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두 번째 무대(1)
바로 첫 번째 무대가 진행됐는데 이백수는 무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생각보다 별론데?’
심지어 연습생들 얼굴이 못생겨서 호응도 없었다. 역시 요즘은 못생겨도 쉽게 데뷔하는 시대인가? 그래도 예전에는 얼굴이 안 되면 실력이라도 좋았는데.
다음 무대는 이남주가 소속된 FG 엔터와 HI 엔터. 아쉽게도 두 그룹 다 이백수가 좋아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특히 FG 연습생들은 더더욱.
“FG 엔터가 고른 카테고리는, 청량이네요?”
“네, 청량이 좋아서요.”
청량은 잘하면 레전드지 않나. 이백수는 이남주의 얼굴을 담기 위해 카메라 녹화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카메라 화면에 담긴 이남주의 얼굴을 보자마자 순수한 감탄이 나왔다.
‘잘생기긴 했네…….’
왜 이남주가 돌연프 개인 투표 부동의 1위를 차지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남주도 팬 서비스가 장난이 아니었다. 자신을 찍고 있는 카메라를 쏙쏙 뽑아서 인사를 해주었으니. 쟤 인생 2회 차 아니야?
“그럼 FG 엔터의 무대가 시작됩니다!”
이남주의 얼굴을 보고 레전드 무대가 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건, 센터의 중요성이다.
“무대가 재미가 없냐.”
“연습생들이잖아. 데뷔한 애들이 아니라.”
“그래도 지루해. 얼굴이라도 잘생겼으면 몰라.”
이남주의 무대가 끝나고 계속 지루한 무대가 진행되며 여기저기에서 불만이 터졌다. 이백수도 마찬가지였고.
“다음 무대는 카테고리 ‘비극’을 고른 AA 엔터와 HOR 엔터입니다! 힘찬 박수로 맞이해 주세요!”
무대 밑에서 대기하고 있던 AA 연습생들과 HOR 연습생들이 올라왔다. 근데 아무리 같은 카테고리라도 컨셉은 다를 법도 한데. 이백수의 눈에는 두 그룹이 같은 컨셉으로 보였다. 돌연프를 안 봤다면 두 그룹을 한 그룹으로 볼 가능성도 있었다.
“AA 연습생들부터 자기소개를 해볼까요?”
친구가 좋아하는 화목현이 말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AA 연습생 화목현입니다.”
“목현아!”
일단 찍어야 한다. 촉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이번 무대는 진짜라고. 뒤에서 들려오는 함성이 그걸 인증해 주고 있었다. 이백수가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 와중, 범나비와 눈이 마주쳤다. 범나비는 입모양으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이런 미친… 욕하고 싶지 않았는데… 범나비가 인사해 줬잖아. 이백수는 미칠 노릇이었다. 팬 서비스 별로일 것 같았던 멤버 1순위인 범나비가 팬 서비스 잘하는 멤버 1순위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범나비는 쑥스러운 듯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쳐다보는 팬들과 인사했다.
“…나비가 손을 흔들어!”
“범나비 실제로 보니까 존나 잘생겼다…….”
옆에서 들려오는 감탄 어린 말들을 모두 인정했다. 나비는 존나 잘생겼다. 얼굴에 무난하게 상처만 만들었는데도 날티 나는 범나비의 얼굴과 잘 어울렸다.
‘미친, 미친, 미친……!’
차분했던 이백수의 머릿속이 흥분으로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보니까 미치도록 잘생겨서.
“그럼 AA 엔터의 무대가 시작됩니다!”
MC의 말이 끝나자 무대의 조명이 꺼졌다. 뒤이어 이백수의 귀에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이거 죄인 아니야?”
“죄인인데.”
그 유명한 죄인?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I.P’라고 말하면 바로 ‘죄인’이라고 답할 만큼 유명한 노래였다. 유명한 노래는 그 자체로 워낙 뛰어났기에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힘들었다. 이건 모 아니면 도인데.
-끼익.
자동차 브레이크 소리가 나고 정요셉이 차에서 내렸다. 피지컬이 좋다.
-어, 찾았어. 어딘지.
정요셉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오른쪽에서 깡패 분장을 한 댄서가 튀어나오더니 정요셉에게 주먹질을 했다.
주변에서 터져 나오는 함성 소리에 이백수도 덩달아 소리쳤다.
댄서가 무대에서 쓰러지고, 정요셉이 방청객이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만 찾아오라며
왜 너는 나를 찾고 있는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네가 보낸 편지를 꺼내
붉은 조명이 내려와 정요셉을 거두자, 푸른 조명이 화목현을 비췄다. 화목현이 입가를 닦으며 편지를 읽는 것처럼 노래를 불렀다.
-마지막 남은 편지가
널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애절한 목소리가 심장을 울렸다. 컨셉이 느와르라고 하길래 연인을 구하는 퍼포먼스를 할 줄 알았는데 완전히 오산이었다.
-No more more (Oh-oh)
No more more (Oh-oh)
텅 빈 잔이 너인 것처럼
허겁지겁 입은 물을 뱉으며
앞으로 발을 차는 군무와 동시에 하안 조명이 확 켜졌다. 중심에서 범나비가 원키로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 원키로 부르기 어렵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범나비의 표정은 평온했다.
-분명 잔을 채웠지만
너는 사라지고 없어
피아노 선율이 빨라지다가 멈췄다. 범나비의 환했던 표정이 무표정하게 바뀌자 하얀 조명이 주이든을 가리켰다.
-날 버려도 좋아
네 옆에 있고 싶으니까
네 손길, 네 눈짓 사랑스러워서
아직도 마음에 두고
살아가려고 해
주이든이 고글을 올리며 입꼬리를 내렸다. 그 순간, 음악이 끊겼다. 그리고 주이든의 조용한 음색이 무대를 뒤덮었다.
-my heaven
우리의 추억을 떠올려
무미건조한 표정을 지으며 속삭이듯 말하는 부분이 끊겼다. 주이든이 무릎을 꿇는 순간, 범나비의 중후한 목소리가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
-너의 죽음까지 사랑해---
범나비가 고백하는 부분에서 셔터를 누르던 이백수의 손가락이 멈췄다. 2단까지 올라가는 범나비의 고음을 감상해야 했기에.
마치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처럼 범나비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그 애절한 모습에 이백수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기다려 줄래?
다음 생을
끊겼던 피아노 선율이 다시 시작되면서 영상 하나가 켜졌다. 1인칭 시점으로 무덤에 꽃을 놓았는데, 묘비에는 ‘정요셉’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미 죽었던 거였어?’
초반에 붉은 조명이 정요셉에게 내려앉은 이유는 그가 죽어서 그랬던 거였다. 뒤늦게 그 의미를 깨달은 이백수는 어떤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와아아아……!”
방청객의 함성 소리에 인사하는 AA 연습생들의 목소리가 묻힐 정도였다. MC가 감탄하며 정요셉에게 물었다.
“묘비에 정요셉 연습생 이름이 있네요?”
“네, 원래 투표를 통해서 나비가 그 역할을 하기로 했는데… 나비는 나이가 어리니 차라리 밥을 더 먹은 제가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제가 했습니다.”
흥분했던 방청객들이 웃었다.
“인사하고 내려갈까요?”
“저희 무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프로님들은 저희를 뽑아주실 거라 믿습니다~?”
범나비는 무대에서 내려갈 때 관객석을 보며 한 번 더 허리를 숙였다. 범나비가 내려가자 이백수는 카메라를 확인했다. 얼마나 찍었을까.
‘…범나비가 제일 많네?’
친구한테 어떻게 설명하지. 화목현 많이 찍고 오라고 했는데, 범나비를 제일 많이 찍었다.
“어쩔 수 없지.”
그리고 여운을 식힐 겸, 다음 무대를 봤지만 한숨만 나왔다.
“HOR 연습생들 잘한다고 언플하지 않았냐?”
“그러게?”
“진짜 오합지졸인데… 노래를 못하네.”
HOR 연습생들의 무대는 엉망이었다. 음 이탈, 안무 실수, 긴장한 게 역력해 보이는 가사 실수까지.
앞서 AA 엔터 무대를 봐서 그런지 별다른 감동이 없었다. 다들 얼굴도 못생겼고. 범나비 얼굴만 계속 생각났다.
‘잠깐만… 나 얼굴을 좋아했나?’
그때 이백수는 알아차렸다. 얼빠 기질이 있다는 사실을.
***
와,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릴 뻔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무대 중압감에 아직도 심장이 뛰었다.
“얘들아, 잘했어. 차분하게 잘했어. 정말 잘했어…….”
“혀어엉!”
정요셉이 화목현을 끌어안으며 코를 훌쩍였다. 방청객이 있는 무대는 처음이었으니까, 감격할 만도 했다. 나도 그랬고.
“아, 진짜……!”
긴장했었는지 주이든의 어깨도 들썩였다.
“우리 이든이, 울어~?”
“…안 울어!”
“그래, 울지 않는다고 하지만 우는 이든이. 알지, 알지~”
화목현도 울컥했는지 눈가에 살짝 눈물이 고였다. 나는 감동의 물결을 접어두고, HOR 연습생들의 무대를 지켜보았다.
‘망했네.’
연습실에서 자기들끼리 자화자찬할 때는 언제고. 무대를 엉망으로 하다니. 이래서 업보는 돌아온다는 건가.
【주이든의 친화력이 대폭 올라갑니다. F → D】
【주이든의 상태:(´∇ノ`*)ノ】
※트라우마에서 벗어납니다.
덩달아 주이든의 친화력 스탯도 올랐고. 트라우마에서도 벗어났다.
“나비야, 조명 아이디어 좋았어.”
소박한 아이디어였다. 붉은빛은 죽음, 푸른빛은 과거, 하얀빛은 유령이라는 뜻이 담겨 있는. 그렇게 표현하면 무대의 이야기를 잘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형들이 돋보이는 무대가 아니라서 완벽한 아이디어라고 할 수는 없죠.”
그러자 화목현이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비는 은근 칭찬에 약하구나.”
“…네?”
“칭찬은 칭찬으로 받아야지?”
칭찬? HOR 연습생들의 무대를 보면서 칭찬에 대한 기억을 찾아봤다. 그동안 칭찬받은 적이 있었던가? 칭찬을 받아도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짓눌려 살았던 것 같은데…….
“그럴까요.”
칭찬은 칭찬으로…….
“오, 무대 진짜 잘한다~”
“…그렇죠?”
“저렇게 잘하니까~ 우리가 밀리는 거 아니겠어?”
정요셉이 HOR 연습생들의 무대를 보면서 영혼 없는 감탄을 터트렸다. 생글거리는 이 녀석의 눈을 보라. 이건 칭찬이 아니라, 한 방 먹이고 있었다. 비하인드 카메라가 돌고 있으니 독설은 못 하겠고, 저렇게 먹이겠다?
사실상 제일 무서운 사람은 정요셉이라니까.
자신의 편인 자는 무조건적으로 품으면서, 자신의 편이 아닌 자는 가차 없이 선을 긋는다. 그래서인지 멤버 중에서는 정요셉이 제일 편했다.
“저도 잘한다고 느끼고 있어요.”
“그렇지? 저 동작은 예술이다.”
“정말 예술이네요.”
물론 나도 잘 먹일 수 있었다. 정요셉이 웃음을 참는 것처럼 헛기침을 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무대가 잘 안 보여서~”
“맞아요. 밑에서는 잘 보이질 않네요.”
마지막에 무대가 안 보인다고 하는 것까지. 안정적으로 먹일 수 있었다.
“이제 점수 확인하러 갈까?”
“그러죠.”
마지막 무대인지라 무대 밑에서 기다리고 있는 연습생들을 지나쳤다.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이남주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무대 잘하던데요?”
“감사합니다.”
얜 뭐가 그렇게 궁금하길래 계속 말을 거는 거야. 특히 부담스럽게 나를 좇는 시선에 기분이 이상했다.
“그 조명, 범나비 연습생 아이디어였어요?”
초롱초롱한 이남주의 눈빛에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아이디어를 내긴 했어요.”
“…역시. 범나비 연습생 아이디어 같았어요.”
이남주가 쉴 새 없이 말하자 화목현이 내 어깨를 잡고 뒤로 당겼다.
“남주야,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나중에 보자.”
“아, 형. 그래요.”
화목현이 대화를 끊었더니 이남주의 표정이 굳었다. 사이가 좋았다고 하지 않았나. 그대로 화목현은 내 뒷덜미를 잡고서 점수판이 있는 장소로 향했다. 이미 다른 멤버들은 점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우리 점수 확인할까……?”
화목현이 제일 떨고 있었다. 아니다. 주이든이 제일 떨고 있을지도.
“아, 떨려. 우리 점수 낮으면 어떡해?”
“우리 이든이,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구나. 그런 불길한 소리는 하면 안 돼요~!”
이정진도 떨리는지 내 어깨를 꽉 잡았다. 오직 나만이 걱정 없이 점수판을 보고 있었다.
『팀 점수 / 심사 위원 점수
345 / 94
합계 439점
현재 2위』
현재 2위라고? 그럼 1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