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뒷동산(3)
“스코어 3 대 0으로 범나비 연습생이 이겼습니다. RT 엔터는 AA 엔터와 노래를 바꿀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때였다. 화목현이 손을 들어 MC에게 물었다.
“RT 엔터의 혜택이 뭔지 물어봐도 되나요?”
이제는 우리가 뺏어 올 차례였다. MC가 RT 연습생들을 보자 박정후가 말했다.
“무대 조명, 무대 배경, 옷, 종이 폭죽 정도…….”
우리보다 혜택이 많네. 그렇다면 RT 엔터가 정상에 있는 카테고리를 가져왔을 것이다. 우리가 2등 지점 혜택을 가져왔으니까.
“AA 엔터는 보물 지도에서 얻은 ‘다른 팀 혜택 2개 빼앗기’를 사용하겠습니다.”
MC는 그럴 줄 알고 있었는지 화목현한테 물었다.
“무엇을 빼앗을 건가요?”
“잠시 상의해도 될까요?”
“네, 괜찮습니다.”
화목현은 뒤로 돌아 멤버들을 모았다. 그리고 RT 연습생들이 듣지 못하도록 조용히 읊조렸다.
“얘들아, 어떤 혜택을 가져올래?”
“당연히 종이 폭죽이 낫지 않을까… 우리한테 없잖아.”
주이든의 말처럼 종이 폭죽이 좋을 듯했다.
“종이 폭죽 괜찮다. 엔딩 때 딱 흩날리면 예쁘잖아~”
정요셉과 이정진도 각자 원하는 혜택을 말했다. 다음은 내 차례다.
“저희 곡이 졸업식이니 종이 폭죽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혜택 2개를 뺏을 수 있는데 계속 하나씩만 말하고 있잖아? 뭔가 아쉬운데.
“그런데 혜택 2개 빼앗기니까 하나 더 뺏어야 하는데.”
하나 더 뺏을 수는 없나? 내 말에 화목현이 고개를 저었다.
“나비야, 그건 좀 미안하지 않을까?”
“살짝 미안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박정후한테 굳이 미안한 마음을 느낄 필요도 없고.
“어차피 우리 노래를 빼앗으려고 했잖아요.”
“그래도…….”
만만하다고 뺏으려고 하는 건 아니다. 아까 박정후가 했던 행동이 눈엣가시처럼 거슬리고 짜증 나서 뺏어 오고 싶지만.
‘뭐, 화목현이 싫다고 하니까.’
나는 화목현한테 말했다.
“알겠어요. 종이 폭죽만 빼앗죠.”
“그래, 그리고 혜택을 하나만 가져오면 좋은 이미지를 얻을 수도 있잖아.”
화목현이 미소 지으며 뒤를 돌아 MC에게 고했다.
“저희 결정했습니다.”
“어떤 혜택을 뺏으려고 하는 걸까요?”
“RT 엔터의 종이 폭죽을 가져오겠습니다.”
“이렇게 RT 엔터는 종이 폭죽을 AA 엔터에게 빼앗겼습니다. 고로 RT 엔터는 스크린과 무대 세트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허탈하게 혜택 하나를 빼앗긴 RT 엔터는 눈 뜨고 코가 베였다. 저 멀리에서 박정후가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하지만 방송용 비즈니스 미소는 여전했다.
“RT 연습생분들, 종이 폭죽 없어도 괜찮아요?”
“…아, 네!”
“사실 RT 연습생들의 노래와 안무면 충분하겠죠!”
하긴 진정한 아이돌이라면 노래와 안무를 잘해야지.
“정후 형, 잘할 거예요.”
“…그래, 고맙다.”
“저희가 혜택도 하나만 가져왔잖아요.”
그렇죠, 정후 형?
***
이미지 게임이 끝나고 모든 연습생이 MC 앞에 모였다.
“최종 무대에서는 뒷동산에서 고른 카테고리로 진행하는 무대 말고도 하나를 더 진행할 겁니다.”
돌연프 스태프는 각 팀의 리더에게 노트북을 건넸다.
“노트북 화면에 두 개의 영상이 있을 텐데요. 연습생 여러분은 이 중에서 원하는 노래를 골라주세요.”
노래를 고르라는 말에 화목현이 손을 들었다.
“만약 같은 노래를 하게 되면 어떻게 되나요?”
“노래가 겹쳐도 괜찮습니다. 최종 무대에서는 투표를 진행하기 때문에 상관없습니다.”
오히려 돌연프 측은 노래가 겹치길 바랄 것이다. 그래야 비교가 되고 시청자에게 흥미를 줄 수 있으니까.
“일단 노래를 골라주세요.”
화목현은 노트북을 들고 우리한테 영상을 보여주었다.
첫 번째 곡은 ‘오션’으로, 댄서 20명의 칼군무로 이루어진 무대였다.
“얘들아, 첫 번째 곡은 어때?”
“퍼포먼스보다 노래의 비중이 큰 곡을 선택하면 좋을 것 같은데.”
이정진의 말이 옳았다. 퍼포먼스는 외우기도 벅차고 춤이 딱딱 맞아야 했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럼 두 번째 곡으로 넘어갈게.”
두 번째 곡은 아이돌 댄스곡인 ‘터널’이었다. 깊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 꿈을 향해 달려가는 청춘들을 표현한 곡이었다.
“저희 노래랑 어울려요.”
우리가 고른 졸업식은 희망차면서도 슬픈 곡이었으니까.
“와~ 이 곡 괜찮은 것 같은데?”
“좋은데요.”
정요셉이 내 옆구리를 치면서 씩 웃었다.
“우리 막내, 자신 있어?”
“네, 자신 있어요.”
예전에 이 곡으로 콘서트를 한 적도 있어서 곡에 대한 이해도는 높았다.
“그리고 곡이 겹쳐도 상관없을 것 같아. 발라드나 퍼포먼스는 컨셉이 비슷하면 조금만 실수해도 비교당하기 쉽거든.”
이정진이 입에 폭탄이 터진 것처럼 말을 빠르게 내뱉었다.
“정진이 형이 그렇게 말하니까, 나도 이 곡으로……!”
주이든도 다급하게 손을 들어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나는 벌써 컨셉도 떠올랐어.”
벌써 컨셉까지… 이정진의 눈빛은 검날처럼 날카로웠다.
“연습생분들, 노래를 고르셨다면 노트북을 닫아주시기 바랍니다.”
스태프에게 노트북을 건네고 다시 MC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최종 무대에 오를 연습생분들, 지금까지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럼 최종 무대에서 뵙겠습니다!”
***
기숙사로 올라가는 길에 고예찬과 눈이 마주쳤다. 피할 수도 없었다.
“안녕.”
“…어, 어. 나비야, 그 있잖아…….”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고예찬은 손을 꼼지락거렸다.
“왜? 무슨 일이라도 있어?”
“아니, 무슨 일은 아니고…….”
주먹을 꽉 쥐었던 고예찬은 나에게 손바닥을 보여주었다. 뭔가 했더니 내가 좋아하는 초콜릿이다. 이걸 주려고 기다렸던 건가?
“선물이야.”
“어, 초콜릿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고.”
“당연히 방송에서 봤지!”
내가 초콜릿을 먹는 장면이 돌연프에 종종 나오긴 했지. 매번 주이든이 챙겨주는 장면이었지만.
“…우리 최종 무대에 같이 올라갔잖아.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고맙다는 말은 내가 할 말인데.”
“어, 어?”
“고마워.”
고예찬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식은땀을 흘렸다.
“덕분에 게임에서 이겼거든.”
“…어, 진짜? 다행이다!”
고예찬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활짝 미소 지었다. 더 이상 묻지 않는구나.
“나중에 돌연프에서 확인해.”
“응!”
“최종 무대에서 보자.”
“응! 너도!”
고예찬이 먼저 인사를 하면서 기숙사로 달려갔다. 나도 기숙사에 들어가려는데 금금이의 뒤통수가 보였다.
“금금아, 짐 빼?”
“아, 나비 형! 네, 탈락했는데 짐 빼야죠.”
“조금 아쉽네.”
“뭐가 아쉬워요. 나중에 데뷔하고 또 볼 건데. 아까 제작진분이 말해주셨는데 이제 기숙사에 남는 방이 많아서 팀끼리 자도 된대요.”
“아, 그래?”
4팀만 남은 시점이라서 방이 많이 남는 모양이다.
“이제 끝이네. 너랑 같이 한방에서 자는 건.”
“…그렇죠.”
씁쓸한 표정을 지은 금금이가 가방을 들고 일어났다.
“나비 형, 언제 또 만나서 이야기해요.”
“그래, 그러자.”
“형이 최종 무대 1위 해요, 제 몫까지.”
“고맙다.”
“뭘요. 저도 이게 끝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괜찮아요. 그리고…….”
금금이는 손을 꼼지락거리더니 매일 끼던 반지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제 소중한 반지, 형한테 줄게요. 이거 1위 하라고 주는 거예요!”
다시 반지를 돌려주려고 했으나 이미 금금이는 복도로 나가 버린 후였다. 금금이의 뒷모습을 끝까지 보고 뒤를 돌자, 이남주가 침대에 앉아 있었다.
“아직도 안 갔어요?”
“너무하네요.”
이남주는 서운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훌쩍거렸다.
“내가 없어도 울지 말고요.”
“안 울어요.”
“으흠…….”
이남주는 침음을 길게 내더니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렇다면 최종 무대에서 뵙죠.”
언제 봐도 이상한 놈. 이남주가 가방을 챙기고 기숙사에서 나가자마자, 화목현과 이정진이 방으로 들어왔다.
“나비야, 우리 왔어.”
“막내.”
그리고 뒤늦게 방에 들어온 주이든과 정요셉이 멤버들을 반겼다.
“우리 왔어……!”
“오, 이제 같이 사네~?”
이정진은 가방을 바닥에 두고 화목현한테 물었다.
“목현아, 너는 어디에서 잘래?”
“너는 어디에 누울래?”
“나는 혼자 있는 침대.”
“그럼 거기에 있어. 나는 나비 옆에 있는 침대로 갈게.”
각자 잘 곳을 정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돌연프가 정말 끝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비야, 손목은?”
“조금 아프긴 한데 괜찮아요.”
의사 선생님도 살짝 삔 것 같다고만 했지.
“…아프면 꼭 형한테 말하고.”
“별거 아니에요. 제가 알아서 해도 괜찮아요.”
“나비는 알아서가 안 돼.”
화목현의 말을 들은 정요셉이 위에서 배를 잡고 큭큭, 소리를 내며 웃었다.
“목현 형, 그렇게 말하면 막내는 잔소리라고 생각할걸~?”
“나비야, 내 말이 잔소리처럼 들려?”
화목현이 충격을 받았는지 행동을 멈추고 나를 응시했다.
“…잔소리처럼 안 들려요.”
“그렇지?”
잔소리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정말로. 화목현은 다시 가방 정리를 재개했다.
나는 가방에서 파스를 꺼내서 오른쪽 손목에 붙인 뒤 회복을 기다렸다. 덕분에 오늘은 합법적으로 쉴 수 있었다.
“내일은 일찍 출발해야 하니까 일찍 자자.”
“우리 리더도 일찍 주무세요~”
정요셉은 수면 안대를 쓰면서 인사를 했다.
“주이든은?”
“나도 잘 거야!”
“그래, 정진이는?”
“이미 준비 끝.”
나는 아직 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나비도 일찍 자. 맨날 늦게 잔다고 하던데.”
“제가 늦게 자는 걸 어떻게 알았어요?”
그러자 양쪽 위에서 기침 소리가 났다. 정요셉과 주이든이 사소한 정보도 모조리 화목현한테 다 말하는 모양이다.
“언제부터…….”
알려주고 그랬던 거야? 이상하게 화목현이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계속 묻더라니. 내가 침대 밖으로 빠져나온 정요셉의 이불을 잡고 늘어지자 정요셉이 코 고는 소리를 냈다.
“혹시 나 빼고 단톡방 있어요?”
“아니……?”
“저 건강해요, 형. 아픈 곳도 없고.”
“알아.”
“알면서!”
물었던 거야? 어처구니가 없어서. 혹시 내가 당 떨어지거나 힘들어할 때마다 초콜릿을 주던 주이든의 행동도?
“…정말, 형들 몸이나 생각해요.”
내 몸이 걱정돼서 그랬군. 나는 이불을 끌고 와 얼굴을 감쌌다. 화목현은 집요하게 이불을 잡았다.
“나비야? 나비야?”
“안 자요.”
“우리 막내, 안 자? 잘 자. 내 꿈 꿔.”
삐진 건 아니다. 그냥 삐진 척하고 싶었다.
‘오늘 돌연프 6화 선공개 영상 나온 날이지?’
시간을 보니 이미 선공개가 나온 것 같아 커뮤니티를 확인했다.
-이번 쥐락펴락 팀 제일 기대 중
└ 나도 기대 22
└ 돌연프가 무대에서 제일 잘한 팀 선공개로 보여주더라 이거 보니까 쥐락펴락 잘했을 것 같음 ㅇㅇ
-근데 쥐락펴락 예고편 보니까 졸라 심각하던데?
└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음
-궁금한 게 있는데 박정후가 리더로서 별로야?
└ 그건 아님 ㅋㅋ 잘함
└ 음… 애들 잘 이끌긴 해
└ 이상하다 쥐락펴락 영상 보면 잘 못하는 것 같던데;
-개인 무대 인증글 보니까 쥐락펴락 애들 잘했나 봐 ㅠㅠㅠ
└ 딱 봐도 제일 잘함
-근데 무대에서 범나비 라이브 하는 거 맞음?
└ 왜? 무슨 일 있음?
└ 라이브 아닌 것 같은데 ㅎㅎ
박정후의 계속되는 실수로 쥐락펴락 무대 리허설을 6번이나 하긴 했다. 그런데 그걸 선공개 영상에 내보내다니.
‘약간 불안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