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의 1군 가이드-32화 (32/235)

32. 박정후

본가에서 올라와 단체 연습실에서 노래를 고르던 중, 팀장님께 화목현의 소식을 알렸다.

(팀장님) 나비야, 알려줘서 고마워.

(팀장님) 그런데 내가 자주 못 갈 수도 있는데 어떡하지?

(범나비) 제가 유심히 지켜보겠습니다

(팀장님) 어, 그래. 고맙다.

하지만 팀장님은 다른 스케줄 때문에 바쁘셔서 자주 오실 수 없었다.

‘…최악의 상황이 생길 수도 있겠는데.’

그렇게 핸드폰을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어떤 곡을 골라야 좋을까…….”

일단 생각을 접고 노래를 고르는 상황에 집중할 때였다. 하필 박정후와 눈이 딱 마주쳤다.

“범나비, 집중 안 해?”

“아, 죄송해요. 어제 잠을 제대로 못 자서.”

“하… 지금 내가 널 안 뽑았다고 집중을 안 하는 거야?”

“그건 아니에요.”

“그러면 집중을 해야지? 안 그래?”

…뒤끝 작렬이네. 어쨌든 집중 못 한 내 탓이지.

“그런데 이 중 메인보컬이 누가 있더라~?”

“왜?”

“아, 노래 고르기 전에 알아두고 싶어서~”

정요셉의 물음에 박정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 나는 메인보컬.”

“그럼 정후 형 고음도 잘하겠네~?”

그 말에 박정후의 인상이 굳어졌다.

“아, 메보는 맞는데 고음은 잘 못해. 그런데 한번 해볼게.”

메인보컬인데 고음을 잘 못한다고? 이게 무슨 단무지 뺀 김밥 같은 소리를 하는 걸까.

이건 심각한 문제였다. 박정후는 메인보컬이라는 포지션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간혹 자존심 강한 연습생은 고음 파트에 고집이 있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나 컨디션 좋을 땐 고음 잘 불러.”

저게 무슨 말이지?

“정후 형, 그럼 오늘 컨디션은요?”

가만히 있던 이남주가 박정후에게 물었다.

“오늘은… 컨디션이 조금 별론데.”

“매일 컨디션이 다른 거라면 고음 지르는 노래는 빼야겠는데.”

“그, 그게… 남주야…….”

이남주한테는 찍소리도 못 하는군.

“다른 메인보컬도 있고.”

“글쎄? 제작진에게 받은 곡을 보면 다 고음이 필요하더라고~?”

정요셉이 합세하자 박정후의 변명이 쏙 들어갔다. 박정후는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내게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나비가 고음 잘 부른다고 했잖아. 그렇지?”

내가 그랬나? 그런 말을 한 적은 없는데. 박정후의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저렇게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자기 파트를 얻고 싶은 건가…….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일단은 그렇다고 해야겠지.

“그랬죠.”

“봐! 나는 나비 칭찬 많이 했어.”

마음에 드는 대답을 들었다는 듯 박정후는 내 말에 맞장구를 쳤다.

“이제 노래 결정하자!”

박정후의 지휘 아래 노래를 결정하는 찰나였다. 단체 연습실 문이 열리고 방송작가가 들어왔다.

“저 이남주, 범나비, 정요셉 연습생? 잠시 돌연프 광고 관련해서 얘기를 해야 하는데…….”

돌연프 광고라는 말에 박정후의 인상이 확 펴졌다. 아무래도 나쁜 계획을 세우는 것 같은데.

‘이런, 징조가 안 좋아.’

일단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송작가한테 다가갔다.

“돌연프 광고요?”

“이번에 QTQ 방송국에서 Q 라이브 앱이라고 팬들과 소통하는 앱을 출시했거든요. 그 앱 광고가 들어왔는데, 광고주가 AA 엔터와 FG 엔터 연습생과 함께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요.”

AA 엔터와 FG 엔터가 순위를 다투고 있으니 광고모델로 세우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 제안, 괜찮았다. 어떻게 보면 Q 라이브 앱으로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에.

“작가님, 광고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 있을까요~?”

정요셉의 물음에 방송작가는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잠옷으로 갈아입고 Q 라이브 앱을 홍보해 주시면 돼요.”

딱히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즉각 박정후가 반응했다.

“우리가 노래 정하고 있을게! 걱정하지 마.”

“맞아! 우리가 정한 뒤에 알려주면 되지 않나?”

걱정은 되지 않았다. 그저 저 박정후의 발언이 무시무시하게 들렸을 뿐. 남은 연습생들도 썩 믿음이 가지 않았고. 결국 우리는 단체 연습실에 나와서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 4화가 끝나는 즉시, 30분 동안 라이브 방송을 할 거예요.”

아, 라이브 방송 30분. 근데 준비하고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2시간이었다. 박정후가 노래와 파트를 정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일단 대기실에서 대기하고 있어주세요!”

그렇게 우리는 일단 대기실로 향했다.

“저 녀석들, 괜찮을까~?”

정요셉이 머리에 양손을 올렸다.

“괜찮을 거예요. 그런데 우린 괜찮을까요?”

“…글쎄.”

꺼림칙하지. 우리가 나서려고 하자마자 박정후의 눈빛에 생기가 돌았으니까.

“남주는 어떻게 생각해~?”

“저는…….”

이남주는 슬쩍 나를 보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예감이 딱히 좋지는 않죠.”

“그렇지~?”

왜일까. 이남주의 말이 힌트처럼 들렸다. 예감이 딱히 좋지 않다고?

‘현자의 귀를 써야 하나?’

대기실에 도착하니 이미 FG 연습생들이 있어서 소파는 만석이었다.

…시작부터 별론데. 뒤늦게 우리를 발견한 멤버들이 손을 흔들었다.

“요셉아, 나비야! 왔어?”

“아, 우리가 바빠서 조금 늦었네~”

“바빴어?”

화목현의 질문에 정요셉이 입술을 안으로 넣었다.

“그건 말 못 해~!”

“아쉽다. 캐낼 수 있었는데.”

“뭐? 형, 이번에는 팀이 다르지만, 우린 같은 AA 엔터라고~!”

정요셉의 응석을 받아주는 화목현을 보면서 나는 시간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바지 주머니를 뒤져봤지만 텅 비어 있었다. 아무래도 단체 연습실에서 핸드폰을 가져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목현이 형, 아직 대기 시간 있어요?”

“어, 대기 시간은 널널해. 왜?”

“저 핸드폰을 놔두고 와서 잠시 연습실에 갔다 올게요.”

“빨리 갔다 와. 너무 늦으면 자리 없다?”

어쩌면 지금 현자의 귀를 쓰는 게 옳은 선택일 수도. 박정후의 꿍꿍이도 궁금하고. 정요셉은 눈치가 빠른 편이라 내 표정이 바뀌면 눈치채서 안 된다.

“네, 빨리 갔다 올게요.”

이남주가 나를 슬쩍 보고는 갔다 오라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알면서 저러는 걸까. 단체 연습실로 가자 무슨 작당 모의를 하고 있는 건지 자기들끼리 웃고 있었다.

나는 인벤토리에 있는 ‘현자의 귀’를 눌렀다.

【※어떤 인물의 속마음을 읽고 싶은가요?

1. 박정후

2. 이남주

3. 정요셉】

‘박정후.’

고민 없이 박정후를 선택하자 곧바로 속마음이 떴다.

【박정후의 속마음:범나비 그 새끼는 자기가 잘난 줄 알아. 존나 어린 주제에. 어차피 고음 파트 몰아주려고 했으니까, 뭐. 망신이나 당해라.】

박정후의 속마음에 나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 그랬어?’

***

나는 범나비가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실 나에게는 노래 못하는 놈들만 쏙쏙 골라 나를 무대에서 튀게 만들려는 계획이 있었다. 그래서 비주얼은 좋으면서 리드보컬인 멤버들만 뽑았다.

그러려고 했는데, 하필 제일 뽑기 싫었던 범나비가 남을 줄은. 그래서인지 범나비만 생각하면 절로 짜증이 났다.

“이제 노래를 골라볼까, 얘들아?”

나는 봉투에 들어 있는 종이를 펼쳐서 연습생들에게 보여주었다.

《보컬 A팀》

1. 90년대 남성 듀오 - 하늘이시여

2. 드림 히어로 – 하늘이시여

3. 여자 아이돌 - 하늘이시여

“첫 번째 남성 듀오 노래는 무대 분위기가 처질 수도 있어서 별로일 것 같은데, 어때?”

내 말에 모두들 수긍했다. 다행히 남성 듀오 노래는 패스.

“여자 아이돌 노래는 키가 너무 높아서 할 수가 없을 것 같고.”

이렇게 말하자 그 누구도 반박하지 않았다. 그때 안경을 쓴 연습생, 고예찬이 손을 들었다.

“범나비가 있잖아요!”

“나비가 왜?”

“…아니, 키가 높으면 정후 형이 다 패스를 하니까요. 우리 팀에는 나비가 있으니까 괜찮지 않겠냐고요.”

“글세? 내가 듣기로 나비는 키가 그다지 높지 않았어.”

“그, 그래요……?”

고예찬의 말이 맞았다. 범나비는 고음을 잘 불렀다. 그러니 여자 아이돌 노래도 잘 맞겠지. 하지만 우리는 아니잖아? 쟤는 멍청한 거야, 뭐야.

“그러면 남는 곡이 드림 히어로 노래거든. 나는 이게 좋을 것 같은데 너희들은 어때……?”

“괜찮은데?”

“나도.”

괜찮다는 듯이 연습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QTQ 방송국에서는 처음부터 드림 히어로 노래를 고르길 바랐을 것이기에.

드림 히어로는 예전에 방영했던 만화인데, QTQ 방송국에서는 드림 히어로를 재방영하려고 시동을 거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김칫국을 마시며 미래까지 생각했다.

“노래 틀어줄게. 한번 들어봐.”

그리고 연습생들이 보는 앞에서 드림 히어로의 하늘이시여를 틀었다.

“오… 생각보다 괜찮다.”

“고음이 높긴 하네.”

연습생들이 좋아하자 나는 속으로 쾌재를 질렀다. 다른 보컬 팀에게 물어보니 드림 히어로를 고른 팀은 없었다. 이대로 쭉 가면 괜찮을 텐데.

“근데… 우리끼리 막 골라도 돼요?”

그때 고예찬이 태클을 걸었다.

“우리가 그런 걸 걱정할 때는 아닌 것 같은데?”

내 말에 분위기가 흔들렸다. 이대로 나는 말을 이어갔다.

“광고하러 간 세 명은 이미 인기도 많고 개인 순위도 높은데 우리는 개인 순위가 높지 않잖아? 이걸 기회로 삼아야지. 어차피 우리가 파트 분배를 해도 걔네는 아무 말도 못 할걸?”

잘 포장된 말에 다른 연습생들은 혹했다. 그 3인방보다 얼굴이 잘난 것도 아니었기에. 이번 무대가 끝나고 최종 순위에 올라갈지도 미지수였다.

“내 말이 맞지?”

내 말이 끝나자 연습생들은 고민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정후 형, 이 노래는 저음 위주라 나비가 힘들지 않을까?”

가만히 있던 고예찬이 손을 들더니 물었다. 얜 아까부터 가만히 있다가 왜 초를 쳐? 나는 인상을 쓰려다가 미소를 지었다.

“아, 나비 저음도 괜찮다고 했어.”

“정말? 그런 소리 못 들었는데.”

물론 그런 말은 한 적이 없었다.

“파트 분배는 우리끼리 정하지 말고 애들이 오면…….”

“아, 걔들도 우리가 파트 분배 해주면 고맙다고 할걸?”

이렇게까지 하면 말을 알아먹어야 하는데. 고예찬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아랫입술을 뜯었다.

‘범나비가 뭐가 좋다고!’

범나비는 형들한테 허리를 숙이는 건 물론이고, 웃으면서 형들 편한 대로 하라는 말은 죽어도 안 하니까. 아니꼽게 쳐다보는 눈빛 또한 마음에 안 들었다.

‘범나비 그 새끼는 자기가 잘난 줄 알아. 존나 어린 주제에. 어차피 고음 파트 몰아주려고 했으니까, 뭐. 망신이나 당해라.’

내가 범나비의 파트를 제일 어려운 고음 파트로 정하려는 찰나였다. 벌컥, 단체 연습실 문이 열리고 범나비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형들, 노래 정하고 있었어요?”

“어, 어! 나비야, 왜 왔어?”

“핸드폰을 놔두고 가서 가지러 왔어요.”

범나비의 싸늘한 눈빛에 순간 침을 삼켰다.

“…어떤 노래로 정했어요?”

“아, 그 하늘이시여!”

고예찬이 말했다.

“그건 알죠. 누구 노래인데요?”

“드림 히어로 OST야.”

“아, 그 옛날에 방영했던 만화 맞죠?”

“어, 어! 맞아.”

“그 노래 괜찮겠는데요?”

범나비가 흔쾌히 승낙하자 도리어 내가 당황했다.

“나비야, 이거 정말 괜찮아?”

“저는 괜찮은데요?”

“거친 음색도 내야 하는데?”

“어차피 저는 이 팀에서 메인보컬도 아니고 리드보컬이라서 괜찮아요.”

범나비의 입꼬리가 위로 솟았다. 이게 아닌데?

“정후 형이 잘해주지 않을까요?”

“그, 그렇지! 정후가 잘해줄 거야.”

“우리가 무대 망쳐도 정후 형은 잘해주겠죠.”

모두가 범나비의 말을 듣고 말을 멈췄다.

“뭐?”

“하하, 아뇨. 다 같이 잘하면 된다고요.”

“아, 그렇지!”

내가 아무리 뇌가 없이 산다고 해도 저 말의 속뜻은 알 수 있었다.

“그럼 저는 Q 라이브 찍고 올게요.”

핸드폰을 챙긴 범나비가 나간 후, 단체 연습실엔 정적만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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