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제작진과의 거래
“상황이 심각하네.”
최종 무대를 앞두고 편곡 유출 사건은 심각한 일이었다. 졸업식 편곡 영상은 빠르게 내려가긴 했으나 이미 들을 사람은 다 들은 모양이었다.
-ㅅㅂ 하필 최종 무대 4일 남겨둔 시점에서
└ ㄹㅇ 어떻게 하면 이게 유출이 됨?
-졸업식 편곡은 좋네
└ 맞죠? 정진이가 한 것 같아요
└ 오 좋네요
└ 진심 편곡 존나 좋아 청춘 느낌 물씬 풍김
-강제로 스포당한 기분이야…
-돌연프 사과문이라도 써야 하는 거 아님?
└ 그럴 수도 있지 돌연프 편집 빡세잖아
└ 편집 빡센 거랑 너튜브 관리가 같음?ㅋㅋ
-왜 우리 애들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냐고 ㅠㅠ
└ 하… 너튜브에 올라간 편곡 영상 우리 애들 거 아니길 바랐는데…
└ 너무 속상해서 눈물 남ㅠㅠ
팬들은 우리를 걱정하고 있었고, 우연히 편곡 영상을 보게 된 사람들은 곡이 좋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이게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정진이는 어떻게 하고 싶어?”
화목현이 이정진에게 물었다.
“난 별생각 없어.”
“진짜로?”
“…그래야 마음이 편안해져서.”
굉장히 긍정적인 답변이네. 그렇다고 이 상황을 어영부영 넘기는 건 별로였다.
‘뭐… 딜이라도 해볼까?’
우리는 강제로 최종 무대 곡이 너튜브에 올라간 셈이니까. 그때 돌연프 PD가 나타났다.
“…AA 연습생분들? 잠시만 얘기할 수 있을까요?”
***
회의실에 도착하자 PD에게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어떻게 우리 편곡 영상이 너튜브에 올라갔는지 말이다.
“돌연프 편집자가 각 엔터의 편곡을 예고편에 넣으려다가 그만… 편곡 영상을 올려 버린 모양이에요. 저희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
“…….”
“편곡 영상은 올라가고 나서 바로 삭제됐어요.”
봐달라는 뜻이군. 돌연프 편집자가 갈린다는 말을 듣긴 했다. 나도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앞으로 PD가 어떻게 나오냐에 따라서 상황이 달라질 뿐이지.
그러자 화목현이 PD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저희만 편곡을 미리 선보인 셈이 되었네요.”
“네… 그렇죠.”
PD는 방송작가를 슬쩍 보더니 입을 열었다.
“그래서 제안을 하려고 합니다.”
“…어떤 제안을?”
“소원 하나를 들어주겠습니다.”
소원 하나? 딜 하기 전에 먼저 패를 꺼냈네.
“1분 미리보기는 어떻게 할까요? 편곡 영상 때문에 아직 올리지 않았거든요.”
우리만 아직 1분 미리보기가 올라가지 않은 상황. PD는 화목현을 보면서 물었다.
“화목현 연습생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나는 생각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화목현을 쳐다보았다. 화목현이 어떤 결정을 할지 궁금해서.
“…전 멤버들의 의견을 듣고 말씀드릴게요.”
“그럼 저는 빠져 있을게요.”
PD가 회의실을 나갔고, 화목현이 물었다.
“얘들아, 어떻게 할래? PD님이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다고 했으니까, 일단은 1분 미리보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면 될 것 같거든. 이미 돌연프 측에서 노래를 삭제하긴 했지만…….”
화목현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돌연프에서 조치를 취해 편곡 영상이 삭제되긴 했으나, 이미 볼 사람은 다 본 시점. 중대한 사안인 만큼 멤버들은 입을 꾹 닫고 있었다.
‘나라도 입을 열어야 하나…….’
사실 PD가 실수라고 말하고 그냥 넘어갈 줄 알았다. 그런데 소원 하나를 들어준다고 했으니까… 우리한테 나쁘기만 한 건 아니지. 그때 나랑 눈이 마주친 화목현이 입을 열었다.
“나비야, 너는 어떻게 생각해?”
“저는… 1분 미리보기가 올라갔으면 좋겠습니다.”
“1분 미리보기를 올려달라는 거지?”
“네.”
이왕 이렇게 된 거 1분 미리보기도 올려 버리는 쪽이 나았다. 이미 팬들은,
-아 너무 속상해
└ 항의할까?
└ 그건 좀; 애들한테 안 좋을 수도 있음ㅠ
└ 그니까…
└ 아 진짜 짜증 나 ㅠㅠㅠㅠ
이런 식으로 속상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1분 미리보기까지 올라가지 않는다면 팬들은 더더욱 실망할 것이다.
“팬들이 속상해할 테니까 올리는 편이 나을 것 같아요.”
내 말에 멤버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돌연프 측의 실수로 올라간 편곡 영상 때문에 우리에게는 왠지 모를 불쌍한 이미지가 생겨나고 있었다.
‘어쩌면 좋은 일일 수도.’
지금처럼 불쌍한 이미지로 쭉 이어진다면 중복 투표로 팀 순위가 오를 수도 있다.
“중복 투표가 가능한 팀 순위를 한번 노려보죠.”
불쌍한 이미지가 형성되면 함부로 건들 수도 없을 테고.
“정진이는?”
“괜찮을 것 같아.”
이정진의 허락을 받았으니까.
“왜 아무도 소원은 안 말해?”
“아, 소원.”
“소원…….”
소원이라. 최대한 실현 가능성이 있는 소원을 말해야 좋을 것 같은데…….
“최종 무대에 필요한 장치를 달라고 할까요?”
“오~ 좋아!”
정요셉은 좋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면 어떤 걸로 갈까요, 정진 형.”
“…스크린?”
터널 무대에서 필요한 무대 장치가 스크린이긴 했다. 모두가 동의하는 쪽으로 기울자 화목현이 문을 열어 PD를 불렀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죠?”
“1분 미리보기를 다 올려주세요.”
우리의 결정이 의아하다고 생각했는지 PD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소원은…….”
소원.
“최종 무대에서 스크린을 사용하게 해주세요.”
***
편곡 유출 소식을 들은 팀장님께서는 연습실에 들른다고 연락을 하셨다.
“곧 오신다고 했으니까, 앉아서 기다리고 있자.”
화목현의 말에 멤버들은 의자에 앉아 각자 할 일을 했다. 나는 안무를 연습하다가 너튜브를 확인했다.
-뭐야? 입장문은? 사과문은?
└ 내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
-ㅋㅋ 솔직히 다른 팀 1분 미리보기 안 나왔으면 짜증 났을 텐데
└ AA 연습생들은 편곡 유출까지 됐는데?
└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제발 공과 사를 구분하면서 살자ㅠ 걔들만 프로그램 나오는 것도 아니고
└ ㅁㅈ
-입장문이나 사과문은 안 내줄 것 같았는데 그렇다고 이렇게 1분 미리보기를 올릴 줄은 몰랐지;
└ ㅠ 돌연프가 빡대가리라서 그럼
-내부 사정이 있어서 늦게 올라온 거라고 했으니까. AA 엔터랑 말 맞췄겠지 ㅠㅠ
└ 하 불쌍한 애들은 AA 연습생들이지…
반응은 괜찮았다. 더군다나 불쌍하다는 이미지도 챙겼고.
‘…이 정도면 괜찮네.’
화면을 끄자 저 멀리서 허겁지겁 달려오는 팀장님이 눈에 들어왔다.
“하아… 얘들아, 미안해. 내가 미리 확인하고 수습해야 했는데……,”
“괜찮아요. 팀장님 탓도 아니고요.”
“목현이가 잘해줘서 일이 수월해졌어. 고맙다.”
엔터가 이쪽으로는 힘이 없어서 그런지 팀장님도 힘이 드는 모양이었다.
“얘들아, 신경 많이 못 써줘서 미안하다. 이거 받아.”
팀장님은 개인 카드를 주시고는 손 인사를 하며 떠나셨다. 그 개인 카드를 나한테 준 게 탈이었지.
“커피 마실 사람 있어요?”
주이든을 제외하고 모두가 손을 들었다.
“이든 형은요?”
“…나는 레모네이드 아니면 아이스티?”
“그거 있으면 사 올게요.”
머리가 아파서 아무래도 카페인 충전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연습실에서 빠져나가 카페로 가는 길에 이남주를 만났다.
“그 카드가 편곡 유출로 갈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저도요.”
“솔직히 당신도 궁금했잖아요. 그 카드가 어떻게 작용할지?”
“…그래서 저희 곡이 유출됐고요.”
“동정표는 받았으니까 괜찮은 상황 아닌가…….”
저… 개의 새끼. 이미 일어난 일이라 욕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한숨을 푹 쉬자 이남주가 자기 카드를 꺼냈다.
“그래서 말인데, 제가 커피 사줄게요.”
커피를 사준다고? 그 말을 듣고 나중을 위해 팀장님의 카드를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이럴 때가 아니라면 이남주의 카드를 쓸 일이 없으니까.
“카페에 있는 디저트 다 사주세요.”
“…네?”
“원가는 맞아야죠.”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지 당이 당기는 것 같다는 느낌이 왔다. 마침 카페에 있던 샌드위치도 시켰고.
“이거 다 먹을 수 있어요?”
“그럼요.”
“생각보다 잘 먹나 보네요.”
언제 이 자식의 돈을 써보겠어. 나는 진동벨을 들고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그 카드에 페널티도 있어요?”
“아니요. 자체적인 페널티는 없어요.”
“그 카드는 어떻게 생긴 거예요.”
“아이돌 노트 업데이트를 하면 정답 풀이에 카드가 나와요. 그것도 랜덤으로 나오겠죠.”
아이돌 노트 업데이트라면.
【이정진의 성장에 아이돌 노트의 업데이트가 수치가 올라갑니다.】
※■■■■■■□□□□ : 60%
이거겠네. 나는 실패가 잦아 아직 업데이트 수치가 60%밖에 되지 않았다. 이 업데이트가 끝나면 카드도 나오겠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다음에도 카드가 나오면 당신한테 써도 돼요?”
“…허락할 것 같아요?”
“주인공의 인생이 평탄하면 얼마나 재미가 없는데요.”
“소설의 독자를 위해서 내가 그 고생을 해야 한다?”
“그렇죠. 그래도 당신이 주인공인데.”
이남주는 테이블에 팔을 올리더니 꽃받침을 하며 미소를 씩 지었다.
“저는 엑스트라라서 고난과 역경이 필요 없고요.”
저 얄미운 자식.
“그렇다면 한번 물어봅시다.”
“…네?”
“왜 제 인생이 평탄하면 안 됩니까?”
키오 시절부터 힘들게 아이돌 생활을 해왔는데. 이제 조금 평탄해도 되잖아.
“아까도 말했듯 주인공이니까요. 원래 판타지 소설 주인공은, 많이 잃어봐야 해요. 그럴수록 가슴이 아프고 재미도 있죠.”
“…가슴이 아프다?”
“당신은 소설을 안 봐서 잘 모르잖아요.”
“네, 안 봐서 잘 몰라요.”
이남주는 나에게 눈웃음을 쳤다.
“원래 독자는 주인공이 구를 때 기분이 좋아지는 법이에요.”
“…그건 싸이코패스잖아요.”
“어차피 당신은 소설 속 캐릭터인데, 뭘?”
이해할 수가 없다. 주인공이 구르면 안타까운 마음부터 들지 않나?
“솔직히 카드가 나왔을 때, 좋았어요.”
나를 굴릴 수 있는 기회를 터득해서 좋았던 거겠지.
“진동벨 그렇게 쥐고 있으면 손목 아플 텐데.”
“…신경 쓰지 말죠?”
“그러다가 마이크 못 쥐게 되면 1위가 아니라 2위가 될 수도 있잖아요. 아아, 벌써부터 마음이 아프다.”
“아, 2위…….”
이남주가 소설을 제대로 보긴 한 것 같다. 내 성격을 이렇게 잘 아는 걸 보면.
그 순간 진동벨이 울렸다. 나는 일어나면서 이남주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글쎄요. 2위는 당신일 수도 있는데.”
“…….”
“아이돌은 당신 생각보다 쉽게 되는 게 아니라서.”
어떤 변수가 일어나게 될지 모르니까.
“나는 쉽던데, 아이돌.”
“…….”
“다른가 봐요, 당신이랑 나는.”
진짜 한 대 쥐어박을까? 주먹을 쥐고 때리려는 찰나에 시스템창이 떴다.
「문제 13, 최종 1위 하기!
페널티:돌연프 전으로 회귀」
회귀? 이번에는 정답 풀이도 없었다. 내가 허공을 보며 인상을 찌푸리자 이남주가 물었다.
“왜요? 시스템창이라도 떴어요?”
“네.”
“뭐라고 하는데요.”
나는 이남주를 정면으로 보면서 말했다.
“1위 못 하면 회귀요.”
***
나는 양손 가득 가져온 음료, 디저트, 샌드위치를 단체 연습실에 옮겼다. 내 모습을 보던 정요셉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우리 막내, 손목 아프잖아~!”
정요셉이 달려와 짐을 같이 옮겼다.
“우리 막내, 이거 다 뭐야? 커피만 사 온다고 하더니.”
“커피만 사 오려다가 다른 것도 맛있어 보여서 사 왔어요. 마음껏 드세요. 계속 안무 외운다고 힘 빠졌잖아요.”
“그렇다기엔 디저트가 너무 많은데?”
…음, 하긴 디저트가 많긴 했다.
“먹고 하죠~”
정요셉의 외침에 멤버들이 안무를 외우다가 샌드위치를 하나씩 가져갔다.
“이렇게 많이 사 왔어?”
“제 돈으로 산 게 아니라서 많이 샀어요.”
“그러면 누구 돈인데?”
“이남주요.”
나는 마지막 샌드위치를 가져와 와그작 씹으며 숨을 골랐다.
“남주가 이걸 왜 사줬는데?”
“저한테 못 할 짓을 해서요.”
가만히 있던 주이든이 고개를 팍 들었다.
“왜? 걔가 너 괴롭혀?”
“괴롭힘당한 건 아니고요.”
“그러면? 이남주가 뭐 사줄 때는 대개 괴롭힌 다음이던데.”
은근 주이든은 눈치가 좋았다.
“자기가 1위 하겠다고 그랬어요.”
“…뭐? 걔가?”
“저는 2위밖에 못 한대요.”
선동과 날조는 이렇게 시작된다.
“속상해 죽겠어요.”
멤버들은 그 말을 듣고 샌드위치 먹는 속도가 빨라지더니 어느새 금방 다 해치워 버렸다.
“얘들아, 졸업식 안무 다시 해볼까?”
정요셉이 입가에 묻은 소스를 닦으면서 소리를 질렀다.
“아자!”
주이든은 스트레칭을 하면서 각오를 다졌다.
“내가 열받으면 아무도 못 말리는데 말이야.”
그리고 조용히 이정진은 안무를 외웠다.
“나비야! 빨리 와서 안무 외우자.”
화목현의 부름에 달콤한 휴식은 막을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