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중간 순위 발표(2)
나는 카메라를 향해 허리를 숙인 뒤 개인 순위 자리에 앉았다. 팬분들한테도 고맙다는 말을 꺼내고 싶었으나 떨려서 말을 못 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MC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22위는 이금금 연습생입니다.”
지난번 금금이의 순위는 19위였다. 아마 화목현에게 했던 행동 때문에 순위가 떨어진 것일 테다.
욕을 많이 먹었다. 나중에 화목현과 소통하고 관계가 회복된 모습이 나왔으니 그나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순위가 이렇게 떨어질 줄은.
“이금금 연습생, 22위에 안착했는데 마음이 어떤가요?”
MC의 질문에 금금이는 미소를 지었다.
“…제가 갈팡질팡해서 프로님들한테 안 좋은 모습을 보여 드린 것 같아 죄송합니다. 이제부터 제대로 된 아이돌의 모습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의 걱정과 다르게 금금이의 당찬 소감에 안심이 되었다. 그래, 원래 금금이의 모습은 저랬다. 멘탈이 흔들려서 잠시 판단이 흐려졌을 뿐이다.
“금금아.”
“어, 형… 축하해요.”
“고맙다.”
“뭘요. 제가 고맙다고 해야죠……!”
원래 모습대로 돌아간 금금이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 10위대로 진입하네요. 19위, 주이든 연습생!”
금금이가 의자에 앉으니 주이든이 무대 위로 올라갔다.
“제가 19위로 올라갈 수 있었던 건, 프로님들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주이든은 항상 팬을 챙겼다. 텀블러도 그렇고.
“15위, 이정진 연습생!”
묵직하게 일어난 이정진이 무대 위로 올라가며 무덤덤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했다. 그러면서 마이크를 들고 씩 웃었다.
“프로님들께 언제나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투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정진도 팬을 챙겼고.
“10위, 정요셉 연습생!”
정요셉은 순위가 발표되자 친한 연습생들과 인사를 나누며 무대 위로 올라왔다. 무대가 미끄러워서 넘어질 뻔했으나 간신히 일어나 마이크를 잡았다.
“이거 방송에 내보낼 생각은 아니시죠? 부끄러울 것 같은데~”
“정요셉 연습생, 이걸 내보내야 재밌지 않을까요?”
“아, 제 이미지가 있는데. 제발 안 내보내 주시면 안 될까요~!”
특유의 분위기를 살리며 정요셉은 한숨을 길게 쉬었다.
“저를 알아주시는 분들이 많은 만큼 프로님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노력하려고 합니다~! 저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면 저는 위로 올라가겠습니다~!”
정요셉은 5초간 허리를 푹 숙였다.
역시나 정요셉의 말주변은 사람을 홀렸다. 이제 상위권으로 진입하면서 희비가 갈리기 시작했다.
희망이 없는 연습생들은 고개를 숙였고. 희망이 있는 연습생들은 MC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렸다.
“화목현 연습생, 이남주 연습생. 무대 위로 올라와 주세요.”
원래 2위는 이서혁이었다. 그러나 이서혁이 사라졌기에 화목현이 2위에 오른 것 같았다. 화목현은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조금 떠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에 이남주는 떨기는커녕 여유가 넘쳤다. 굉장히 익숙하다는 듯이.
“이남주 연습생, 부동의 1위를 차지할 수 있을 것 같나요?”
“…글쎄요. 이 형이 너무 잘해서, 1위를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형? 아, 두 분 같은 소속사였죠.”
그렇게 여유로운 모습으로 화목현을 띄워주다니.
“제가 AA 엔터에 있을 때 제일 존경하던 연습생이 목현 형이라서 1위를 하면 기쁠 것 같아요.”
MC는 화목현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그럼 화목현 연습생은 어떠신가요?”
“저는… 2위가 좋을 것 같습니다.”
“이왕이면 1위를 하는 게 좋지 않나요?”
“그게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요. 1위는 제가 올라갈 위치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데뷔를 해도 쭉 2위를 할 거라는 말인가요?”
짓궂은 MC의 질문에 화목현의 눈이 커졌다. 화목현은 잠깐 당황했으나, 이윽고 원래대로 돌아왔다.
“데뷔하면 꼭 1위를 하고 싶습니다.”
“오… 화목현 연습생, 겸손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요?”
“개인 순위는 목표를 이루었으니까. 팀으로는 1위 하고 싶어서요.”
정말 화목현다웠다. 개인으로서는 모르겠지만 팀으로서는 1위를 하고 싶다는 게. 정해져 있는 결론이니 빨리 끝내주면 좋을 것 같은데.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1위를 발표할 시간이 다가왔네요.”
MC는 뜸을 들이면서 숨을 꾹 참았다. 큐시트를 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조명이 이남주와 화목현을 비추자 MC가 입술을 뗐다.
“1위는……!”
이남주라고 생각했는데, 이윽고 내 예상이 빗나갔다. 카메라가 화목현을 비췄기 때문이다.
“화목현 연습생입니다!”
정말 화목현이라고? MC가 1위를 호명하자 이남주는 곧바로 달려가 화목현을 끌어안았다.
“축하해요, 형!”
“어어… 남주야, 고마워.”
화목현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마른세수를 했다.
“먼저 2위인 이남주 연습생의 소감을 들어볼까요?”
“솔직히 저는 2위도 무척 행복하거든요. 저를 이 자리에 앉혀준 프로님들, 감사합니다.”
이남주의 훈훈한 멘트에 MC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중간 순위 1위를 한 화목현 연습생의 소감을 들어볼까요?”
화목현은 마이크를 바로 잡았다.
“저를 1위로 만들어주신 프로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1위가 될 줄 몰라서… 많이 당황스러운데요. 후회 없는 선택이라는 걸 직접 보여 드리겠습니다. 프로님들, 감사합니다.”
이남주가 개인 순위 자리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며 화목현에게 말을 걸었다.
“형, 1위 정말 축하해요.”
“남주야, 나는 정말 네가 될 줄 알았어.”
“저는 형이 될 줄 알았는데요?”
“거짓말하지 마.”
“진짠데?”
이남주가 화목현의 등을 밀며 보기 좋은 미소를 지었다. 화목현이 중앙에 있는 의자에 앉으며 주변에 조명이 비춰졌다.
“프로님들이 제일 걱정하고 염려하는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팀 순위를 공개하는 순간인데요. 팀 순위가 공개되는 순간, 총 4팀이 떨어지게 됩니다.”
모두가 긴장한 그 순간. 연습생들의 귀에 오로지 MC의 목소리만 들릴 때였다.
“일단 60초 광고를 보고 오시죠!”
맥이 끊겼다. 이렇게 흐름을 끊다니. 카메라가 꺼지고 PD가 마이크를 들었다.
“잠시 쉬겠습니다!”
나는 카메라가 꺼지는 순간 뻐근한 어깨를 두드리면서 휴식을 취했다. 멤버들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면서 내게 자리를 잘 지키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우리 막내, 자리 잘 지켜~”
“나비야, 다녀올게.”
멤버들도 없겠다, 이제 좀 쉬려고 눈을 감으려는 찰나 이남주와 눈이 마주쳤다.
“뭐 해요?”
“잠시 쉬는 중이죠.”
“아, 그래요? 그럼 옆에 앉아도 되겠네요.”
허락한 적도 없는데 어느새 이남주가 옆에 앉았다.
“저 2위 했어요.”
“…축하해요.”
“축하해 줘서 고마워요. 축하 인사를 듣고 싶었거든요.”
내 말에 이남주가 싱글벙글 웃었다.
“나는 당신이 10위에 들 줄 알았는데.”
“…그랬으면 좋았겠네요.”
10위라… 까마득한 정상이다. 아직은 갈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남주한테 물어볼 게 있었다.
“1위를 놓쳐서 안타까울 것 같은데.”
화면에 표시된 1위와 2위의 표차는 단 10표였다. 이 정도면 많이 아쉬울 텐데. 이남주는 오히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제가 순위에 연연하는 타입은 아니라서요. 어차피 무대에서 잘하면 1위를 탈환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이남주의 목소리에 저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왜 웃어요?”
“그냥요. 저는 그런 자신감은 없거든요.”
“아, 그래도 얼굴엔 자신감 있잖아요.”
얼굴에 자신감? 오히려 이남주가 자신감을 가져야 하는 판국이 아닌가.
“저보다는…….”
“제가 자신감이 넘칠 것 같아요?”
나는 이남주의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뭐가 웃긴지 이남주가 배를 잡으며 크게 웃었다.
“아, 제 얼굴이 잘생기긴 했죠?”
“…네.”
잘생겼다는 말이 웃긴가. 이남주는 눈가에 묻은 눈물을 닦으며 몸을 뒤로 뺐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당신에게 칭찬을 받아서 기분이 좋네요.”
곧 방송 재개를 한다는 안내에 이남주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이거 남들한테 소문내도 되나요?”
“…어떤 소문을?”
“범나비가 내 얼굴이 제일 잘생겼다고 했다고.”
그런 말까지는 안 했는데. 그러면서 이남주는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 올라가 버렸다. 쟤는 도대체 뭘까. 곧 화장실에 갔던 이정진과 주이든이 돌아왔고 방송은 재개되었다.
“프로님들, 광고는 보고 오셨나요? 이제 제일 궁금해하셨던 팀 순위와 탈락하는 4팀이 공개되는 순간이네요.”
스튜디오에 박진감 넘치는 BGM이 흐르고, MC가 큐시트를 읽었다.
“먼저 1위부터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개인 순위와 팀 순위의 발표 순서가 다른 이유는, 개인 순위와 달리 팀 순위는 탈락자가 정해지기 때문이었다.
“1위는… 베네핏 300점을 받은 FG 엔터입니다!”
FG 연습생들이 벌떡 일어나 환호를 질렀다.
“와아!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우리 1등 했어…….”
FG 엔터의 소감이 뒤따르고 나는 HOR 엔터 연습생들을 쳐다보았다. HOR 엔터 때문에 중간 순위 발표를 앞당긴 것 같은데, 이대로 탈락되는 건지 궁금했으니까.
“다음 2위는… AA 엔터입니다!”
팀 순위가 발표되자 멤버들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감사합니다!”
“더 좋은 무대로 보답하겠습니다!”
그 뒤로는 무난했다.
“다음 5위는… HI 엔터입니다!”
다행인 건 HI 엔터가 탈락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것 정도.
“…프로님들, 고맙습니다.”
“뽑아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HI 연습생들은 탈락할 줄 알았는지 하나같이 눈물과 콧물을 흘렸다.
성장하는 HI 연습생들을 보면 조금이나마 HI 엔터에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들 법도 한데 그런 마음은 아예 들지 않았다. 내가 없어도 잘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마지막 7위만 남겨놓고 있습니다. 아쉽지만 제 입에서 불리지 않은 엔터는 이 자리에서 떠나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어느 곳이 돌연프에서 살아남을까. HOR 엔터가 살아남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없었으면 좋겠는데.
“7위는 HOR 엔터입니다! 축하합니다. HOR 연습생분들, 돌연프에서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나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 버렸다. 무대 순위도 개인 순위도 처참한데 탈락 위기를 넘겼다는 건, 온라인 투표가 강세였다는 거네.
‘운도 좋다.’
운까지 없는 사람도 있는데.
“가,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HOR 연습생들은 서로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얼싸안았다.
“탈락한 연습생 여러분들, 데뷔 무대에서 꼭 봅시다.”
훈훈한 MC의 말을 끝으로, 탈락한 연습생들은 의자에서 일어나 무대를 떠났다. 별다른 소감과 인사도 없이. 그리고 곧바로 모니터 화면이 켜졌다.
[안녕하세요, 돌연프 연습생 여러분.]
세 번째 무대 미션이 도착한 건가 보다. 아, 정신없다.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를 잘 보고 있는 오스입니다. 마침 PD님께 연락이 왔더라고요. 그리고 제 드라마 OST와 콜라보 미션을 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습니다.]
…콜라보 미션이라고? 오스는 오로지 드라마 OST만 작곡했는데.
[그래서 제가 이번 미션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드라마 OST 콜라보 미션. 그제야 오스가 OST에 참여한 드라마들이 떠올랐다.
사랑, 유령, 여름, 사극.
그 드라마들의 키워드였다.
[이번에 폐교에서 가져온 카테고리에 맞춰서 곡을 드릴 건데요. 다만, 이번에는 룰 하나가 있어요. 제 곡을 편곡하는 건 허용하지 않겠습니다.]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