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의 1군 가이드-55화 (55/235)

55. 졸업식 편곡 공개

‘도대체 어느 시점이라는 거야?’

이남주와 헤어지고 나서는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방심할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어디에도 가지 않고 단체 연습실에서만 지냈다. 밥도 여기서 먹고, 잠도 여기서.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 온 화목현이 다가와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어? 낯빛이 안 좋은데?”

“제 낯빛이요?”

나는 고개를 돌려 거울로 얼굴을 보았다.

“괜찮은데요?”

“아니야. 얼굴이 붉잖아~”

“붉어요?”

정요셉의 말을 듣고 볼에 손등을 가져다 댔다. 뜨겁지는 않았다. 멀쩡한 것 같은데.

“우리 막내, 어제 몇 시까지 연습실에 있었어?”

“어제요? 새벽 3시까지 있다가 기숙사에 들어갔어요.”

“언제 일어났고?”

“아침 7시에 일어났어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 뒤이어 단체 연습실에 들어온 주이든을 보면서 정요셉이 옆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이든아, 이리 와봐.”

“왜?”

“나비 아픈 것 같아.”

“…뭐? 쟤가? 어디가 아파!”

주이든이 달려와 내 이마에 손바닥을 댔다. 시원하다…….

“어? 이마가 뜨거운데?”

“…뜨거워요?”

주이든의 손바닥이 시원해서 거부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얘가 내 손길을 쳐내지도 않고 가만히 있잖아. 아무래도 많이 아픈 것 같은데!”

“그치? 이든아, 일단 약을 가져올게.”

몸살 약이라면 내 가방에 있었다.

“제 가방에 약이 있을 거예요. 제가 가져올게요.”

그렇게 가방이 있는 곳으로 가려고 몸을 일으키는데…….

“…어?”

몸이 무거워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내가 당황해서 멍하니 있자 주이든이 내 가방 안에 손을 넣었다.

“범나비, 이거?”

“어, 네. 그거요.”

“정리가 잘되어 있네!”

정요셉이 작게 중얼거리며 몸살 약을 꺼냈다.

“물은 내가 가져올게.”

가방에서 반대편에 있는 물을 가져온 화목현은 뚜껑까지 따서 나한테 물을 건넸다. 정요셉은 내가 약을 삼킬 때까지 지켜보았다.

“우리 막내, 이제 기숙사로 가야지. 안 그러면 탈 나.”

“어, 아직 연습이 덜 끝났는데.”

“덜 끝났다고?”

“저 연습실에서 자면 안 돼요?”

이남주가 준 그냥 좋은 카드 때문에 불안해서 안 되겠다. 눈앞에서 멤버들이 멀쩡하게 있는 모습을 봐야 불안함이 사라질 것 같았다.

“얘가 이상한 고집이 있어!”

“…저 여기에 있을래요.”

그리고 연습실 바닥에 누웠다. 약간 추운 것 같아 팔로 다리를 감싸면서 멤버들을 올려다보았다.

“목현 형이 막내 상태를 보면 잔소리를 할 텐데?”

“우리 어떡해?”

“막내가 가기 싫다고 했다는 말을 과연 믿을까?”

“믿겠냐?”

정요셉과 주이든은 심각하게 대화를 나눴다.

“쟤 기숙사에 데려다 놔도 다시 내려올 것 같단 말이야.”

그건 맞았다. 억지로 이불에서 빠져나와 단체 연습실로 갔을 것이다.

“저… 형들이랑 돌연프 7화도 봐야 하고.”

“그래, 우리 막내.”

“형들 안무랑 노래도 보고 싶고.”

내가 핑계를 대면서 가기 싫다고 하자 주이든이 끙끙 앓으며 고민했다.

“그럼 우리 기숙사에 가서 범나비 베개랑 이불 가져오자!”

“오, 이든이~ 참신한 의견이었어.”

정요셉과 주이든은 이불을 가져온다며 사라졌다. 몇 분이 지나자 내 베개와 이불을 가져온 정요셉과 주이든이 동시에 씩 웃었다. 마치 꿍꿍이가 있는 것처럼.

‘불안하다…….’

그러고는 바닥에 이불을 펼치더니 나를 김밥처럼 이불에 돌돌 말았다.

“저, 답답해요…….”

“어쩔 수 없어!”

아니, 정말 답답하다고요. 때마침 밖에 나갔던 화목현과 이정진이 연습실 안으로 들어왔다.

“나비 왜 저러고 있어?”

“리더~ 막내 아프대~!”

“아프다고?”

화목현이 다가와서 내 얼굴을 살폈다.

“아픈 것 같네. 나비 얼굴이 빨갛다.”

“그러네…….”

도대체 무슨 말을 저렇게 열심히 하는 건지… 점점 눈이 감기면서 멤버들의 목소리가 귀에 들리지 않았다.

“막내 잔다.”

돌연프 7화 못 보고 자면 안 되는데. 하지만 쏟아지는 잠을 이길 수가 없었다.

“…저, 조금 잘게요.”

“그래.”

“진짜로 조금만…….”

그렇게 깊은 잠에 빠졌다.

***

이백수는 친구와 만나 호텔로 향했다. 오늘은 돌연프 7화가 나오는 날. 미리 시켜놓은 피자와 맥주를 테이블에 올려두면서 채널을 돌렸다.

“너 올팬 아니라고 하지 않았어?”

“그거? 딱히 나비 갠팬이라고 하지는 않았는데.”

“최근에 변심했네.

“올팬 할 수밖에 없었어.”

“…각자의 매력이 있긴 해.”

정작 친구는 돌연프에 대한 관심이 사라졌다. 현생이 바빠서 자연스럽게 흥미가 식었다고. 그렇게 이백수만 AA 엔터의 덕질에서 살아남았다.

“그 선공개 영상 보니까 말이 많던데.”

“박정후?”

“어, 어. 기사도 났잖아. 나비 따라 한다고.”

박정후가 나비를 따라 하는 모습은 이미 여러 차례 포착된 상태였다.

“진심 짜증 나.”

“교묘하게 따라 하더라.”

“그럼 돌연프에서 뿌린 사진 봤어?”

“어, 봤지.”

“박정후가 나비 가방도 따라 했더라. 보부상 컨셉까지.”

나비를 따라 하면 똑같이 되는 줄 아나. 이백수는 맥주를 마시며 속을 뻥 뚫었다.

“걔 메인보컬인데 노래도 못하잖아.”

“맞아. 개인 무대 보다가 나 열불 나 죽는 줄. 나만 그랬어?”

“나도 그 장면 보고 빡쳤어. 박정후 꼰대 마인드 같잖았어.”

이백수는 더블엣지 포테이토 피자 한 조각을 입에 넣어 오물오물 씹었다. 그러고는 맥주로 입가심을 했다.

“야, 야. 한다.”

[최종 무대의 카테고리 선발전!]

‘뒷동산에서 펼쳐지는 어드벤처 서바이벌’이라는 타이틀로 마치 게임처럼 편집을 해놨다.

“돌연프 끝나고 정주행할까? 너무 재밌어.”

“원래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끝나고 다시 보는 재미지.”

1위인 AA 연습생들은 뒤늦은 출발을 했다.

[AA 범나비 : (비장)제가 모래주머니를 찰게요.]

“…이야, 젊네.”

친구의 감탄에도 이백수는 걱정부터 앞섰다. 모래주머니를 발목에 차고 뒷동산에 오르는 건 꽤힘들 텐데.

[방송작가 : 범나비 연습생이 모래주머니를 발목에 찬다고 했을 때 심정이 어땠나요?]

[AA 화목현 : (한숨)나비가 계속 자기가 찬다고 해서 할 말이 없더라고요.]

[말이 너무 많아 편집]

[AA 화목현 : 아무튼 그렇습니다.]

화목현의 단호한 말투에 당황해 그만 맥주가 입술 틈새로 새어 나오고 말았다.

“화목현 원래 저런 성격이야? 웃기다.”

“…잔소리가 많긴 해.”

“그래?”

말이 없을 줄 알았던 화목현이 이렇게 말이 많다니, 왠지 호감이다.

[AA 정요셉 : 형들이 힘든 건 싫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죠. 우리 막내, 사랑한다~]

엄지를 치켜드는 정요셉의 모습이 지나가고, 꿋꿋하게 올라가는 나비의 모습이 나왔다.

“어, 야. 박정후다.”

박정후는 올라가지 않고 한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쟤가 왜 있어?”

“AA 애들 기다리는 거 아니야?”

이백수가 봐도 박정후는 AA 연습생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박정후의 등장!]

“약간 빌런처럼 등장하는 느낌인데…….”

이내 박정후는 넘어지는 듯하더니 나비를 밀쳤다. 그 탓에 나비는 난간에 부딪히고 말았다.

“헐, 야…….”

“손목……!”

멤버들은 나비의 주변에 모여서 괜찮냐고 물었고.

[RT 박정후 : 나비야, 괜찮아?]

[AA 범나비 : …네, 괜찮아요.]

그러나 나비는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안 괜찮은 것 같은데… 저래도 돼?”

“…내가 보기에는 일부러 저런 거 같은데.”

“야, 설마…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그런 헛짓을 하겠어…….”

친구는 사고가 일어난 거라며 너무 깊게 들어가지 말라고 했지만 이백수는 바득바득 이를 갈았다.

-박정후 일부러 그런 거지?ㅋㅋㅋ

-이야 일부러 그런 거 백퍼지 범나비 인상 썼다가 형들 오니까 아니라고 하네…

-이건 선 넘었다 범나비 따라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함

-저때 박정후 범나비 트레이닝복도 따라 입었네

└ 범나비가 따라 입었을 수도 있잖아?

└ 야 머리가 꽃밭임?ㅋㅋ 범나비 트레이닝 바지 맨날 저것만 입어

└ 사람보고 꽃밭이라니 ㄱㅅ

-돌연프가 원래 악편으로 유명하잖아 이것도 악편이지 뭐

└ 악편이라고? 악편이라고? 악편이라고?

└ 저게 악편이면 내 인생도 악편이다

AA 연습생 팬들은 박정후가 일부러 저러는 거라고 했지만, 다른 팬들은 물건이 우연히 겹칠 수도 있다는 반응이었다. 자기들이 안 당해봐서 그러는 거지.

[팻말을 고르고 내려온 연습생들]

대결 방법은 이미지 게임. 곧 선공개 영상에서 봤던 나비 동태 눈깔의 진실이 밝혀진다.

[범나비 VS 박정후]

“넌 누가 이길 것 같아?”

“나는 당연히 나비.”

“나도. 뭔가 느낌이 그래.”

‘제발 나비가 이겼으면 좋겠다’라고 이백수는 마음속으로 빌었다. 그렇게 이미지 게임이 시작되면서 나비의 진가가 발휘됐다.

[동태와 생태를 오가는 범나비!]

이미지 게임에는 이상한 캡처본이 등장했다. 심지어 돌연프를 자주 본 사람들도 무슨 짤인지 모를 정도였다.

“…저걸 어떻게 맞혀?”

“그러니까…….”

차라리 돌연프 퀴즈 게임이라면 모를까. 이건 돌연프 짤을 많이 쓰는 이백수에게도 어려웠다. 그렇게 마지막 세 번째 캡처본이 나왔고, 나비는 손을 들어 문제를 맞혔다.

[MC : 범나비 연습생 승리!]

결국 나비가 이미지 게임 우승을 차지했다. 박정후의 우울한 낯을 보니 이백수는 사이다를 마신 것처럼 휘파람이 절로 나왔다.

“야, 오늘 돌연프 1화부터 정주행할래?”

“어, 정주행 달리자.”

그렇게 한창 돌연프 정주행을 달리고 있는데 너튜브 영상 알람이 떴다.

“졸업식 편곡 최종, 최종, 최종본?”

최종 무대 영상이 아닌 졸업식 편곡 음성 동영상이었다. 곧 삭제가 됐지만.

“이거… 나비 목소리 아니야?”

동영상에 나오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나비였다.

***

“아윽…….”

나는 악몽을 꾸다가 눈을 떴다.

‘아.’

몽롱한 상태로 일어나 이불을 만지자 현실 감각이 깨어났다. 꿈이었구나. 하필 멤버들이 죽는 꿈을 꿔서.

나는 대충 옆으로 몸을 돌려 이불에서 벗어나자 머리 위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뭐지.”

그곳에는 초콜릿, 전주비빔 삼각김밥 등이 놓여 있었다. 초콜릿을 제외하면 멤버들이 자주 먹는 음식들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는 멤버들이 자고 있었다. 조명을 켜놓은 채로.

몸살 약 덕분인지 몸은 가벼웠다.

‘몇 시지?’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아, 돌연프 할 시간은 지났다.’

무슨 일이 있었나 싶어 커뮤를 확인했는데 상황이 이상했다.

-돌연프 관계자 뭐 함?ㅋㅋ

└ 자고 있답니다 ㅎ

-편곡 유출한 관계자는 이거 보고 있으려나?

-AA 엔터만 1분 미리보기 안 올라감ㅠ

└ 아 그러네?

└ 헐

└ 돌연프 일을 하는 거임 안 하는 거임?

└ 그냥 안 하는 듯…

-관계자 눈물 나겠다 욕 ㅈㄴ 먹을 것 같은데…

└ 욕먹을 만하지ㅋㅋ

└ 그럼 최종_최종_최종본이라는 문구가 있는데 그걸 못 봐?

└ 못 볼 수도 있지…

-돌연프 편집자 방송국에서 갈리고 있는 것 같은데 우리가 눈감아주면 되지

└ 우리 애들은요?

└ AA 연습생들은?

└ 댓글 그만-

…AA 최종 무대 편곡이 너튜브에 올라왔다고? 확인해 보려고 너튜브를 켜자 알고리즘으로 ‘최종 무대 AA 졸업식 편곡’이 떴다.

‘…허?’

이 사실을 멤버들에게도 말해야 하는데… 나는 제일 먼저 화목현을 깨웠다.

“…나비야, 일어났어?”

“목현 형, 일어나서 이 영상 좀 봐야겠는데요.”

“무슨 일 있어?”

“네…….”

큰일이 나긴 했으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