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보컬 A팀
QTQ 방송국.
박랜서는 플래카드를 든 채 돌연프 관객석에 앉았다.
“심, 심장 떨려…….”
며칠 전, 돌연프 게시판에서 공방이 있을 예정이라며 방청을 뽑았다. 그것도 휴가가 있는 날이었다. 하지만 운이 지지리도 없는 박랜서는 설마 되겠나 하는 마음으로 전화번호와 이메일을 적은 뒤 마음을 놓고 있었다. 그랬는데 운 좋게도 공방에 당첨이 됐다.
“안녕하세요!”
방송을 알리는 MC의 등장에 관객석에서 환호가 쏟아졌다.
“이번 연습생분들의 무대가 궁금하시죠?”
“네!”
“이번 무대는 특별합니다. 유닛이기 때문이죠.”
유닛이라는 말에 박랜서의 심장이 떨렸다.
“소속사별 무대가 아닌 보컬 팀, 춤 팀, 랩 팀으로 나뉘었습니다. 덤으로 이번에는 돌연프의 자랑인 카테고리 없이 주어진 노래에 컨셉을 정해서 진행하게 되었는데요.”
보컬, 춤, 랩? 박랜서는 AA 연습생들의 무대를 다양하게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무려 애들 무대를 3개 이상은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니까.
“우선 첫 번째 무대를 보여 드릴 시간이 다가왔는데요. 프로님들, 드림 히어로라는 만화를 아시나요?”
“네!”
“그렇다면 첫 번째 무대를 재밌게 보실 것 같은데요.”
MC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모니터에 ‘보컬 A팀’이라는 글자가 떴다.
“이번에 보컬 A팀은 드림 히어로의 OST인 하늘이시여를 부른다고 합니다. 보컬 A팀, ‘쥐락펴락’입니다!”
그렇게 보컬 A팀이 무대 위로 올라오고, 요셉과 나비의 의상을 본 박랜서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미, 미친…….’
보컬 A팀의 의상은 금색 인장에 하얀색, 검은색 정장이었다. 더군다나 요셉은 은발로 탈색을 했고, 나비는 흑발에 잔잔한 푸른빛이 돌고 있었다.
‘염색했어!’
요셉과 나비가 손을 흔들 때 박랜서는 미치는 줄 알았다. 요셉은 가죽 장갑을 낀 데다 나비는 반장갑이라는 치트키를 썼다니. 요셉과 나비를 보면서 박랜서는 눈이 호강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안녕하세요. 저희 이름은 쥐락!”
“펴락입니다!”
나중에 단독 직캠도 나오겠는데……? 슬슬 QTQ 방송국에서도 단독 직캠을 내놓던데, 이것도 제발 올려주면 좋겠다.
“왜 팀 이름이 쥐락펴락이죠?”
“여러분의 마음을 쥐락펴락하고 싶어서 그렇게 지어봤습니다!”
MC는 보컬 A팀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너무 잘생겨서 진짜 사람 마음을 쥐락펴락하네요. 그런 말이 있잖아요, 눈이 맑아졌다는 말. 지금이 딱 그렇네요…….”
“아, 선배님의 얼굴이 더 빛나죠.”
“아이고, 우리 후배님의 얼굴이 더 빛나죠.”
훈훈한 분위기가 웃음을 자아냈다. 그렇게 미소를 짓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나비와 눈이 마주쳤다. 뭐지? 착각인가.
“…진짜 후기처럼 나비가 쳐다봐 주는데?”
“혜자다… 다른 애들은 긴장해서 무대 밑 보지도 않는데…….”
착각이 아니었는지 나비는 계속해서 팬들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나비야!”
이런 작은 말도 들리는지 나비는 고개를 돌려주었다. ‘파이팅’ 하면 ‘떨려요’라는 입모양을 만들기도 했다. 요셉도 나비 옆에서 웃어줬지만 긴장한 모습이 엿보였다.
“이제 쥐락펴락 팀의 무대를 만나볼까요?”
무대의 조명이 꺼지고 애들은 붉은 벨벳 커튼 뒤로 걸어갔다. 보컬 A팀이 완전히 모습을 감췄을 때, 베토벤의 로망스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무대 양옆에서 드레스와 정장을 입은 댄서들이 가면을 들고서 춤을 췄다. 무대 세트까지 궁전을 연상시켜서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드림 히어로 재밌게 봤었는데…….’
하도 어렸을 때 봤던 추억의 만화라 박랜서는 까먹고 있었다. 이 부분이 1화의 명장면이라는 사실을.
어릴 적 드림 히어로를 봤던 사람이라면 이 무대를 보면서 추억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서서히 박랜서가 드림 히어로의 추억에 빠질 즈음이었다.
-아, 아아아아- 아.
아름다운 이 땅에
꿈같은 일들이 펼쳐져
요셉의 목소리가 박랜서를 어린 시절에서 빠져나오게 만들었다. 드디어 보컬 A팀을 감췄던 붉은 벨벳 커튼이 열렸다.
계단 위에는 보컬 A팀이 와인 잔을 들고 서 있었다. 철저하게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채.
-happy! happy! Dream hero
우리는 순수한 악몽을 가끔 꾸지요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꿈을!
보컬 A팀이 계단에서 내려와 가운데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고는 중앙에 선 요셉이 마이크를 들었다.
-happy! happy! Dream hero
지나가는 바람도 진한 향기도
향수처럼 우리에게 꿈을 꾸게 해요
가볍고 통통 튀는 멜로디에 관객들이 어깨를 들썩였다. 가면무도회에서 악몽들과 싸우는 드림 히어로의 모습이 떠올랐다.
-현실이 지치고 힘들어서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도
우리는 웃어야만 했으니까
조명이 다시 켜졌을 때, 무도회에서 춤을 추던 댄서들은 움직임을 멈췄다. 홀로 움직일 수 있었던 이남주가 앞으로 나와 손가락을 튕겼다.
-Tik tok Tik tok
웃음이 사라져 가요
Tik tok Tik tok
꿈들이 사라져 가요
모니터에서 뻐꾸기시계가 나와 시간이 흘렀음을 알렸다.
-Tik tok Tik tok
우리의 꿈들이 사라져 가요
어느새 가면을 쓰고 있던 보컬 A팀의 얼굴에는 가면이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춤을 추던 댄서들운 악당처럼 배를 잡고 웃으면서 상체를 숙였다.
-드림 히어로!
보컬 A팀과 댄서들이 대치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그러더니 중심에 있던 나비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사라진 꿈을 찾아
과거의 나에게 말해줘요
내가 당신의 꿈을 잊지 않았다고 OH-!
그와 동시에 밑에서 드라이아이스가 깔리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곧 댄서들이 쓰러지면서 무대 뒤로 빠졌다.
박랜서는 알 수 있었다. 이 장면은 드림 히어로의 1화 연출이 그대로 사용되었다고. 원곡에서 크게 벗어난 편곡도 아닐뿐더러 어릴 적 향수를 자극시켜 마음이 간지러웠다.
“…아, 마음이 이상해.”
“눈물 나는 것 같아.”
정말 그랬다. 이제는 그때로 돌아갈 수 없으니까.
-드디어 꿈을 찾으려는 신비한 여정
우리가 함께 힘을 모아
꿈을 되찾아 가보자-
나비가 제일 중요한 파트를 목소리를 긁으며 불러서 꼭 원곡처럼 들렸다.
-happy! happy! Dream hero
OH~ OOH~
요셉이 귀엽고 깜찍하게 윙크를 하며 애교를 부리면서도 음정과 박자가 딱딱 맞았다. 목소리까지 좋았다니. 지금것 목현과 나비한테 묻혀서 잘 몰랐는데 말이다.
확실히 이번 무대는 요셉의 목소리에서 보컬로서의 매력이 잘 보였다.
-어디서나 언제나 당신을 찾아가요!
나는 당신의 드림 히어로!
첫 무대가 끝나고 보컬 A팀은 카메라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으로 나비가 냅다 키스를 날렸다. 이내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와아아아!”
“너무 좋다!”
“남주야!”
이 뒤로는 어떤 무대가 나와도 이 여운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데.
“…와, 동심을 자극하는 무대였습니다. 이 곡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박정후가 나비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나비가 설명을 정말 기깔나게 잘하거든요.”
나비는 마이크를 들고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 시절 드림 히어로를 본 사람들은 이제 대부분 사회생활을 하고 있을 겁니다.”
“범나비 연습생의 말처럼 이 곡을 들으니까 드림 히어로를 봤던 시절이 새록새록 떠오르더라고요.”
“저희는 어린 시절 추억과 동심을 프로님들께 선물해 드리고 싶은 마음에 이 곡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나비가 말했던 ‘선물’이라는 말이 딱 정답이었다. 화려하게 눈을 사로잡는 무대도 아니었고, 특별한 무대도 아니었다. 하지만 관객석은 하나같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보컬 A팀이 준 선물은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좋았으니까.
투표가 시작되면서 카메라가 MC를 향하고 있을 때였다. 나비가 관객석을 보면서 숟가락으로 밥 먹는 듯한 손짓을 했다.
‘밥은 먹었어요?’
요셉도 끼어들어서 손짓했다.
‘밥은 드셔야죠.’
박랜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래서 다들 공방에 오는 건가.
“너희들 얼굴만 봐도 충분해!”
그러자 요셉과 범나비가 얼굴을 들이대면서 ‘진짜요?’라고 대답했고, 관객석에는 웃음이 터졌다.
“보컬 A팀이 선물해 준 추억과 동심이 마음에 들었다면, 1번을 눌러주시면 됩니다.”
“쥐락펴락, 기억해 주세요!”
“여러분의 심장을 쥐락~ 펴락~!”
그렇게 나비와의 첫 만남이 끝났다.
***
첫 무대가 끝났다는 생각에 손이 떨렸다. 팬분들도 많이 봐서 좋았고. 특히 두 번째 무대 때 봤던 팬분들이 많이 온 것 같았다. 더군다나 호응을 얻는 데도 성공했다.
[정답, 관객의 호응을 얻었습니다.
정답을 풀어 랜덤 박스 2개를 증정합니다.]
그대로 랜덤 박스를 돌렸다. 랜덤 박스가 돌아가면서 팡팡, 폭죽이 터졌다.
【랜덤 박스 OPEN】
※랜덤 박스에서 2개의 아이템이 나옵니다.
【1. 뛰어난 만병통치약(24시간):먹는 즉시 몸을 치료할 수 있다. [1번]
2. 나를 보소! 나를 보소!:관객석에 앉은 사람들이 나를 주목한다. [1번]】
아이템들이 터지면서 두둥실 떠올랐다.
【아이템은 인벤토리에 있습니다!】
아이템이 인벤토리에 담기며 아이템이 사라졌다. 왠지 새로운 아이템도 쓸모가 있을 것 같았다.
“우리 잘했어요!”
모두가 무대가 끝나서 안도하고 있을 때, 이남주가 멤버들을 모아서 응원과 칭찬을 아낌없이 보내주었다.
“남주도 잘하더라.”
“조명을 엄청 세게 받는데도 이목구비가 안 사라지던데?”
“나도 무대에서 보다가 깜짝 놀랐다니까.”
나는 슬쩍 옆으로 빠지면서 두 번째 무대인 보컬 B팀을 확인했다. 화목현이 있는 두 번째 보컬 B팀은 막강하다는 소문이 돌았었다. 아무래도 노래를 잘하는 연습생들만 모였으니.
“목현이 형!”
“어, 얘들아.”
우리와 달리 검은색 사제복을 입은 화목현은 무척이나 성스러워 보였다. 어디서 화목현을 찬양하는 말이 들리는 것 같기도.
“무대는 잘했어?”
“잘했어요. 실수도 없었고~!”
“그렇다면 다행이다.”
화목현의 눈동자가 사뭇 떨리는 것 같았다.
“나도 잘할 수 있겠지? 너희들과 떨어져서 무대를 하려고 하니까 떨리네.”
“형, 잘할 거예요.”
“…어, 어? 그렇지, 잘하겠지…….”
“잘할 거라면서 그렇게 떨어요?”
“너희들이 없으니까.”
하긴 그룹에서 솔로로 전향하면 많이 떨린다고 들었다. 나는 정요셉이 있어서 그나마 부담감이 덜했으나 화목현은 혼자였다.
“우리 리더 형이 우리가 없어서 떨리다니~ 이거 좋아해야 하는 거야, 말아야 하는 거야?”
“요셉아, 이걸 좋아하는 것도 좀 이상하지.”
“아니, 우리 형이 떠는 모습을 보니까 마음이 아파서~”
“이거 나 놀리는 거지, 나비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놀리고 있다에 한 표를 던졌다. 정요셉은 억울하다는 듯이 입꼬리를 내리면서 화목현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형은 잘할 수 있어~! 우리가 괜히 형을 리더로 뽑았겠어?”
“…마음이 뒤숭숭하네.”
나는 조용히 화목현의 팔뚝을 잡고 말했다.
“제가 본 형은 보컬로서 최고예요.”
“…나비야.”
“그러니까 떨지 말고 무대에 올라가세요.”
내가 그렇게 말하고 있을 때 정요셉과 화목현의 표정은 똑같았다. 둘은 무척 감동받은 것처럼 손바닥으로 입을 막았다.
“…왜 그러죠?”
“우리 막내도 감정이 있는 줄은 몰랐어~!”
“음, 왜요?”
“이때까지 우리는 막내가 기계인 줄 알았지.”
“예?”
…기계? 내가 무슨 기계라고.
“저도 감정이 있는 인간인데요.”
“그렇군요, 기계 막내.”
“…요셉 형.”
그러자 가만히 있던 화목현이 짧게 웃었다. 왜 정요셉이 웃는 것보다 기분이 더 나쁘지?
“목현 형?”
화목현은 내 말을 무시하며 부랴부랴 몸을 움직였다.
“아, 나는 이제 무대 위로 올라가야겠다.”
“…형?”
“다들 힘내고, 무대 내려와서 보자.”
“저기요, 목현 형?”
왜 웃었는지 물어보려고 했으나 화목현은 이미 보컬 B팀 쪽으로 가버린 상태였다. 화목현의 등을 두드리려고 했던 손이 허망하게 헛손질을 했다.
‘저 형, 괜찮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