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Q 라이브(1)
“흠…….”
박정후의 굳은 표정을 보자마자 알았다. 나한테는 다른 파트를 안 주고 고음 파트만 줄 것 같다는 느낌
‘화가 나서 내뱉은 말이긴 한데.’
너무 세게 말했나? 뒷감당을 생각하지 않고 말하긴 했다. 뭐, 박정후가 제대로 된 파트를 안 줘도 뺏을 방법은 많으니까.
“우리 막내~!”
정요셉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정요셉은 나를 기다렸는지 Q 라이브 대기실 문 앞에 서 있었다.
“요셉 형, 저 기다렸어요?”
“당연히 엄청 기다렸지~!”
한 10분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정요셉이 내 어깨를 팔로 감싸며 조용히 속삭였다.
“나는 우리 막내가 누구 때리러 간 줄 알았잖아~”
“예? 제가 누굴 때려요.”
“대기실에서 나갈 때 화가 난 것처럼 눈을 부리부리하게 떴잖아?”
“부리부리하게요?”
내 말에 정요셉이 눈을 크게 떴다.
“이렇게?”
“…오해하지 마세요. 저 때린 적은 없어요.”
“아, 충동은 들었다?”
“어떻게 말을 들으면 그렇게 들을 수가 있을까요?”
“나라서?”
영양가 없는 대화를 이어가다가 대기실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화목현이 나한테 잠옷을 들이댔다.
“나비야, 잠옷 갈아입고 나와.”
이미 다른 멤버들은 잠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우리 막내, 빨리 움직여~”
“…아직 시간이 안 됐는데요?”
“빨리빨리 옷 갈아입어야지.”
더 있다가는 잔소리 들을 것 같은 분위기라서 신속하게 간이 탈의실에 들어갔다. 드디어 화목현이 준 잠옷을 펼치는데, 인상이 찌푸려졌다.
‘이 옷은 뭐지……?’
분명 잠옷이라고 하지 않았나. 왜 잠옷 셔츠에 호랑이 무늬가 그려져 있는 걸까? 거기다가 잠옷 바지는 금색 벨벳 소재라 나풀나풀거렸다. 한숨을 내쉬며 셔츠를 펼쳤더니 검은색 선글라스가 바닥에 떨어졌다.
“…선글라스?”
주마등처럼 멤버들의 잠옷이 눈앞을 스쳐 갔다. 내 잠옷보다는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이거, 당했다.
“나비야, 빨리 입고 나와라!”
“빨리 나와.”
“우리 막내 잠옷 보고 싶네~”
“다 입었으면 탈의실에서 나오지?”
이런… 검은색 선글라스를 머리 위에 올리고는 밖으로 나갔다. 멤버들은 내 모습을 보자마자 웃어댔다.
“사람 앞에 두고 웃지 말죠?”
제일 먼저 웃은 정요셉이 말을 더듬었다.
“아니, 우리 막내 대단한데~?”
“뭐가 대단해요.”
“호랑이 무늬가 그렇게 잘 어울리다니. 대단하잖아……!”
나는 입술을 꾹 다문 채 멤버들의 잠옷을 훑었다.
“형들 잠옷은 왜 이렇게 멀쩡해요?”
“작가님이 너랑 어울릴 거라고 생각해서 가져왔대.”
“저도 평범한 잠옷이 좋은데.”
나는 멤버들의 표정 하나하나를 살피면서 한숨을 푹 쉬었다.
“우리 막내, 삐졌어?”
“삐진 거 아닙니다.”
삐지기는. 화가 났을 뿐이다. 정요셉이 삐지지 말라며 나를 흔들자 머리에 올려둔 검은색 선글라스가 콧잔등으로 떨어졌다. 그러자 화목현이 참고 참았던 웃음보를 터트려 댔다.
“나비야, 아니야… 우리가 왜… 너를…….”
“…마음껏 웃으세요.”
“웃고 싶어서 웃는 건 아니고…….”
그러자 옆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저기, 너무 시끄러운데? 조용히 좀 하자.”
“미안. 시끄러웠지?”
소파에 앉아 있었던 FG 연습생들이 시끄럽다며 일침을 놓았다. 머쓱한 상황에서 이남주는 내 표정을 보더니 소리 없이 깔깔 웃었다.
“남주야, 대본 보자.”
“미안. 대본 볼게.”
저쪽은 뭔가 불안한 눈빛으로 대본을 꼼꼼하게 살피고 있었다. 그에 반해 우리 멤버들은 평온하게 대본도 보지 않고 노닥거렸다.
“범나비 연습생?”
“…아, 죄송합니다.”
메이크업을 받으려고 의자에 앉자 정요셉과 주이든이 옆에서 나를 지켜보았다.
“선생님, 우리 막내 얼굴 좀 날렵한 양아치처럼 만들어주세요.”
“날렵한 양아치요?”
“저희끼리 회의해 봤는데, 이 잠옷과 어울리는 메이크업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그러자 선생님이 내 모습을 쭉 훑으셨다. 그러더니 굉장히 밝은 표정으로 정요셉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셨다.
“안 그래도 되는데…….”
“열심히 해볼게요.”
“안 해도…….”
그렇게 내 말은 무참히 씹혔다. 진지한 태도로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는데 시스템창이 나타났다.
「문제 8, AA 연습생 Q 라이브 시청자 만 명 넘기기!
페널티:피를 토하면서 쓰러짐」
‘하, 이 미친 시스템.’
젠장. 고작 연습생을 보러 어떻게 만 명이 오냐고. 그렇다면 미리 계획을 짜놔야겠다. 어디서 피를 토할지.
***
오늘은 드디어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 4화를 하는 날이다. 이백수는 미리 사놓은 파인애플 피자와 소주를 테이블에 세팅했다.
“으음… 좋다, 좋아.”
돌연프 4화를 미리 틀어놓고 커뮤니티를 훑었다. HOR 연습생은 거의 매장을 당하고 있었다. 아무리 HOR 엔터라도 겉 포장은 힘들었다.
누가 봐도 HOR 연습생이 사용한 텀블러는 주이든의 텀블러였다.
곧 온갖 커뮤니티에는 HOR 연습생에 대한 폭로전이 이어졌다.
-HOR 연습생 학폭 떴음?
└ ㅇㅇ 과사 뜸
└ 무슨 과사인데?
└ 바로 삭제되긴 했는데 HOR 연습생 한 명이 노래방에서 담배 피우는 사진임
-ㅋㅋ 커뮤에서 HOR 연습생 좋아한다는 글 올라올 때마다 짜증 났었는데 잘됐다
└ 왜????
└ 내 남동생 HOR 연습생 중 한 명한테 맞았거든 ㅋㅋ
└ 헐;
└ ㅁㅊ
이백수는 혀를 끌끌 차며 소주에 사이다를 타고는 미리 한 잔을 마셨다.
-이제 돌연프 시작한다!
머릿속으로 지난주에 어떤 무대가 있었는지 파노라마식으로 스쳐 지나갔다.
“…이남주밖에 안 보이네.”
우리 애들만 보고 싶은데 이남주가 계속 나오니 심장이 떨렸다. 그게 불만이었다. 이렇게 잘생긴 멤버를 계속 보여주면 마음 한구석에 새로운 자리가 생길지도 모른단 말이다.
-이남주 ㅈㄴ 잘해
-ㅠㅠ 솔로로 나오면 좋겠다
└ 그랬으면 남주 솔로로 먼저 나왔겠지;;
└ 이런 댓글 지향하자
└ 지양이겠지; ㅅㅂ
그다음, 시청자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AA 연습생의 무대가 꾸려졌다. 이백수는 그 무대가 어떤 무대인지 이미 알고 있었기에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MC : 이제 마지막 순서가 찾아왔는데요? AA 연습생과 HOR 연습생이 고른 카테고리는 비극입니다.]
무대를 보기 전 HOR 연습생들이 비극 카테고리를 어떻게 얻었는지 나오기 시작했다.
[열심히 하는 HOR 연습생들]
[땀을 흘리고 있는데…]
“열심히는 개뿔.”
그리고 한 HOR 연습생이 살랑살랑 걸어가면서 ‘비극’ 카테고리를 잡았다. AA 연습생들과 비교하면 열심히 안 한 수준.
-돌연프 이제 범나비 어그로 끝났다고 HOR 연습생으로 어그로 끄네ㅋㅋ
└ 하지만 걔네들은 범죄자잖아
└ 왜 범죄자임?
└ 학폭 인증 떴음 ㄱㄱ
이백수는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그러면 텀블러는? 이 부분이 제일 중요했다.
[열심히 연습하는 AA와 HOR]
[단체 연습실 복도를 걸어가는 누군가가 있는데?]
“아이피 아님?”
입고 있는 옷만 봐도 I.P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단체 연습실에 들어간 I.P가 연습생들한테 인사했다. 그러자 화면에 AA 연습생들과 HOR 연습생들이 보였다.
[~I.P의 등장에 놀란 연습생들~]
AA 연습생들의 옷은 땀으로 흥건했다. 반면에 HOR 연습생들의 얼굴은 뽀송했고.
[I.P : 열심히 준비했어요?]
[AA 정요셉 : 저희는 언제나 열심히 했지만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습니다~!]
역시 정요셉이 무거운 분위기를 풀었다.
-아역배우부터 시작해서 연예계 생활 오래 하니까 저렇게 넉살도 부릴 수 있구나
└ 요셉이가 힘든 삶을 살아오긴 했지
└ 무슨 일?
└ 아 정요셉 연예계 치면 나올걸?
└ 뭐야… 정요셉… 개불쌍해 ㅁㅊ
-어? 뭐야 나비 왜 옆구리를 잡아?
사전 무대가 끝나고 I.P의 심각한 얼굴과 땀 흘리고 있는 나비의 얼굴이 교차되었다.
[I.P : 범나비 연습생, 어디 아픈 것 같은데.]
[AA 범나비 : 아픈 곳은 없습니다.]
아픈 곳이 없다면서 나비의 낯빛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I.P : 정말 아픈 곳이 없다는 거죠?]
[AA 범나비 : 네, 없습니다.]
하지만 곧 멤버들 몰래 옆구리를 잡으면서 물을 마시는 나비가 화면에 나왔다.
-범나비 아픈 척 지리네
└ 아픈 척(X) 진짜 아픔(O)
└ 이런 새끼들은 똑같이 당해봐야지 너도 아플 때 그런 소리 꼭 들어라 ㅇㅇ
-나비 아픈데도 꿋꿋하게 하네 ㅠㅠ
-범나비 어린 줄… 알았는데…
그러고는 팀 무대로 넘어갔다. 역시 HOR 연습생의 무대는 엉망이었다. 실제로 봤을 땐 별 상관 없었는데 말이지.
“…아이돌이 되고 싶긴 한가?”
전체적인 상황을 보고 난 뒤라 그런가 이백수의 머릿속은 짜증이 득실거렸다.
-이 무대를 보고 HOR 연습생 쉴드를 친다? 그렇다면 당신은 수발을 들어주는 사람입니다. 알겠어요?
└ ㄹㄹ 시녀라고 욕먹기 싫다면 쉴드 불가임
└ 아 이래 놓고 팀 순위 발표식 때 살아남으면 대박;
-이번 화 보고 HOR 탈덕함
└ 222
└ 333 ㅅㅂ AA 연습생들 보니까 비교됨
-아이돌이 독기가 있어야지 저런 식으로 행동하냐; AA 애들이랑 비교됨
└ 당연 걔들은 독기라도 있음
└ 당연 그리고 HOR보다 잘생겼음 이건 팩트
-또또 그냥 HOR 연습생 못한다고 하면 끝나는 일인데 AA 연습생 올려치네 ㅋㅋ AA 팬들 이렇게 올려치면 세상 행복하냐?
└ 올려치기가 아니라 상대방이 존나 못하는 거라고요 돌연프 4화 보기는 함?
그리고 각자 대기실로 향한 연습생들에게 두 번째 무대의 순위가 발표되었다.
[침을 꿀꺽 삼키는 연습생들]
[FG 이남주 : 우리가 꼴찌는 아니겠지?]
-ㅅㅂ 왜 내가 떨리냐
-ㅠㅠ울남 겸손해
-당연 1등은 FG……!
이백수는 피자를 쥐고 흔들었다. 우리 AA 엔터 1등! 제발 한 번이라도 1위 해보자.
[AA 주이든 : 허…….]
[FG 이남주 : 걱정하지 마. 우리가 1등 했어.]
그러자 AA 연습생과 FG 연습생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순위가 공개되었다.
『1위 : FG 엔터
2위 : AA 엔터
3위 : HI 엔터
.
.
.
10위 : HOR 엔터』
아, 이백수는 먹던 파인애플 피자가 입 밖으로 나올 뻔했다.
-헐?
-이남주 1등! 역시 울남 1등!
-1위랑 2위랑 라이브 시작하겠다
-아직 분량 남은 듯? 10분?
남은 시간 10분 동안은 개인 순위가 공개되고 있었다.
-아직도 하네?
-10분 연장하는 듯?
[AA 엔터 등장]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나비는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슬슬 한 명씩 개인 순위가 정해지다가 곧 나비의 차례가 왔다.
두근두근. 이백수는 양손을 꽉 잡으며 기도를 했다.
‘제발, 제발, 제발…….’
눈을 감고 있던 이백수의 귓가에 MC의 목소리가 들렸다.
[MC : 29위, 범나비 연습생.]
나비의 순위가 29위가 됐다. 감격에 잠긴 나비의 표정에 이백수는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질렀다.
-방금 나비 우리한테 사랑한다고 했음?
-아 미쳤나 봐 ㅠㅠㅠㅠ
-20위나 올랐는데 기적이나 다름없지 ㅇㅈ
더군다나 개인 순위 1위는 화목현이었다.
-뭐야;;
-ㅋㅋ화목현 축하
-목현아 축하해 1위 ㅠㅠㅠ
-흠…
화목현의 팬들은 화목현의 성향을 닮은 건지 그동안 어떤 결과에도 시비를 걸지 않았다. 그와 달리 이남주의 팬들은 서슴없이 불편함을 드러냈다.
-왜 이남주가 1위 아님?
└ ㄱㅊ 팀 순위 1위 하면 됨 베네핏도 받았잖아
[이제 살아남은 엔터와 탈락하는 엔터가 정해진다]
-HOR 엔터 탈락하길
└ 제발 기도함!!!!
돌연프 5화 예고편으로 HOR 연습생들이 우는 모습이 나왔다. HOR 연습생들이 탈락인 건지, 탈락이 아닌 건지 애매한 상황.
“탈락 맞아?”
-쟤네들 왜 보여줘?
-HOR 연습생 탈락이야 뭐야
-ㅋㅋㅋ 진심 우는 모습 역겹다
이쯤 되면 돌연프 제작진이 HOR 연습생들의 안티였다. 이백수는 화가 나서 소주잔을 집었는데, 그 순간 돌연프 너튜브 커뮤니티에 ‘Q 라이브, 12시 30분’이라는 알람이 떴다.
-돌연프 연습생 Q 라이브 광고하는 것 같은데?
-지금 Q 라이브 들어가셈! 시작함!
그래서 곧바로 Q 라이브에 들어갔는데, 이백수의 눈이 커졌다.
“나비야……?”
무대 뒤에서 모델처럼 걸어오는 나비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