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화목현(3)
“많이 힘들었겠네. 그래서?”
천천히 자신의 가정사를 말하는 화목현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계속되는 가정 폭력에도 도망갈 곳이 없었는데, 팀장님께서 연습생이 되면 숙식을 제공해 주겠다고 하셔서 집에 들어가지 않게 되었어요.”
“흐음… 팀장님이 좋은 분이네.”
“감사한 분이죠.”
윤 기자는 마지막 타이핑을 끝내고 팀장님을 올려다보았다.
“이 기사는 내가 첫 번째로 내는 거 맞지?”
“그렇다니까 그러네.”
“그러면 이건 언제 올려주면 돼?”
다 같이 이 기사를 언제 올리면 좋을지 고민했다.
“내일?”
“얘들아, 언제가 좋을까?”
돌연프 5화를 보는 순간에도 팬분들은 피드백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돌연프 5화가 끝나고 피드백을 올리는 건…….
“이번 주! 선공개 영상!”
갑자기 주이든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저번에 인터뷰했었잖아! 과거 묻는 인터뷰!”
이번에 돌연프 5화가 끝나고 나오는 선공개 영상이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이었다.
“지금 올리죠.”
멤버들이 동의하자 윤 기자가 곧바로 마우스를 몇 번 눌렀다.
“지금 기사 올렸다~”
포털사이트에 화목현을 검색하자 윤 기자의 정정 기사가 올라왔다.
[화목현, 패륜아가 아닌 가정 폭력 피해자]
화목현은 대중의 심사를 기다리는 것처럼 가만히 댓글을 확인했다.
-패륜아가 아니라고?
└ 헐… 증거도 있대
└ 미친
└ 기사 보니까 멍든 사진 있네 ㅠㅠ
-AA 엔터 일 빠르네…
└ 일 못하는 좆소인 줄
-돌연프 5화 보는데 목현이 생각나서 볼 수가 없었다 ㅠㅠ 목현아…
└ 어렸을 때 어머니가 아버지 때문에 도망가서 혼자 아버지를 돌봤대
└ ㅅㅂ 눈물 나서 못 보겠어
-아… 개불쌍하다 이래서 피드백 기다리자고 했잖아
└ ㄹㅇ 이미지 영업, 인성 영업했다고 팬들 후려칠 때부터 알아봤음 ㅅㅂ
└ 목현이 불쌍해서 어떡해 우리 목현이…
다행히 기존 화목현의 이미지가 있어서 그런지 여론은 빠르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윤 기자는 HOR 엔터 측에서 연락이 오는 건지 핸드폰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이고, 전화가 많이 오네. 그럼 나는 가본다?”
그렇게 윤 기자는 노트북 가방을 챙기며 밖으로 나가 버렸다. 팀장님이 화목현을 보면서 등을 쳤다.
“목현아, 고생했다.”
그러면서 팀장님은 윤 기자에게 따로 할 말이 있다며 회의실을 나갔다. 회의실에 우리끼리 남자 화목현은 멤버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다들 고마워. 이른 시간에 와주고.”
“고맙긴. 나중에 목현 형도 이렇게 해주면 되지.”
그렇게 상황은 훈훈하게 마무리됐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끝났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돌연프 5화가 끝나는 시점에 커뮤니티를 확인했다.
-돌연프 5화 끝나는 동시에 피드백이라… 커뮤 보는 거 아님?ㅋㅋ
└ 안 믿으면 뭐다? HOR 팬들이다
└ 이건 진짜 ㅈㄹ이다
-증거 정확하지도 않은데 화목현 팬들 날뛰죠 존나 역겹
└ 취소표로 몰고 싶은데 못 해서 억울?
└ ㄹㅇ 취소표 있으니까 피드백했겠지
└ ㅋㅋ 아이고 열심히 산다 그렇게 사셈 평생 ㅇㅇ
-그래도 패륜아는 맞는 거 아님?
└ 기사는 읽었어?
└ 창조경제에 이어 창조지랄
└ 아직도 이런 새끼들이 있어서 세상이 어둡네
└ 응 화목현 패륜ㅋ
-AA 엔터에 취소표 몰빵 하려고 했는데 못 하니까 쌈판 났네
└ 팬덤 싸움이 개같은 이유
그나마 다행인 점은 선플이 더 많다는 거였다.
-목현아 힘내 응원해
└ 응원해 22
└ 33 절대 안 믿었음
-그렇다고 화목현을 피해자라는 시선으로는 안 봤으면 좋겠음
└ 22 화목현이 피해자가 되고 싶어서 피해자가 된 건가…
마지막 댓글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 화목현을 지지해 주는 지지층이 많을수록 돌연프 1위는 굳건할 테니. 어느 정도 문제가 해결됐으니 이제 돌아가려고 고개를 드는데, 멤버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우리 막내는 뭘 봤길래 미소를 지었어~?”
“해결이 잘된 것 같아서 웃었어요.”
“그래? 그럼 이제 우리 막내 집에 가면 되겠네~”
“네……? 요셉 형, 왜 이야기가 그쪽으로 빠져요.”
“아니, 우리는 잘 곳이 없는걸~? 시간도 시간이잖아.”
잘 곳이 없다는 정요셉의 말에 시간을 확인했다. 밤 12시. 내 옆에서 주이든과 이정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갈래.”
“나도! 나도!”
우리 집에 무슨 꿀단지라도 숨겨놨나… 왜 이렇게 다들 우리 집에 가고 싶다고 하는 걸까. 마침 가족이 한 명 더 늘기도 했는데.
“아, 그러면 목현 형한테 허락받으세요.”
“나?”
“목현 형도 우리 집 식구거든요.”
갑작스러운 언급에 화목현이 눈을 껌뻑였다.
“나도 식구 할래~!”
“요셉아, 그게…….”
정요셉의 투정을 들어주는 화목현의 안색이 새하얘졌다. 그럴수록 정요셉의 고집은 세졌다.
“그 대신 조건이 있어요. 우리 집 반찬, 맛있게 먹어주세요.”
내 조건은 딱 하나였다. 냉장고에 아직 엄마가 해준 반찬이 가득했다. 그걸 먹는다면 다음부터는 우리 집에 오지 않겠지.
“그건 쉽지~”
정요셉은 분명 쉽다고 말했다. 화목현은 마치 악마를 봤다는 듯이 경악이 서린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그래요. 그럼 집으로 가죠.”
집으로 가는 길에 돌연프 너튜브 선공개 영상 ‘인터뷰편’이 떴다.
***
박랜서는 AA 엔터의 피드백에 눈시울을 붉혔다. 화목현을 믿지 않았던 자신이 싫어져서.
“으아! 목현아!”
박랜서는 너튜브 선공개 영상을 보기 두려웠다. 제작진이 어두운 과거 인터뷰라고 어그로를 끌었기 때문이었다.
“…또 무슨 이상한 어그로가 있는 건 아니겠지.”
제발. 박랜서는 속으로 기도를 하면서 선공개 영상을 재생했다.
[AA 화목현 : 안녕하세요.]
[PD : 화목현 연습생은 개인 순위 1위를 차지했을 때 어떤 마음이 들었나요?]
[AA 화목현 : (웃음)감개무량했어요.]
부끄러운 듯이 미소를 짓는 화목현의 모습에 박랜서의 코가 찡했다.
[PD : 특히 친한 멤버가 있는지?]
[AA 화목현 : 다 친해요. 그런데 이번에 새로 들어온 막내인 나비랑 많이 친해진 것 같아요. 나비가 저를 은근 잘 챙겨주더라고요. 동생인데 형 같기도 하고.]
박랜서는 그 부분에서 영상을 멈췄다.
-화목현 인터뷰는 보는데 역시 첫째는 첫째다
└ ㄹㅇ 리더 티가 확 나 나비 이야기 나오는데 뭔가 뭉클…
-나비가 어그로도 많이 끌고 이미지도 안 좋은데 멤버들과 사이가 좋네… 이남주랑도 친하고 이서혁이랑도 친하고 ㅋㅋ
└ ㅇㅈ 그러니까 사람을 단편적으로 보면 안 됨
커뮤니티에 댓글을 보면서 박랜서도 같은 생각을 했다.
“많이 친해 보이네.”
그리고 다시 선공개 영상을 틀었다.
[PD : 형 같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상세히 알려주실 수 있나요?]
[AA 화목현 : 우선 나비가 어른스러워요. 언제나 저희를 생각해 주고 아껴주는 행동을 하거든요.]
[PD : 어떻게 보면 범나비가 복덩이네요?]
[AA 화목현 : 네, 우리 막내가 복덩이예요. 아마 멤버들도 그렇게 느낄 거예요.]
화목현의 인터뷰가 끝나면서 나비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AA 범나비 : 목현 형이 그랬나요? 제가 복덩이라고?]
[PD : 그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나요?]
[AA 범나비 : (미소)아니요. 오히려 그 반대라서요. 제게는 형들을 만난 게 복이거든요.]
웃고 있는 나비의 모습에 박랜서는 울컥했다.
-멤버들 서로서로 아껴주네 왜 내가 울컥하지
└ 지금까지 멤버들 갈라 치는 말 많았으니까
└ 하ㅠ
PD는 다른 멤버들한테도 물었다. 나비가 복덩이냐고.
[AA 주이든 : 맞아요!]
[AA 정요셉 : (방긋)걔 복덩이 맞아요. 애가 얼마나 똘똘한지~]
[AA 이정진 : 제가 한번 기가 팍 죽었던 적이 있거든요. 그때 막내가 절 찾아와서 위로도 해주고 방향성도 제시해 줬죠.]
-이정진 말 많이 한다
└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아니 왜 감격한 것 같아 보이지
“진짜 말 많이 하네.”
이정진이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모습도 처음이었다. 멤버들의 끈끈해 보이는 관계에 박랜서의 마음이 벅차올랐다. 다음 장면에서 나비가 굉장히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PD : 정요셉 연습생이 ‘복나비’라는 별명을 만들었는데, 마음에 드시나요?]
[AA 범나비 : 복나비라고요? 인터뷰는 이쯤에서 끝내겠습니다.]
영상 끝에 나비가 ‘형!’이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요셉이 나비 괴롭히는 거 재밌나 봐 ㅋㅋㅋㅋㅋㅋㅋ
└ 나도 재밌어 왜지?
└ 나비 괴롭히는 건 재밌으니까
└ 아 ㅇㅈ
-나비 반응 은근 재밌더라
└ 막내 티도 나고ㅋㅋ
-나비 품을래…
└ 22 ㅠㅠ
└ 애들이 좋아하는데 우리가 싫어할 이유도 없고 33
-지금까지 나비가 쭉 노력하는 모습 보여줬잖아 허리 아팠을 때도 춤 열심히 췄고. 애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우리가 욕하는 건 아닌 것 같음…
└ 나도 이 마음임
└ 애들 초반부터 좋아했다는 부심 지키려고 범나비 밀어낸 것도 어느 정도 있는 듯
-나는 반대로 지금까지 나비만 좋아했는데 이제부터 다른 멤버들도 좋아하려고…
폭풍 같은 해일이 끝나면서 좋아하는 마음이 휘몰아쳤다. 비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마음이 모여 고였다.
“…오늘 선공개 영상에서 나비 예쁘던데.”
박랜서는 ‘나비’라고 적혀 있는 폴더에 사진을 저장했다. 그것도 약 200장을.
***
오피셜 기사가 떠도 상황이 완전히 좋아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인터뷰편이 올라오면서 커뮤니티 반응은 급격히 좋아졌다.
‘…나를 품는다는 사람들이 많네.’
얼추 4인을 지지한다는 분위기가 있긴 했지만, 이렇게 상황이 잘 풀릴 줄이야.
“냉장고에 반찬이 많네?”
하지만 지금 상황은 마냥 잘 풀리지 않았다. 멤버들이 집에 오자마자 냉장고부터 열었기 때문이다. 집에 오려면 반찬을 다 먹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으니까.
“제가 어려울 거라고 했잖아요.”
“우리 막내, 나를 물로 봐~? 너무 걱정하지 마. 그런 말도 있잖아. 먹다가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고~”
“벌써 죽을 생각을 하세요?”
“뭐,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러나 밝은 분위기도 잠시, 냉장고에서 꺼낸 반찬을 본 정요셉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다.
“다 먹을 수 있겠어요?”
“아마도……?”
이미 주이든과 이정진은 반찬을 먹고 있었다.
“요셉 형도 맛있게 먹을 수 있겠어요?”
“당연하지~!”
그 와중에 화목현은 계속 핸드폰을 들여다보면서 어떤 연락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혹시 아버지 연락 기다려요?”
“어? 그렇게 보였구나.”
“오늘 생일이잖아요.”
아직 자정이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오후 11시 49분.
“생일인데 많은 일이 있었네.”
“형, 우리가 있잖아!”
“다 먹고 말해.”
주이든이 입에 가득 밥을 넣고 우걱거리다가 밥알이 튀어나올 뻔했다.
“범나비, 밥 맛있어!”
“네?”
“정말 맛있어……!”
뭐? 이제 반찬이 생기면 주이든한테 가져다줘야겠다. 이정진도 차분하게 옆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막내는 밥 안 먹어?”
“저는 배불러요.”
“그렇구나.”
이정진은 잠자코 콩나물무침을 먹더니 이내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아무래도 콩나물무침에 고춧가루가 많이 들어가서 매운 모양이다.
“정진이 형, 맵죠?”
“…어, 어? 아니야. 괜찮아.”
괜찮지 않을 텐데. 엄마 반찬의 특징은 맵고 짠 맛이 혓바닥에서 파티를 연다는 거였다. 이걸 다 먹을 수는 있을까.
“범나비, 오늘 몇 분 남았어……!”
“3분 남았어요.”
그때 흰밥에 진미채를 먹던 주이든이 입을 열었다.
“우리 돌연프 1위 하자! 제가 목현 형 대신 생일 소원 빌었어요!”
소원 얘기가 나온 김에 나는 집 안 곳곳을 뒤져서 촛불과 라이터를 찾았다.
“케이크가 없는 게 흠이지만.”
그 대신 초콜릿파이에 촛불을 꽂아 불을 켰다. 기다렸다는 듯이 정요셉이 형광등을 껐다.
“목현 형, 생일 축하해요.”
멤버들도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자 화목현이 입꼬리를 올렸다.
“…우리, 돌연프 1위 하자.”
화목현이 소원을 빌고 촛불을 껐다. 그렇다면 생일 소원을 제대로 이뤄봐야겠지.
“형들, 밥 다 먹었죠?”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동시에 나는 가방에서 기숙사 뒷동산 지도를 가져왔다. 그러고는 반찬을 옆으로 조금 밀고 지도를 식탁 위에 올렸다.
“제가 기숙사 뒷동산 지도를 가져왔는데요.”
회귀 전, 네스트가 2위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더욱더 1위를 하고 싶었다.
“막내야, 어떻게 할 건데?”
이정진이 물었다.
“뒷동산에서 정상은 빼죠.”
뒷동산 정상은 위험을 감수하고 가야 했다. 올라가다가 부상이라도 나면 큰일이었다. 정요셉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물었다.
“정상은 왜~?”
“혜택이 제일 좋긴 하지만 무리해서 정상에 올라갈 필요가 굳이 있을까 싶어서요.”
“그건 그렇지.”
정상만 노리는 건 별로였다.
“그리고 노래도 바꿀 수 있다잖아요. 혜택이 얼마 차이 나지 않으니 정상에 가봤자 손해예요.”
차라리 정상에 가지 않고 체력을 저축하는 게 나았다. 화목현이 2등 지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지도를 보니까 2등 지점이 출입구랑 가깝네.”
“리더 말처럼 출입구도 가깝고, 체력도 아끼고 확실히 괜찮겠다.”
“혜택도 하나 빼고는 비슷해.”
확실히 내 계획이 괜찮았는지 멤버들도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그럼 회의 끝났지?”
“네, 회의는 끝났죠.”
주이든은 그대로 의자에서 내려와 바닥에 발라당 누웠다. 덩달아 이정진과 정요셉도 차례대로 바닥에 누웠다.
“…거실에서 자려고요?”
정요셉은 방바닥에 뺨을 딱 붙였다.
“방바닥에 뺨이 붙었어~!”
“예?”
“방바닥에 뺨이 붙어서 안 떨어지네~!”
그렇게 정요셉은 아무 말이나 지껄였다. 이번 휴가도 혼자 있을 시간은 없겠구나. 차라리 포기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 들어서 나는 정요셉의 옆에 누웠다.
‘포기하는 게 속이 편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