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의 1군 가이드-44화 (44/235)

44. 최종 순위 발표(2)

“안녕하세요. 개인 연습생 고예찬입니다!”

“고예찬 연습생, 오늘은 안경을 끼고 오지 않았네요?”

“팬들이 제발 안경 좀 벗으라고 해서 벗고 나왔습니다.”

“안경 끼는 캐릭터가 새로워서 좋았는데 아쉽긴 하네요.”

“아쉽나요?”

역시 X경이라서 그런가. 안경을 벗으니 이미지가 색달랐다.

“아, 아니요. 제가 안경을 껴달라고 하면 팬들한테 혼날 것 같아서요. 그럼 자리에 앉아주세요.”

고예찬이 허리를 숙이면서 뒤로 물러나 의자에 앉았다.

“쉽게 죽는 법은 없다는 걸 보여주는 연습생이네요. 19위로 돌아온 HI 엔터 이금금 연습생!”

“와!”

금금이는 나랑 껴안은 뒤 무대 위로 뛰어갔다. 걱정이 가득했던 금금이도 최종 개인 순위에 안정적으로 들어왔네.

“춤으로 프로님의 마음을 사로잡았죠. 17위는 AA 엔터의 주이든 연습생입니다!”

주이든은 무대로 올라가다가 그만 계단에 신발이 걸려 넘어졌다. 꽈당 소리가 나면서 모든 카메라가 주이든을 잡았다.

“주이든 연습생, 괜찮아요?”

“아, 너무 떨려서… 괜찮습니다!”

“왜 떨렸나요?”

“그게… 개인 순위는 기대하지 않았거든요.”

당황했는지 주이든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아마 지난번 순위가 19위라서 더 떨어질 거라고 예상한 모양이다.

“그렇다기엔 주이든 연습생의 인기가 상당한데…….”

“아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지만 주이든의 개인 직캠 영상 조회수가 엄청 높던데요?”

주이든은 손바닥에 땀이 차는지 마이크에서 손을 떼고 바지에 손을 쓱쓱 닦았다.

“…그, 그건! 프로님들이 저를 좋게 봐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래는 주이든의 춤 파트가 적었다고 들었다. 그러나 춤 파트가 많았던 HOR 연습생들이 퇴출을 당하면서 주이든의 춤 파트가 늘었다고…….

‘서사가 좋았지.’

주이든은 불평불만 없이 2일 동안 잠도 자지 않고 안무를 외웠다. 그 모습이 고스란히 돌연프 5화에 담긴 덕분에 주이든의 인기가 상승했다.

나중에 듣기론 주이든이 무대에서 실수를 많이 했다고 들었다. 그러나 그 실수마저 서사로 느껴질 수밖에.

더군다나 HOR 엔터 때문에 무너질 줄 알았던 주이든은 다시 일어났으니까.

“프로님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날 줄 알았던 주이든은 그 자리에서 절을 해버렸다. 한 번 더 할 뻔했으나 MC가 막았다.

“주이든 연습생, 절 2번은 안 돼요.”

“아, 맞다! 감사합니다.”

주이든이 수줍게 자기 의자로 향하는 동안, MC가 큐카드를 깜빡했다는 이유로 잠시 방송이 멈췄다. 하필 12위를 확인할 차례에서.

“어, 잠시만요.”

MC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연습생분들은 쉬어가는 타임으로 모니터를 잠깐 봐주세요.”

그렇게 모든 조명이 꺼지면서 모니터 화면에 영상이 떴는데, 연습생들의 부모님이었다.

“흑.”

“…아.”

부모님들이 짧은 인사만 했을 뿐인데 벌써 연습생들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최종 무대에 오르기 전 부모님을 보여주면 어쩔 수 없이 눈물이 흐르지 않나.

잔혹한 돌연프 PD를 보면서 속으로 혀를 찼다. 그때였다.

[범나비 어머니 : 우리 아들.]

“엄마?”

우리 엄마를 돌연프 모니터 화면으로 보게 될 줄이야.

[범나비 어머니 : 연습생이 되고 나서 엄마 도움 하나도 받지 않고 열심히 살고 있는 우리 아들이 엄마는 너무나도 자랑스러워.]

엄마가 한 번 숨을 고르며 다시 말을 이었다.

[범나비 어머니 : 그런데 나한테도 힘들다는 말을 안 하더니, 우리 아들이 형들과 있으면 힘들다는 말을 종종 하더라. 그 모습에 조금 안심했어.]

‘내가 그랬었나?’

[범나비 어머니 : 그리고 목현아, 정진아, 요셉아, 이든아! 너희들도 힘내렴. 응원하고 있단다. AA 엔터 파이팅!]

엄마가 주먹을 흔들고는 멤버들의 이름을 하나씩 말하며 응원을 해주었다. 멤버들은 내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씩 웃었다.

‘돌연프에서 치트키를 썼네…….’

일단 부모님이 나오면 연습생들의 눈물을 뽑기 쉬우니까. 하지만 나는 눈물보다는 당황스러운 마음이 커서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봤다.

그렇게 몇몇 연습생들의 부모님이 나오고 모니터 화면이 꺼졌다. 다시 환한 조명이 켜지고 MC가 마이크를 들었다.

“부모님들의 인터뷰를 보셨나요? 이제 슬픔의 여운을 털어내고 순위를 확인할 차례입니다.”

연습생들은 눈물을 닦아내며 MC를 올려다보았다.

“12위를 공개하겠습니다.”

인터뷰가 나왔던 모니터 화면은 금세 순위표로 전환이 되었다. MC가 숨을 고르며 봉투를 열었다.

“부모님의 힘이 대단했던 걸까요? AA 엔터의 이정진 연습생입니다!”

이정진이 12위.

“이정진 연습생은 감정이 없는 특유의 무표정으로 프로님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죠.”

이정진은 긴장했는지 몸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이정진 연습생, 많이 긴장했나요?”

“아니요…….”

말이 조금 느리다. 긴장했네. 이정진은 퓨마처럼 생기긴 했어도 속은 여리고 긴장도 하는 편이다.

“그렇다면 12위가 된 소감을 말해주세요.”

“…네, 한결같이 저를 투표해 준 프로님들,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정진은 말이 느려지더니 곧 뒤로 돌았다. 울고 있는지 미세하게 어깨가 떨렸다.

“…이정진 연습생이 눈물을 흘리고 있네요. 이런 귀한 모습을 프로님들께도 보여 드리고 싶지만, 연습생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이정진 연습생, 의자에 앉아주세요.”

MC가 수습하는 동안 이정진은 눈물을 닦으면서 인사를 했다. 은근히 감정에 솔직한 편이라니까. 이정진이 눈물을 훔치며 의자에 앉자 주이든은 장난을 치는 것처럼 이정진의 팔뚝을 때렸다.

“이제 12개의 자리만 남았습니다.”

긴장되는 BGM이 흐르고, 카메라 앵글이 무대 밑에 남은 연습생들을 잡았다.

“드디어 11위를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평온한 고음’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AA 엔터 범나비 연습생입니다!”

아. 10위가 아니다. MC가 내 이름을 외치는 순간, 붉은 글씨로 실패했다는 시스템창이 떴다.

「문제 10, ‘최종 개인 순위 10위 안에 들어가기!’ 미션을 실패했습니다.

페널티:무대에 올라가다가 넘어져서 뇌진탕을 일으킵니다.」

내가 의자에서 일어나 무대로 향하는 계단을 밟자 시스템창이 떴다.

【페널티 카운터에 들어갑니다.】

동시에 바지 주머니에서 꺼내놨던 회중시계의 시곗바늘을 돌렸다. 이대로 머리가 무대 바닥에 닿는 줄 알았으나 주변의 움직임이 멈췄다.

【시간을 멈추는 시계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이 아이템을 써도 넘어지긴 하는 건지 바닥에 머리를 박으면서 눈을 감았다.

쿵!

일시적으로 심장이 멈추는 소리.

누군가 열심히 책을 넘기는 소리.

그 소리의 정체가 궁금해서 눈을 감았다가 떴다.

【뭐야. 네가 왜 여기에 있어?】

‘…내 목소리랑 비슷한데?’

그 순간 어떤 사람이 내 발을 툭 쳤다. 고개를 올리자 나와 비슷한 얼굴이 지나갔다. 시스템창이 나타난 걸 보면 아이돌 노트와 관련이 있는 건가?

“범나비 연습생!”

MC의 목소리에 나는 손으로 무대 바닥을 짚으며 일어섰다.

“범나비 연습생, 괜찮아요?”

다시 한번 묻는 질문에 나는 눈을 껌뻑였다. 뇌가 멈췄다가 다시 움직이는 듯 팽팽하게 돌아가지 않았다.

‘죽긴 죽었던 건가…….’

나는 마이크를 잡으며 MC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괜찮습니다.”

눈앞이 흐릿하긴 했지만 가까스로 정신은 차릴 수 있었다. 그 순간 눈앞에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System Error!】

【시스템을 재정비합니다.】

나는 시스템창을 무시하며 입을 열었다.

“제가 11위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다리에 긴장이 풀렸네요.”

“긴장한 범나비라니 희귀한 모습 아닌가요? 범나비 연습생이 긴장하는 모습은 지금껏 엿볼 수가 없었는데 말이죠.”

무대 밑에서 정요셉이 ‘네!’라고 소리를 질렀다.

“11위라는 순위가 놀랍기도 하고…….”

“11위는 범나비 연습생이 노력해서 얻은 결과잖아요. 범나비 연습생은 11위를 하기에 충분합니다.”

11위를 하기에 충분하다. 꽤 기쁜 말인데. 두통이 온 것처럼 머리가 지끈거려 기쁘다는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괜히 눈가를 만지자 MC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잠깐, 범나비 연습생, 혹시 울었나요?”

“…안 울었습니다.”

MC가 내 눈을 가리켰다.

“괜찮습니다. 울 수도 있죠.”

“예……?”

“이제 범나비 연습생은 지정된 의자에 앉아주세요.”

졸지에 눈물을 흘린 사람이 되어버렸다. 멤버들에게 다가가자 주이든이 나를 보면서 물었다.

“범나비, 진짜 울었어?”

“저 진짜 안 울었어요.”

“그런데 왜 눈가가 붉어?”

“…그냥 눈을 비빈 거예요.”

“비볐다고?”

그러자 옆에서 이정진이 물었다.

“괜찮아. 울 수도 있지.”

MC랑 똑같은 말을 한다.

“그래, 정진 형 말처럼 울 수도 있지.”

주이든까지 이정진의 말을 인정하며 자리에 앉았다. 아니, 저기요. 내가 자리에 앉으며 찝찝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였다.

【모르는 사람이 주는 아이템은 받지 말아주세요!】

【당신의 아이템 중 하나를 빼앗겠습니다.】

그러자 주사위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면서 시스템창이 떴다.

【뛰어난 만병통치약을 빼앗겼습니다!】

기숙사 뒷동산에서 뛰어난 만병통치약을 쓰려고 했는데.

“드디어 프로님들과 연습생분들이 기다리던 개인 순위 1위와 2위를 공개할 차례가 다가왔네요. 그럼 1위와 2위가 누군지 살펴볼까요?”

MC의 말이 끝나자마자 화면에 잡힌 연습생은…….

“1위와 2위 후보는 이남주 연습생과 화목현 연습생입니다!”

솔직히 이번에는 화목현의 개인 순위가 낮아질 줄 알았다. 워낙 사건 사고가 컸으니까. 그런데 동정표가 몰렸는지 개인 순위를 유지한 모양이었다.

“최종 순위 1위의 주인공은…….”

MC는 봉투를 여는 것처럼 보였지만,

“여러분, 1위가 누군지 궁금하시죠?”

“아아!”

봉투를 열지 않았다. 긴장되는 순간이 끊기니 주변의 소리가 더더욱 커졌다.

“…1위는! FG 엔터 이남주 연습생입니다. 다시 1위를 차지했네요!”

최종 순위에서는 1위와 2위가 바뀌었을 뿐이네.

“당연히 2위는 AA 엔터 화목현 연습생입니다.”

개인 순위가 공개된 시점에서 MC가 팔을 번쩍 들었다.

“그러면 잠시 쉬어가겠습니다!”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2시간이나 지나가 있었다. 긴장이 풀리면서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기는커녕 가만히 있었다.

다른 연습생들은 메이크업을 고치거나 화장실에 갔지만.

“옆에 좀 앉을게요.”

그때, 이남주가 내 옆자리에 앉았다.

“회중시계 썼어요?”

“네, 안 썼으면 죽었을 거예요.”

“안 죽었으니 다행이죠.”

“그러게요. 내가 쓰러지면 당신도 쓰러졌을 텐데.”

“살벌하게 말하지 마요. 무섭게.”

방송이 중단되는 사태가 일어나고 나는 병원으로 실려 갔을 수도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정신이 아찔했다.

그런데 스쳐 지나간 기억 속에 어떤 사람이 나를 툭툭 치던 장면이 떠올렸다. 나에게 말도 걸었다. 이남주는 그게 누군지 알까?

“내가 지옥에 다녀온 것 같은데.”

“당신이 지옥을요?”

이남주가 놀라며 내 이마에 손을 얹었다.

“정말 죽었다가 온 건가.”

“이상한 사람 취급하지 말죠?”

무슨 오해를… 나는 혀를 차며 이남주의 손등을 때렸다. 내 말뜻을 이남주는 모르는 모양이었다.

“이제 가시죠? 곧 방송 시작할 것 같은데.”

“이미 가려고 했어요. 까칠하긴.”

이남주가 원래 자리로 돌아가고 쉬는 시간이 끝났다.

“이남주 연습생과 화목현 연습생은 앞으로 나와주세요.”

촬영이 멈췄던 상태에서 다시 카메라가 돌아갔다.

“프로님들, 광고 잘 보고 오셨나요? 이제 팀 순위 발표만 남겨둔 상태인데요.”

우리 팀은 탈락하지 않을 거다. 베네핏을 잘 받았으니까. 이제 어떤 팀이 탈락하느냐가 중요했다. 최종 무대에서 그 팀을 떨어트려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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