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돌연프 3화(2)
“당신?”
“왜요? 당신이라는 호칭, 괜찮지 않나.”
뭐라고 불러도 상관은 없지만.
“그러면 저도 당신이라고 부를게요.”
“좋네요. 애칭 같고.”
애칭은 무슨. 나도 형이라고 부르기 싫어서 그런 건데.
그건 그렇고 야채튀김의 맛이 예사롭지 않았다. 양파, 감자, 당근을 채 썰어 튀긴 야채튀김은 방금 튀긴 건지 바삭해서 떡볶이 국물과 잘 어울렸다.
“이거 브랜드 떡볶이인가요?”
“아니요. 동네 떡볶이 사장님한테 부탁했대요.”
“와, 진짜 맛있는데.”
“맛있죠.”
떡볶이 역시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프랜차이즈 사업 하면 잘되실 것 같은데. 어묵 국물을 마시고 있는데 저 멀리에 이남주의 팬들이 서 있었다.
“팬들이 오셨는데?”
“그런가 봐요. 잠시만요!”
이남주는 신난 발걸음으로 팬들에게 다가가 스스럼없이 말을 건네고 있었다. 떡볶이를 먹었으니 오늘 할 일은 충분히 다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돌연프 3화가 나오는 날이니 이만 숙소로 돌아가도 괜찮을 듯한데.
“저랑 사진 좀 같이 찍어줄 수 있어요?”
“사진이요?”
“제 팬들이 찍어달라고 해서.”
정말인가. 보통 개인 팬덤은 다른 연습생들이랑 엮이는 것 자체를 안 좋아하잖아. 괜찮은 건가 싶었는데 이남주의 표정을 보니 진심인 것 같았다. 나는 떡볶이를 의자 위에 둔 뒤 고개를 끄덕였다.
“찍으면 되죠.”
뭐, 연예인 생활 중 사진 몇 장 찍는 건 딱히 상관없었다. 그리고 이남주 팬 중 한 명이 카메라를 가져와 우리 둘을 찍었다.
“이거 커뮤니티에 올라가도 괜찮을까요?”
“네, 올라가도 상관없어요. 떡볶이 잘 먹었어요.”
“…어, 네!”
마지막으로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나는 진지하게 팬에게 물었다.
“한 그릇 더 먹어도 되죠?”
“네? 네……! 두 그릇 더 드셔도 돼요.”
“그렇게 많이 먹으면 혼날 수도 있잖아요.”
“많이 드셔도 돼요!”
팬이 괜찮다면서 웃어주었다. 그러자 이남주가 옆에서 끼어들었다.
“맞아요. 오늘 사람도 별로 없어서 세 그릇 먹어도 괜찮아요.”
“그래요? 그럼 뭐, 사양하지 않고.”
세 그릇까지만 먹어야겠다. 내일 안무 연습이 있는데 몸이 너무 무거우면 안 되니까.
“떡볶이 좋아해요?”
“…적당히?”
“세 그릇은 적당히가 아닐 텐데.”
“많이 좋아한다고 정정할게요.”
이남주는 생수까지 챙겨줬고, 오랜만에 편안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이렇게 같이 있으니까 마치 같은 팀 같아요.”
고작 떡볶이 하나 같이 먹는다고 같은 팀 같다니. 처음 만났을 때보다 애가 이상해졌단 말이지. 마지막으로 어묵 국물을 마시며 이남주의 말에 대답했다.
“그렇지는 않은데.”
선을 긋자 이남주가 작게 웃었다.
“제가 AA 엔터에서 안 나갔다면 같은 팀이었을 수도 있는데.”
“그렇긴 하네요.”
이남주가 있는 AA 엔터라… 막강하네. 생각만 해도 탄탄한 아이돌 생활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왜 AA 엔터를 나간 거예요?”
나는 돌려 말하지 않고 이남주에게 바로 궁금했던 부분을 물었다. 그러자 이남주가 어묵을 입에 넣더니 뜸을 들였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라고 말하니까……? 이 정도로 말하면 대답이 될까요.”
“…예?”
이남주의 두루뭉술한 대답에 속이 꽉 막혔다. 근데 원래 이런 성격일 수도 있으니까. 더 파고들지는 않았다.
“미션곡은 어떤 거 받으셨어요?”
“비밀인데요?”
“아, 비밀.”
이남주는 아메리카노를 의자에 올려두고는 말을 이어갔다.
“가사 없는 드라마 OST를 받았잖아요.”
이 새끼 뭐지?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떡볶이를 먹었다.
“저는 알고 있는데. 저희도 가사 없는 드라마 OST 받았거든요.”
“발설하면 안 된다고…….”
그러자 이남주가 싱그러워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내가 느끼기에는 기분 나쁜 미소인데, 지나가는 개가 보면 아름답다고 느낄 것이다.
“아, 걱정해요? 딱히 걱정할 필요는 없는데.”
“그래서 나한테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요.”
“지금 정진이 형 멘탈 안 좋을 거예요.”
뜬구름 잡는 소리에 나는 눈썹을 찌푸렸다. 왜 네가 이정진의 멘탈을 걱정하는 거지? 노을이 지고 쌀쌀한 저녁이 찾아올 즈음, 나는 마지막 떡볶이를 입에 넣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떡볶이는 잘 먹었어요.”
더 이상 이남주와 대화할 시간이 없었다.
***
돌연프 3화가 시작되기 전. 커뮤니티는 나와 이남주가 같이 찍은 사진 한 장으로 들썩거렸다.
-이남주랑 범나비 친함 ㄹㅇ?
└ ㅇㅇ 둘이 친한 듯? 오늘 이남주 개인 팬덤이 분식 트럭 보냈는데 둘이 같이 찍은 사진 올라옴
└ 아… 별론데;
└ 남주야 멤버들은 어디로 갔니?ㅠㅠ
-그냥 같은 숙소고 오늘 휴가라고 하니까 있었던 거겠지; 댓글 궁예 오지네ㅋㅋ 이남주는 불쌍하고 범나비는 싫다는 애들은 뭐임?
└ ㄹㅇ 이남주 돌려 까려는 목적인가 뭐야
└ 범나비 인성 ㅈㄴ 별로라서 엮이면 이남주한테 피해가 간다네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하자;
└ 범나비 인성 안 좋은 건 팩트잖아
└ 뭔 팩트임?
└ 팩트라고 할 게 있나ㅋㅋ 맞는 말이잖아
└ 남주는 인성 좋고?ㅋㅋ
-ㅠ 남주가 원래 좀 착하잖아
└ 아이돌 인성 영업하면 안 되는 거 아시죠?
└ 왜요?
└ 인성 영업하다가 망한 아이돌 수두룩함
└ 남주는 진짜로 착한데
댓글은 싸움터가 되었지만,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 3화가 시작되고 나서는 다들 조용해졌다.
[합동 무대가 끝나고 정직하게 서 있는 연습생들]
-바로 시작임?
-돌연프도 참; 애들 좀 쉬게 해주지
[두 번째 미션!]
[MC : 카테고리 4개와 노래 11개가 섞여 있습니다. 무대 순위 1위를 차지한 팀에게는 베네핏 300점을 드리겠습니다. 이 베네핏은 중간 순위 발표 때 팀 순위에 유리하겠죠?]
-잠시만요? 베네핏 300점?
-300점이면 꼴찌도 1위 하겠다;
-돌연프 이름값 한다… 돌아이들…
[베네핏에 놀란 연습생들]
-나도 놀랐다 300점ㅋㅋ
화면 속 이남주는 놀라지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마치 알고 있기라도 했다는 것처럼.
[《두 번째 카테고리 미션 규칙!》
QTQ 방송국 내부 지도를 보고 카테고리를 고른다 →
제작진이 숨겨놓은 카테고리를 발견하면 끝!]
화면에서 지지직- 소리가 나며 화면이 전환됐다.
-무서운데? ㄷㄷ
-컨셉에 충실한 제작진 애들한테나 잘해 ㅅㅂ
회의가 끝난 연습생들은 QTQ 방송국으로 들어갔다.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연습생들은 팻말을 보며 카테고리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미친 이러면 길이 보이냐?
-컨셉 뭐야 살인사건인가…
[마네킹 발사!]
돌연프 제작진이 준비한 마네킹을 보고 놀라는 연습생들. 그러나 딱 한 사람은 놀라지 않았다.
[AA 범나비 : 길이 어디 있지?]
바로 나였다. 마네킹은 마네킹일 뿐이지 놀랄 필요가 있나.
-마네킹:(무안)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비 놀라면 귀여울 텐데 아쉽다
…놀라는 표정도 연습을 좀 해야 할 것 같은데. 먼저 방송국에 들어갔던 연습생들은 소리를 지르며 다급하게 QTQ 방송국을 빠져나갔다.
-남주 얼굴 하얗게 질림 ㅋㅋㅋㅋ
-FG 연습생들이 제일 빠르게 나가네 ㅋㅋㅋ
-이남주는 무슨 신들린 사람처럼 길을 찾냐 재미없음~
└ 여기서 무슨 재미를 찾아ㅋㅋ
└ 진지하게 행동해야지 재미를 원하는 거라면 예능 프로를 보든가
제일 늦게 출발해서 그런지 우리가 마지막을 장식했다.
[제작진1 : AA 연습생들 언제 오죠?]
[제작진2 : 이제 올라오고 있다는데.]
회의할 때 그렇게 늦장을 부렸으니… 늦을 수밖에.
[AA 범나비 : 형들, 여기인 것 같은데요?]
[AA 화목현 : 일단은 말이야.]
멤버들과 회의하는 장면을 빠르게 돌려서 편집해 놓은 제작진이었다.
[회의에서도 10분이나 씀]
-화살표로 늦었다고 표시하는 제작진 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얼마나 빡쳤으면ㅋㅋㅋㅋㅋㅋㅋ
[드디어!]
[피가 흐르는 공간으로 들어간 AA 연습생들]
[AA 주이든 : 너… 너무 무섭다고!]
[AA 정요셉 : 우리가 가는 길이 맞는 건가~]
-주이든 정요셉 정신 나감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럴 때 과감하게 들어가는 범나비 존나 웃기죠
[역시 막내가 선두로!]
-ㅋㅋㅋㅋㅋㅋ무서운 거 없다고 막내가 아니래ㅠ 막내 패시브 나비는 없죠?
-빨리 와달래ㅋㅋㅋㅋㅋㅋ
[마네킹의 피가 진짜 피인지 확인한 범나비]
[AA 범나비 : (비장한 표정)진짜 피가 아니에요-_-]
[AA 화목현 : 당연히 진짜 피는 아니겠지.]
[AA 이정진 : 진짜 피면 우리가 아니라 경찰이 먼저 왔을걸.]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멤버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저걸 끄덕임?ㅋㅋㅋㅋ
[그제야 편안하게 퇴근하는 돌연프 제작진]
[PD : 새벽까지 촬영하는 줄 알고 걱정했습니다.]
[언젠간 복수한다]
제작진이 자막을 통해 복수한다는 말을 남겼다. 이런, 조심해야겠는데…….
-아 근데 웃겼음ㅋㅋㅋㅋ
-우리 애들이 진지하긴 하죠;; ㅈㅅ
돌연프 3화가 끝나가자 시청자들은 추측하기 시작했다.
-다음 주 이 시간에 돌연프 4화에서 HOR 연습생들 어떻게 하는지 나오겠네 ㅋㅋ
└ 왜? 무슨 일 있음?
└ ㅇㅇ
└ 무슨 일이야? 검색했더니 HOR 연습생들 욕밖에 없어…
[MC : 안녕하세요, 프로님들.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 MC입니다. 한 주 잘 쉬셨나요?]
-아니요 보고 싶어서 힘들었어요
-HOR 애들이나 빨리 보여주지 이러는 거 보니까 혹시 마지막 무대 아냐?ㅅㅂ
[MC : 곧 FG 엔터와 RT 엔터의 무대가 시작됩니다.]
FG 연습생들과 RT 연습생들은 무난하게 출발했다. 두 엔터는 같은 카테고리지만 다른 컨셉의 무대를 하면서 서로 양보하는 모습을 보였다.
-훈훈하다…
-ㅈㄴ 심심 꿀노잼;;
-기 싸움 없으니까 얼마나 좋아 ㅎㅎ
-솔직히 기 싸움 없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누가 봄; 그럴 거면 힐링물이나 보지;
└ ㅇㅈ 재미는 없다;
-그리고 남주는 경쟁할 만한 인물이 없어서 재미가 반감됨… 노잼…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자극적인 장면을 좋아하는 시청자들에게 이런 훈훈한 분위기는 먹히지 않았다. 나 역시 화제성 없는 꿀노잼 장면은 싫어하기도 하고.
-그냥 이남주 얼굴이 꿀임 존잼
└ ㅇㅈ
다행인 건지 이남주 얼굴이라도 볼 수 있어서 재밌다는 반응이 컸다. 그렇게 돌연프 3화가 10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AA 연습생들과 HOR 연습생들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때, 제일 중요한 장면에서 화면이 까맣게 변했다.
-?
-뭐 하냐?
-왜 끊어
그러고는 급히 돌연프 4화 예고편이 나왔다.
-분량이 많았나?
-급하게 끊는 느낌이;;
예고편을 내보내 시청자들의 눈을 속이려는 의도였다.
[숨 막히는 AA 엔터와 HOR 엔터]
그리고 AA 연습생들과 HOR 연습생들이 기 싸움 하는 장면이 나왔다.
[MC : 다음 주! 중간 순위 발표식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중간 순위 발표식까지.
-세 번째 무대가 아니고?
└ 병큐가 병큐 하는 거임
└ ㅅㅂ 중간 순위 발표식 했다는 건 벌써…
-팀이 많긴 했음 탈락해도 노상관
이렇게 돌연프 3화가 끝나고 다시 생각해 보니까, QTQ 방송국에서는 HOR 연습생들을 내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주이든과 HOR 엔터를 엮으면서 어그로를 끌면 얼마나 재밌는가.
생각은 이쯤에서 끝내기로 하고 나는 가방에서 연습장을 꺼냈다.
“좋은 가사가…….”
<도사 연가> OST에 어울리는 가사를 적으려는 순간, 복도에서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 뒤에는 ‘네가 잘났냐?’라는 말까지 들렸다. 이거, 아무래도 대차게 싸우는 모양이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연습생들이 싸우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었다. 그저 방송에 안 나가는 것뿐이지.
‘어차피 우리 멤버들만 아니라면 상관없지.’
상관없는데… 방에 금금이가 들어왔다.
“…어, 형.”
그것도 눈물을 흘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