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이남주(1)
너튜브에 돌연프 4화 선공개 영상이 뜨는 날.
“언제 나와?”
이백수는 이제 친구가 말하지 않아도 돌연프를 챙겨 보는 단계에 이르렀다.
-언제 선공개 영상 나와 ㅡㅡ
└ 병큐 일 처리는 매번 이랬음
└ 어제 올라왔어야 하는 게 이렇게 늦는다고? ㅅㅂ
원래는 어제 선공개 영상이 올라와야 했다. 그런데 어떠한 공지도 없이 돌연프 4화 선공개 영상이 올라오지 않았다. 이래서 병큐는 마음에 안 들어.
-어! 드디어 선공개 영상 나옴
└ ㅇㄷㅇㄷ
└ 주소 좀;
이백수는 선공개 영상이 떴다는 댓글을 보자마자 상체를 일으켰다.
-선공개 제목 왜 이럼?
└ 그러게 왜 저래?
[AA 연습생과 HOR 연습생, 비슷한 카테고리에 음침한 신경전?]
“뭐야… HOR 연습생?”
선공개 영상을 틀자 시작부터 AA 연습생과 HOR 연습생이 신경전을 일으키고 있었다.
-HOR 연습생 이미지 이미 나락인데 더 나락 가게 생겼네ㅋㅋ
└ 그러게? HOR 연습생들은 엔터만 믿고 나대는 건가
└ HOR 엔터 대기업이잖아 이서혁 일로 시끄러웠다가 바로 주이든으로 방향 틀어버리고
└ 이서혁은 왜?
└ 이서혁은 회장 아들이잖아~
HOR 엔터가 대대로 아이돌 사업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계약이 틀어지면 악독하게 대하기로 유명했다. 한때 HOR 엔터의 아이돌을 좋아했기에 이백수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직도 이러네…….”
쌍팔년도 수법을 HOR 엔터는 아직도 하고 있었다.
-그런데 HOR 연습생 인성으로 뽑지 않음?
└ ㄴㄴ 전혀 얼굴만 잘생기면 장땡이지 ㅋㅋ
└ 요새 남돌들 얼굴 다 별로라서 ㅇㅇ 일단 얼굴 잘생기면 성격 더러워도 괜찮잖아
└ 그거 모름? 요즘은 잘생긴 연습생 뽑고 나서 과거 이력 다 본다잖아… 왕따 시켰는지 안 시켰는지; 왕따 시켰으면 피해자 찾아가서 사과하고 그러던데
└ 와;
-HOR 연습생 팬들 얼굴만 잘생기면 ㅇㅈ 이 지랄 떨고 있네
└ ㄹㅇ 가해자 좋아하는 수준 잘 알겠음
└ 이든이 텀블러나 돌려줘 ㅅㅂㅡㅡ
돌연프 3화에 HOR 연습생이 가지고 있는 텀블러가 나와야 했다. 그래야 HOR 연습생 팬들이 나대지 않지. 이백수는 혀를 차면서 돌연프에 열중했다.
“어…….”
스치듯이 지나간 나비의 영상에서 이백수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커뮤니티에도 하나씩 그 ‘이상한 점’에 대한 글이 올라왔다.
-(범나비_구석에서_찍힌_사진_jpg)구석에 있는 범나비 확대해서 보면 옆구리 잡고 있음
└ 어? 진짜네
└ 뭐야?
└ 나비 다침?
정말로 나비가 벽을 짚고서 옆구리를 문지르고 있었다. 이마에는 땀이 흐르고 있고.
-이 장면에도 나비 옆구리 잡고 있던데?
└ 어디 벽에 부딪혔나?
└ 설마 누가 때린 건 아니겠지 배가 아니라 옆구리잖아
└ 내 친구가 서바이벌 프로그램 인턴으로 있을 때 애들 자주 싸웠다고 하던데
그때 커뮤니티에서는 다른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HOR 연습생이 때린 거 아님?
└ ㅇㅇ 그런 듯
-아 HOR 연습생들 연습 존나 안 했네; 아이돌이 하고 싶나? 얼굴도 못생겼으면서 ㅡㅡ
└ 잘생겼는데 무슨ㅋㅋ 이때싶 까내리기 오지네
└ HOR 연습생들 까내리기가 아니라 진짜임. 실제로 얼굴 관리 제대로 안 해서 공방 후기에 맨날 피부 얘기만 나오잖아 ㅎㅎ
-HOR 연습생들 해명 나오지도 않았는데 말 ㅈㄴ 많네…
└ 이미 HOR 연습생들 학폭위 열렸다는 인증글까지 올라왔는데 해명이라는 말을 하고 싶음? 아 학폭이 팬이라서 쉴드 치는 건가?
└ 학폭이 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ㄹㄹ 아직 맞는지 아닌지 말도 안 나왔는데 비꼬기 역겹…
무대 위에서는 나비의 아픈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의연하게 미소를 짓는 모습까지 나왔다.
-범나비 ㅁㅊ 프로 아이돌이네
└ ㄹㅇ 19살 맞음?
└ 나는 저 나이에 뭐 했냐
이렇게 나비의 이미지가 바뀌었다. 어그로꾼에서 AA 엔터의 성실한 막내로. 그리고 곧 이런 게시물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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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AA 연습생 좋아하는 팬들 있어?
우리도 돈 모아서 커피차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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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음료수를 가져와 이정진한테 건네주었다.
“정진이 형, 음료수 먹으면서…….”
“어, 음료수 고마워.”
이정진은 나를 보지도 않고 음료수를 받았다.
“형, 바빠요?”
“어, 어.”
이정진은 대답도 못 할 정도로 바빴다. 오스의 더빙 허락을 받자마자 이정진은 눈에 불이 켜졌다. 아직 <도사 연가> OST의 뒷부분 가사를 완성하지 못한 탓이었다.
“목현 형, 잠시 나갔다 와도 될까요?”
“왜?”
“남주 형한테 다녀오려고요.”
겸사겸사 아이돌 노트 힌트 받는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남주는 왜?”
화목현이 물었다.
“저번에 남주 형 덕분에 떡볶이 먹어서 보답으로 음료수를 사주고 싶었거든요.”
“그래, 갔다 와. 너무 늦게 오지 말고.”
…늦게 있다가 올 공간도 있던가.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왠지 점점 막내 포지션으로 자리가 잡힌 느낌이란 말이지.
‘근데 이남주 전화번호가 없네?’
그래서 이남주가 있을 법한 FG 단체 연습실로 향했다. FG 단체 연습실에 도착하자 복도에서 쉬고 있는 FG 연습생들이 보였다.
“저, 남주 형 있나요?”
“남주? 잠시만요. 남주 어디 갔더라?”
“몰라요. 남주 형 항상 혼자 돌아다니는데 어떻게 알아요.”
FG 연습생들은 이남주의 행방을 잘 모르겠다면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마 혼자 연습하러 갔거나 음료수 마시러 갔을 거예요.”
우리 팀 분위기보다 한층 낮은 분위기였다. 왠지 모르게 이남주를 제외한 FG 연습생들은 똘똘 뭉친 것처럼 보였다.
“아, 감사합니다…….”
영양가 있는 대화는 아니었다. 그냥 알아서 찾으러 가는 편이 나았을 것 같은데.
“그런데 말이에요.”
그때 한 FG 연습생이 나를 불렀다.
“이남주랑 친해요?”
“딱히 안 친해요.”
“안 친해요? 커뮤니티 보면 친하다고 하던데…….”
“그래도 안 친해요.”
“그래요?”
친한 친구처럼 사소한 대화를 하는 사이는 아니니까. 딱히 친하지 않다고 말했을 뿐인데 FG 연습생들의 표정이 심오해졌다.
“남주랑 안 친해서 다행이네요.”
“…왜요?”
“알잖아요?”
이걸 왜 나한테 말하는 거지? 어쩌란 거냐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다.
“조언 감사합니다.”
“근데 묻고 싶은 게 있거든요.”
FG 연습생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AA 엔터에서 이남주를 내쫓은 이유, 알아요?”
“…저는 모르는데요.”
“그래요? 이남주를 데뷔조로 올리려고 했는데 AA 연습생들이랑 얼굴 합이 좋지 않아서 내보냈다고 하더라는 소문이 있어요.”
아, 그런 소문이 있었다고? 왜 그런 소문이 돌았을까.
그렇다기엔 우리 멤버들의 얼굴도 꿀리지 않았다. 오히려 이남주가 있었다면 멤버들과 얼굴 합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남주가 나가서 무척이나 아쉬웠는데. 그 얼굴로 같은 팀이 되었으면 길이 남을 아이돌그룹이 되었을 테니까.
그런데 회귀 전 이남주의 얼굴은 어쩐지 기억이 잘 안 났다.
“왜 그런 표정이에요?”
“…네?”
“설마 그 소문이 맞는 건가 싶어서요.”
“아니에요. 그런 소문은 못 들어봐서 잠깐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럼 다행이고.”
나를 순진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말을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걸 보면.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별다른 뜻은 없어요. 그냥 예전부터 궁금했던 거라서.”
이거 나를…….
“이제 가봐도 돼요.”
“그럼.”
FG 연습생의 대답도 듣지 않고 나는 왼쪽 복도로 방향을 꺾었다.
‘저쪽도 우리랑 비슷한 시기를 겪고 있는 건가.’
이남주도 갑작스럽게 FG 엔터에 들어갔으니까. 저런 의문이 있을 법했다. 우리 멤버들도 나에 대한 의문이 있었으니까.
“어?”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는 이남주와 눈이 마주쳤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다니.
“여기에 있었네요?”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어요?”
이남주는 음료수 자판기에서 캔 커피를 뽑아 나에게 건네주었다.
“당신이랑 얘기하러 왔는데요.”
“아, 대화? 여기서 말해요.”
사방이 탁 트인 공간에서 말을 하자고? 나는 주변 눈치를 보면서 살며시 말했다.
“저희 멤버의 상태랑 곡 정보는 어떻게 알았어요? 그쪽 소속사에서 알려준 것도 아닐 텐데.”
“그건 아니죠.”
“그렇다면?”
창과 방패의 싸움이 이어질 것 같아 나는 캔 커피를 따고 입에 넣었다. 커피가 흘러 들어오자 뜨거웠던 속이 차가워졌다.
‘…뭘 숨기고 있는 거야.’
이남주를 만나라는 그 힌트는 또 뭐고. 그때 이남주가 허공을 한 번 쓱 보다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알려줘도 된다고 해서요.”
이남주의 가벼운 말투에 뼈가 시렸다. 나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혹시 이남주가 방금 전 허공을 본 것은 시스템창을 본 게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어서.
“누가요?”
“…음, 말하자면 복잡한데.”
내가 인상을 쓸수록 이남주의 입꼬리는 올라갔다.
“뭐야, 당신.”
이남주가 이상한 점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처음 만났을 때, 이남주는 나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그때는 어그로를 끌려는 목적인가 싶었다. 그땐 나랑 이남주를 향한 시선이 곱지 않았으니까.
‘그게 끝인 줄 알았지.’
하지만 이남주는 계속해서 내게 말을 던졌다. 무언가 힌트를 주려는 것처럼.
“언제 나를 알게 됐어요?”
“돌연프에서 언플할 때였나.”
“아니잖아요. 우리 솔직하게 말하죠?”
“솔직히 돌연프 전부터 알았죠.”
이남주가 양손을 모으면서 다리를 꼬았다.
“그 전부터?”
“솔직하게 말해도 될까요? 그래도 당신은 이해할 수 없을 텐데.”
“그게 무슨 말이죠?”
“글쎄요.”
…말 하나하나가 짜증 났다. 이랬다저랬다 상황을 질질 끄는 것처럼 이남주는 내가 원하는 대답을 꺼내지 않았다.
“말장난해요?”
“말장난 아니에요.”
“하… 저기요.”
그런데 이남주의 얼굴을 보니 말장난을 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일단 말해봐요. 어떤 말이든 들어줄 테니까.”
미친놈처럼 자신이 외계인이라고 하는 것만 아니라면 이해해 줄 의향이 있었다. 내가 진지한 태도를 보이자 드디어 이남주가 입을 열었다.
“…어떤 말부터 해볼까요.”
이남주는 길게 침음을 흘리며 내 눈을 피하지 않고 묵묵히 쳐다보았다. 몇 분이 흘렸을까.
“…제가 범나비 씨 미래를 알고 있다면 믿을 거예요?”
이남주의 말을 듣고 순간 생각이 멈췄다. 내 미래를 안다고? 한 단어가 머릿속에 떠돌아다녔다.
“…혹시 무당이에요?”
“하하!”
“왜 웃어요?”
“아, 아니요… 무당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요.”
나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무당도 아니면?
“그럼 뭔데요?”
“소설 빙의자요.”
“아, 소설 빙의… 네?”
…뭐? 소설 빙의자? 나는 최선을 다해서 빙의라는 단어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소설 빙의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소설 빙의자가 도대체……?”
“소설에 빙의가 되었다는 겁니다.”
이남주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시스템창이 반짝였다.
【아이돌 노트 힌트를 받았습니다.
-소설 빙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