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폐교로 떠나요(2)
《폐교에서 일어난 사건》의 내용은 초등학교 시절 자주 들었던 괴담의 내용과 비슷했다.
“우리… 폐교에 가야겠네……?”
주이든은 침을 꿀꺽 삼키며 양팔을 문질렀다.
“그렇지. 내 생각에는 숙소에서 이 쪽지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카테고리를 아예 얻을 수 없었을 것 같아.”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화목현의 말대로 각 항목 밑에 적혀 있는 단어가 카테고리로 추정되었다.
“혹시 폐교를 안 가면……!”
어떤 페널티가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폐교를 안 간다는 건 바보 같은 선택이었다.
“이든아, 그러면 카테고리를 아예 못 받을 수도 있어.”
“…그, 그렇지? 그냥 말해본 거야.”
주이든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났다. 재밌는 사실은, 이번에 유독 눈에 띄는 카테고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얘들아, 마음에 드는 카테고리 있어?”
화목현이 멤버들의 눈을 보면서 물었다.
“난 사극이 좋아.”
가만히 있던 이정진이 의견을 냈다. 나도 사극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사극이라는 컨셉 자체가 뭔가를 보여주기 좋으니까.
“요셉이도~ 사극이 제일 좋은 것 같아. 다른 카테고리는 재미가 없잖아~?”
“저도 사극이 좋은 것 같아요. 이미지 변신에도 좋고.”
뮤지컬 무대로 강렬하게 인상을 남겼기에 다른 무대는 다소 약해 보일 염려가 있었다. 그러나 사극은 적어도 또 다른 인상을 심어줄 수 있었다.
거기다가 노래를 잘 부른다면 더욱 좋은 효과를 낼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사극은 연기가 어느 정도 필요할 텐데~?”
자연스럽게 정요셉이 날 쳐다보았다. 맞는 말이다. 무대에서 쓰는 표정도 연기를 하는 것과 비슷하니까. 하지만 나는 정극 연기를 못할 뿐이지, 무대 연기는 잘할 수 있었다. 진짜로.
“무대 연기는 괜찮아요.”
자신만만한 말투로 말하자 정요셉이 실실 웃었다.
“오~ 우리 막내가 무대 연기는 잘해?”
“네.”
그 말에 멤버들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설마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건가?
“자, 그러면 폐교로 가볼까.”
“아~ 떨린다~”
빨리 카테고리를 고른 다음 편안하게 쉬고 싶었다. 폐교로 가기 위해 몸을 틀 때였다. 시스템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문제 5, 아이돌의 숙명은 무대 연기!
폐교에 들어가서 놀라는 연기 10번을 하시오.
(0/0)
페널티:코피」
이건 문제가 아니라 미션이잖아.
“와악!”
나풀거리는 잡초를 보고 귀신이라고 착각한 주이든이 소리를 쳤다. 그와 동시에 나도,
“와아.”
놀라는 연기를 했다.
[System Error…]
“와아?”
[폐교에 들어가서 놀라는 연기 10번을 하시오. (0/0)]
이 정도 연기면 괜찮은 것 같은데…….
***
‘이든아, 늦게 자면 귀신이 나타나는데 귀신은 사람을 죽이기도 해. 그러니까 일찍 자자.’
어릴 때 엄마의 말을 들은 이후로 나는 귀신을 무서워했다. 아직도 나는 귀신이 사람을 죽인다고 굳게 믿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나는 범나비를 보며 처음으로 귀신보다 사람이 무섭다고 느꼈다.
“와아.”
범나비는 멍한 눈빛으로 입으로만 무섭다고 말하고 있었으니까.
“넌 무섭다고 말할 거면 영혼 좀 실어서 말해라……!”
“그래도 저, 말투는 괜찮지 않나요?”
“…별로거든!”
무대에서는 물 만난 고기처럼 뛰어다니면서 평소에는 어딘가 맹한 구석이 있었다.
“어, 얘들아! 폐교다.”
화목현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으스스한 폐교의 모습에 등골이 쭈뼛 섰다. 차라리 폐가가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폐가는 좁지 않은가.
“이든아, 괜찮아? 우리만 갔다 올까?”
“형, 안 돼. 나 혼자 있다가 귀신한테 홀리면 어떡해?”
“흠… 귀신은 없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아, 화목현은 귀신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던가.
“우리 이든이가 혼자 있으면 무서워서 그런 거 아닐까요~?”
“이든아, 그런 거야?”
“은근 우리 리더는 눈치가 없다니까~”
굳이 그 부분을 콕 집어서 말하다니. 수치심이 들었으나 참았다. 무서움이 수치심을 이겼으니까.
거기에다가 나 때문에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싫었다. 차라리 귀신과 마주쳐서 기절하는 게 낫지.
멤버들한테 민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이든아, 안 갈 거야?”
“가요! 사람이 더 무섭지, 귀신은 안 무서워!”
“그래, 잘 생각했어.”
하지만 아니었다. 사람이 덜 무서웠다.
폐교 자체가 어둡고 오래된 건물이라 곳곳에 거미줄이 많았다. 찍찍하는 쥐 소리까지 났다. 이런 곳을 촬영지로 선택하다니… 정말 싫다…….
“이든아, 뒤에…….”
“아악!”
“거미줄이 있다고.”
“형! 놀리는 거죠!”
“내가 그럴 것 같니?”
“…충분히!”
앞으로 걸어가는 화목현의 어깨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놀리는 거 맞네! 괜히 씩씩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여유 있는 척을 했다. 이러면 방송에서도 좋은 쪽으로 살려주지 않을까.
그때, 커튼 사이로 귀신 분장을 한 사람이 옆으로 빠르게 지나갔다. 눈을 크게 뜬 채 행동을 멈췄다.
“목, 목현 형… 분명 내 옆에 뭐, 뭔가 지나갔는데?”
“이든아, 괜찮아. 아무것도 아니야. 앞만 보고 가자.”
화목현이 날 달래주는 그때, 계단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아아아아악!”
고개를 돌리니 연습생들이 비명을 지르며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하마터면 다른 팀과 부딪혀서 바닥에 깔릴 뻔했다. 그들이 우리한테 크게 소리쳤다.
“너희들… 조심해라……!”
“진짜… 귀신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그들은 폐교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귀신을 조심하라고 한 거지?”
설마… 진짜 귀신이라도 본 거야? 아닐 거다. 믿고 싶지 않았다.
“와, 놀랐다.”
그 와중에도 범나비는 ‘놀랐다’라는 말을 계속해서 하고 있었다.
“범나비, 왜 계속 놀라는 척해?”
“저요? 정말 놀랐어요.”
“아닌 것 같은데…….”
그러다가 이정진이 학교 벽에 붙어 있는 교실 배치도를 발견했다.
“1학년 4반이었지.”
다행히 1층에 1학년 4반이 있었다. 4반의 4번 자리에 뭔가가 있다고 했으니까. 1학년 4반에 도착하자 교복을 입은 학생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4번 자리에 누가 있는데……?”
나는 서둘러 범나비 뒤로 몸을 숨겼다.
“누가 먼저 들어갈래?”
“제가 들어갈게요. 정말 놀라긴 했지만.”
“그래, 나비야. 정말 놀란 것 같지 않지만 먼저 들어가 볼래? 지난번처럼 뭔가가 있으면 가져오고.”
“네.”
고개를 살짝 틀어서 범나비를 쳐다보았다. 얘는 겁이 없나. 놀랐다면서 잘도 들어가네.
“너, 조심해.”
“…예? 조심할게요.”
범나비가 교실 문을 열었다. 근데 트릭이 있었는지, 천장에서 분필 가루가 떨어졌다.
“어……?”
그리고 자리에 앉아 있던 학생이 몸을 일으키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얼굴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
“…우리 반에 왜 왔어?”
“으아아악!”
나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비명을 질렀다.
“카테고리가 필요해? 하지만 직접 줄 수는 없어. 반 어딘가에 있거든.”
학생의 말에 나를 제외한 멤버들은 열심히 반을 뒤졌다.
“…해치지 않을 거죠? 귀신님?”
“그렇죠.”
“봉투는 어디에 있어요?”
그동안 나는 최선을 다해서 학생과 대화했다. 어떤 힌트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숫자가 많은 곳에 있어.”
그리고 힌트를 얻자마자 소리쳤다.
“숫자가 많은 곳에 있대……!”
그 말을 들은 범나비는 숫자가 많은 곳이라면 사물함일 거라며 사물함 쪽으로 달려갔다.
“여기 있어요!”
그렇게 네 번째 칸 사물함에서 카테고리가 적혀 있는 종이를 찾았다. 무서워서 혼났네. 우리 곁으로 온 범나비는 학생을 보면서 물었다.
“그런데 있잖아요.”
“…….”
“저 사물함 쪽에 있는 사람도 스태프 맞죠? 카메라를 들고 있던데.”
학생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라는 뜻이었다.
“어… 분명히 교복을 입은 학생이 또 있었는데……?”
“야… 그 말은…….”
범나비의 말에 분위기가 싸해졌다. 학생은 혼자서 연습생들을 기다렸다고 했다.
“어깨에 닿는 단발머리였어요. 그분이 네 번째 칸에 있다고 했는데…….”
학생은 새하얗게 질리더니 입을 벌렸다.
“나비야, 아마 귀신을 본 것 같은데.”
“…음, 저 괜찮은 걸까요?”
귀신을 봤다는 범나비를 보면서 깨달았다.
“귀신 별거 아니네……!”
귀신도 만난 범나비가 이렇게 쌩쌩하니까. 귀신은 사람을 죽인다는 엄마의 말은 역시 거짓말이었다. 처음으로 귀신에 대한 무서움을 떨쳐낼 수 있었다.
***
【주이든의 친화력이 올라갑니다.】
웃긴 건 주이든의 친화력이 올라갔다는 사실이었다.
「문제 5, ‘아이돌의 숙명은 무대 연기!’ 미션을 실패했습니다.
페널티:코피가 세 번 쏟아집니다.」
결국 시스템이 준 미션을 실패했다. 다행히 페널티는 심각하지 않았다. 고작 코피였으니까.
“폐교에서 나온 연습생분들은 제작진의 지시에 따라 숙소에 배정됩니다. 숙소 지도를 나눠 드리겠습니다.”
알고 보니 첫 번째로 배정받았던 숙소는 단지 폐교로 갈 수 있는 힌트를 얻는 장소였고, 지금 배정받는 게 진짜 숙소였다.
“다행이다! 그 집에서 자야 하는 줄 알았는데!”
“거의 폐가였잖아. 설마 거기서 자라고 했겠어?”
다들 은근히 그 부분을 걱정했던 모양이다. 사실 나도 조금 걱정하긴 했다.
‘…그런 곳에서 자게 된다면 큰일이지.’
벌레가 득실거리는 곳이 숙소였다면 마음 편히 자지 못했을 것이다.
화목현이 숙소 지도를 꼼꼼하게 살펴보면서 말했다.
“어, 우리 숙소는 마을 입구에서 왼쪽으로 가면 나오는 곳이네.”
숙소에 적혀 있는 곳을 따라가자 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우리를 반겨주셨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할머니.”
“어서 와. 폐교에서 많이 굴렀다면서?”
우리가 처음 갔던 폐가는 훼이크였고, 이곳이 진짜였다. 이제 정말로 잘 수 있다는 희망에 몸이 노곤해졌다.
“너희들이 그… 아이돌을 한다는 거지?”
“예!”
“얘들이 아이돌이라는 걸 하러 왔대.”
할머니는 할아버지한테 우리를 소개하면서 방을 안내해 주셨다.
“배고프지?”
“네~ 할머니, 저 배고파서 등가죽이 배에 붙은 것 같아요~”
정요셉이 배를 문지르며 애교를 떨었다.
“그래그래, 내가 밥을 많이 했거든? 먹고 자.”
나는 할머니 옆에 자리를 잡고 밥과 반찬을 옮겼다. 할머니는 손주가 5명이나 생긴 것 같다면서 좋아하셨다.
“저도 할머니 생겨서 기분이 좋아요.”
“그렇게 말해주니까 기분이 좋네, 좋아.”
곧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밥상을 들고 오셨다. 밥상엔 밥과 반찬이 가득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젓가락을 드는데 형들이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그런 말을.”
“나비가 할머니한테는 잘하네.”
“우리한테는 차갑게 대하면서~”
…날 어떻게 보면 저런 말이 나오는 거지? 멤버들의 말에 별 대답을 하지 않고 밥을 입에 넣은 채 오물오물 씹었다.
“차갑다고 느끼셨다면 죄송해요. 그럼 말투를 부드럽게 바꿔볼까요~?”
톤을 부드럽게 바꾸자 썩은 음식이라도 먹은 듯 정요셉의 인상이 안 좋아졌다.
“우리 막내, 평소대로 하자~”
톤을 바꾸는 게 영 별로였던 모양이다.
“나비야, 다시는 그런 거 하지 말자.”
화목현까지 이럴 줄은 몰랐는데. 저렇게 정색하는 거 보니까 앞으로는 안 해야겠네.
***
[페널티가 적용됩니다.]
뜨신 밥도 먹었겠다, 씻고 나와 대청마루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는 중이었다. 하늘은 별이 총총하니 참 예쁜데, 난데없이 코피가 났다.
이게 그 페널티구나. 코피를 닦으려고 휴지를 찾는데 밖으로 나온 정요셉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 막내, 밤이라 추운데 왜 안 자고~”
“아, 잠이 안 와서요.”
“아까는 잠 와서 죽겠다며~?”
페널티 때문에 못 잔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 그저 정요셉이 빨리 방에 들어가길 바랐다. 코피 하나로 오해하면 큰일이니까. 그런데 정요셉이 점점 내 옆으로 다가왔다.
“왜 코를 손으로 막고 있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러자 정요셉이 인상을 찌푸렸다.
“막내야, 손에 피가 묻었는데?”
아, 이런. 들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