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두 번째 무대(2)
HOR 연습생들의 무대가 끝났는지 순위가 공개되었다.
『1위 : FG 엔터
2위 : AA 엔터
3위 : HI 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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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위 : HOR 엔터』
나는 침을 삼키며 머리를 굴렸다. 이거, 약간 공개 처형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돌연프는 무대 순위보다 온라인 투표로 뽑는 개인 순위 비중이 더 크기에 무대 순위가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개인 순위는 FG 엔터보다 우리가 더 높으니까, 앞으로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나비야, 대기실 가자.”
“아, 네.”
일단은 대기실에서 기다리면서 커뮤니티를 확인해 봐야겠는데.
***
물론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1위를 하면 나쁠 건 없다. 화제성을 잡는 데는 무척 좋으니까. 하지만 1위를 하는 순간, 온라인 투표의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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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돌연프 보고 옴ㅋㅋㅋ
이남주 잘생김
화면이 이남주를 못 담음
이남주가 독보적인 센터라서 FG 다른 멤들은 별로려나 싶었는데
실제로 보니까 괜찮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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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A 연습생은?
└ 잘함… 나도 방청객(인증샷)
└ 진심? 범나비 못한다고 그렇게 깠잖아
└ 못하긴 존나 잘해서 놀랐음ㅋㅋㅋㅋ
-남주야 우리는 너만 보고 있다 잘했으면 좋겠어ㅠㅠㅠ
└ 솔직히 남주 AA 엔터에 있으면 멤버들끼리 합도 좋을 텐데 ㅋㅋ
└ 나도 그렇게 느낌
└ 남주랑 AA 연습생들이랑 같이 있는 모습? 사진 올라왔는데 어울리더라…
└ 아쉽다… ㅇㅈ
-내가 보기엔 범나비가 제일 별로던데ㅋ
└ 왜 그렇게 생각해?
└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데 이유가 있음?
└ 아니 이유가 있으니까 댓글을 달았겠지;;
└ 개인마다 기준이 있잖아 내 눈에는 제일 별로였다고~
-엥 난 이남주가 제일 별로던데ㅋㅋㅋㅋ 얼굴만 믿고 노래 실력은 꽝인 거 다들 잘 알지 않나?
└ 범나비 욕먹을 짓은 팬이 다 하죠?
└ 팬 아님 ㄴㄴ
└ ㅋㅋㅋㅋㅋ예예
└ 생각의 차이지; 댓글 반박 존나 웃기네
└ 응 우리 남주 AA 엔터 보컬 대회에서 1등 했어~
-슬슬 온라인 투표 FG 연습생들 순위 내려가는 거 봐ㅋㅋ
커뮤니티에서 이미지가 좋던 이남주도 1위를 하는 순간, 개인 투표 순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커뮤니티를 끄고 고개를 들자, 정요셉이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요셉 형?”
“나비는 놀라지도 않네~? 재미없게.”
사실 조금 놀랐다. 정요셉이 놀릴 것 같아서 침착하게 대응한 것뿐이지.
“우리 막내는 뭘 그렇게 열심히 봐?”
“그냥 모니터링이요.”
“모니터링? 우리 막내도 모니터링해~?”
그러면서 내 옆자리에 앉으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남주 개인 팬덤이 워낙 강해서 걱정하는 거 맞지~?”
“…어, 그건…….”
“뭐, 아니라고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우리 막내가 워낙~ 감정 읽기가 쉬워서 말이지~”
그렇게 쉬웠나. 나는 괜히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아직 2위는 안정권이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자~”
“…아, 감사합니다.”
“아? 지금 형이 조언하는데 ‘아’라고 한다고~?”
“아니, 형. 그게…….”
작은 감탄사인데. 정요셉이 장난치듯 내 멱살을 잡으면서 눅눅했던 분위기를 풀어주었다. 그런 정요셉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자 I.P 선배님이 대기실 문 앞에 계셨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선배님!”
“오늘 무대 잘 봤어요. 나보다 잘하던데요?”
“I.P 선배님의 노래가 워낙 좋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역시 리더. 말이 청산유수다. I.P 선배님은 화목현의 칭찬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제 노래가 좋긴 하죠?”
“당연하죠! 선배님 덕분에 저희가 무대 순위 2위를 했습니다~!”
능글맞게 I.P 선배님의 말에 대답하면서 정요셉은 활짝 미소를 지었다. 한순간에 분위기를 띄우는 것도 재주인 것 같다.
“근데… 사실 제가 여기 온 목적은 범나비 연습생을 보기 위해서예요.”
“나비를요?”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부탁도 있고.”
나를? 그 말에 나는 화목현을 쳐다보았다. 화목현은 갔다 오라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항상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형들에게 물어보아야 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무대 정말 잘 봤어요.”
“…아, 무대요. 열심히 했습니다.”
I.P 선배님이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혼내려고 그러는 건 아니고. 몸은 괜찮은지 궁금해서.”
“…아, 몸은 괜찮아요.”
다행히 옆구리는 아프지 않았다.
“근데 무슨 일로 저를 부르셨어요?”
I.P 선배님은 이렇게 사적으로 불러내서 이야기할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의심하기 시작하자 I.P 선배님이 내 어깨를 꽉 잡았다.
“다른 게 아니라, 나중에 피처링해 줄 수 있어요?”
“…네?”
“이번 해에 음반을 하나 내거든요. 수록곡 중에 범나비 연습생 목소리 톤이랑 어울릴 것 같은 노래가 있는데… 어때요?”
I.P 선배님이 직접 나한테 피처링 제안을 하다니. 영광이었다.
“저는 감사할 뿐이죠.”
I.P 선배님의 노래를 피처링한다는 것은 성공 보증 수표를 잡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분명 아이돌 커리어에 좋은 영향이 될 것이다.
“수락해 주는 거예요?”
“당연하죠.”
“별 반응이 없어서 거절하는 줄 알았어요.”
수락이 아니라 이건 위에서 못 한다고 말려도 해야만 했다. 이렇게 I.P 선배님과 인연이 이어지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팀장님한테 말하고 연락드릴게요.”
“아, 좋다. 평가하는 건 쉬운데 피처링 부탁하는 건 힘드네요.”
I.P 선배님은 좋은 인연으로 다시 보자면서 돌아가셨다. 다시 연습실 안으로 들어가자 주이든이 날 응시했다.
“선배님이 뭐래?”
“다음 앨범 낼 때 한 곡 피처링해 드리기로 했어요.”
“정말? 정말 그것뿐이지?!”
“네, 그것뿐이에요.”
주이든은 다행이라는 듯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혹시 나쁜 제안을 할 수도 있으니까. 연예계는 무서운 곳이거든!”
“…아, 그런 거라면…….”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경계하자.”
저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주위를 경계할 필요성은 있지.
“무대 위로 올라갈게요.”
***
카메라가 돌아가고 MC가 마이크를 쥐었다.
“연습생 여러분, 프로님들과 만난 무대는 만족스러웠나요?”
“네!”
활기찬 연습생들의 목소리에 MC는 웃음을 참았다.
“이상하다? 무대는 마음에 안 든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MC의 태도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번 무대 점수와 다음 무대 점수를 합산해서 무대 순위가 매겨진다고 합니다.”
뭐?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연습생들이 웅성거리자 MC가 팔짱을 끼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악독하네.’
다음 무대에서 열심히 한다고 해도… 꼴찌는 1위를 받지 못하면 탈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MC가 고개를 들어 모니터 화면을 쳐다보았다.
“현장 투표로 개인 순위와 팀 순위를 매길 예정입니다.”
온라인 투표도 모자라서 현장 투표까지……? 이러면 순위가 이미 높은 팀에게 유리하다는 조건이 붙는 거나 다름이 없잖아.
개인 순위가 낮은 연습생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렀다. 나 역시 개인 순위가 낮았다. 나 때문에 팀이 위협을 받을 수도 있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다음 무대에서 좋은 무대를 선사한다면, 개인 순위와 팀 순위가 올라가지 않을까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 좋은 무대를 보여준다고 한들, 이미 팬덤이 형성되지 않았는가. 약간 머리가 아파지려고 하는데.
“다음 세 번째 무대를 보여주기 위해서!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카테고리가 필요하겠죠?”
이번에는 카테고리를 어떻게 찾을까 싶었는데 모니터 화면이 켜지더니 한국 지도가 나왔다. 지도는 계속해서 확대되더니 이내 한 무인도가 보였다.
“이번에 카테고리를 찾을 곳은, 무인도입니다!”
…무인도? 무인도라는 말에 주변이 술렁거렸다.
“무인도?”
“설마 무인도에 간다고?”
진짜로 무인도에 갈 심산인지. 연습생들에게서 곡소리가 나올수록 카메라 뒤에 있는 PD와 방송작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지난번에도 카테고리를 직접 찾도록 했는데, 이번에도 똑같이 무인도에서 카테고리를 찾아야 한다는 거네.
카테고리를 찾는 건 비슷한 패턴이겠지만, 장소를 다르게 하면 확실히 재밌지. 더군다나 무인도라면 어떤 상황이 닥쳐올지 누가 알겠는가.
“여러분, 무인도가 무섭나요?”
“아, 아니요!”
“무서워요……!”
솔직한 연습생들의 대답에 MC가 사악한 미소를 띠었다. 이윽고 모니터 화면이 빨갛게 물들고 조명이 붉어졌다. 무인도 컨셉도 공포인가?
“어? PD님, 갑자기 조명이 붉어졌는데요?”
MC가 당황하면서 PD에게 물었다. PD도 당황했는지 상황을 파악했다.
“무슨 일이야?”
“…그, 그러게.”
갑작스러운 상황에 연습생들은 덜덜 떨었다. 하필 무인도에 간다고 해놓고는 이런 상황이 일어나다니.
그런데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지 진행은 붉은 조명인 채로 계속되었다.
“이곳으로 말하자면 사람들이 떠나면서 무인도가 된 곳인데요. 이곳에 가면 폐교가 있을 겁니다.”
“폐교?”
아예 공포 컨셉으로 가겠다는 거네. 무섭지는 않다만.
“그리고 그곳에서 카테고리를 찾을 예정입니다. 규칙은 전과 똑같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규칙이 있는데… 바로 카테고리를 골라도 어떤 노래인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이번에는 어떤 노래인지 알 수가 없다.
“노래에 대한 정보는 중간 순위 발표가 끝나고 말해 드릴 예정입니다.”
…그렇다면 상관은 없지. 그런데 폐교라는 말을 들은 주이든의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주이든 연습생?”
“네?!”
“혹시 귀신이 무섭나요?”
MC의 질문에 주이든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때, 귀신 분장을 한 스태프가 주이든 앞에 나타났다. 주이든은 비명을 지르더니 내 뒤로 숨었다.
이 장면을 위해서 귀신 이야기를 꺼낸 건가. 나는 귀신 분장을 한 스태프에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귀신 스태프는 조금 당황하더니 내 인사를 받아준 뒤, 그대로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MC가 바지 주머니에서 호루라기를 꺼내더니 크게 불었다.
삐이이이이-!
그 소리에 모든 연습생들의 시선이 MC에게로 향했다.
“연습생 여러분! 이제부터 기숙사로 가시면 됩니다!”
“네?”
“빨리 기숙사로 가셔서 짐을 챙겨주세요!”
아… 무슨 위기 탈출 프로그램 찍는 것 같은 느낌인데. 그나마 짐 챙기라는 말을 해줘서 다행이었다. 그것도 없으면 맨몸으로 무인도에 가는 거니까.
“단, 짐을 챙길 수 있는 시간은 30분입니다!”
MC가 무작정 기숙사로 달려가는 연습생들을 향해 말했다.
“30분이요?”
“30분은 너무 짧은 거 아니야?”
기숙사로 가는 시간과 짐을 챙기는 시간을 합해도 30분은 짧았다. 하지만 나는 괜찮았다. 어차피 챙길 건 보부상 가방밖에 없었다.
“그리고 30분 안에 버스에 못 타는 연습생은 짐을 빼앗기게 됩니다.”
이런, 벌써 마음이 아프네. 나는 천천히 걸어가면서 동태를 살폈다. 혹여나 연습생과 부딪혀서 몸이 상하면 안 되니까.
“재밌겠다~”
정요셉의 반응에 주이든은 날카롭게 인상을 썼다.
“재밌냐? 폐교에 간다는데.”
“폐교가 무서워봤자 얼마나 무섭겠어?”
무서울 수도 있다. 아무래도 무인도에 있는 거니까…….
“나비야, 만약 진짜 귀신을 만나면 어떡할래?”
귀신을 만나면?
“아무래도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부터 해야겠죠?”
아니면 ‘잘 부탁드립니다’라든가. 근데 설마 진짜 귀신을 만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