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의 1군 가이드-26화 (26/235)

26. 오스 작곡가

이정진은 혼자 구석으로 가더니 가사를 적었던 노트를 가방에 넣고 안무를 외우기 시작했다.

‘컨디션도 안 좋으면서…….’

저렇게 혼자 놔두면 안 될 것 같은데. 정요셉이 이정진의 모습을 보더니 울상을 지었다.

“저 형, 지금 우울한 것 같지? 어떡해……!”

진지한 태도로 화목현과 정요셉이 기겁을 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우울하면 왜?

“왜 그러는데요?”

내가 궁금하다는 듯이 묻자 화목현이 설명해 주었다.

“정진이가 우울해할 때마다 나오는 행동이 있거든…….”

“어떤 건데요?”

“혼자 고립돼.”

아, 우울하면 작곡을 못 한다는 이유가…….

“형도 컨디션이 나쁘고 싶어서 나빴던 게 아니잖아요.”

“어쨌든 컨디션에 대한 말을 들었잖아.”

그제야 이정진의 이미지가 정리되었다. 겉으로는 감정을 표현하지 않지만, 속은 누구보다 감정이 풍부한 사람.

“그러면 가봐야 하는 거 아닐까요……?”

그런데 화목현이 나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나비야, 걱정하지 마. 정진이 혼자 놔둬도 돼.”

“진짜요?”

내가 생각하기에 제일 먼저 갈 것 같은 사람이 말리다니?

‘이러면 안 되지 않나?’

저렇게 계속 우울한 상태로 있다가는 대참사가 일어날 것이다. 나중에 이정진한테 몰래 가봐야겠다. 컨디션을 좋게 하는 음료수가 뭐가 있더라.

‘비타민 200? 오카스?’

그거라도 먹여놔야겠다.

***

새벽에 홀로 개인 연습을 할 때, 핸드폰에 진동이 왔다.

(화목현) 요셉아, 정진이 아직도 개인 연습실에 있는 것 같은데.

(정요셉) 진짜로요? 가봐야 할 듯…

(주이든) 개인 연습실에서 자는 건 아니겠지!

(범나비) 제가 형한테 가볼게요.

(화목현) 가볼래?

(범나비) 네.

(화목현) 아마 개인 연습실 제일 구석진 자리에 있을 거야

이정진이 아직도 개인 연습실에 있다고? 나는 핸드폰 화면을 끄고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몰래 안 가도 되겠다.’

어차피 가려고 했으니 잘된 일이다. 나는 곧장 가방에서 비타민 200과 오카스를 꺼내 이정진이 있는 개인 연습실로 향했다.

“…형?”

역시나 이정진은 구석진 곳에 쭈그려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자고 있나?’

살며시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이정진의 핸드폰 화면에는 멤버들과 췄던 전체 안무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정진 주변에는 종이가 널브러져 있어서 발을 디딜 틈도 없었다.

“막내야, 언제 왔어.”

“방금 왔어요. 이거.”

비타민 200과 오카스를 이정진한테 건네주었다.

“이런 걸 왜 사 왔어. 안 사 와도 되는데.”

“그냥 사고 싶어서 사 왔어요.”

“막내, 고맙다.”

오카스를 마신 이정진이 손가락으로 눈을 비볐다.

“지금 몇 시야?”

“새벽이에요.”

“그래? 이제 올라가자…….”

개인 연습실을 정리하는 이정진을 보면서 나도 같이 흩어져 있는 종이를 주웠다.

‘…종이에 가사가 적혀 있네.’

열심히도 적었다. 나는 이정진이 적은 가사지를 하나하나 훑었다. 가사지 옆에 짧은 말들이 적혀 있었다.

‘애들이 열심히 썼는데’

‘가사가 아깝다’

‘쓰고 싶다’

나 역시 멤버들이 쓴 가사가 아까웠다. 내 가사도 아깝고. 근데 이거…….

이정진이 쓴 가사는 대부분 대화체였다. 왜 대화체로 적었지?

“형이 쓴 가사를 보니까, 거의 대화체로 적었네요?”

“대화체로 쓰면 도사의 이미지가 각인되지 않을까 싶어서.”

대화체. 가사가 없는 OST. 관객과 소통하는 듯한 안무.

잠깐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더빙을 넣으면 괜찮지 않을까. 곧바로 이정진의 눈을 보면서 말했다.

“형, 더빙은 어때요?”

“더빙?”

“네, 가사를 적지 말라는 건 부르지 말라는 뜻이잖아요.”

“거의 그런 이유지.”

“우리가 더빙을 하면 직접 부른 게 아니잖아요?”

“직접 부르지 않는다……?”

“네, 그러니까 더빙을 하면 괜찮을 것 같은데.”

“그러면 더빙은 누가 해?”

“<도사 연가>에 나오는 남주인공 배우님께 부탁해야죠.”

고요한 이정진의 표정에 금이 갔다. 그러고는 내 말에 생각이 많아졌는지 손에 쥐고 있었던 가사지를 떨궜다.

“괜찮은데?”

그 말을 하면서 이정진의 눈빛이 또렷해졌다.

“더빙해 보자.”

“…정말이죠?”

“응, 더빙으로 무대가 보다 풍족해질 것 같아.”

솔직히 가사 없이 무대에 올라도 괜찮았다. 안무는 창작해도 된다고 했으니까. 근데 이정진의 가사를 보자마자 아쉬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아직 시간은 7일이나 남았고.”

“그래, 해보자.”

자는 사람을 깨우는 건 도리가 아니지만 일단 톡으로 이야기를 해놔야겠지.

(범나비) 저 할 말 있어요. 다들 단체 연습실에 와주세요.

이렇게만 보내놓고 이정진과 개인 연습실을 나왔다. 왠지 멤버들도 아직 안 자고 있을 것 같았다.

때마침 시스템창이 반짝였다.

【이정진의 사회성이 대폭 상승합니다. F → D】

【이정진이 ‘우울함’에서 벗어납니다.】

【이정진의 상태:_〆(‘-‘)】

나는 시스템창을 보고 살짝 주먹을 쥐었다.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하는 순간.

【멘탈 케어를 성공하여 아이돌 노트 힌트를 드립니다.

힌트를 받는 조건:이남주를 만나자.】

…이남주를 만나라고?

***

“어, 정진이 형! 연습실에서 나왔네~!”

단체 연습실에 도착하자 바닥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멤버들이 보였다.

“얘들아, 미안해. 너무 자책이 심했다.”

이정진은 멤버들을 보자 먼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사과를 건넸다.

“정진아, 내가 갔을 땐 안 오더니… 실망이야…….”

“아, 그땐 생각이 많았거든.”

“생각은 무슨. 나는 만만하다 이거지?”

응? 저건 또 무슨 말이지. 화목현이 이정진한테 갔다고? 그러면서 정요셉이 말을 얹었다.

“형~ 나도 갔잖아. 맛있는 아메리카노까지 들고 갔는데 나는 반겨주지도 않았으면서~?”

“그건 네가 아메리카노를 주러 온 게 아니라 먹방하러 와서 그런 거잖아.”

“그야 아메리카노는 맛있으니까. 먹고 싶으면 나오라고 한 건데~?”

“그게 그거지.”

뭐야. 정요셉도 갔단 말인가… 주이든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정진 형, 나도 갔었잖아!”

“넌 별로였어.”

“정요셉의 아메리카노 먹방은 괜찮고, 나는 별로라니! 이건 완전히 차별하는 발언이야!”

“그래, 차별이라는 단어도 필요할 때가 있으니까 생긴 거겠지. 너한테는 차별이 좀 필요해.”

“아니, 형!”

뭐야, 이거. 다들 이정진한테 안 간다고 해놓고.

“아! 그건 그렇고. 내가 남주한테 물어봤거든~?”

“이남주?”

“어~ 그쪽은 가사가 없는지 안무가 없는지 물어보니까, 거기는 안무가 없대. 팀마다 가사나 안무 중 하나를 골랐나 봐.”

“그러면 다들 곡이 비슷비슷하다는 거네?”

정요셉의 말에 화목현이 윙크했다.

“그렇지, 우리 정진이 형이 잘 아네~”

저 말을 들으니 납득됐다. 이건 제작진과 대결하라는 의미로 만든 미션이었다. 그때 화목현이 내 팔뚝을 쳤다.

“나비야, 그나저나 우리는 왜 불렀어?”

멤버들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화목현이 나에게 물었다.

“정진이 형 가사를 보고 생각난 아이디어가 있어서요.”

내가 이정진과 나눴던 의견을 하나도 빠짐없이 말하자 화목현의 미간이 좁혀졌다.

“재밌겠네.”

“네, 더빙으로 무대를 꾸미면 재밌는 퍼포먼스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화목현에게서는 살짝 망설이는 기미가 보였다.

“…별론가요?”

“그건 아닌데 허락받을 수 있을까 싶어서.”

“허락이요?”

“그렇잖아. 어쨌든 더빙도 가사를 읊는 거나 다름이 없으니까. 우리가 부르진 않겠지만.”

화목현이 싫다면 안무만 해도 나쁠 건 없었다. 내가 시무룩한 상태로 있자 정요셉이 말했다.

“오스 작곡가님한테 물어보고 정하면 되지 않을까~?”

“정요셉 말대로 물어보고 해보자. 나는 이 아이디어 마음에 들거든!”

주이든도 정요셉의 말에 거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목현은 가만히 이정진이 쓴 가사를 살펴볼 뿐이었다. 몇 분이 지나자 이정진이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그래, 오스 작곡가님한테 물어보자. 그게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

이정진의 긍정적인 태도에 전보다 기분이 나아졌다. 하긴 오스의 허락만 있으면 되는 거니까. 그런데 화목현이 가사지를 내려놓고 나를 쳐다보았다.

“근데 나비야, 누가 오스 작곡가님께 말해?”

누가 말하냐고? 그나마 화목현이 말하면 좋겠지만, 더빙을 제안한 사람은 나였다. 그러니 상세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어… 저요?”

나밖에 없었다.

***

아무리 생각해도 이거… 초반처럼 내가 어그로꾼으로 나올 것 같은데.

[AA 연습생, 독단적으로 오스 작곡가와 만남?]

제작진이 이렇게 자막을 달면 끝이니까. 물론 멤버들은 내가 가는 것에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너 혼자 가겠다고?”

“네.”

“그래도 널 혼자 보내는 건…….”

“그렇게 나쁘지 않은 어그로라서 욕도 덜 먹을 거예요. 어차피 전 이미 이미지도 안 좋고.”

이미지가 안 좋다는 발언에 화목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나비야, 네 이미지가 왜 안 좋아?”

“맞는 말이긴 하잖아요. 그리고 제가 더빙 제안을 했으니 제가 가는 게 맞아요.”

“…알겠어, 나비야. 갔다 와.”

그렇게 화목현의 허락으로 일은 빠르게 진행이 되었다. 바로 오스의 작업실에 도착을 했으니까. 제작진도 어그로에 목이 말랐던 모양인지 내심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긴 요새 돌연프 어그로가 덜한 편이긴 했지.

“오스 작곡가님의 작업실에 도착하기는 했지만, 우선 차에서 짧게 인터뷰부터 할게요.”

카메라가 켜지고 방송작가가 말했다.

“오스 작곡가님한테 가는 이유가 뭔가요?”

“OST와 드라마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오스 작곡가님이 <도사 연가>의 감독님은 아니지 않나요?”

“그건 그렇지만, 저는 OST도 드라마 연출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OST는 드라마의 연출과 분위기를 책임진다. 몇 년이 지나도 OST를 들으면 그 작품의 장면이 생생하게 생각나고는 하니까.

“AA 연습생들이 과연 어떤 제안을 하러 왔을지 궁금한데요. 그럼 확인하러 가볼까요?”

“네.”

“인터뷰는 여기서 마치도록 할게요.”

차에서 내려 작업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안녕하세요. AA 엔터 범나비입니다.”

제작진이 미리 연락해 뒀는지 오스의 작업실 문은 열려 있었다. 나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연습실 안으로 들어갔다. 오스가 반갑다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네, 연락은 받았어요.”

나는 소파에 앉았다.

“저를 찾아오신 이유가 있다고 하던데?”

“네, 직접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었거든요. 우선 이렇게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오히려 저는 와주셔서 감사한데요?”

왜지?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오스가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도 안 되는 규칙이잖아요. 편곡하지 않고 원곡 그대로 무대를 하면 흥도 떨어지고 재미도 떨어질 텐데.”

하긴 말도 안 되는 규칙이긴 했다. 그나저나 이런 분위기라면 설득하긴 쉬울 것 같은데.

“제 의견을 말씀드려도 될까요?”

“네, 마음대로.”

나는 가방에서 이정진이 쓴 가사지를 꺼냈다.

“가사가 없는 무대는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그냥 무대를 진행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정진이 형이 쓴 가사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오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떤 가사길래?”

“정진이 형이 가사를 드라마처럼 대화체로 적었더라고요. 마치 드라마에 나올 법한 장면처럼요.”

오스는 가사지를 보는 내내 한숨을 쉬었다.

‘각오하고 왔는데 조금 떨리네.’

테이블에 놓은 가사지를 오스가 찬찬히 살폈다.

“음, 솔직히 말해서 싫긴 하네요.”

싫다는 저 말에 속이 타들어갔다.

“…아, 안 된다는 건가요?”

“그렇다고 마음에 안 든다는 건 아니에요.”

다행이다. 희망이 없는 답변은 아니라서.

“더빙을 하면 OST의 장점이 잘 드러날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 누가 더빙을 하죠?”

“<도사 연가> 남주인공 배우님께 부탁드리려고요.”

“그분이 해준다고 약속을 받아놓은 상태인지 궁금한데.”

“아직입니다. 오스 작곡가님의 허락을 받은 뒤 부탁드리려고 했습니다.”

오스의 말에 나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직 설득이 덜 된 것처럼 오스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좋습니다. 마음에 들어요.”

“네?”

오스의 허락이 떨어지자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벌써 좋아하면 안 되지. 억지로 번지는 웃음을 삼키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넸다.

“…솔직히 더빙이라는 무기를 꺼낼 줄은 몰랐거든요. 신선했어요.”

“아, 감사합니다.”

“제가 감독님한테 이 사실을 전달해도 될까요?”

“그렇게 해주신다면 감사하죠.”

이건 이득이다. 감독과 아는 사이인 오스가 부탁한다면 이번 주 내에 끝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연락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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