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도사 연가 OST 무대(1)
시스템은 무엇을 경고하고 싶었던 걸까……? 그 경고를 되풀이하며 생각하다가 밤을 새워 버렸다. 곧 세 번째 무대가 있는 날인데.
“나비야?”
“아, 형.”
“오늘따라 왜 그렇게 멍해.”
“…아, 죄송해요. 잠을 못 자서요.”
화목현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죄송은 무슨. 그게 아니라, 어디 아프진 않지?”
“네, 사지는 멀쩡해요.”
“사지가 멀쩡해도 걱정거리가 있는 건 아니고?”
“…그것도 아니에요.”
최대한 화목현한테 괜찮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그제야 화목현이 안심하면서 메이크업을 받으러 가려는 찰나, 팀장님께 전화가 왔다.
“얘들아, 팀장님한테 전화 왔어. 받아볼게.”
“무슨 전화지~?”
팀장님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화목현의 큰 눈은 더더욱 커졌다.
“AA 연습생 이름으로 커피차가 왔다고요……!”
화목현은 놀란 나머지 말끝에 삑사리가 났다.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은 화목현은 전화를 끊고 우리에게 말해주었다.
“얘들아, 스튜디오 앞에 커피차가 왔다는데……?”
“우리가 커피차를 받아도 되는 거야?”
뒤늦게 주이든이 벌떡 일어났다.
“커피차를 받을 수 있어?!”
“어, 이든아. 우리도 받을 수 있긴 해. 다른 팀도 커피차, 분식차를 받았다고 했거든.”
“와! 너무 행복해!”
커피차… 뭔가 기분이 좋았다. 마치 오늘이 크리스마스 같았다. 커피차라는 선물도 받고.
“얘들아, 커피차 보러 갈까?”
“저, 잠깐만요.”
내 말에 멤버들이 행동을 멈췄다.
“형, 팬분들이 몇 명 왔는지 알아요?”
“팀장님한테 듣기로는 4명 오셨다고 들었어.”
“그러면 우리가 싸인이라도 해서 드리는 건 어때요?”
커피차 근처는 복잡해서 싸인할 공간이 없다. 미리 준비해서 주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그러자 화목현은 좋은 의견이라고 말하더니 스태프한테 부탁해서 A4 용지를 받았다.
“나, 나는 싸인이 없는데!”
“이든아, 간단히 이름만 적어도 돼.”
“그렇게 해야겠다!”
싸인이 없는 멤버는 이름으로, 싸인이 있는 멤버는 본인 싸인으로.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나자 화목현이 말했다.
“준비됐으면 이제 갈까?”
멤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차가 있는 건물 밖으로 나갔다. 미리 돌연프 측에도 말해놨는지 스태프분들이 잘 먹겠다며 인사를 해왔다.
“우와……!”
“커피차가 거대해~”
“트럭이니까 당연히 거대하지!”
‘멤버들의 데뷔 길을 응원해’라는 현수막에 눈에 들어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랑 토스트 있다!”
커피차에는 토스트도 있었다. 돈이 많이 들었을 텐데. 이렇게 팬들이 많았나……? 그런 생각이 스칠 때였다. 커피차 옆에서 우리를 보고 있는 팬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AA 엔터 범나비입니다.”
“어, 어! 나비야!”
“커피 맛있게 먹을게요.”
“너무 작죠?”
이게 작다고?
“아니요. 너무 큰 걸 해주셨어요.”
내가 허리를 숙이면서 감사의 표시를 하니 팬분들이 당황했다.
“인사 안 해도 돼요!”
“우리가 좋아서 한 거니까!”
좋아서 했다고 한들 돈이 어디서 나서 커피차를 보냈겠는가. 그만큼 우리를 응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팬분들께 감사 인사를 하는 것이 마땅했다.
“어! 범나비 저거, 혼자 인사한다……!”
“우리 막내, 혼자 인사하고~!”
저 멀리서 커피차에 홀려 있던 주이든과 정요셉이 와다다 뛰어오더니 팬분들한테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AA 엔터의 귀염둥이 정요셉입니다. 커피차 감사해요!”
“안녕하세요! 저는 AA 엔터의 주이든입니다! 저도 정말정말정말 감사합니다!”
주이든과 정요셉이 신난 강아지처럼 방방 뛰었다. 나도 나중에 팬분들게 뭔가를 해주고 싶었다.
“돈을 벌면 다음엔 저희가 해드리겠습니다.”
팬분들은 놀라면서 연습생이 무슨 돈이 있냐고 말했다.
“그래도 해드리고 싶은데요.”
“맞아요. 이번에는 저희가 받았잖아요.”
언제 왔는지 화목현이 내 어깨에 팔을 두르며 끼어들었다.
“이제 시간이 얼마 없어서… 사진 찍을까요?”
지나가는 스태프에게 부탁해 팬분들을 중심으로 모여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싸인을 건네주자 팬분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이렇게 커피차까지 준비해 주시고 감사해요.”
“절대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저희 사랑해 주셔서 감사해요~ 행복하세요!”
마지막까지 팬분들을 보면서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팬분들이 멀어졌을 때 핸드폰으로 커피차를 찍었다.
“얘들아, 이거 들어줄래?”
언제 커피차에 주문을 해놓은 건지 미리 준비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멤버들이 각자 하나씩 들었다.
“우리 형, 언제 이렇게 철두철미하게 준비했대~?”
“정요셉, 우리 리더 형이 너랑 같아?”
“갑자기 우리 이든이가 왜 시비를 걸까?”
정요셉과 주이든이 티격태격 싸우면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둘 다 그만 싸워.”
이정진이 말리자 정요셉과 주이든이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싸우는 거 아닌데?”
“요셉아, 우리 언제 싸웠어?”
이럴 땐 둘이 척척 손발이 맞았다. 대기실로 들어가자 화목현은 바빠서 밑으로 못 간 스태프들한테 커피를 나눠주었다.
“이거 마시고 하세요.”
나는 나눠주겠다는 생각도 못 했는데. 이래서 화목현이 리더인 건가. 원래 배려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알았으나, 리더로서도 결점이 없는 사람 같았다.
“나비야, 뭐 물어볼 거 있어?”
“…아니요. 그냥 형이 이것저것 다 잘하는 것 같아서.”
“잘하긴. 그래도 나비야, 칭찬해 줘서 고마워.”
저렇게 능숙하게 칭찬을 돌려준다니까. 멤버들이 각자 메이크업을 받고 의상을 갈아입자 화목현이 멤버들을 불렀다.
“자, 얘들아, 모여봐.”
“예~!”
“무대에서 실수해도 괜찮으니까. 최선을 다하자. 우린 그게 무기니까.”
***
제일 먼저 도착한 오스는 지정석 의자에 앉았다. 연습생을 평가하러 온 자리였다. 오스는 테이블 위에 놓인 평가지를 확인했다.
‘…AA 연습생은 제일 마지막이네.’
제일 기대되는 무대가 AA 연습생인데. 제작진이 그랬다. 돌연프 측에서 AA 연습생의 단체 안무 영상을 보고 기대가 돼서 맨 뒤로 뺐다고.
‘말은 잘하던데.’
AA 연습생 중 막내인 범나비의 첫인상은 기특하다는 거였다. 아직 어린 나이인데 혼자서 자신을 설득하러 왔다는 것부터 남달랐다.
“이제 방송 스탠바이 합니다!”
PD의 목소리에 오스는 다가오는 카메라에 손을 흔들었다. 뒤이어 <도사 연가>의 배우들과 작곡가, 그리고 몇 명의 아이돌이 심사 위원석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돌연프 MC입니다.”
“와아아아아!”
관객석의 호응에 MC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의 세 번째 무대입니다! 오스 작곡가님, 안녕하세요!”
MC가 고개를 내려 오스를 쳐다보았다. 오스는 스태프가 주는 마이크를 들고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오스입니다.”
“이번에 오스 작곡가님이 작곡한 OST로 무대를 한다는데 맞나요?”
“네, 맞습니다.”
“이번엔 새로운 페널티가 있다고 들었는데…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매번 똑같은 무대와 규칙이 있으면 그것을 보는 시청자들의 입장에서 재미가 없을 거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돌연프 PD님과 협의하여 각 노래의 가사와 안무를 없애도록 했죠.”
“잠깐만요. 그러면 어떻게 무대를 하죠?”
노래에 가사와 안무가 없다는 말에 주변이 술렁거렸다. 가사와 안무가 없으면 어떻게 무대를 꾸밀지 예상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스는 변함이 없는 표정으로 마이크를 쥐고서 미소를 지었다.
“무대는 할 수 있습니다.”
“가사랑 안무가 없잖아요?”
“아니요. 가사가 있는 곡은 가사만 쓰도록, 안무가 있는 곡은 안무만 쓰도록, 그리고 가사와 안무가 없다면 창작 안무만 허용했거든요.”
“아~ 그 부분이 이번 무대에서 확인할 키포인트네요.”
MC가 큐카드를 확인하면서 눈을 크게 떴다.
“큐카드 내용을 보니까 오스 작곡가님께서 깜짝 놀란 일이 하나 있었다면서요?”
“아, 색다른 제안을 해준 연습생이 있었거든요.”
“어떤 제안을 받으셨나요?”
“그건 지금 말하면 재미없지 않을까요?”
오스의 대답에 MC가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네! 그러면 연습생들의 무대를 보러 가볼까요. 제일 먼저, 첫 번째 무대는 FG 연습생입니다.”
오스는 FG 엔터에 안무가 없는 곡을 줬다. 노래로 승부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안녕하세요. FG 연습생입니다!”
“사랑 카테고리를 고르셨네요?”
“네! <러브 프로모션>이라는 드라마의 OST인 ‘눈물’이라는 곡입니다.”
스탠딩 마이크까지 필요한 무대였다. 절절하고 피폐한 로맨스 드라마 OST라서 진성으로 지르는 부분이 많았다.
“그 곡은 가사가 있는 노래죠? 그렇다면 안무가 없겠네요.”
마이크를 쥔 FG 연습생이 입을 열었다.
“저희는 안무를 만들었습니다.”
“오스 작곡가님이 안무를 만들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요?”
“아, 그게… 보시면 다를 수도 있습니다.”
오스는 썩은 양파처럼 양껏 인상을 썼다. 안무를 어떤 식으로 만들어도 룰을 파괴한 FG 연습생을 용서할 수 없다는 뜻처럼 보였다.
“그럼 FG 연습생 무대를 시작하겠습니다.”
오스는 입을 다물었다. FG 연습생의 무대가 엉망진창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무대에는 드라마에 대한 이해도도 보이지 않았다.
오스는 이번 미션에서 세 가지를 볼 심산이었다.
첫 번째는 드라마에 대해 이해했는지.
두 번째는 가사와 안무에 집중하는지.
세 번째는 규칙대로 이행을 했는지.
그러나 FG 연습생의 무대는 세 가지 조건 모두 성립하지 않았다.
“…자, FG 연습생의 무대를 잘 봤는데요. 벌써 칭찬 일색이네요.”
주변에서는 FG 연습생의 무대에 대해 입을 열어 칭찬을 모았다. 그때 오스가 마이크를 잡고 입을 열었다.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네!”
“이 드라마에는 코믹스러운 스토리가 없는데 왜 무대 내내 개구쟁이처럼 미소를 지었을까요.”
“…그건 저희가…….”
“무대 잘 봤습니다.”
오스의 평가는 거기까지였다.
‘점수는 C.’
마음에 안 든다는 듯한 오스의 표정을 보고 FG 연습생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후에 이어진 HI 연습생의 무대는 오스의 마음을 흔들었다. 웹드라마 OST의 분위기를 잘 살린 무대였기 때문이다.
HI 연습생 중 한 명인 금금이의 목소리가 OST와 잘 어울려서 오스가 불편함 없이 본 것 같았다.
‘…드라마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보였어. 그리고 안무 없이 노래와 표정으로 승부를 봤다는 것도 좋았지. 점수는 A. 이금금 연습생 중심으로 실수가 잦긴 했지만.’
오스가 평가지에 A를 적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럼 마지막 무대입니다. 요즘 QTQ 방송국에서 시청률이 나날이 올라가고 있죠? <도사 연가>의 OST를 맡은 AA 연습생입니다.”
오스의 눈에 보인 것은 드라마에 나왔던 두루마기 형식의 검은색 곤룡포였다. 갓을 쓴 AA 연습생들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하나둘셋, 안녕하세요! AA 연습생입니다.”
“와아, 사목처럼 꾸미셨네요? 잘 어울려요!”
“네, 방송국에 요청해서 드라마에 나왔던 의상을 입고 나왔는데 어울린다니 다행이네요~!”
방송국에 직접 요청을 하다니, 오스로서는 놀라울 뿐이었다.
“무대에 들어가기 전에 혹시 할 말이 있나요?”
“무엇보다 가사에 집중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말의 끝으로 AA 연습생들은 무대 뒤편으로 걸어갔다. 심사 위원석에 앉은 배우들은 조용히 말을 꺼냈다.
“OST에 가사와 안무가 없다면 창작 안무만 허용된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게…….”
그때.
-으음-
누군가 음미하는 듯한 목소리에 어울리는 북소리와 꽹과리 소리가 화려하게 무대에 울려 퍼지고 조명이 켜졌다. 그리고 AA 연습생들은 옥좌에 앉았다. 중간에 앉은 정요셉이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자,
-이 지긋지긋한 왕의 자리.
남주인공을 맡은 배우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