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화목현(1)
대기실에서 화목현의 무대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화목현을 걱정한 내가 바보였다. 보컬 B팀은 남성 듀오의 ‘하늘이시여’를 선택했다. 강렬한 고음이 귀를 때리는 노래라서 화목현이 잘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잘 어울렸어…….’
처음에는 화목현의 음색이 강렬하지 않아서 노래랑 잘 어울리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도 지금껏 화목현에게 편견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렇게나 잘 부르는데.
“…나도 잘하고 올게!”
하지만 화목현보다 주이든이 더 걱정이다. HOR 연습생이 빠지면서 파트가 많아졌다고 했으니까. 주이든은 그 파트를 외우려고 잠도 못 자고 연습실에 틀어박혀 있었다.
“오, 우리 이든이 괜찮은데?”
“그러게요.”
주이든은 우리한테 보여줬던 것보다 무대를 훨씬 잘해냈고, 마지막으로 이정진까지 수월하게 무대를 끝냈다. 모든 무대를 보고 나니 우리 팀 점수가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보컬 A팀 올라갈게요!”
***
연습생들이 무대 밑으로 모인 뒤 MC를 올려다보았다. 조명과 함께 카메라의 붉은 불이 켜졌다.
“연습생 여러분! 처음으로 펼친 개인 무대, 만족스러웠나요?”
“네……!”
“다들 순위 발표를 기대하고 있을 텐데요.”
MC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이번 개인 무대의 순위는 발표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왜지?
“그 이유는 바로! 이제 곧 최종 무대가 진행되기 때문이죠!”
…벌써 시간이 그렇게 빨리 흘렀다고?
“최종 무대 점수 합산 전까지는 순위를 발표하지 않을 겁니다.”
이렇게 될 경우, 오로지 온라인 투표로만 순위를 예상해야 했다.
“그 전에, 우리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의 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무대, 연습생 등 여러 대답이 나왔으나 MC가 듣고 싶은 대답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때 앞에 있던 이남주가 외쳤다.
“카테고리요!”
“이남주 연습생, 정답입니다.”
카테고리로 어떻게 하려는 거지?
“최종 미션은 카테고리를 얻는 경쟁이 될 겁니다.”
나는 작게 심호흡했다. 최종 미션은 손쉽게 가고 싶었는데 내 욕심이었네.
“그렇다면 연습생 여러분, 어떻게 카테고리를 얻는지 궁금하시겠죠?”
연습생들의 우렁찬 대답에 MC가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카테고리를 확인하고 싶다면, 모두 모니터 화면을 봐주세요.”
MC가 모니터 화면을 가리키자 곧 기숙사 뒷동산에 있는 산책로가 나왔다. 그리고 산책로 곳곳에는 카테고리가 적힌 팻말이 있었다.
“화면에서 보신 대로 기숙사가 산에 있기는 하지만 산책로라서 카테고리가 적힌 팻말을 빠르고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팻말 근처에 금빛 봉투가 있을 텐데요. 그 봉투를 열어 어떤 노래가 있는지 확인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MC가 재킷 안에서 금빛 봉투를 꺼내더니 아래로 내려가 화목현한테 건네주었다.
“이렇게 다른 팀과 카테고리를 바꿀 수도 있습니다.”
허… 이건 좀 중요했다. 마음에 안 드는 노래가 나왔을 경우 다른 팀과 바꿀 수 있다는 거니까.
“더불어 힘들게 산 정상까지 올라갔는데 혜택이 있어야겠죠? 화면을 봐주세요!”
피라미드 형식으로 금빛 봉투를 얻는 장소에 따라 받을 수 있는 혜택이 표현되어 있었다.
“제일 낮은 4등 지점은 무대 조명, 3등 지점은 무대 조명, 무대 배경, 2등 지점은 무대 조명, 무대 배경, 옷을 지원해 드립니다. 그리고 정상, 1등 지점은 모든 혜택과 종이 폭죽을 지원해 드립니다.”
그렇다면 머리를 잘 써서 정상에 갈지, 아니면 간단하게 낮은 곳만 공략할지 정해야겠는데…….
곧 모니터 화면이 꺼지고 모든 빛이 MC를 향하면서 스산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이제 제일 중요한 최종 순위 발표가 남았는데요. 이제 곧 최종 무대에 올라갈 4팀이 정해집니다.”
이런, 최종 순위 발표 전까지는 숨이 막힐 것 같은데.
“그럼 연습생 여러분, 최종 순위 발표식 때 뵙겠습니다.”
***
보컬 A팀의 무대 반응을 보려고 커뮤니티를 둘러보는데 눈에 띄는 댓글이 있었다.
-오늘 목현이 생일 아니야?
└어? 맞아! 오늘 목현이 생일이잖아
오늘이 화목현의 생일이었다니. 7월 말에 시작했던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가 이제 막 한 달 반을 지나서 9월 중순이 되었다.
그런데 화목현은 왜 생일이라고 말을 안 한 걸까.
“형, 생일이었어요?”
“어? 그렇네. 나비는 어떻게 알았어?”
“…어쩌다 보니 알아버렸네요.”
“바빠서 생일을 까먹고 있었어.”
하긴 바빠도 심하게 바쁘긴 했다. 매번 사건 사고가 일어나 일상이 만두 속처럼 꽉 찼다. 다른 여유를 부릴 수가 없었으니까.
“오늘 휴가잖아요.”
“그렇지.”
“어떻게 지낼 거예요?”
“글쎄…….”
그러고 보니 팬들이 커뮤니티에 화목현의 생일 파티 겸, 꽃 이벤트를 열 거라는 글을 올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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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A] 우리 목현이 생일에 꽃 이벤트가 있을 예정입니다!
개인 순위에 목현이 투표한 인증샷을 보여주시면
9월의 탄생화인 물망초와 목현이 쿠키를 드려요.
장소:삼성역 코엑스
(물망초에_(ㅎㅁㅎ)이모티콘을_넣은_쿠키_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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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역 코엑스라면 지나가다가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목현 형, 할 일 없으면 우리 집에 가기 전에 여기 갈래요?”
“…나비 집?”
“왜요? 우리 집 가기로 했잖아요.”
화목현은 내 말에 당황하며 눈동자를 굴렸다. 설마 내 말이 거짓말인 줄 알았나?
“아직 반찬이 남았어요.”
“…어?”
“엄마가 형 온다고 반찬 해놨다고 하더라고요.”
반협박에 화목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하여 나는 코엑스도 들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다면 우선 코엑스에 가죠.”
“나비야, 근데 우리… 들키면 어떡해?”
“누가 우릴 알아보겠어요.”
팬들이 아닌 이상 지나가는 사람들은 우리를 쳐다보지도 않을 거다. 지금 시각은 오후 5시. 곧 직장인들이 퇴근하는 시간이다.
“설마 우리를 알아보겠어요?”
“그런가?”
“대충 모자만 쓰고 가요.”
지하철 계단 옆에 가방을 내려놓고 가방 구석에 자리 잡은 검은색 모자를 꺼냈다. 화목현은 내 가방을 유심히 관찰하더니 짧은 감탄을 내뱉었다.
“…그걸 다 들고 다녔어?”
“왜요?”
“어깨는 안 아파?”
“평소에도 이러고 다녀서 딱히 안 아파요.”
“대단하다…….”
그러고는 화목현의 머리에 모자를 씌워주었다. 와, 고작 오천 원짜리 모자가 백만 원짜리로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냥 잘생겨서 그렇게 보이는 건가.”
“…응?”
“아니요. 형, 모자 잘 어울리네요.”
화목현은 부끄러운 내색을 감추며 모자 끝을 매만졌다.
“모자가 약간 헐었다.”
“제가 연습생 생활을 할 때 매일 쓰고 다니던 모자거든요.”
“진짜? 이런 걸 나한테 빌려줘도 돼?”
“형이니까 빌려주는 거예요.”
잘생긴 얼굴, 모자로 가려야 그 빛이 가려지지. 안 그러면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가 화목현을 쳐다볼 것이다. 나는 괜찮을지 몰라도.
“나비야, 그런데 너는 모자 안 써?”
“저는 뭐…….”
화목현의 말에 알이 없는 안경을 쓴 뒤, 후드 재킷에 달려 있는 모자로 얼굴을 대충 가렸다.
“이걸로 됐어요.”
“나비야, 얼굴 가린 거 맞지?”
“네, 이상해요?”
“아니, 그건 아닌데… 뭔가… 가린 것처럼 보이지가 않아.”
애초에 내 목적은 화목현의 얼굴을 가리는 것이었으니까.
“형만 가리면 돼요.”
“어? 아무리 그래도 너도 인기가 많잖아……?”
“저는 딱히 없어요.”
화목현이 짜게 식은 눈으로 나를 째려보았다. 말도 안 된다는 듯한 화목현의 눈빛을 피하면서 가방을 닫았다.
‘화목현에 비하면 인기가 없긴 하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거린 뒤 앞을 향해 턱짓했다.
“저 그만 보시고, 이제 지하철 타러 갈까요?”
“그래, 나비야. 가자.”
그렇게 어찌저찌 코엑스에 도착했는데, 꽃 이벤트는 이미 끝났는지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늦었나 봐.”
“어, 바구니에 물망초 하나 남은 것 같아요.”
“저걸 우리한테 주실까?”
“잘 모르겠어요.”
다행인지 바구니에 물망초가 딱 하나 남아 있었다. 그나저나 투표 인증샷이 있어야 저걸 받을 수 있을 텐데.
“저, 꽃 한 송이 받을 수 있을까요?”
그렇게 말했는데도 가방에서 꽃을 꺼내고 있던 팬분은 우리를 보지 않았다.
“혹시 목현이 투표 인증샷을 볼 수 있을까요?”
“저희가 투표를 할 수 없어서요.”
“…예? 그게 없다면 꽃을 드릴 수 없는데.”
그제야 팬분은 고개를 들고 우리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팬분은 우리를 보더니 서서히 표정을 풀었다. 심지어는 바구니에 넣을 꽃을 바닥에 떨어트리고 나서도 우리를 위아래로 훑었다.
“…어, 어?”
“꽃 한 송이 받을 수 있을까요?”
“어, 어……!”
우리를 알아본 팬분이 당장이라도 소리를 지를 것 같았다. 이윽고 팬분은 스스로 입을 다물며 소리를 막았다.
“진짜죠……?”
“네.”
화목현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저, 꽃은 못 받을까요?”
“…그건 안 되겠는데요.”
그러자 팬분이 고개를 저으며 마치 용납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화목현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그런가요?”
“이건 팬분들한테 드리는 선물이라서요.”
아, 우리는 안 되는구나.
“꽃은 투표한 사람들한테만 주려고 한 거라서요.”
“…저도 안 되나요?”
화목현이 모자를 살짝 올리며 팬분한테 물었다. 팬분은 화목현의 얼굴을 봤음에도 단호하게 손을 저었다.
“안 돼요. 그러다 진짜로 투표해 주신 팬분한테 못 드릴 수도 있어서…….”
하긴 그렇긴 하지. 꽃을 받는 대신 가방에 있던 초콜릿을 꺼내 팬분에게 건넸다. 원래 목적은 이 이벤트를 직접 보려던 거였으니까.
“…초콜릿.”
“갑작스럽게 오게 돼서 드릴 수 있는 게 없거든요. 이거라도 드세요.”
그리고 화목현은 평소에 자주 마시던 우유를 팬분에게 건네고 뒤돌아섰다. 그때, 팬분이 달려와 우리에게 물망초 한 송이와 포스트잇을 건넸다.
“꽃을 받은 팬들이 포스트잇에 글을 남긴 다음 상자에 넣어두고 가거든요.”
그 순간 나는 화목현을 힐끗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형, 저는 적을게요.”
“…나비야, 적게?”
“저는 할 말이 있어서요.”
“할 말이 있어?”
“그럼요.”
생일 축하한다는 말은 진부하지. 곧바로 볼펜을 들고 포스트잇에 글을 적었다.
[목현 형, 형이 나무가 되면 제가 꽃이 될게요. 생일 축하해요.]
이 정도로 적으면 되겠지. 나는 웃음을 참으며 볼펜을 움직였다.
“여기 다 적었어요.”
팬분은 내가 적은 포스트잇을 보시더니 그걸 고이 접어 상자에 넣어주셨다. 뒤늦게 화목현도 포스트잇을 건네고는 팬분에게 인사했다.
“이벤트 진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이렇게 훈훈하게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 인파가 몰리더니 화목현을 알아보는 사람이 늘어났다.
“야… 화목현 같은데?”
“…진짜?”
“맞네……! 옆에는 범나비다!”
이런, 큰일 났다. 나까지 들키다니. 내 정체는 들키는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럼 저희는 가볼게요.”
화목현은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나는 안경을 올리며 출구를 찾았다. 우리가 출몰했다는 소식이 일파만파 퍼졌는지 우리를 부르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렸다.
그나마 근처에 택시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급히 택시를 잡고 올라타자 숨부터 골랐다. 화목현은 모자를 벗으면서 나를 보았다.
“나비야, 이런 것도 꽤 재밌네.”
“재밌어요?”
팬분이 주신 물망초 한 송이를 보며 화목현의 눈이 곱게 휘었다. 기분이 좋은지 입꼬리도 들썩였다.
“응, 이렇게 팬이 있다는 걸 아니까 즐거워서… 내가 이런 마음을 계속 간직했으면 좋겠어.”
나 역시 이 마음을 간직하고 싶다. 어느새 노을이 지면서 저녁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물망초를 보며 이파리의 숫자를 세고 있는 화목현에게 말했다.
“형, 생일 축하해요.”
화목현이 나를 보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집으로 무사히 도착할 줄 알았는데, 달리는 택시 안에서 핸드폰에 진동이 왔다.
(이남주) 오늘 힘내요
이남주의 톡이었다.
‘힘을 내라고?’
또 무슨 일이 일어나려나…….
***
이백수는 커뮤니티를 보다가 상체를 일으켰다.
“…범나비, 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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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눔이벤트)목목림 @ahr_fls
오늘 갑자기 나타난 목현이랑 나비ㅠ
어떻게 이벤트를 알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찾아와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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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현과 나비 화장 안 한 실제 모습’이라는 영상도 돌아다녔다. 아니, 지하철을 돌아다녀? 겁도 없이?
그동안 화장한 얼굴만 봤는데, 쌩얼은 휴지처럼 새하얬다. 이백수는 이마를 팍팍 치면서 눈물을 흘렸다.
“나도 꽃 이벤트 가려고 했는데……!”
집 밖에 나가지 않았던 이백수는 눈물을 흘렸다. 목현과 나비 목격담은 계속해서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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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굡 @ryryryry11
(눈_크게_뜬_나비_jpg)
이 사진 뭔가 했더니
물망초 못 가진 범나비래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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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에서는 세상을 다 평정겠다는 듯이 굴면서 꽃을 갖지 못해 슬퍼하는 모습이 딱 19살처럼 보였다. 이백수는 목격담 사진을 하나씩 저장하면서 폴더에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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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눔이벤트)목목림 @ahr_fls
목현이가 포스트잇에 쓴 글
“나비야, 다 보인다.”
나비가 포스트잇에 쓴 글
“목현 형, 형이 나무가 되면 제가 꽃이 될게요. 생일 축하해요.”
(화목현_포스트잇_jpg)
(범나비_포스트잇_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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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의 글씨체는 귀여워서 무슨 폰트로 나와도 될 법했고, 목현의 글씨체는 마치 한석봉이 쓴 것처럼 어른의 글씨체였다.
“취소표 때문에 빡친 상태였는데.”
방금 전까지만 해도 취소표 때문에 화가 치밀어 올랐던 이백수는, 애들의 귀여운 행동에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그것도 이런 이벤트에 직접 찾아갈 생각을 하다니.
“투표 열심히 해야지!”
또 다른 추진력을 얻은 이백수가 그렇게 커뮤니티를 둘러보는데, 이상한 제목의 기사가 눈에 띄었다.
“이건 또 뭐야?”
[돌아온 연습생 개인 순위 1위 화목현, 사실 아버지를 버린 패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