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최종 무대(2)
마치 졸업하는 모범생처럼 단정한 옷차림새였다. 나비는 넥타이를 만지며 싱긋 웃었다.
-이제야 사라져 버린 감각이
오늘에서야 피어나는 걸 어떡해
절제된 드럼 사운드에 멤버들이 의자에 앉아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그러고는 책상을 두드리며 탁, 탁, 탁 소리를 냈다. 곧이어 책상 서랍에서 졸업장을 꺼내며 관객석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피어난 꽃 위를 걸어가
요셉이 능글스럽게 관객석을 향해 졸업장을 내밀었다. 관객석에서 손을 내밀며 졸업장을 받는 시늉을 하자, 요셉이 졸업장을 건네주었다.
-힘겹게 걸어가는 게 아닐 거야
목현이 앞으로 나와 꽃다발을 관객석 쪽에 나눠주었다. 우울했던 사람들도 행복하게 만드는 무대. 그걸 바랐던 것 같았다.
-AH-! 그날이 오늘
기적의 날이 온 거지-
1절이 마무리될 즈음, 나비가 가볍게 고음을 찍었다. 가볍게 풍선을 부는 것처럼.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드럼 그루브에 신이 났다. 지루할 틈이 없는 무대에 완벽한 노래 음정까지.
관객들은 리듬을 타며 무대를 즐겼다. 멤버들의 무대는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만들기 충분했다.
“재밌어.”
원래 졸업식은 친구들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이 있었다. 그런데 AA 엔터의 무대는 헤어지는 슬픔이 아닌,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대와 기쁨이 느껴졌다.
거의 다 끝나가는 무대에서 멤버들이 관객석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Melody 우릴 기억해
그 소리가 너와 나는 평행선에 도달한 거야-!
그러니까 울지 말고 웃으며 보자
그렇게 누구나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는 무대가 끝났다. 첫 무대가 어둡거나 과한 퍼포먼스가 가득한 무대가 아닌, 즐기는 무대라서 관객석에서는 환호가 쏟아져 나왔다.
원곡인 I.P의 졸업식은 우울한 느낌이었다면 AA 엔터의 무대는 행복한 느낌이었다.
[미쳤다!!!!!!!]
[와아아아!]
관객석만 난리가 난 건 아니었다. 한쪽 모니터에 올라가는 채팅 속도는 컴퓨터가 잡을 수가 없었다.
-**? 범나비 안경에 안경줄? 사람 미치는 걸 보고 싶은 건가?
-퍼포먼스가 과하지 않아서 좋다
-목현이 피어싱! 목현이 피어싱!
-주이든 몸 선 좋다…
-** 교복
나비는 쏟아지는 환호에 활짝 미소를 지었다.
“…나비야.”
멤버들은 마이크를 꽉 쥔 채 무대 중앙 앞으로 걸어 나왔다.
MC가 AA 엔터를 뽑아달라는 말을 하는 동시에 화면에 광고가 올라왔다. 그리고 AA 연습생들은 무대 밑으로 내려갔다.
-AA 엔터가 첫 시작이라서 좋네
-무대 희망적이고 상큼함
-범나비 노래 진짜 잘 부른다 화목현도
멤버들이 무대를 너무 잘했기에, 박랜서도 무대를 다시 한번 돌려 보고 싶었다.
***
광고가 끝나고 MC가 다시 한번 상자에 손을 넣어 다음 순서를 뽑았다. 다음 무대는 개인 팀이었다. 이번에야말로 1분 미리보기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기량을 보여줄 것인가.
-개인 팀 1분 미리보기 없지 않았나
-흐음 개인 팀 1위 못 하면 탈락임?
-기대가 영…
1분 미리보기에서 유일하게 춤을 추지 않아 개인 팀은 영악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다른 팀은 다 췄는데 가사와 안무를 모른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오? 고예찬 보컬 탄탄하다…
-눈빛 봤음? 끼 장난 아니네
-끼 부린다 **
우려와 달리 개인 연습생들은 그야말로 무대 위에서 날아다녔다.
“…새 아니야? 날아다닌다.”
“이든아, 새가 아니라 인간이야.”
“정요셉… 진짜…….”
대기실로 향하지 않고 모니터로 개인 팀의 무대를 확인했다. 역시 아이돌은 무대 위에서 끼와 재능을 펼쳐야 그 진가가 드러난다. 지금까지 걱정했던 게 무안할 정도.
“약간 부럽다. 팬들한테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줬잖아.”
이정진의 말대로 성장하는 모습을 팬들한테 보여준 거나 다름없었다. 개인 팀은 엔터가 아니라 오로지 그들만의 힘으로 무대 위에 오른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부럽네.’
부러운 마음을 뒤로하고 복도를 걸어가다가 이남주를 발견했다. 이남주는 데이지를 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남주 형?”
“아, 이거 돌연프 비하인드 카메라.”
나는 바로 입꼬리를 올려 카메라를 보고는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AA 엔터 범나비 연습생입니다.”
“돌연프를 하면서 제일 친해진 연습생이자 동생이에요.”
“저랑 제일 친한 형입니다.”
그때 카메라 뒤에 있던 방송작가가 스케치북을 펼쳤다. 거기에는 ‘어떤 팀이 우승할 것 같냐’라고 적혀 있었다.
“…당연히 나비가 우승하지 않을까요? 저보다 실력이 좋다는 평이 많더라고요.”
“아뇨. 저는 남주 형이 우승할 것 같습니다.”
“제가요?”
“그럼요. 형이 우승해야죠.”
훈훈한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서로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렇게 비하인드 카메라가 다른 팀한테 가자마자 나랑 이남주는 미소를 거뒀다.
“어떤 미션을 받았어요?”
“당신이랑 같은 미션이지.”
“페널티는요?”
“페널티는 없던데.”
이남주는 애매한 답변을 하고는 자기 대기실로 가버렸다. 홀로 남은 나는 정수기에서 물을 뽑아서 대기실에 들어갔다. 어느덧 세 번째 무대를 하고 있었다.
“오, 실수했다.”
“…긴장했네.”
RT 연습생들의 무대는 뭔가 애매했다. 1분 미리보기에서는 잘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일단 전체적인 무대 구성이 화려해서 RT 연습생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안무도 빠르고 격해 안무를 쫓아가기 급급했다. 실력은 없는데 뭔가 보여주고 싶긴 하고. 과한 욕심이 불러온 결과였다.
그걸 제외하고도 그냥 재미가 없었다.
-음 말해봤자 입만 아플 듯
-개인 팀보다 역량 부족한 거 실화?
-따라 하기만 하더니 무대는 못 따라 하네 ㅋㅋ
-울 애들 잘했어 ㅠㅠ 아직 부족한 건 당연하지 연습생인데
채팅창에도 좋은 반응이 올라오지 않았다.
-어쩌냐 다음 팀이 FG라서
-RT가 너무 별로라 ㅋㅋ FG는 보통만 해도 올라감
-RT 꽤 잘한 것 같은데? 연습생이 무대 구성하고 노래 연습하고 안무 외웠으면 된 거잖아
-아 또 쉴드 올라오네;
-여기가 커뮤인 줄 아나; 여기 돌연프 채팅창이거든요;
그리고 첫 번째 무대의 마지막 순서인 FG 엔터가 등장했다. 화려한 꽃잎이 천장에서 떨어지면서 이남주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저 꽃만 든 채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무대가 얼굴에 묻히고 있었다.
-이남주! 이남주!
-남주야 네 얼굴이 일류다
-진짜 독보적이다
하지만 다른 FG 연습생들 역시 묻힌다는 단점이 있었다. 꽃을 들고 등장한 FG 연습생들은 중앙에 모여 꽃봉오리를 만들었다.
무대가 시작되자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 FG 미쳤다
-꽃 = FG
-퍼포먼스 그룹 맞다 맞아 ㅠㅠㅠ
-이남주 얼굴만 잘난 건 아니긴 해 ㅇㅈ
-내 심장 살아 있나?
-오 기대 안 했는데 무대 잘하는 듯?
이남주가 이를 갈았네. 이남주의 인기에 FG 연습생들이 묻힌다는 단점을 완전히 바꿔 버렸다.
‘무대가 알차네.’
꽃잎인 FG 연습생들이 없으면 이남주도 없다는 심오한 뜻을 담은 무대였다.
거기다가 FG 연습생들은 인원도 많은데 대형이 잘 짜여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고난도 안무를 틀리지 않았으니 무서움이 느껴질 정도였다.
-FG 연습생들 독기 미쳤냐?
-ㅋㅋㅋ 아이돌 이 정도는 돼야지 볼 맛 난다
-이번에 데뷔하는 아이돌 다 재밌네 ㅋㅋㅋ
-이남주 얼굴 미쳤냐 황홀 그 자체
그렇게 FG 엔터의 무대가 끝났다.
“FG 엔터의 무대를 보면서 느낀 점이 있거든요. FG 연습생들이 없으면 이남주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무대를 구성한 게 맞을까요?”
이남주가 숨을 고르며 MC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뜻이 맞습니다.”
“짧은 시간에 이런 뜻까지 담았다니… FG 연습생분들, 무대 잘 봤습니다.”
FG 연습생들이 무대 밑으로 내려가자 MC가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 첫 번째 카테고리 무대가 끝났습니다. 이제 최종 발표 전, 개인 순위를 발표할 시간이 찾아왔는데요. 왜 제가 더 떨릴까요……?”
MC가 몸을 부르르 떨면서 심호흡을 했다.
“돌연프에서는 개인 순위도 중요하다는 거 다들 아시죠? 그럼 개인 순위를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메이크업 수정을 받으면서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곧바로 모니터에 1위부터 25위가 떠올랐다.
“막내 순위……?”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내 순위는 5위였다.
순식간에 확 오른 개인 순위를 보자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개인 순위 2위 화목현, 3위 정요셉, 5위 범나비, 7위 이정진, 10위 주이든. 10위 안으로 우리 멤버들이 안착했다. 이제야 안정권에 도달했다.
“…이러다가 우리 1위 하는 거 아니야?”
정요셉은 들뜬 마음을 억누르며 멤버들에게 물었다.
“설마.”
“우리가? 아닐걸!”
절대로 아니라는 듯이 이정진과 주이든은 고개를 저었다. 가만히 정요셉의 말을 듣고 상황 파악을 끝낸 화목현이 입을 열었다.
“얘들아, 아직 몰라. 개인 순위만 나온 거니까.”
“…….”
“11시에 투표가 끝난다고 했잖아. 최종 결과가 나오려면 1시간 남았어…….”
화목현의 말대로 들뜰 필요는 없었다. 고작 개인 순위만 나온 거니까. 하지만 개인 순위가 나온 만큼 모두들 더욱 불티나게 투표를 할 것이다.
“지금 작가님이 알려주셨거든요? 지금 막 투표 100만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투표 100만? 중복 투표 안 된다고 했잖아
-돌연프 화제성 1위 하더니ㅋㅋㅋㅋ
-아 ** 긴장됨
서서히 최종 순위 발표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회귀 전 대상을 탔을 때도 이러지는 않았는데.
“모두들 개인 순위를 확인하셨나요? 하지만 개인 순위가 최종 1위에 영향이 가지 않는다는 사실은 다들 알고 계시죠?”
개인 순위에 관객석과 채팅창은 모두 후끈해졌다.
“이 분위기로 두 번째 무대로 가고 싶지만, 우선 VCR을 보고 오시죠.”
이번 VCR은 떨어진 연습생들의 인터뷰였다. 하나같이 비슷한 말을 하고 있어서 고개를 돌릴 때였다.
[HI 이금금 : 안녕, 나비 형! 나 금금이야.]
금금이는 어색한 인사를 하면서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HI 이금금 : 내가 감이 오거든. 형이 1위 할 거라는 감이. 그러니까 유명해져도 나 무시하면 안 된다? 형이 언제나 나를 응원하는 것처럼 나도 형을 언제나 응원해!]
금금이의 손 인사를 끝으로 다음 인터뷰가 떴다.
[이서혁 : 안녕하세요. 배우 이서혁입니다.]
이서혁의 등장에 관객석이 웅성거렸다. 그럴 만도 했다. 이서혁은 아직도 HOR 엔터와 싸우고 있지 않은가.
[이서혁 : 나비야, 형이 응원하러 왔다. 형이 항상 무대 보면서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 잊지 말고. 이거 보면 나중에 연락해라?]
졸지에 이서혁과 친하게 지내는 이미지를 갖게 된 나는 어리둥절한 기분이었다. 얼떨떨한 상황 속에서 웃긴 상황이 연출되었다.
[오한준 : 정진아, 안녕? 항상 응원하고 있었어. 꼭 우승해. 파이팅.]
예상치 못했던 오한준의 등장이었다. 오한준은 순진한 표정으로 주먹을 들고 이정진을 응원하고 있었다. 정말 뻔뻔스러웠다.
“그럼 두 번째 무대를 시작하겠습니다!”
모니터 화면에 《FG 엔터》라는 글자가 떴는데, 갑자기 MC가 다급하게 카메라를 찾았다.
“카메라 감독님, 잠시만요!”
무슨 이유가 있는 건지 MC가 죄송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일 있음?
-?????
-ㅎㄷㄷ 겁나는데?
-뭐지?
-돌연프 또 사고 친 거 아니지?
MC는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비장한 얼굴을 했다.
“무대를 보기 전에 광고부터 보고 오겠습니다!”
60초 광고 어그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