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의 1군 가이드-19화 (19/235)

19. 폐교로 떠나요(1)

무인도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돌연프 2화를 시청했다. 혹시나 카메라에 잡힐까 두려워 딸기 담요를 두른 채로.

‘사건사고가 계속 나오네.’

분명 HOR 엔터에서 이서혁 분량을 빼달라고 그랬을 텐데. 그대로 나온다는 건, 이서혁의 영향력이 세긴 한 것 같았다.

그러니 연예계에서 무뢰한처럼 굴었는데도 불구하고 별다른 말이 나오지 않은 거겠지. 이럴 땐 아군이라 다행인 건가.

나는 3화 예고편을 보지도 않고 커뮤니티에서 팬들의 반응을 살폈다.

-범나비 미쳤나 봐 하트 짤을 탄생시켜 주다니 감사합니다

-자주 웃어줬으면 좋겠네

└ 22

자주 웃지 않았던가? 예전에도 팬싸를 진행할 때면 웃어달라는 요구가 많긴 했다. 괜히 손으로 입꼬리를 위로 올리고는 했지.

-ㅋㅋ 언제는 범나비 막내 포지션 싫다고 하더니 지금은 다들 좋다고 빨고 있네

└ ㅇㅈ 원래 그렇잖아

└ 범나비가 본업 못했으면 까는 댓글 많았을 텐데 잘하긴 하잖아 ㅎ

-범나비도 참 영악하다ㅋㅋ 얼굴 잘 활용하네

└ 지금 나비 얼굴 잘생겼다고 하는 거지? ㄱㅅㄱㅅ

안 좋은 반응만 있을 줄 알았는데… 그나마 다행인 건가.

-잘하긴 더럽게 잘하네

└ 좀 짜증 남; 못하면 깔 수라도 있지

댓글에는 전체적으로 욕 같은 칭찬이 많았다. 그래서 마음이 놓였다. 팬들이 마음 편히 날 좋아할 수 있을 테니까.

“우리 막내, 왜 그렇게 한숨을 팍팍 쉬어~?”

“제가요?”

“어~ 땅이 꺼지는 줄 알았잖아~!”

정요셉은 이런 말을 능글스럽게 하면서 내 팔뚝을 쳤다. 아파서 팔뚝을 문지르자 정요셉은 의아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았다.

“우리 막내도 아픔을 느껴?”

“…형, 저도 사람이에요.”

“아, 나는 우리 막내가 AI인 줄 알았지~”

“예?”

정요셉이 내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그 소리에 잠에서 깬 주이든이 우리를 보며 조용히 말했다.

“…너희 둘, 시끄러워. 내가 왜 너희 둘 옆에 앉는다고 해서…….”

“넵~!”

“…네.”

내가 시끄럽게 한 건 아닌데. 바로 주이든의 말대로 입을 다물었는데, 정요셉이 나에게 몰래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뭐야, 이거.’

[돌연프 3화 예고편에서 왕따 논란?]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는 돌아온 가해자 프로젝트인가?]

[수면 밑으로 가라앉은 AA 주이든 VS HOR 연습생의 진실은…]

예고편에서 HOR 연습생이 주이든의 텀블러를 쓰는 장면이 나온 모양이다. 아마 너튜브 인증 댓글이 불을 지핀 것 같았다.

-이든이 HOR 연습생 시절에 내가 소속사에 직접 보낸 텀블러임. 내가 이름 이니셜까지 박았는데… 왜 저게 HOR 애들한테 있는지 모르겠음. 이든이 성격상 텀블러를 줄 애도 아니고. 몇 년을 쓴 텀블러가 HOR 연습생 손에 있다니? 이제 끝난 사이인데 텀블러가 HOR 연습생한테 있다는 건 좀 이상하잖아… (좋아요 4천)

└ 속상하겠다…

└ 어쩌라고? 그냥 빌려줄 수도 있는 거 아님?

└ 어쩌라고야 네 인성도 어쩌라고 HOR 관계자인가 ㅡㅡ

└ 이게 진짜면 인성 개나가리 돌연프에서 탈퇴하셈;

아무래도 돌연프가 HOR 엔터랑 손절을 하려는 것 같은데. 사건사고를 그대로 노출해 주기도 했고.

“우리 막내, 별로 놀라지 않는데~?”

“너무 놀라운데요.”

정요셉이 얄밉게 검지손가락을 흔들었다.

“우리 막내는 연기하면 안 되겠네~”

나는 고개를 돌려서 정요셉을 무시했다. 그때, 핸드폰에 톡이 도착했다.

(알수없음) 이야 세상 재밌게 돌아가지?

(알수없음) 네가 준 영상 HOR 엔터랑 따로 말 안 하고

(알수없음) 돌연프 제작진한테 넘겼다

사건사고의 행동이 맞았네. 저번에 만났을 때 말을 흘리긴 했다. 주이든의 텀블러가 사라졌는데, 그게 HOR 연습생들 사이에 있었다고.

‘…이걸 이렇게 쓸 줄은 몰랐지.’

무섭긴 하네. 여론을 완전히 자기 편으로 만들었으니까. 내가 답장을 하지 않자 계속해서 톡이 왔다.

(알수없음) 범 연락 씹지 마라

그러고 보면 사건사고 덕분에 주이든을 까는 여론도 쉽게 잡았으니. 간단한 감사 인사 정도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범나비) 감사합니다.

(알수없음) 톡에서도 딱딱하네

(범나비) 감사합니다^^

(알수없음) 어 그래;

그 후로는 답장을 안 했다. 나는 핸드폰을 닫고 옆자리에 앉아 자고 있는 HOR 연습생을 쳐다보았다.

‘멍청하네.’

텀블러에 떡하니 주이든 이니셜이 박혀 있는데 팬들이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아니면 HOR 엔터가 뭐든 막아줄 거라고 믿는 건가.

하긴 그 믿음이 아니고서야 할 수 있는 짓은 아니었다. 얼굴에서 딸기 담요를 내리고 몸에 두를 때였다.

버스가 끼익 소리를 내며 멈췄다.

“도착했습니다.”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도착했다고? 같이 버스에 탔던 HOR 연습생들과 개인 연습생들이 의자에서 일어나 어리둥절해하며 바깥을 확인했다.

커튼을 걷자 한 마을이 보였다. 주변에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먼저 도착한 버스에서 연습생들이 내리고 있었다.

“…저, 연습생 여러분?”

방송작가가 당황한 얼굴로 버스에 올라타 말을 꺼냈다.

“스태프가 타던 버스의 엔진이 고장 난 것 같다고 해서… 무인도에는 못 갈 것 같습니다.”

버스 엔진이 고장 났다고? 그것도 이렇게 갑작스럽게?

“그런데 이 근처 마을에도 폐교가 있다고 해서 그곳에서 카테고리를 뽑으려고 합니다. 연습생분들은 버스 밖으로 나와주세요!”

먼저 도착해 있던 제작진이 급히 폐교를 섭외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잠을 자고 있는 연습생들을 깨워서 버스 밖으로 나왔다.

나는 왠지 모를 이상함을 느끼고 마을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벌써 마을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카메라를 발견했다.

‘카메라?’

나는 자연스럽게 정요셉 옆에 다가가 말했다.

“요셉 형, 뭔가 수상하지 않아요?”

“어디가~?”

그러고는 가까운 곳에 설치되어 있는 카메라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카메라가 너무 많잖아요.”

“어~? 그러네.”

“수상하지 않아요?”

정요셉도 내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왠지 미리 섭외해 놓은 곳인데 무인도로 페이크를 친 것 같지~?”

“그렇죠?”

“우리 겁주려고 그런 거네~”

무인도에서 촬영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처음부터 평범한 마을에서 촬영할 계획이었던 것 같았다. 갑작스러운 상황, 버스 엔진 사고. 방송에서 어그로를 끌 수 있는 대목이니까.

‘실제로 기사도 많이 났고.’

제작진 입장에서는 무척 좋은 어그로였다.

“그래도 모르는 척하는 게 좋겠지~?”

“그래야죠.”

실제 상황인 듯한 모습을 보여줘야 카메라에 잘 잡히겠지. 곧 다른 버스를 탔던 화목현과 이정진이 합류했다. 이 상황을 속속히 말하자 화목현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지금 제작진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지?”

“네, 맞아요.”

어쩌면 이 장면조차 찍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연기를 하면 되잖아!”

주이든이 팔짱을 낀 채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우리 연기 연습도 받았잖아. 그걸로 놀라는 척이라도 해보자.”

이정진의 말에 멤버들의 시선이 나에게 모였다.

‘왜 나를 쳐다보는 거지?’

정요셉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우리 막내, 놀라는 연기 한번 해볼까?”

놀라는 연기쯤이야. 눈을 크게 뜨고, 입을 열었다.

“와……!”

그러자 멤버들이 술렁였다.

“막내야, 너 연기 연습을…….”

“음… 나비의 진지한 태도 정도면 되지 않을까?”

“쟤 연기를 전혀 못 하는 것 같던데…….”

“이든아, 나비한테 못한다는 말을 하면 어떡해. 나비가 속상해할 수도 있잖아.”

욕이라면 이미 많이 들었는데요.

그냥 제작진이 하라는 대로 과몰입하면서 진지하게 예능에 임하면 되지 않을까?

‘…내가 연기를 못하긴 하지만.’

주이든은 웃음을 참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든 형, 차라리 웃어요. 참지 말고…….”

내 허락이 떨어지자 정요셉과 주이든이 마을이 떠나가라 웃었다.

“나비야, 너는 연기는 안 해야겠다.”

“…어차피 연기는 안 할 거예요. 노래 열심히 할 거라서.”

원래 연기 영역은 타고난 사람들만 하는 거라고. 그래도 이 정도면 뮤직비디오에 쓸 수 있지 않나? 나는 용기를 내어 말을 뱉었다.

“그래도 연기를 조금은…….”

“막내 연기 못해.”

이정진이 내 말을 막았다.

“정진 형, 저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안 돼.”

나는 억울하다는 듯이 이정진의 팔뚝을 때렸다. 그래도 이정진은 안 된다며 고개를 저었다.

“안녕하세요! 연습생 여러분, 이제 팻말 앞으로 모여주세요!”

MC의 목소리에 우리는 AA 엔터라고 적혀 있는 팻말 앞에 섰다.

“어둡고 칙칙한 곳에서 진행하니까 새롭네요? 원활한 진행을 위해 이렇게 제가 왔습니다!”

“와아……!”

연습생들이 환호를 지르자 MC가 옆에 선 마을 이장님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다행히도 좋은 이장님을 만나서 마을에서 편히 묵을 수 있게 되었답니다.”

“감사합니다!”

이장님은 편안하게 놀다 가라는 말을 남기며 사라지셨다.

“일단 이장님께 받은 마을 지도를 나눠 드릴 겁니다. 각 팀은 지도를 받자마자 확인해 주세요.”

스태프가 준 지도를 확인하자 ‘AA’라는 표시가 보였다. 표시된 곳이 숙소인 건가. 길은 간단했다. 위로 올라가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됐으니까.

“그런데 촬영 감독님을 태운 버스 차량이 아직 오지 않아서 말이죠.”

촬영 감독님이 촬영을 하지 않는다면……? 그때 MC가 액션 캠을 꺼내 들었다.

“그러니 이걸로 잘 찍어주세요!”

아, 액션 캠으로?

“자, 액션 캠을 받으셨다면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집으로 가주세요.”

이제 표시되어 있는 집으로 가면 된다는 거지. 일단은 버스에서 가방을 꺼내 멤버들과 회의를 했다.

“일단 표시되어 있는 집으로 가볼까~?”

정요셉이 능글스럽게 말했다.

“야, 범나비.”

멤버들을 따라가려는데 주이든이 나한테 말을 걸었다.

“왜요?”

“너도 무서움을 느껴?”

“…저도 무서움을 느끼는 편인데요.”

“아닌 것 같은데.”

나를 기계라고 생각하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나 역시 무서움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건 왜 물어본 거예요?”

“…옆에 좀 있자!”

주이든은 마을에 불빛이 없어서 무서움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주쫄이라는 별명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주변에서 작은 소리가 나면 주이든은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질렀다.

멤버들이 오른쪽으로 방향을 꺾자 집 하나가 보였다.

‘저기네.’

집 앞에 AA라고 표시되어 있는 팻말이 있었다.

“얘들아, 들어갈까?”

어두컴컴한 집을 보자마자 각자 핸드폰으로 손전등을 켜서 앞을 밝혔다. 보아하니 숙소인 것 같긴 한데…….

“…여기가 맞겠지?”

“귀신보다는 벌레가 나올 것 같은데…….”

영 머무를 만한 곳이 아니었다. 거의 폐가나 다름이 없어서.

“얘들아, 내가 안에 들어가서 확인해 볼게.”

“목현아, 같이 가.”

화목현과 이정진이 집을 탐방하러 간 사이, 액션 캠을 든 정요셉은 이 상황을 재밌게 풀어내고 있었다.

“우리 이든이, 이 숙소에서 잘 수 있을 것 같아~?”

“…못 자. 절대 못 자.”

주이든은 이런 숙소에서는 절대 못 잔다면서 고개를 힘차게 저었다.

“우리 막내는~?”

“잘 수 있어요.”

“…정말?”

정말이었다. 잠이 부족할 상태라 집에 벌레가 득실거려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벌레 때문에 병에 걸린다면 방송에서 어떻게든 보상해 주겠지.

오로지 마당에 깔린 잔디가 바람에 부딪히는 소리만 적나라하게 울렸다. 잠시 뒤, 집을 둘러보던 화목현과 이정진이 나오더니 봉투를 보여주었다.

“안에서 봉투를 발견했어.”

봉투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라고 적혀 있었다. 돌연프 측에서 준비해 놓은 봉투네.

“열어본다?”

화목현이 봉투를 열었다. 거기에는 흰색 한지에 붉은색으로 글씨가 적혀 있었다.

《폐교에서 일어난 사건》

1. 자정이 되면 이순신 동상이 움직인다

-사랑

2. 미술실에서 유령이 돌아다닌다

–유령

3. 2층 복도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여름

4. 새벽 4시 44분 1학년 4반 4번 책상에서 귀신이 공부하고 있다

-사극

주의 : 이 학교는 뒷문으로 나와야 귀신에게 당하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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