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의 1군 가이드-52화 (52/235)

52. 이정진의 트라우마 공개

1분 미리보기 무대를 진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멤버들을 불러 모았다. 전략을 짜기 위해서.

하지만 새로운 전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멤버들과 머리를 싸매며 고민에 고민을 더할 때였다.

회귀 전, 콘서트에서 포지션을 바꾸고 놀았던 게 떠올랐다. 이거 괜찮을 것 같은데.

다른 팀한테 우리 팀의 전략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방송 분량까지 잡을 수 있으니까.

“목현 형, 우리 포지션을 바꿔보는 건 어때요?”

“포지션을?”

“메보가 랩을 하면 신선하고 좋지 않을까요?”

포지션을 바꾸면 처음 맡은 포지션을 열심히 하는 모습이 나오고, 각자가 어떤 파트를 맡았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포지션 바꾸기는 성공적이었다.

“포지션을 바꿀 줄은 몰랐는데요? 특히 범나비 연습생의 랩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제 랩이 인상적이었다면 다행이네요.”

방송작가의 얼굴을 확인하니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됐다.

“그렇다면 범나비 연습생, 혹시 이기고 싶은 연습생이 있나요?”

“…어.”

이기고 싶은 연습생은 없었다. 그래도 있다고 하는 게 방송에 좋겠지… 주변을 둘러보다가 이남주를 발견했다.

“남주 형이요.”

나중에 이남주랑 말을 맞출 수도 있고.

“제가 알기론 이남주 연습생과 친하다고 알고 있는데… 설마 친한 연습생이라고 뽑은 건 아니죠?”

“아닙니다. 남주 형의 목소리가 좋아서 뽑았습니다.”

물론 구라다. 이남주가 감격에 겨운 표정을 지으며 스태프가 주는 마이크를 잡았다.

“나비야, 날 뽑아줘서 고마워.”

“저야말로 감사하죠.”

훈훈한 분위기에 MC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AA 연습생들은 제자리로 돌아가 주세요.”

곧바로 자리로 돌아가면서 고개를 들었다.

“훈훈한 분위기를 이어서… 이제 두 팀이 남았죠? FG 연습생과 개인 연습생.”

FG 연습생들은 여유로움이 가득했다. 반면에 개인 연습생들은 떨리는지 자꾸 바지에 손바닥을 닦았다.

“눈을 감고 뽑겠습니다.”

MC는 눈을 감은 채 봉투를 골랐다. 그리고 고른 봉투를 들고는 눈을 떴다.

“세 번째 무대는 FG 엔터입니다!”

FG 연습생들은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중앙에 섰다.

“안녕하세요! FG 엔터입니다!”

FG 연습생들의 목소리가 우렁찼다. 마치 귀가 나갈 것처럼. 이남주가 어떤 곡을 골랐을지 궁금했다.

“그럼 FG 엔터의 1분 미리보기 무대를 보겠습니다.”

이남주가 중앙에 앉으며 꽃이 꺾인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이자, FG 연습생들은 꽃잎이 된 것처럼 몸으로 이남주를 감쌌다.

그때 나는 직감했다. 이남주가 좋은 곡을 골랐다고.

-너의 꽃잎을 열어주렴

한 FG 연습생이 몸을 틀어 밖으로 나오자 이남주가 꽃잎을 피우듯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남주가 뒷동산에서 고른 건 걸 그룹의 곡인 ‘피어나라’였다.

많은 아이돌 지망생들이 엔터에 지원할 때마다 이 곡을 부르고는 했다. 그만큼 이 곡은 빡센 고음과 빡센 안무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FG 연습생들이 두 번째 곡으로 우리와 똑같은 ‘터널’을 고른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 곡은 퍼포먼스를 보여줬으니까, 두 번째 곡은 노래를 보여주고 싶은 거겠지.

‘똑똑하네.’

FG 연습생들의 무대를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열정적으로 무대에 임하는 FG 연습생들의 독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지금까지 FG 연습생들의 1분 미리보기 무대였습니다.”

FG 연습생들이 숨을 고르고 있을 때 MC가 물었다.

“솔직히 저는 PD님한테 미리 들어서 무슨 곡을 골랐는지 알고 있었거든요. 초 단위로 휙휙 바뀌는 어려운 안무라서 FG 연습생들이 곡을 바꿀 줄 알았는데 안 바꿨네요?”

안무를 재창조한 수준이라 그만큼 FG 연습생들의 노력이 엿보였다.

“누가 이 곡으로 하자고 했나요?”

이남주가 손을 들었다.

“제가 하자고 했습니다.”

“이남주 연습생이 이 곡을 하자고 했던 이유가 있을까요?”

“이 곡이 저희 팀에 잘 어울리는 곡이라고 생각했습니다.”

“FG 연습생들과 잘 어울리지만 그만큼 힘든 점도 있었을 텐데요.”

“그래도 1위를 하고 싶었거든요.”

선전 포고네.

“이야… 개인 순위 1위도, 팀 순위 1위도 다 가지고 싶다는 뜻이군요?”

“그런 뜻으로 들리나요? 그랬다면 죄송합니다.”

제자리로 돌아가던 이남주가 나한테 눈웃음을 쳤다.

‘뭐지?’

그러자 이남주가 입모양으로 ‘1위, 우리 거’라고 말했다. 아니라고 반박하고 싶었으나 MC가 말했다.

“이제 개인 팀이 남았죠?”

나도 엔터의 보호가 없는 개인 팀의 무대가 궁금하긴 했다. QTQ 방송국이 개인 팀을 모으긴 했지만, 딱히 보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개인 팀을 벼랑 끝에 몰아넣었지. 그래서인지.

‘…최종 무대에 오를 만한 서사가 충분했고.’

거기다가 개인 팀은 실력 또한 좋아서 대중들은 개인 팀을 인정했다. 역시 돌연프가 서사 하나는 잘 만들어…….

MC의 말에 개인 팀이 앞으로 나와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개인 팀입니다!”

“개인 팀은 1인 인터뷰를 안 할 수가 없는 게, 11위였던 팀 순위가 중간 순위 6위를 넘어서 최종 순위 4위가 됐습니다. 이거야말로 인간 승리가 아닌지.”

엔터가 없는 팀은 팥이 없는 찐빵과도 같았다. 그만큼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엔터가 없는 개인 팀이 살아남기란 힘든 일이었다.

“많은 프로님들이 고예찬 연습생을 응원하고 있다는데요. 처음에는 개인 팀이 이렇게까지 올라올 줄은 꿈에도 몰랐거든요. 아마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던 비결은 실력과 깡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특히 고예찬의 인기는 갈수록 높아졌다. 고예찬이 딱 노력형 천재여서 그런 걸까.

개인 팀의 리더에 노래 실력과 더불어 개인 서사까지. 그야말로 완벽하지 않은가.

나는 주이든을 보면서 생각했다. 우리 팀에도 노력형 천재는 있으니까.

“범나비, 왜 쳐다봐.”

“그냥 보고 싶어서 봤어요.”

“뭐야? 초콜릿 필요해?”

“…네.”

아무튼. 주이든과 고예찬은 성격이 많이 다르긴 하지만.

“마지막 무대를 보기 전에 질문해 보겠습니다. 고예찬 연습생은 이기고 싶은 연습생이 있나요?”

고예찬은 조심스럽게 걸어오더니,

“나비요……!”

내 이름을 외쳤다. 왜 또 나를 고른 거지?

“범나비 연습생을 고른 이유가 있을까요?”

“…그 이유는, 아이돌을 그만두려고 했을 때 나비가 저를 일으켜 줬거든요…….”

“범나비 연습생이요?”

“이 자리도 나비가 없었다면 저는…….”

“없었겠네요?”

“맞아요!”

흠… 빠른 정정이 필요하겠는데. 사소한 말이라도 부풀려지기 쉬우니까.

“제가 말을 해도 될까요?”

“네! 고예찬의 은인 범나비 연습생은 과연 어떤 말을 할까요?”

“제가 예찬이를 일으켜 준 건 맞지만, 여기까지 올라온 건 예찬이의 노력의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고예찬이 ‘노력하는 아이돌’이라는 별명을 괜히 받은 게 아니니까. 이런 말을 꼭 해줘야 했다. 내가 마이크를 내려놓고 제자리로 돌아가자 주이든이 내 등을 때렸다. 마치 잘했다는 듯이.

“범나비 연습생과 고예찬 연습생의 훈훈한 모습을 봤으니, 이제 개인 팀의 무대를 볼 차례겠죠? 음악, 틀어주세요!”

음악이 나오는데도 개인 연습생들은 노래를 부르기는커녕 가만히 서 있었다. 노래를 안 부르나? 그런데 1분 미리보기 무대가 끝나기 전 고예찬이 손을 들었다.

“무슨 일이죠?”

“죄, 죄송합니다.”

개인 연습생들은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아직 저희가 가사를 외우지 못해서…….”

“…어, 가사를 못 외웠다고 무대를 안 하면… 잠깐만요.”

방송을 잠시 중단한 MC가 방송작가한테 다가가 뭔가를 물어보고 있었다.

“개인 팀이 준비를 안 했을 리가 없어.”

“목현 형이 그걸 어떻게 아세요?”

“단체 연습실을 지나가다가 몇 번 봤거든.”

그런 거라면 개인 팀은 열심히 준비를 했는데 돌연프 측에서 손을 쓴 건가? 하긴 며칠이 지났는데 가사를 못 외웠다는 건 거짓말 같은데.

“그러면 무대를 못 한다는 거죠?”

“…네, 죄송합니다.”

“개인 팀이 가사를 못 외웠다고 하기는 했지만, 이게 개인 팀의 전략일 수도 있고 일단은 공평해야 하니 어떤 노래를 골랐는지 틀긴 하겠습니다.”

“네…….”

개인 팀은 항상 개성이 강한 곡이나 안무가 빡센 곡을 골랐다. 마치 제작진이 고르라는 곡을 그대로 고르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인지 개인 팀은 실력과 별개로 매번 곡이 어울리지 않아서 욕을 많이 먹었다.

이번에도 개인 팀이 고른 곡은 특이했다.

“…뭐야. 발라드인데?”

“발라드다.”

“처음 아니야?”

아카펠라가 돋보이는 발라드였다. 뒷동산에서 고른 팻말이 저것뿐이었나?

“고예찬 연습생, 어째서 이 곡을 골랐을까요?”

“사실 저희 팀과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서 FG 엔터와 노래를 두고 대결을 했는데 졌어요…….”

그 곡이 개인 팀이랑 어울렸을 것 같긴 하네. 이 곡을 FG 엔터가 해도 완전히 달라졌을 것 같고.

“이제 1분 미리보기 무대는 끝났습니다. 그러나 아직 최종 무대 인터뷰가 남아 있으니, 각자 팀 대기실로 들어가 제작진을 기다려 주세요.”

***

대기실로 들어가자마자 나는 소파에 앉았다.

“정진아, 편곡은 다 했어? 아까 졸업식 편곡한 곡 달라고 하던데.”

“아, 했어.”

“벌써? 조금 미뤄도 돼.”

“괜찮아.”

이정진은 졸린 눈으로 편곡한 곡이 담긴 USB를 화목현한테 건넸다. 정요셉은 이정진을 깨우기 위해서인지 이정진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 정진이 형은 프로듀싱을 어떻게 배우게 됐어~?”

“…아, 그게.”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질문이라 이정진의 대답에 귀를 기울였다.

“학창 시절이 외로웠거든.”

“…어?”

“고등학교 1학년 때 왕따를 당했거든.”

이정진은 놀란 우리를 무시하고 말을 이어갔다.

“못생긴 새끼가 아이돌 연습생을 한다면서.”

“그렇다고 왕따를?”

“뭐, 고등학교 시절에는…….”

못생겼다고 왕따를 시켜? 이건 말도 안 되는 말이었다. 나는 믿을 수 없어 이정진을 되물었다.

“정진 형이 못생겼다고 그랬어요?”

“막내야, 졸업 사진을 보면 알 거야.”

이정진이 핸드폰을 꺼내더니 고등학교 졸업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게 못생겼다고요?”

“응, 왜?”

“이게 못생겼다고…….”

고등학교 졸업 사진 속 이정진의 얼굴은 단정하면서도 두부처럼 말랑해 보였다. 이 얼굴은 못생겼다는 말을 들을 수가 없는데……?

더군다나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왕따를 시켰다니.

“어떻게 못생겼다는 말을 들어? 왕따는 나쁜 거야.”

“알아, 왕따는 나쁜 거.”

“…나랑 같이 연습실에서 지냈을 때부터 왕따를 당한 거지?”

“어…….”

주이든은 분하다는 듯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이정진의 ‘트라우마’가 공개됩니다.】

【‘왕따, 친구 관계’】

이정진은 원래 말수가 적고 조용한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만들어진 성격이었다니…….

“형! 말해줬어야지!”

“말해주긴 뭘 말해줘.”

가만히 화를 억누르고 있던 주이든이 주먹을 쥐고 물었다.

“가해자는 지금 어떻게 지내?”

“작년에 아이돌로 데뷔했어.”

“뭐라고……!”

아이돌로 데뷔를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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