솔직히 나는 조금 상관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딱히 상관이 없다고? 생존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아이돌 활동을 하면 정산을 제대로 못 받을 수도 있으니까.
“이제 밖으로 나와주세요!”
***
여전히 머리가 혼란스러웠지만,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 PD의 말을 먼저 듣는 게 우선이었다.
“진짜로 1억을 안 주려고 했던 건가요?”
“아닙니다. 그냥 몰래카메라였습니다. 1억을 안 주면 큰일 나죠.”
…뭐? 우리는 얼이 빠진 표정을 지으며 PD를 노려보았다.
“아니! 전 진짜로 안 주는 줄 알고!”
주이든의 외침에 PD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좋은 장면이 많이 나왔습니다.”
재밌는 장면이 많이 뽑혔는지 제작진의 표정이 좋아 보였다. 좋아? 좋을 수밖에.
“1억을 바로 준다고 하면 예능이 재미없잖아요?”
악랄하다. 합리화를 저런 식으로 해? 주이든이 주먹을 쥐면서 방방 뛰었다. 흥분하면 나오는 행동.
“아니, PD님! 우리를 폐공장에 넣다니 너무해요! 막 터지는 소리도 들리고.”
“터지는 소리는 효과만 낸 겁니다.”
“그, 그래도! 얼마나 무서웠는데요!”
“팀장님과 이야기는 다 끝냈어요.”
저 멀리 태평하게 손을 흔들고 있는 팀장님이 보였다. 하긴 팀장님과 이야기를 하지 않고서 이런 일을 벌일 수는 없겠지.
“팀장님!”
멤버들이 팀장님을 크게 불렀다.
“미안!”
팀장님이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멤버들의 불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팀장님이 허락했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 이제 아무도 안 믿을 거야.”
“우리 이든이, 멤버들만 믿고 따르자.”
“응! 그래야지. 정요셉, 너도 나만 믿어.”
“그래, 우리 이든이만 믿을게.”
…뭔가 기운이 빠지네. PD는 종이를 내밀었다.
“이 종이 받아 가세요.”
곧장 다가가 종이 뭉치를 받았다.
“투두 네스트?”
“이번 예능 제목입니다.”
‘투두 리스트’ 같은 느낌인가.
“여기에 적혀 있는 미션을 성공하면 소원권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능은 월요일 9시에 편성될 예정입니다. 많은 분들이 월요일의 괴로움을 투두 네스트로 해소시켰으면 하는 마음으로 월요일로 정했습니다.”
편성은 괜찮았다. 지친 월요일에 활기를 줄 수도 있고.
“그럼 다음 페이지로 넘겨주세요.”
PD의 말을 들으면서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아무것도 없는데요?”
종이에 적혀 있는 건 없었다.
“확실하게 보셨습니다. 저희는 네스트분들한테 아무것도 알려 드리지 않을 겁니다.”
어떤 콘텐츠를 하는지도……? 이거 완전, 어그로가 따로 없었다. 매번 이런 식으로 한다는 건데. 일단은 소원권이 있다는 전제가 있긴 하니까.
그러면 소원권을 어떻게 쓰는 건지에 대해서 PD한테 물어봐야 했다.
“소원권은 어떻게 쓰는 건데요?”
“찢어진 소원권 조각 8개를 모으면 저희가 소원을 이루어 드릴 겁니다.”
“찢어진 소원권 조각이요?”
“네, 오늘은 찢어진 소원권 조각 5개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찢어진 소원권? 그건 또 뭐야.
“찢어진 소원권은 말 그대로 8개의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는 소원권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콘텐츠가 끝날 때마다 받을 수 있는 건가.
“네스트분들이 원하는 소원이 있다면, 소원권을 쓰겠다고 말한 뒤 소원을 말해주시면 됩니다.”
개인 소원은 없다는 뜻이겠네. 멤버들은 딱히 할 말이 없는지 PD의 말을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그럼 다음 촬영에서 뵙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제작진들을 향해서 고생하셨다는 말을 남기며 차로 이동했다.
그렇게 투두 네스트 예능 신고식은 무사히 끝났다. 이제 차에 올라탈 때였다.
【아이돌 노트 ver. 2 시작합니다.】
그 와중에 아이돌 노트를 시작한다는 내용이 떠올랐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
이백수는 커뮤니티를 보면서 네스트의 소식을 기다렸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돌연프에서 소식이 없는 그룹은 네스트가 유일했다.
“…AA 엔터는 네스트 데뷔 안 시키나?”
며칠이 지나도 기사는커녕 단독 투두 네스트라는 예능 기사만 줄기차게 올라왔다. 돌연프 1위를 하면 데뷔 스포라도 올려주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네스트 SNS 없어?
└ 있으면 커뮤 난리 남
└ 그 정도?
└ ㅇㅇ
다른 팀들은 벌써 SNS를 만들고 소통하고 난리인데, AA 엔터는 뭘 하고 있는 건지. 이백수는 혀를 내둘렀다.
[돌연프 1위 네스트, QTQ 방송 월요일 9시 단독 예능]
[단독 예능, 투두 네스트…]
설마 단독 예능만 할 건 아니겠지. 이백수는 불안했다. 일 못하는 소속사는 상상 이상으로 일을 못하기 때문에.
[돌연프 나온 FG 연습생들, 데뷔 코앞?]
[HI 엔터, 키오로 데뷔]
-우리 네스트 언제 볼 수 있죠?
└ AA가 정해주는 시간에…
└ ㅠ 내가 데뷔를 걱정해야 하는 거니?
-솔직히 AA 소형도 아님; 거기가 배우만 몇 명이야 시발 그런데 왜 우리 넷들 데뷔 스포도 안 하냐 고작 하는 게 단독 예능 ㅅㄱ
└ 시발…
-AA 저번 아이돌 망했잖아 후스트
└ 망돌도 있었음? ㅅㅂ 무섭다
└ ㅇㅇ X망함 내 친구가 후스트 앨범 한 장 사고 팬 싸인회 들어갔다고 함 ㅋ 거짓말 같지? 진짜야
└ 개망돌이네…
└ 푸시도 적었다고 함 1년에 앨범 하나였나?ㅎ 정규도 아니었음
-후스트 어떻게 됐는데?
└ 작년에 계약 끝났을걸?
└ 대형만 파던 나? 이렇게 두려워해도 되는지?
└ 아 뭐?
└ 후스트 활동도 없던데… 이 미친 소속사
후스트라는 단어만 봐도 트라우마가 생길 지경이었다. 좋은 애들을 데리고 망한 그룹만 몇 개냐고.
-아직도 네스트 소통 창구 만들지도 않았냐?ㅋ
└ 좆소 티 냄 ㅅㅂ
└ 예능만 내보내면 끝이냐고
소통 창구를 만들고 싶어도 아직 애들은 신인이었다. 이백수는 돌연프 컷만 보면서 삶을 달래고 있었는데.
=============
[AA] 블로그 서치하다가 봤는데
이 블로그 뭐임?
=============
무슨 블로그인가 봤더니 사진만 올라가 있는 흔한 블로그였다. 그런데 사진 속 인물이 뜻밖이었다.
“우리 애들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