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의 1군 가이드-30화 (30/235)

30. 도사 연가 OST 무대(2)

그 목소리가 들리자 심사 위원들은 내적 비명을 질렀다. 옥좌에서 내려온 정요셉이 계단에서 내려와 내시 옷을 입은 댄서들과 실랑이를 벌였다.

-난 조선의 왕이 아니라니까? 하늘과 땅을 돌아다니는 도사라고!

-아니 되옵니다.

-그놈의 아니 되옵니다! 내가 누구지?

-조선의 왕이지요.

그러면서 정요셉은 머리에 손을 얹으며 권태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무대 양옆에서 내시 옷을 입은 댄서들이 용포를 가져와 정요셉에게 입히려고 했다.

-나는 왕이 싫단 말이다! 용포도 필요 없다!

정요셉이 거세게 저항하자 천둥소리가 무대 전체에 울려 퍼졌다.

-콰앙!

‘분명 단체 안무 영상을 봤을 땐 이런 분위기가 안 났는데…….’

대사와 안무의 조화가 잘되어 있었다. 오스는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무대에 몰입했다. 그때였다. 옥좌 뒤에 숨어 있던 범나비가 앞으로 나오더니 마이크를 쥐는 것처럼 부채를 접어 입에 댔다.

-전하! 어디로 가십니까?

-내가 말하지 않았나? 나는 공부가 싫고, 무예도 싫고, 말타기도 싫단 말이다!

범나비가 복식 호흡으로 호통치는 연기를 했다. 내시 옷을 입은 댄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전하이십니다…….

또 저런다는 식의 목소리라 그런 것일까. 범나비가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콩트처럼 이어지는 무대에 심사 위원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어서 잡아라!

AA 연습생들이 무대 앞으로 나와 두루마기 끈을 풀고는 바닥에 앉아 부채로 구름의 형태를 만들었다. 마치 하늘을 나는 것처럼 말이다.

‘신선인가?’

주이든이 텀블링을 하면서 앞으로 나오자 내시 옷을 입은 댄서들이 벽처럼 섰다.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자진모리장단를 따라서 안무가 점점 거세졌다. 딱딱 맞던 안무가 갑자기 멈출 때였다. 무대의 조명이 꺼지는 동시에 계속해서 들리던 장구 소리가 끊겼다. 그리고 내시 옷을 입은 댄서들이 바닥에 엎드리며 고개를 들었다.

몇 초가 흘렸을까.

-둥- 둥- 둥-

북소리에 맞춰 다시 조명이 켜졌다. 어느새 AA 연습생들의 입가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마음이 바뀌었다.

-전하!

AA 연습생들은 도사의 상징인 부채를 바닥에 떨어트리고는 옥좌에 앉았다. 그리고 북소리가 끊겼다.

-왕을 해볼까?

이 대사를 끝으로 무대가 끝났다.

“와아……!”

“대박이다.”

“와, 어떻게 더빙할 생각을 했지?”

무대는 기대 이상이었다. 그래서인지 1분 30초라는 짧은 무대로 보이지 않았다.

‘점수는… A.’

오스는 평가지에 등급을 적으며 무대 위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쏟아지는 환호 속에서 AA 연습생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AA 연습생분들?”

“네……!”

“지금 <도사 연가> 배우님들이 만족스러운 무대라며 환호를 보내고 있네요.”

“아, 정말 감사합니다!”

AA 연습생들이 허리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했다.

“그런데 궁금한 점이 있어요. 더빙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왔나요?”

마이크를 들고 있던 정요셉이 범나비를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 막내가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아~ 범나비 연습생이?”

범나비의 아이디어라는 말에 MC가 감탄을 뱉었다.

“범나비 연습생! 어떻게 <도사 연가> OST에 더빙 넣을 생각을 했어요?”

“…아, 정진이 형이 가사를 대화체로 적었더라고요. 거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무대가 재밌어질 것 같았거든요.”

범나비가 고개를 돌리자 이정진은 고맙다는 듯이 웃었다.

“이렇게 훈훈한 분위기를 보여주는 가운데! 오스 작곡가님은 무대를 어떻게 보셨을지 궁금합니다.”

“범나비 연습생이 더빙하겠다면서 저를 찾아왔을 때, 사실 어떻게 무대를 꾸밀까 염려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무대를 보니 제가 왜 염려를 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도리어 제가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그 말을 들은 AA 연습생들은 다 같이 감사하다고 대답했다. 우렁찬 소리에 오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

“…아아, 떨렸어.”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주이든이 쓰러지듯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번에 단독 무대가 생기는 바람에 주이든의 심적 부담감이 컸던 모양이다.

“우리 이든이, 많이 떨렸나 봐?”

“…그냥 앉은 거야!”

“나는 앉았다고 뭐라 안 했는데~?”

이미 정요셉의 페이스에 말려든 주이든은 콧방귀를 뀌면서 내가 준 생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그래, 내가 실수하면 큰일이니까!”

하긴 떨릴 수밖에. 나도 그랬고.

“근데 목현이는?”

“아까 팀장님 전화 받고 나가던데?”

“전화? 아…….”

화목현이 전화를 받고 나갔다는 말에 이정진의 얼굴이 굳었다. 그러고 보니까 무대에서 내려오고 난 뒤로 화목현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어디로 갔지?’

이렇게 혼자서 팀장님과 통화를 하는 거라면 무슨 이유가 있을 텐데. 우리 팀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어, 얘들아.”

“목현 형!”

“또 무슨 일인데…….”

이윽고 저 멀리서 화목현이 웃으며 다가왔다. 티격태격 싸우는 정요셉과 주이든을 뒤로하고 화목현한테 물었다.

“목현 형, 얼굴에 핏기가 없는데요. 무슨 일 있어요?”

“…어? 아니, 그냥 피곤해서 그런가 봐. 요즘에 조금 힘들었잖아.”

저 대답이 딱히 신뢰 가진 않았다. 화목현은 아무리 힘들어도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러면 다행이고요.”

“걱정시켜서 미안해.”

“아니요. 형이잖아요.”

화목현이 힘들다면 진짜로 힘든 거니까. 화목현은 기특하다는 말을 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AA 연습생분들, 무대 위로 올라가 주세요!”

우리는 곧장 무대 위로 올라갔다. 그러면서 나는 화목현의 표정을 유심히 관찰했다.

어딘가 불편한 것처럼 화목현의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분명 뭔가를 숨기고 있었다. 그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지금은 아니지.’

일단은 화목현이 말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안녕하세요, 연습생 여러분! 세 번째 무대는 어떠셨나요?”

여기저기서 아쉬워하는 반응이 쏟아졌다. 이번 무대는 조금 어려운 무대였으니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아쉬움도 잠시, 벌써 네 번째 무대를 할 차례가 왔네요? 이번 무대는 새롭게 팀을 구성할 겁니다.”

새로운 팀?

머릿속에 의문이 든 것도 잠시, MC가 고개를 돌리자 모니터에 거대한 글씨가 떠올랐다.

《유닛》

“이번 네 번째 무대는 유닛 미션입니다. 새로운 팀원을 만나서 새로운 팀을 구성하는 거죠. 유닛은…….”

《춤, 랩, 보컬》

“이렇게 세 가지 팀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나는 보컬로 들어가야겠네. 춤과 랩은 들어가서 욕만 먹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MC의 표정에 미묘하게 장난기가 가득했다.

‘불안한데…….’

곧 모니터에 세 번째 무대 순위가 올라왔다. 갑작스러운 순위 발표에 연습생들의 탄식이 이어졌다.

이상하게 세 번째 무대는 순위 발표가 늦더라니. 다행스럽게도 세 번째 무대에서는 1위를 했다. 뒤에서 주이든이 조용히 말했다.

“우리… 1등 했다?”

나도 작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기쁘다는 표현을 했다. 일단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순위 발표를 하는 이유가 궁금했기에 MC의 말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이 순위는 오로지 심사 위원들의 평가로 정해진 건데요. 다들 확인하셨나요?”

“네!”

활기찬 연습생들의 대답에 MC가 고개를 들자 모니터에 RT 엔터가 떠올랐다.

“네 번째 무대는 세 번째 무대에서 꼴찌를 한 팀의 리더가 단독으로 유닛 멤버를 고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순위 발표를 지금 한 거군. 꼴찌 한 팀에게 유닛 멤버를 고를 수 있는 혜택을 줘야 하니까.

그때 눈앞에서 시스템창이 번쩍였다.

[정답, 세 번째 무대 1위를 했습니다.

정답을 풀어 랜덤 박스 3개를 증정합니다.]

랜덤 박스? 그 순간 종이 상자가 눈앞에 굴러가더니 박스가 열렸다.

【랜덤 박스 OPEN】

※랜덤 박스에서 3개의 아이템이 나옵니다.

【1. 청심환(1회성):불안한 상황에서 불안감을 억누르는 아이템이다. [1번]

2. 방어 기술의 책(1회성):공격이 들어오면 방어할 수 있는 책이다. [1번]

3. 현자의 귀(1회성):상대방의 속마음이 읽힌다(※주의:‘이남주’는 제외) [1번]】

곧 이 아이템들이 필요할 때가 온다는 건가.

【아이템은 인벤토리에 있습니다!】

…곧바로 인벤토리를 확인했다. 시스템창이 사라지자 MC의 목소리에 정신이 확 들었다.

“세 번째 무대의 꼴찌는 RT 연습생인데요.”

카메라가 RT 연습생들의 불쌍한 표정을 잡았다.

RT 엔터는 들어본 적이 있었다. 국내 활동을 실패하고, 해외 활동을 위주로 하면서 앨범 주문량이 50만 장을 돌파했던 그룹.

나중에 ‘중고 괴물’이라는 타이틀을 내밀어서 똑똑히 기억했다.

“RT 연습생분들, 무대 위로 올라와 주세요.”

곧 그 그룹이 저 연습생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박정후 연습생?”

“네!”

“박정후 연습생이 멤버들과 회의해서 유닛 그룹을 만들어주세요.”

순위가 꼴찌인 RT 연습생들이 어떤 유닛 그룹을 만들까. 나는 애당초 좋은 유닛 그룹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운이 따라주겠지.’

무대 뒤의 커튼이 올라가고, 계단 밑의 팻말이 보였다.

“RT 연습생의 리더인 박정후 연습생은 앞으로 나와주시고, 연습생 여러분은 춤, 랩, 보컬 중 들어가고 싶은 팀이 적혀 있는 팻말 앞에 서주세요.”

연습생들은 군말 없이 각자 팻말 앞에 서기 시작했다. 화목현은 무슨 헤어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얘들아… 잘 지내고.”

“목현 형, 우리 헤어지는 거 아닌데요.”

“일시적으로 헤어지는 거니까.”

결국 화목현은 멤버들을 불러 모으더니 어깨에 손을 올렸다.

“비록 우리의 몸은 떨어져도 마음만은 옆에 있다.”

솔직히 오글거렸지만, 진지해 보이는 화목현의 표정에 미소를 지었다.

“목현 형, 약간 오글거리는……!”

“이든아.”

“넵.”

어차피 내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저렇게 솔직하게 말해주는 주이든이 있으니까. 그렇게 멤버들은 각자 원하는 팻말 앞에 서서 정면을 쳐다보았다.

춤 팻말에 주이든.

랩 팻말에 이정진.

보컬 팻말에 화목현과 정요셉, 그리고 내가 섰다.

“이제 박정후 연습생은 유닛 그룹을 골라주세요.”

RT 연습생들은 MC의 말에 따라 회의를 통해 팀을 나누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연습생들이 점점 사라지면서 나는 무대 밑에 홀로 남겨졌다.

‘…흠, 나만?’

연습생들이 다 뽑히고 나 홀로 남겨지자 MC가 의외라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범나비 연습생이 뽑히지 않았네요. 의외입니다?”

그런데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만큼 내가 경쟁 상대로 좋지 않다는 뜻이었으니까.

“범나비 연습생?”

“네.”

“홀로 남겨진 기분은 어떤가요.”

카메라가 나만 보고 있으니, 이 정도면 분량은 뽑혔다. MC가 짓궂게 나에게 물었다. 나는 PD의 얼굴을 보면서 슬픈 표정을 지었다.

“저, 못하나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싶어서 저렇게 말했더니 다들 불쌍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팀은? 보컬 A팀의 리더인 박정후 연습생?”

“아, 네!”

“최종적으로 범나비 연습생은 보컬 A팀에 들어가면 되겠습니다.”

박정후는 내가 마음에 안 드는지 표정에서 아쉬움이 철철 흘렀다. 모든 연습생들의 팀이 정해지고, MC가 마이크를 들었다.

“이로써 모든 유닛 그룹이 정해졌는데요. 각 그룹 앞에 봉투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봉투 안에는 3개의 곡이 있습니다.”

곡이 3개? 이거 싸움 나겠는데. 나는 가까운 미래를 생각하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멤버들끼리 어떤 곡을 할지 의논한 뒤 방송작가에게 말해주시면 됩니다. 그럼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팀이 나뉜 연습생들은 다들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안녕하세요~ 박정후라고 합니다.”

나를 보자마자 인상을 썼던 박정후. 나는 눈동자를 굴려서 보컬 A팀을 살펴보았다. 보컬 A팀에 아는 사람은 정요셉이랑 이남주뿐.

“누가 보컬 A팀 리더 할래?”

“…음, 나는 정후 형이 하는 게 좋다고 보는데~”

박정후의 말을 정요셉이 덥석 물었다.

“왜?”

“우리를 골랐으니까~”

“다른 멤버는? 내가 리더를 해도 될까?”

“당연히 되지.”

리더를 맡으면 귀찮으니 박정후한테 몰아줄 생각인 것 같은데. 나도 딱히 거절할 의향은 없었다.

“저는 좋습니다.”

나를 따라서 다른 멤버들이 허락하자 박정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렇다면 잘 부탁한다.”

“역시 정후 형은 리더가 잘 어울리네.”

정요셉이 박정후를 리더로 치켜세워 주자 박정후의 눈에 웃음이 달렸다. 박정후는 나에게 다가오더니 미안하다는 듯이 입꼬리를 내렸다.

“팀에 메인보컬이 많으면 안 좋을 것 같아서 처음에 안 뽑은 거거든.”

“아, 그럴 수 있죠. 괜찮습니다.”

내가 가만히 있자 박정후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어차피 나비는 지금도 순위가 높지?”

“…아, 제가요?”

“나보다 순위가 높기도 하고, 보컬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잖아. 안 그래?”

좋은 평가는 꾸준히 받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어쨌다고?

“파트가 불리할 수도 있을 텐데 괜찮겠어?”

박정후의 눈웃음에 이상한 기류를 느꼈다.

‘이거 이상하게 굴러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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