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최종 순위 발표(1)
화목현은 식탁을 정리하면서 바닥에 쓰러진 멤버들을 하나둘씩 살피고 있었다.
‘희한하지.’
범나비가 멤버들과 어울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범나비를 보면서 웃던 화목현이 식탁을 치는 바람에 젓가락을 바닥에 떨어트려 소음이 생겼다.
“목현 형, 뭐 해요…….”
“어, 나비야. 안 잤어?”
바닥에 누워 있던 범나비가 손으로 눈을 비비며 상체를 일으켰다.
“자는 척을 한 거죠.”
범나비는 무심한 표정을 짓더니 곧장 화목현과 같이 식탁을 정리했다. 분명 자다가 일어났으면서 말이다.
식탁 정리가 끝나자 범나비는 조심히 의자를 뒤로 빼고 자리에 앉아 바닥에 누운 멤버들을 살폈다. 저럴 때마다 오히려 범나비가 리더 같다고 화목현은 생각했다.
“가끔은 나비가 리더처럼 보일 때가 있어.”
“형이 리더면서.”
“가끔 그렇게 보이더라고.”
그러다 범나비는 갑자기 화목현을 노려보았다.
“목현 형, 그런데 저 막내 티가 나긴 나요?”
“…음, 안 나는 편이지.”
“막내처럼 보여야 할 텐데.”
“아니, 막내처럼 보이지 않아도 네 이미지가 있어서 괜찮아.”
오히려 범나비는 막내답지 않아서 멤버들과 잘 어울린 것이다.
“처음에 네가 들어온다고 했을 때, 우리랑 이미지가 비슷하면 어쩌나 했거든.”
“그랬어요?”
“원래 이미지가 겹치면 안 좋잖아.”
아이돌은 각자에게 이미지가 있다. 리더면 리더, 보컬이면 보컬, 예능이면 예능. 그래서 화목현도 불안해한 게 사실이었다.
“겹쳤다면 제가 바꿨겠죠.”
“어?”
무슨 숨을 쉬는 것처럼 저렇게 가벼울까. 화목현은 범나비를 무척이나 신기한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겹쳤다면 제가 바꿨을 거예요, 아마.”
“…….”
“그러니까 형도 자요… 내일 최종 순위 발표식이 있으니까…….”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범나비의 행동이 화목현은 인상적이었다. 예전에는 자기 자리를 찾는 것도 힘들어 보였는데.
“그래, 나도 자야지.”
이제는 어엿한 한 명의 멤버가 된 것 같았다.
***
최종 순위 발표식이 있는 날. 대기실에서 멤버들과 메이크업을 받고 옷을 갈아입었다.
“리더 차례~!”
“어, 어. 알았어.”
돌연프를 찍으면서 화목현을 향해 어쭙잖은 위로를 하는 분도 계셨고, 대놓고 위로를 하는 분도 계셨다.
그때마다 화목현은 괜찮다는 답변을 해서 정말 괜찮은 줄로만 알았더니… 지금 화목현은 잡지를 거꾸로 든 채 읽고 있었다.
“목현 형, 잡지를 거꾸로 들고 있는데요.”
“어, 어? 나비야, 고마워.”
나도 의자에 몸을 기대며 숨을 쉬었다. 때마침 시스템창이 반짝이며 눈앞에 떴다.
【아이돌 노트 문제를 맞힐수록 업데이트 수치가 올라갑니다.】
■■■□□□□□□□ : 30%」
「문제 10, 최종 개인 순위 10위 안에 들어가기!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 46화 p,29 ‘돌연프 범나비의 개인 순위는 10위였다.’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 47화 P,45 ‘AA 엔터의 팀 순위는 3위였다.’
페널티:무대에 올라가다가 넘어져서 뇌진탕을 일으킴」
이걸 직접 보여주면 아예 못을 박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넌 개인 순위가 10위였다고.
‘…흠.’
뭐,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내 개인 순위가 극과 극을 달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개인 순위가 10위라고? 말도 안 된다.
멤버들은 인기가 많아도 나는 아니지 않나…….
“나비야?”
화목현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네?”
“이제 준비해야지?”
“벌써요?”
“응, 의상 받고 갈아입고 와.”
최종 순위 발표식에 맞춰 검은색 교복을 받았다. 최종 순위를 발표하는 자리라서 하얀색 교복에서 검은색으로 바꾼 건가. 어깨에 보석도 박혀 있고, 전체적으로 옷이 화려하게 바뀌었다.
“얘들아, 잠시 모여봐.”
화목현은 대기실 중심에서 멤버들을 불렀다.
“이번 최종 순위 발표식에서 순위가 낮더라도 너무 낙심하지 말고, 우리가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우리가 노력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니까.”
마지막으로 화목현이 멤버들의 옷을 봐주었다. 이제 올라가면 되는데 대기실 앞에 이남주가 서 있었다.
“어, 남주가 웬일이야? 나 보러 온 거야~?”
“요셉 형 보러 온 거 아닌데?”
“그럼 누구? 우리 막내?”
“네, 줄 게 있어서. 잠시 시간 돼요?”
대기실 앞까지 올 정도면 대단한 걸 줄 모양인데. 나는 멤버들한테 양해를 구하고 이남주 옆에 섰다.
“뭔데요?”
“아, 이거요.”
이남주의 손바닥에서 회중시계가 나왔다. 이게 뭐지?
“이거 혹시 랜덤 박스에서 구했어요?”
“네, 랜덤 박스에서 구했어요.”
시스템에서 받은 걸 나한테 준다고?
“왜 이걸 나한테 줘요.”
어떤 아이템인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당신한테 필요한 물건일 것 같아서.”
이남주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더니 내 손에 회중시계를 주며 대답했다.
“이 시계, 시간을 되돌리는 아이템이에요.”
“…혹시 제가 죽나요?”
“죽진 않아요. 뇌진탕으로 방송 사고가 날 뿐이지.”
이 아이템을 쓰면 페널티를 받지 않을 거라는 소리고. 결국 내가 개인 순위 10위에 들지 못한다는 말이겠네.
“그렇다면 이 아이템은 어떻게 써요?”
“손가락으로 시곗바늘을 돌리면 5초 앞으로 되돌아가요.”
즉, 5초라는 시간을 버는 셈이다.
“고마워요.”
“고맙다는 말을 들으려고 한 행동은 아니고…….”
이남주한테 고맙다는 말을 한 건 처음인 것 같은데. 일단은 시간을 벌었으면 된 거다.
“그거 제가 줬으니까 조심해서 써요. 난 뇌진탕으로 쓰러지기 싫으니까.”
아… 이남주가 나랑 같은 시스템과 페널티를 공유하고 있었지.
“이번에는 어떤…….”
“당신이 뇌진탕을 일으킬 수도 있으니 도와주라고 시스템이 시켰어요. 안 그러면 저도 뇌진탕으로 쓰러진다고.”
왜 도와줬는지 이해가 가네…….
‘우리 둘 다 쓰러지면 그야말로 방송 사고니까.’
그건 안 되지.
“최선을 다할게요.”
“…최선을 다할 필요는 없지만.”
“당신이 죽을 수도 있잖아요.”
나 때문에 한 생명이 죽는 꼴은 못 본다.
“그럼 갈게요.”
이남주를 지나쳐서 날 기다리고 있는 멤버들의 곁으로 갔다.
“이제 무대로 가자.”
무대로 향할수록 이남주가 나를 안쓰럽다는 듯이 쳐다봤지만, 최종 순위 발표가 먼저였다. 나는 회중시계를 재킷 주머니에 넣었다.
“남주가 뭐래?”
“최종 무대에서 보자고 그랬어요.”
그런 말은 안 했지만 변명하기에 좋은 말이지. 하지만 촉이 좋은 주이든은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았다.
“걔가 그러진 않을 텐데…….”
“그러던데요.”
“네가 마음에 들었나……? 그래도 해코지 안 해서 다행이다!”
주이든은 활기차게 내 등을 때렸다. 아파. 은근 손이 맵네. 맞은 부위를 문지르는데 최종 순위 발표식을 진행하는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대박이다.”
광고를 많이 받더니 무대를 화려하게 꾸몄다. 거대한 스크린, 성처럼 꾸민 스튜디오, 거기다가 무지개 색상의 의자까지. 개인 순위가 올라가면 앉을 수 있는 의자 같았다.
하긴 이번에 돌연프에 들어온 광고가 많긴 했다. 멤버들과 따로 광고를 찍을 정도였으니까.
“다들 개인 순위가 적혀 있는 의자에 앉아달래.”
화목현이 무대 밑에 있는 허름한 의자에 앉아달라고 외쳤다. 무대 위랑 무대 아래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것보단 멤버들과 떨어져 있어야 하네.’
개인 순위가 낮아 멤버들과 떨어진 곳에 앉았다. 괜히 멋쩍은 침음을 흘리면서 의자에 앉으려는데 뒤에서 정요셉이 나를 끌어안더니 엉엉 우는 시늉을 했다.
“우리 막내랑 떨어지기 싫은데~!”
정요셉은 좀 떨어져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제 자리에 착석해 주세요.”
의자에 앉았더니 금금이가 눈짓으로 인사했다.
“어때?”
“으아, 긴장돼요. 떨어질 수도 있으니까.”
금금이는 최종 순위 발표식에서 떨어질 수도 있었다. 개인 순위는 높았지만 멤버들의 순위는 현저하게 낮았기 때문이다.
HI 엔터는 팀 순위는 높았으나 개인 순위가 점점 낮아지고 있었다. 그것은 이번에 탈락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아, 나도 떨린다.”
“형도 떨려요?”
“나도 떨리지. 사람인데.”
시작한다는 PD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탁, 조명이 꺼지고 MC가 무대 위로 올랐다. 카메라가 MC를 바라볼 때였다.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의 최종 순위 발표를 시작합니다!”
“와아아!”
연습생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호응했다.
“드디어 최종 무대에 오를 차례가 다가왔네요. 다들 잘 지내셨나요?”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MC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호응이 전혀 없네요.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물어보겠습니다. 개인 순위 1위인 화목현 연습생?”
“네, 안녕하세요.”
의자에서 일어난 화목현이 마이크를 잡으며 MC의 질문을 받았다.
“드디어 최종 무대에 오르는 연습생 그룹을 뽑는데 마음이 어떠신가요?”
“떨립니다, 많이.”
화목현은 정말 떨리는지 마이크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렸다.
“듣기만 해도 알 것 같네요. 목소리가 많이 떨리네요?”
“아, 네……!”
“잘 알겠습니다. 화목현 연습생의 말을 들었다면 이번에는 이남주 연습생의 말을 들어봐야 하지 않겠어요?”
화목현의 마이크가 이남주에게로 넘어갔다.
“네, 안녕하세요. 이남주입니다.”
“이남주 연습생은 지금 2위 의자에 앉아 있는데 심정이 어떠신가요?”
“떨리지 않는다는 말을 하면 거짓말이겠죠?”
“역시 순위가 높은 연습생도 떨린다는데…….”
이남주가 마이크를 내려놓자 MC가 무대 위에 있는 모니터를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모니터 화면이 켜지더니 개인 순위표와 팀 순위표가 나타났다.
“여기서 탈락하는 그룹은 두 그룹뿐입니다.”
모두가 숨을 죽였다.
“먼저 개인 순위의 커트라인은 25위입니다.”
29위로 유지하면 나는 그대로 탈락이네.
“이번에는 24위부터 발표하겠습니다.”
하긴 25위를 지금 발표하면 재미가 없지. MC가 순위표가 적힌 금빛 봉투를 열었다.
“쥐락펴락에서 리더로 활약을 펼친 RT 엔터 박정후 연습생입니다!”
박정후는 내 예상에 없었는데… 박정후는 기쁜지 무대 위로 올라가더니 카메라를 보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박정후의 헤메코가 어쩐지 나와 비슷했다.
꺼림칙한 느낌에 고개를 약간 갸웃했다.
“박정후 연습생, 24위로 위기의 순간을 넘겼는데 심정이 어떠신가요?”
“…정말 세상에 신이 있다면 프로님들이 아닐까 싶어요.”
“프로님들이 신이라는 건가요?”
“적어도 저한테는 신입니다.”
박정후의 말투도 예전과는 다른 차분함이 깃들어 있었다. 이윽고 그런 생각은 그만두기로 했다. 생각해 봤자 나만 손해인 것 같아서. MC는 미소를 지으며 카메라를 향해 손짓했다.
“그렇다면 RT 엔터 박정후 연습생은 지정된 자리에 앉아주세요.”
박정후가 앉는 동시에 MC는 20위부터 23위까지 발표를 했다. 어차피 개인 순위가 높아도 팀 순위가 낮으면 어쩔 수 없이 탈락인데.
“이번 쥐락펴락 팀이 인기가 많네요! 21위는 리드보컬로 인기를 얻은 개인 팀 고예찬 연습생!”
고예찬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