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범나비 셀카 인증
그렇게 우리는 비극 카테고리를 얻기 위해 QTQ 방송국에 왔다.
“무섭다~?”
“귀신 나올 것 같아……!”
QTQ 방송국에는 음산한 기운이 맴돌았다. 귀신이 나와도 놀랍지 없을 정도로. 멤버들은 무섭다면서 몸은 성실하게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얘들아, 여기 지도에 보면 비극 카테고리는 2층에 있대.”
“그럼 2층으로 가자.”
화목현이 올라가자고 눈짓을 주자 주이든이 벌벌 떨었다.
“형, 형! 조금만, 조금만 천천히.”
“천천히 가는 중이잖아.”
2층에 올라오자 하얀 도복을 입혀놓은 마네킹이 있었고, 전체적으로 공포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귀, 귀신이 나오려나?”
“정요셉, 세상에 귀신이 어디에 있어!”
“나올 수도 있지……?”
무서움을 전혀 느끼지 않는 것처럼 굴던 이정진도 핏자국을 보고서 주춤했다. 탱커가 움직이지 않으니 뒤에 따라오던 멤버들도 걸음을 멈췄다.
“…정진아?”
“…….”
“무섭구나.”
그나마 화목현이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주변을 살폈다. 다른 그룹이 오면 비극 카테고리를 빼앗길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제가 먼저 갈게요.”
“우리 막내가 대단하네~ 먼저 앞으로 나선다고 그러고.”
대단하다면서 내 팔을 잡고 끌어안는 건 뭐지? 정요셉이 싱긋 웃으면서 빨리 가라며 재촉했다.
“나, 나만! 뒤에 있잖아!”
뒤에서 달려온 주이든이 내 오른쪽을 차지했다. 어차피 세상에 귀신은 없는데 무서움을 느껴봤자.
“앞에 피가 있는데~?”
“피요?”
갑자기 장르가 확 바뀌었다. 피는 공포가 아니잖아. 스릴러지.
“진짜… 피는 아니겠죠?”
“나비야, 돌연프는 전체관람가야.”
하긴 15세 관람가도 아니고.
“이 길로 가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주이든은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비쳤다. 하긴 카테고리가 없는 꽝인 방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가라고 해놓은 곳을 안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안 가면 손해 같은데요.”
“…흠, 맞아. 오지 말라고 해놓은 장치는 아닐 테니 가보는 게 맞는 것 같아.”
화목현의 허락이 떨어졌다.
“제가 먼저 가볼게요.”
내 말에 멤버들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막내, 믿어~”
“힘내라!”
앞으로 가는 건 쉽지. 핏자국을 따라서 걸음을 옮기는데 복도 끝에서 핏자국이 끊겼다. 그 끝엔 두 개의 문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여기로 들어가는 것 같은데?”
“…어, 팻말이 있어.”
그 앞에는 ‘카테고리를 얻는 방’이라는 팻말과 하나의 문만 고를 수 있다는 경고 문구가 있었다. 헷갈리게 해놨네.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무작정 문을 열고 들어가면 비극 카테고리를 획득하는 데 실패한다.
문 틈새에 눈을 대자 방 안의 침대에 피 흘리고 있는 마네킹이 누워 있었다. 그 마네킹의 손에는 종이가 들려 있었고.
저건가.
“나비야, 안에 뭔가 있어?”
“피를 흘리는데요.”
“피를 흘려?!”
마네킹이 피를 흘린다고 뒷말을 이었으나 멤버들의 목소리에 의해 묻히고 말았다. 그렇게 문고리를 잡고 열자마자,
“와……!?”
“으악!”
멤버들이 소리를 질렀다. 그때 얼굴이 하얗게 질린 주이든이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러면서 주이든이 침대에 누워 있는 마네킹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깜, 깜짝 놀랐잖아! 왜 말 안 했어!”
“…말하긴 했어요.”
내 말이 무참히 씹혔을 뿐이지. 침착하게 마네킹의 손에 들린 종이를 가져와 펼쳤다.
<비극>
그리고 멤버들한테 보여주었다.
“비극 카테고리 얻었어요.”
“…나비야, 잘했어.”
“우리 막내는 무서움이 없나 봐~?”
그렇게 종이를 들고 근처에 있던 방송 작가에게 건넸다.
“AA 소속사 성공!”
다행히 성공이라는 답변을 얻었다.
***
《돌연프_최종_최종본》
너튜브에 돌연프 최종본 영상이 올라왔다. 그것도 1분짜리 영상이. 썸네일에는 검은색 바탕에 ‘돌연프 기대해 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 영상이 커뮤니티에 올라오자 시청자들은 불안했다. 혹시 제작진이 다른 일을 꾸미는 건 아닐까 싶어서.
-이 영상 뭐임?
-갑자기 최종본을 올린다고?
-뭔데뭔데 사람 불안하게
불안도 잠시. 영상을 확인한 시청자들은 놀라고 말았다. 첫 시작이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AA 연습생들이었기 때문에.
[겁쟁이 4명과 덤덤이 1명]
-나비 직진 나비야? 계속 앞으로 가ㅋㅋㅋㅋㅋㅋㅋ
-화목현 얼굴 왜 하얗게 질림ㅋㅋㅋ? 무서워하는 모습은 귀엽다
-이남주 덜덜 떠는 모습 졸귀ㅋㅋ
└ 700…….
└ 이남주 귀신을 무서워하다니… 귀신을 꼬실 것 같은데…
-나비… 겁도 없네?
└ 막내를 앞에 두고 ㅋㅋㅋㅋㅋㅋㅋ 형들은 무서워서 뒤에 있고ㅋㅋㅋㅋ
-[나비야, 겁이 없네?] 자막 개웃김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나비야 나비야 어디로 가니?]ㅋㅋㅋㅋㅋㅋㅋ
└ 제작진 진짜 당황했나?ㅋㅋㅋㅋ
└ 하긴 막내가 놀라지 않는 게 의외긴 하지?
-애들 많이 친해졌네ㅋㅋㅋㅋ 정요셉 주이든 귀엽고
└ ㄱㄴㄲ 애들 친해져서 보기 좋아 ㅠㅠ
그러다가 범나비와 이남주가 같은 길을 선택하고 방에 들어가는 모습이 겹쳐지면서 영상이 끊겼다.
-뭐야? 이러고 끝임?
-아니 다른 애들은 평화롭게 가는데 저 길만 저러냨ㅋㅋㅋㅋ
-금금이는 탱고 추고 난리던데…
-진짜 평탄하지 않아… 나비야…
채팅창에 올라온 ‘다음 주 돌연프를 기대해 주세요’라는 제작진의 안내에 온갖 커뮤니티에 의문 담긴 게시물이 올라왔다.
-내 지인이 나비 편의점에서 봤다는데? ㅅㅂ
***
돌연프 3화를 촬영하기 전, 하루 동안의 휴가를 받았다. 가방을 챙겨서 복도로 나왔더니, 멤버들이 복도에 일자로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궁금했나?
“나비야, 어디 가?”
“집이요.”
“집?”
엄마가 보고 싶었다. 회귀한 뒤로 바빠서 엄마를 볼 시간도, 제대로 이야기할 시간도 없었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요.”
엄마가 보고 싶다는 말에 정요셉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막내, 은근 효자네~?”
“효자긴 해요.”
엄마가 효자라고 하긴 했으니까.
“어머님 보러 가는구나.”
“네, 돌연프 찍는다고 엄마한테 연락을 통 못 해서요.”
그런데 왜 비켜주지 않는 거지?
“뭐가 더 궁금해요?”
“우린 항상 막내가 궁금하지?”
정요셉의 반응이 뜻밖이라 놀라웠다. 내가 궁금하다고? 그렇다면…….
“저희 어머니는 젊은 나이에 저를 낳으시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공장에서 일하시고…….”
“어, 어……?”
“그러다가 지금은 아는 분 편의점에서 일하고 계세요.”
그래, 궁금할 수도 있지. 내 가족사를 꺼내자 화목현이 당황하며 손을 저었다.
“그만 말해도 돼.”
“괜찮아요. 제 사생활은 말해도 상관없잖아요.”
“아니, 사생활에는 어느 정도 비밀이 있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음? 그런가. 그런데 막상 본가로 가려고 하니까 불안했다.
“근데 진짜로 쉬어도 되나요? 무대 구성을 한 다음에 쉬어도 되는데요.”
“시간이 있어서 하루 정도는 괜찮아.”
정요셉이 얼굴을 들이대며 끼어들었다.
“사람이 너무 달려도 좋지 않더라고~”
“아하.”
하긴 너무 달려도 별로긴 하지.
“나비야, 본가는 어디야?”
“본가요? 왜요?”
“그냥 궁금해서?”
갑자기 본가는 왜 궁금한 걸까?
“그럼 저는 먼저 가볼게요.”
“그래! 나비야, 나중에 보자.”
나중에? 살짝 고개를 뒤로 돌리자 멤버들이 작당 모의를 하는 것처럼 둘러앉아 속닥거리고 있었다.
‘…살짝 불안한데?’
***
편의점에 손님이 없는지 물품을 정리하는 엄마가 보여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어서… 어?”
“엄마.”
나를 보자마자 엄마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들!”
“엄마, 저 왔어요.”
“너 어떻게 왔어?”
“어떻게 오긴요. 잠깐 휴가가 나와서 왔어요. 잘 지냈어요?”
엄마는 반갑다는 듯이 나를 끌어안았다.
“아들, 연락하지 그랬어! 나는 귀신인 줄 알았잖아.”
“연락하면 엄마가 오지 말라고 할까 봐 연락 안 했어요.”
“내가 언제?”
“예전에 그랬어요.”
키오 시절에 엄마 보러 가면 안 되냐고 전화를 했다가 오지 말라는 잔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엄마 보러 올 시간에 노래 연습이나 더 하라면서.
“그러면 이왕 엄마 보러 왔으니까?”
“어?”
엄마가 바닥 닦는 대걸레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엄마……?”
“엄마 보러 왔으면 일해야지?”
“저 이제 왔는데 궁금한 점은 없어요?”
“없는데? TV만 보면 네가 있는데, 뭘.”
정말 우리 엄마는 변한 게 없었다. 바닥이나 잘 닦으라는 엄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하라는 대로 손님이 없을 때 바닥을 열심히 닦다가 편의점에 들어오는 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어서 오세요.”
“…어?”
“어?”
“어어……?”
학생은 입을 가리며 눈을 껌뻑거렸다. 돌연프 첫 화가 나왔으니까 나를 알아볼 법도 했다.
“…돌연프!”
그 말에 나는 저절로 상체를 숙였다. 학생과 눈높이를 맞추려고.
“저, 아세요?”
“알죠! 범나비 연습생이잖아요!”
“와, 저를 알아봐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와……! 저 AA 연습생 팬이에요! 이번 주에 돌아온 연습생 개인 투표랑 팀 투표도 했는데……!”
“투표도 했어요?”
“네! 이게 아닌데!”
학생은 이럴 때가 아니라며 발을 동동 굴리더니 가방에서 노트를 꺼냈다.
“저, 저… 사인해 주실 수 있어요?”
“어, 제가 사인이 없는데. 괜찮을까요?”
아직 키오 시절 사인밖에 없어서 새로운 사인을 만들어야 했다.
“당연하죠! 없으면 이름이라도 적어주세요!”
이름이라. 나는 고민 끝에 매직펜을 잡았다.
‘이름인 나비를 그릴까?’
키오 시절엔 호랑이처럼 수염을 그렸는데. 이번엔 간단하게 나비 그림을 그리고 그 밑에 영어로 이름을 적으면 되겠지?
“이름이 뭐예요?”
“그냥 1호팬이라고 적어주세요!”
아, 1호팬… 귀여운 마음에 나는 ‘나의 1호팬’이라고 적었다.
“여기요.”
“우, 우와…….”
사인을 받고 좋아하는 학생의 모습에 미소가 절로 나왔다. 이래서 팬이 좋았다.
“셀카도 찍어드릴까요?”
“셀카 괜찮아요……?”
“괜찮죠.”
“돌연프에서 막지 않나요?”
“막아요?”
“…막는다는 말이 있던데.”
돌연프에 셀카를 찍지 말라는 제한은 없었다. 어떤 연습생한테는 찍지 말라고 했던 모양이네. 그런데 셀카일 뿐이잖아. 팬이 찍어달라는데 못 찍을 이유도 없었다.
“뭐라고 하면 한번 혼나죠, 뭐. 주세요. 셀카죠?”
“네, 네! 셀카요!”
“같이 사진도 찍어요.”
“허, 헐… 대박…….”
학생의 핸드폰을 받고 셀카를 찍었다. 그리고 학생의 눈높이에 맞게 허리를 숙이며 함께 찍기도 했다. 사진을 보면서 학생은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고마운데.
“여기 편의점 많이 들러주세요.”
“…당연하죠!”
그리고 고마워서.
“아, 잠시 기다려 주실래요?”
나는 카드를 들어 초콜릿과 사탕을 계산하고 학생에게 건넸다.
“이건 선물이에요.”
“아, 안 주셔도……!”
“받아주세요.”
나를 알아봐 준 기념으로 선물을 주고 싶었다. 당황하면서 초콜릿과 사탕을 받은 학생은 고맙다는 인사를 빼먹지 않고 편의점을 나갔다.
“아들! 계산대도 닦아줘!”
“네네…….”
엄마를 보러 온 건지, 일하러 온 건지. 계산대를 닦으면서 열심히 일을 하는데 핸드폰에 진동이 울렸다.
(화목현) 막내야 뭐 해?
(범나비) 네? 저요? 편의점에 있어요
(화목현) 실물 후기가 떴길래.
(정요셉) 막내~ 나의 1호팬이라니~
(범나비) 어디 올라왔어요?
진짜로 올라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