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의 1군 가이드-23화 (23/235)

23. 돌연프 3화(1)

편곡을 하면 안 된다는 말에 연습생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만약 그룹과 잘 어울리지 않는 노래를 받는다면 편곡도 못 하고 임팩트 없는 무대를 하게 될 수도 있었다.

편곡을 하는 게 안 된다면 기본 실력으로 판가름이 나겠네.

[더불어 비밀 심사도 있을 예정입니다. 그럼 15일 동안 잘 부탁드려요.]

비밀 심사? 편곡보다 비밀 심사가 있다는 부분에서 연습생들이 수군거렸다.

“비, 비밀 심사를 한다는데?”

“…비밀 심사가 뭔데?”

어쩌면 비밀 심사는 모든 순간 우리를 지켜보고 겉으로 보이지 않는 부분을 심사한다는 거 아닐까.

[비밀 심사를 마치면 각 연습생에게 통보가 될 예정입니다. 그럼 돌연프 연습생분들, 힘내세요. 항상 응원하고 있습니다.]

곧 모니터 화면이 꺼졌고, 스태프가 화목현에게 봉투를 건네주었다. 화목현은 우리한테 봉투를 보여주었다.

《사극》

사극 카테고리의 곡 정보가 담긴 봉투였다.

“지금 받은 봉투를 열면 어떤 곡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곡을 받았는지 다른 팀한테 언급할 수는 없습니다.”

그 말은… 다른 팀과 같은 카테고리를 골랐어도 같은 카테고리인지 알 수 없다는 얘기다. 눈치 싸움의 시작인 것이다.

“만약 곡 정보를 발설할 시 점수 100점이 깎이게 됩니다. 이 점을 주의해 주세요.”

돌연프 제작진들의 머리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어떻게 곡 정보 발설하는 연습생을 잡을 건지.

“여러분, 취소표 기억하시죠?”

아, 취소표… 까먹고 있었다. 젠장.

“이 규칙에 대해 잊은 연습생분들이 계신다면 제가 다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MC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화면에 영상이 켜졌다.

“100만 표를 가지고 있던 팀이 탈락할 경우, 순위 발표식이 끝나고 자정이 되면 100만 표의 취소표가 풀립니다.”

취소표에 대해 들으면 들을수록 연습생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렇다면 취소표가 투표에 합산이 되는지 궁금하실 텐데요. 이 취소표는 투표에 합산되지 않습니다. 취소표는 그저 투표수를 없애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죠!”

MC가 사악하게 웃었다. 그 미소에 연습생들은 절망에 빠졌다. 나도 마찬가지고.

“취소표……! 까먹고 있었다.”

“그러니까… 어떡하냐.”

MC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연습생들이 웅성거렸다.

“그럼 다음 무대에서 뵙겠습니다.”

***

그래도 취소표의 여운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보다는 오스에게 받은 드라마 OST의 위협이 컸기 때문이다.

“가사가 없어.”

“정말로 가사가 없어요?”

“어, 진짜로 없어.”

우리가 받은 곡은 사극 드라마 <도사 연가>에 나오는 가사 없는 OST였다. 이걸 미션곡으로 주다니. 뒤통수가 얼얼했다.

“와, 그럼 안무도 없는 거잖아!”

“이든아, 말 잘했다. 우리 안무도 없어.”

화목현이 주이든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왜 기간이 15일인지 알 것 같은데…….’

그나마 장점을 뽑자면 곡 재생 시간이 1분 30초라는 점이다. 무대 컨셉을 따로 정할 필요도 없고. 옆에서 정요셉이 목을 만지며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우리 다음번에 탈락하는 거 아니지~?”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

“그래, 우리 이든이 말 들어야지~”

화목현이 손뼉을 치면서 어수선한 멤버들의 시선을 모았다.

“괜찮아. 편곡하지 말라고 했지, 가사 쓰지 말라는 말은 없었어.”

화목현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가사도 쓰지 말라고 한다면? 그것도 문제였다.

이거야 원, 막막했다.

평소와 달리 가만히 있던 주이든이 결국 폭발해 버렸다.

“…으아악!”

주이든이 울부짖으며 바닥에 드러누웠다.

“좋은 해결 방법이 없을까……!”

“해결 방법?”

해결 방법이라… 일단은 오스가 준 <도사 연가>의 대략적인 스토리를 알 필요가 있었다.

“OST는 시청자가 그 장면에 스며들 수 있도록 하는 장치니까 우선 드라마 스토리를 알아볼까요? 그리고 중요한 건, 이 드라마가 지금 방영 중이라는 거예요.”

제작진들이 이 OST를 고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돌아온 연습생에서 드라마를 홍보하려는 목적이겠지. 잘되기만 한다면 우리도 드라마 시청자들한테 각인될 수 있었다.

“나비 말대로 드라마 스토리를 한번 검색해 봤거든? 하늘이 노여움을 품어 낳은 천방지축 도사 ‘사목’이 왕의 몸에 빙의하고 나서 조선을 구하는 이야기를 그린 코믹 사극이라고 하네.”

그렇다면 어떻게 무대를 꾸며 나가야 할지 작은 가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복 입겠네. 좋다~!”

“얘들아, 한복도 좋은데 무대 컨셉도 중요해.”

“내일 휴일이니까 드라마 보면서 쉬면 되겠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점은.

“가사에 대한 건 내가 맡을게.”

이정진이 말했다. 이정진은 작사하고 싶다는 욕망이 절실해 보였다.

“우리는 그런 놈이라…라는 가사가 떠올랐거든.”

생각이 많은 데 비해 말수가 적은 이정진이 새로운 장르에 눈을 뜬 것처럼 보였다. 눈동자에 약간 광기가 서려 있어 조금 무섭긴 했다.

“그래도 정진이한테 가사를 다 맡길 수는 없으니까. 각자 좋은 가사가 떠오르면 말해보기로 하자.”

“그것도 좋겠다. 내가 물어보러 가볼게.”

15일이라는 시간이 있긴 했으나 작사를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다. 1분도 아까웠는지 이정진은 곧바로 제작진에게 다가가 가사를 붙여도 되는지 물어보았다. 근데 영 표정이…….

“…안 된대.”

안 된다고 했구나. 나는 주먹을 쥐며 머리를 굴렸다. QTQ 방송국에서 방영하는 드라마를 홍보해 주는 건데 가사 붙이는 것도 안 된다고?

그러면서 가사 없는 OST를 준다는 건 우리를 실험하겠다는 건가. QTQ가 병큐라고 욕을 먹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모두가 낙심한 상태에서 나는 궁금한 점이 생겼다.

“그 비밀 심사라는 거요.”

“…응? 비밀 심사?”

내가 생각한 포인트는 비밀 심사에 있었다. 여기서 연습생 그룹의 앞날이 바뀔 테니까.

“우리처럼 다른 연습생들도 오스 작곡가님의 규칙을 파괴할 것 같거든요?”

“하긴 우리만 이런 곡을 받았을 리가 없어. 곡을 유출하지 말라는 규칙이 괜히 생긴 건 아닐 거야.”

“맞아요. 우리만 가사가 없는 OST를 받았을 거라는 보장은 없잖아요?”

살짝 고개를 들어 주변을 훑었다. 아무 환호성도 없는 데다 연습생들의 이마에는 이미 사거리 마크가 생겨 있었다. 그만큼 우리랑 상황이 비슷하다는 거겠지.

그래도 폐교에서 어렵게 얻은 카테고리인데… 주이든이 목이 나갈 정도로 소리를 지르면서.

“우리… 어떻게 할까?”

모두가 입을 다물고 암담한 현실을 마주할 때, 이정진이 희망찬 포부를 가지고 말했다.

“그래도 가사는 쓰자.”

파격적인 이정진의 의견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윤리와 법을 잘 지킬 것 같은 이정진이 먼저 나섰다.

“돌연프 측에서는 안 된다고 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가사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

주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정진이 형 말에 동감! 가사를 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이든이 말이 맞아. 그러면 정진이만 쓰지 말고 우리도 한번 써보자.”

가만히 듣던 정요셉이 입술을 씰룩거렸다.

“그래도 우선 드라마를 보고 컨셉을 어떻게 할지 정해보자고~ 가사만 생각하기에는 할 게 많아.”

웬일로 정요셉의 말에 수긍이 됐다.

“그렇다면 가사는 일단 써놓는 걸로 하고, 안무랑 컨셉 위주로 가야겠네요.”

가사도 문제지만, 안무도 문제였다.

“15일을 준 이유가 있었네.”

“나 머리 나빠질 것 같아……!”

화목현과 주이든도 나랑 비슷한 문제를 떠올렸는지 얼굴이 심각했다.

“얘들아, 내일 휴가니까 머리 비우고 보자.”

어느새 휴가와 동시에 돌연프 3화가 나오는 날이었다.

***

휴가인데 홀로 기숙사에 남았다. 그러나 씁쓸하다는 생각보다는…….

“좋다.”

그동안 단체생활을 하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항상 그리웠다. 그래도 본가에는 가고 싶었지만 엄마가 오지 말라고 했다.

(엄마) 아들을 사랑하긴 사랑하거든? 근데 엄마가 바빠

(엄마) 그나저나 나중에 오면 사인 몇 장 해줄 수 있니?

내가 다녀간 이후로 편의점에 들르는 사람이 많아졌다나 뭐라나. 편안히 침대에 누워서 돌연프 3화가 나오길 기다리는 그 순간, 시스템창이 반짝였다.

「문제 6, 아이돌의 ■■은 독이 될 수도 있고, 행운이 될 수도 있다.

정답 풀이:(비공개)」

질문이 희한했다. 독이 될 수도 있고, 행운이 될 수 있는 거라? 마땅히 떠오르는 단어가 없었다.

가만히 천장을 쳐다보면서 복잡한 머리를 정리했다. 차근차근 머릿속을 정리할 때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리더니 기숙사 문이 열렸다.

“어? 여기 있었네요?”

이남주가 미소를 지으면서 기숙사로 들어왔다. 얜 본가 안 가나?

“본가에 내려간 줄 알았는데요?”

“이번 휴가에는 안 내려갔어요.”

“진짜요?”

어쩐지 약간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

“그럼 저랑 같이 떡볶이 먹으러 갈래요?”

떡볶이? 내가 미간을 찌푸리자 이남주가 손을 저었다.

“나쁜 뜻이 있는 건 아니고. 제 팬들이 내일 촬영에 맞춰 분식 트럭을 보내준다고 했거든요. 근데 시간을 잘못 알았는지 오늘 보냈더라고요. 그래서 같이 먹을 사람이 필요한데, 저희 멤버들은 다들 본가에 내려가서 없거든요.”

설명이 아주 길었다.

“제가 가면 친목으로 보이지 않을까요.”

“아, 친목으로는 안 보일 거예요!”

…어, 설마……? 속으로 정답을 외쳤다.

‘정답은 친목.’

종소리가 울리면서 풀이가 나타났다.

[정답, 친목입니다!

풀이:아이돌에게는 친목이 독이 될 수도, 행운이 될 수도 있죠.

바람직한 친목을 가진다면 팬들은 좋은 시선으로 볼 것입니다.

그러나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다면 ‘끼리끼리’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나보고 친목을 조심하라는 말처럼 들렸다.

“떡볶이 먹으러 가죠!”

마치 이 녀석과 친목하면 좋지 않은 결과가 생길 거라고 경고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보다는 이남주한테 향하는 피해가 더 클 텐데. 나는 어그로를 끌어서 이미지가 좋지 않았으나 이남주는 아니지 않은가.

“…저랑 있으면 이미지가 안 좋아질 것 같은데요.”

“이미지요? 괜찮은데?”

저런 순박하고 뇌를 스치지 않은 것 같은 답변에 오히려 내가 당황했다. 이남주, 눈치가 이렇게 없었나. 아닐 텐데.

“뭐, 괜찮다면 떡볶이 먹으러 갈게요.”

친목이고 뭐고 떡볶이가 먹고 싶었다. 요즘은 카메라 마사지가 필요한 시점이라 식단 조절을 하고 있었지만 오늘은 휴가니까…….

“진짜 간다고 할 줄은 몰랐는데…….”

“왜요?”

“그냥 안 갈 줄 알았어요.”

떡볶이가 아니었다면 안 갔을 것이다.

“떡볶이가 먹고 싶어서요.”

“정말 떡볶이 때문에 그런 거예요?”

“네, 배고파요.”

대충 가디건을 걸치고 1층으로 내려갔다. QTQ 방송국이 근처라서 그런지 돌연프 스태프들도 떡볶이를 먹고 있었다.

떡볶이, 어묵, 튀김까지. 군침이 도는 붉은빛을 보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떡볶이 많이 먹어도 돼요?”

“많이 먹어도 상관없어요.”

“…혼나는 건 아니죠?”

“누가 이런 거 가지고 혼내요.”

“그렇죠?”

그러고 보니 나보다 나이 많지 않나? 은근히 나에게 존댓말을 하네.

“범나비라고 편하게 불러요. 제가 동생이잖아요.”

물론 떡볶이 때문에 그런 건 아니고. 분식 트럭에서 떡볶이를 받은 뒤 근처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떡볶이를 먹었다.

“제가 형이 맞긴 하죠…….”

이남주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근데 존댓말을 쓰는 게 편해서. 그냥 이름만 나비라고 부르고 싶은데 괜찮아요?”

“…음, 마음대로 하세요.”

“싫어하는 것 같은데.”

잠시 고민을 하더니 이남주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러면 그냥 당신이라고 부를게요.”

그게 더 이상한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