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의 1군 가이드-25화 (25/235)

25. 비밀 심사

“…어.”

“…….”

“나비 형.”

어색하다. 금금이의 얼굴에 생채기가 나 있었다. 누가 봐도 맞은 흔적.

“방에 있는 줄 몰랐는데.”

“…어, 오늘은 안 내려갔거든.”

“없는 줄 알고 온 거였는데…….”

금금이는 그렇게 말하더니 맞은 곳이 아픈지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서랍 위에 올려둔 약을 가지고 금금이에게 다가갔다.

“자, 약 발라.”

“어, 형… 고마워요…….”

“고맙긴. 멤버들이랑 싸웠어?”

내 말에 금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금금이는 멤버들과 센터 자리를 두고도 자주 싸웠으니까. 설마 이번에도 그거 때문인가?

“싸웠구나.”

“…싸웠어요…….”

돌연프를 하면서 고난과 역경을 많이 겪는 모양이었다.

만약 센터 자리를 두고 싸웠다고 가정해도, 금금이는 춤과 노래에 실력이 있으니 센터를 안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금금이의 프로필을 본다면 확실히 알 수 있을 텐데.

【이금금은 네스트의 멤버가 아닙니다.】

아, 네스트 멤버가 아니라 못 보는구나…….

“왜 문제가 생길 때마다 형과 마주치는 건지 모르겠어요.”

“같은 방이라서 그렇지.”

“그런가요…….”

금금이가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이자 복도에서 HI 연습생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가면 안 된다’, ‘들어가자’라는 말이 방 안까지 울렸다. 그러나 금금이는 개의치 않아 보였다.

“형, 하나만 물어도 돼요?”

“뭐?”

“제가 리더 자리를 내려놓으면… 어떻게 될까요?”

리더 자리를 내려놓는다고?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금금이를 제외하면 리더 할 재목이 없던데?

“그렇게 되면…….”

“알아요. 아는데 궁금해서요. 제가 리더 자리를 내려놓으면…….”

“…진심은 아니구나?”

“네, 사실… 저도 제 마음을 잘 모르겠어요…….”

금금이는 양손을 깍지 낀 채 심호흡을 했다. 금금이의 모습에서 키오 시절의 내가 보였다. 나도 저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언제나 멤버들을 보살피는 존재였다.

나도 센터가 되고 싶었고, 관심을 받고 싶었다. 그러나 멤버들이 조금이라도 더 나와야 하니까. 전무님도 리더는 욕심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왜 리더는 욕심이 없어야 하는 건지.

“금금아, 원래 리더는 힘든 거야.”

“예?”

“그래서 나는 다음 생이 있다면 리더는 절대 하기 싫어.”

“…그 정도로 싫어요?”

“어, 싫어.”

지금은 막내가 됐지만 전보다는 삶이 편안해졌다. 막내라서 형들의 눈치를 볼 때가 있기는 하지만.

그런데 리더라는 존재는 그룹에 꼭 필요하니까. 리더를 하지 말라는 소리는 차마 못 하겠고. 최대한 위로가 될 수 있으면서도 내가 금금이한테 할 수 있는 말은…….

“금금아, 힘들면 멤버들한테 솔직하게 말해. 속으로만 끙끙 앓지 말고.”

“아… 어떻게 말해요?”

“리더로서 버티기 힘들다고. 아니면 욕을 하든가?”

“욕은 좀…….”

그렇게 말하면서도 금금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입꼬리는 왜 올라가는데?”

“아니, 형이 욕을 한다고 생각하니까 신기해서…….”

“신기해?”

금금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살며시 입을 열었다.

“형은 욕 잘 안 하잖아요. 얼굴은 그렇게 생겨 가지고.”

내 얼굴이 뭐가 어때서?

“내 얼굴이 왜?”

“뭐랄까… 욕 잘하게 생겼는데 성격은 유교 사상이 짙은 것 같은 느낌?”

금금이의 표정이 환해졌다. 이제야 원래대로 돌아왔네.

“내가 노래나 안무를 실수하면 형이 혼났는데도 형은 나한테 욕을 하거나 무시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실수한 부분이 뭔지 차근차근 알려줬잖아요. 그때 얼마나 고마웠는 줄 알아요?”

“…그랬나? 그걸 알면서 너는…….”

“죄송해요… 원망과 고마움이 공존해서 어쩔 수 없었어요.”

이제야 죄송하다는 생각이 드냐. 너는 모르겠지만, 키오 시절에는 더 그랬거든? 고맙다는 말보다 죄송하다는 말을 더 많이 했던 녀석이지만.

‘미워할 수 없다니까.’

나는 슬쩍 미소를 지으며 금금이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이제 멤버들한테 가봐.”

“…….”

“복도에 멤버들 목소리 들리잖아. 안 그래?”

금금이도 멤버들의 목소리를 듣고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형, 있잖아요. 이제 우리 사이가 끝나서 말하는 거예요. 나쁘게 듣지 말고…….”

“뭔데 그렇게 질질 끌어?”

“사실 저 지금까지 계속 형이 미웠거든요?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형의 마음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어요…….”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네.”

“그래서 고맙다고요, 형. 나중에 데뷔하면 밥 한 끼 살게요. 제 전화번호도 지우지 말고요!”

그렇게 금금이는 멤버들이 있는 기숙사 복도로 나갔다.

‘이제 진짜 혼자 있게 됐네…….’

텅 빈 기숙사에 혼자 있으려니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감기라도 걸렸나? 나는 이불을 몸에 칭칭 감으며 몸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다음엔 본가로 내려가야지…….”

이번 휴가 꽤 힘드네. 체력 소모라기보다는 정신 소모 탓이었다.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을 보는데 톡이 여러 개 와 있었다.

(정요셉) 막내야~ 요셉 형 숙소 올라간다~

(주이든) ㅡㅡ;;

(정요셉) 왜 그런 임티를 써? 꼽냐?

(화목현) 얘들아 또 싸워?

(정요셉) (=´∇`=) 에이 안 싸우는데

(화목현) 그래 내일 보자^^

(정요셉) 넹~

(주이든) 넹 우욱

(정요셉) 이든이 웩

(이정진) 너희 둘, 가사 썼어?

그러자 티격태격하던 정요셉과 주이든이 조용해졌다.

(범나비) 이제 드라마 보면서 쓰려고요

(이정진) 나도 드라마 보면서 쓰는 중이야

(화목현) 나도 내일 보여줄게.

(이정진) 요셉이랑 이든이는?

(정요셉) (=・∀・=) ㅋㅋ

(이정진) ?

(주이든) ㅎㅎ

(이정진) 그래…

일단 핸드폰을 내려두고 <도사 연가> OST를 들었다. 그런데 막상 가사를 쓰려고 하니 막막했다. 어찌 됐든 일단 드라마는 봐야 했다.

***

역시 하루아침에 가사 쓰는 일은 어려웠다. 간단하게 쓴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드라마를 보고 가사를 쓴다고 밤을 새웠다. 물론 나만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멤버들의 눈도 퀭했으니까.

“누구 먼저 보여줄래?”

내가 먼저 적어 온 가사를 내밀자 화목현이 엄지를 들었다.

“나비야, 많이 적었네.”

“형이 힘들 것 같아서 열심히 적었어요…….”

이정진은 고생했다면서 나에게 아낌없이 칭찬을 해주었다.

“막내야, 잘했어.”

“예.”

“정말이야.”

“예.”

이 정도면 아낌없이 칭찬해 준 거다. 그러자 주이든도 이정진에게 당당히 노트를 내밀었다.

“정진 형, 나도 많이 적었어!”

“그래, 너도 잘했어.”

“그치? 나도 열심히 했으니까!”

마지막으로 정요셉도 팔짱을 끼며 당당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정진이 형~ 나도 많이 적었지~!”

“음…….”

“어? 형?”

“많이 적은 건 아니라서.”

“이게 적다고? 형, 실망이야.”

얼마나 적었나 봤더니 그럭저럭 평범한 분량이었다.

“어, 정진아… 나는…….”

“목현아, 왜 없어?”

“다른 걸 구상했어. 내가 가사 쓰는 데는 소질이 없더라.”

화목현은 가사를 쓰지 않고 무대 구성과 의상 디테일에 대해 조사해 온 모양이었다.

그렇게 이정진은 멤버들이 쓴 가사들을 보고는 홀로 가사를 썼다. 저렇게 혼자 놔둬도 되는 건가.

“우리는 안무를 만들어볼까요~?”

“그래, 우리는 안무를 만들어보자. 정진이한테는 나중에 알려주면 되겠지.”

우리가 먼저 안무를 짜놓고 이정진이 가사를 다 쓰면 우리가 안무를 알려주는 방향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어쩐지 일이 너무 쉽게 술술 풀렸다.

그러나 이정진의 멘탈이 안 좋을 거라는 이남주의 말이 뇌리를 스치며 찝찝한 구석을 놓을 수 없었다.

마치 오늘의 운세에 ‘하늘에서 새똥이 떨어진다’라고 적혀 있으면 하루 종일 하늘만 쳐다보게 되는 것처럼.

“…그 비밀 심사가 뭘까요.”

“왜? 막내야, 불안해~?”

“아니요.”

멤버들이 보는 앞에서는 아니라고 했지만, 솔직히 많이 불안했다.

***

며칠이 지나고 돌연프 PD가 연습실에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들어왔다. 곧 비밀 심사가 있으니 준비하라는 말을 전하기 위해 온 것 같았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비밀 심사를 끝낸 연습생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어두웠다.

저 표정을 보니 괜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정진의 컨디션이 안 좋았기 때문이다.

“…정진아, 몸은?”

“어… 괜찮아.”

“정진 형,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는데?”

“…아침에 약 먹었어.”

이정진은 괜찮다면서 뒤돌더니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았다.

‘안 괜찮아 보이는데?’

곧이어 오스가 반갑게 웃으면서 연습실에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비밀 심사 진행하러 왔습니다.”

화목현은 멤버들을 보면서 인사를 하라는 듯이 눈치를 줬다.

“얘들아, 하나둘셋.”

“…안녕하세요. AA 엔터 연습생입니다!”

멤버들의 인사에 오스는 미소를 지으며 의자에 앉더니 입을 열었다.

“우선 이렇게 AA 연습생들을 봐서 기분이 좋네요. 제가 돌연프 1화부터 쭉 지켜봤거든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스는 서류를 넘기며 멤버들을 차근차근 관찰했다.

“근데… 돌연프 측에서 듣자 하니 가사를 쓰셨다고요?”

“…아, 네.”

“음…….”

화목현의 대답에 오스의 눈빛이 빛났다.

“가사를 쓰셨다면 안무는 당연히 다 짜고 외우셨겠죠?”

“…어.”

“일에는 다 순서가 있는 것처럼 안무를 외운 뒤 가사를 써도 시간은 남았을 텐데.”

이거였나. 이남주가 나에게 했던 말의 퍼즐이 착착 맞춰지기 시작했다.

“참고로 제가 규칙 어기는 것을 정말 싫어합니다. 이번에도 규칙이 있지 않았나요?”

“…아, 그게…….”

“아, 변명은 됐습니다.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서요. 이번에 많이 기대하고 왔거든요.”

…이런, 불길한 기운이 스멀스멀 발가락을 타고 올라왔다.

“저, 죄송합니다.”

화목현이 말을 꺼냈다.

“이정진 연습생이 며칠 동안 잠을 못 자는 바람에 컨디션이 좋지 않거든요.”

“아, 컨디션도 자기 관리의 일종이 아닐까요?”

분위기가 살벌해졌다. 오스는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고 멤버들을 쳐다보았다.

“노래 시작할게요.”

오스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도사 연가> OST가 나왔다. 그때, 부채로 구름을 만드는 안무 부분에서 이정진의 팔이 늦었다.

‘…아, 오스 표정이 별로다.’

춤을 추는 내내 우리는 죄지은 것처럼 굳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암담한 상황 속에서 오스는 볼펜을 잡고 서류에 무언가를 적었다.

“…이 곡은 도사인 사목의 성격과 드라마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인트로곡이에요. 안무가 포인트입니다.”

“…….”

“그래서 가사 없는 OST를 드린 건데… 가사 쓸 시간에 안무를 외웠다면 이런 모습은 보지 않아도 됐을 거예요. 그렇죠?”

그리고 오스는 이정진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특히 이정진 연습생은 성실하다는 소문이 있어서 정말 기대하고 왔거든요.”

“아…….”

그만큼 실망했다는 눈길이라 저절로 입이 다물어졌다. 차라리 비판을 했다면 이런 죄책감은 들지 않았을 텐데.

“뭐, 그래도… 점수는 60점으로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할 건 저죠. 그동안의 기대를 없애주셔서…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우리는 오스가 연습실을 떠날 때까지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연습실을 나가는 소리가 나자 허리를 들었다.

먼저 말을 꺼내는 멤버는 없었다. 그만큼 분위기가 심각했다. 나라도 위로하려고 옆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이런… 이정진의 얼굴에 그림자가 져 있었다.

“…정진 형?”

“미안… 혼자 있고 싶네.”

이정진이 몸을 비틀자 시스템창이 반짝였다.

【이정진의 사회성이 떨어져 우울감이 급증합니다.】

【이정진의 상태:(•́︿•̀ 。)】

※사회성이 내려가면 작곡과 작사를 그만둡니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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