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의 1군 가이드-11화 (11/235)

11. 그저 눈물을 흘렸을 뿐인데(2)

돌아온 연습생 무대에 오르자 연습생들이 나를 안타깝다는 듯이 쳐다봤다. 처음엔 뭐지? 싶었다.

아, 그러고 보니 어제 기숙사 문이 열려 있었다. 게다가 하필 기숙사 맞은편에 샤워실이 따로 있어서 연습생들이 자주 돌아다니긴 했다.

그때 소문이 돌았나 보네… 울었다고.

‘…하.’

나를 쳐다보는 시선을 무시하고 내 자리를 찾으러 갈 때였다. 이남주가 말을 걸어왔다.

“진짜로 울었어요? 평소에는 안 울잖아요?”

“…운 거 아니었어요.”

“에이, 어쩌면 자기도 모르게 울었을지도……?”

“정말 안 울었어요.”

왜 이래? 정말로 울었다고 믿고 싶은 사람처럼.

“아니면 방송 각 잡으려고요?”

“방송 각 잡으려고 했다면 카메라 앞에서 울었겠죠.”

“맞다. 방송 각은 카메라 앞에서 잡아야지.”

이남주는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 미소를 짓더니 내 옆에 앉아 계속 물었다.

“그래도 속상한 일이 있으면 들어줄게요. 언제든지 말해줘요. 위로는 잘할 자신이 있어서.”

“위로 감사해요.”

“우리 친하잖아요.”

이남주는 친하다는 말을 강조하듯이 뱉었다. 우리가 친한 사이는 아니지 않나. 멤버들처럼 계속 붙어 있는 관계도 아닐뿐더러 그저 아는 연습생일 뿐인데.

“친하다면 다행이고요.”

이남주의 옆에서 벗어나야 했다. 이남주의 시선이 꽤 불편했으니까.

“먼저 갈게요.”

내 위치로 돌아가는데 이번에는 사건사고가 손을 흔들었다.

“안녕, 범아?”

“네, 안녕하세요.”

“…그 말이 나에게 거리를 두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파.”

“이미 거리 뒀어요.”

이미 거리를 두고 서 있지 않은가. 그렇게 대충 대답을 하고는 스트레칭을 했다.

“어제 밖에 나왔어?”

“…어제?”

“아니면 됐고.”

음? 곧 무슨 일이 벌어지나… 사건사고가 HOR 엔터를 고소하는 게 언제였지. 기억이 또렷하게 남지는 않았지만… 시기상 이때였다.

다른 회사 일은 깊게 생각할 필요 없지. 어차피 남 일이니까.

“범아, 재밌는 사실 하나 말해줘?”

“…재밌는 사실?”

“우리 팀, 곧 사건이 터질 거야.”

사건이 터진다고?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 사건사고의 말이 거짓말 같으면서도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갔다. 쟨 진짜로 사건을 일으켰으니까.

“그런 걸 왜 저한테 말해줘요?”

“말해주고 싶었거든. 넌 진짜로 믿을 것 같아서.”

“안 믿을 건데요.”

그러자 사건사고가 내 팔뚝을 때렸다.

“인마, 믿으라니까?”

그러고는 다시 팔뚝을 때렸다. 계속해서 때린 곳을 또 때렸다. 나는 맞은 곳을 손으로 문지르며 사건사고를 쳐다보았다.

“알겠어요. 믿을 테니까 그만 때려요.”

“그으래? 그럼 이쯤 하지.”

사건사고와 친하게 지내면 좋지 않냐는 질문을 여기저기에서 받고는 했는데, 대부분의 경우 인맥이 드러나면 좋지 않은 점이 많았다. 게다가 사건사고는 앞으로 해마다 사건을 일으킬 테니까.

잦은 지각에 스태프들의 폭로 등.

그때 내 이름이 사건사고와 나란히 붙어 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니 내가 사건사고를 가까이할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이러니까~ 더 친해지고 싶다?”

“…전 딱히.”

“따악히? 따아악히? 너는 나랑 친하게 지내면 좋아. 좋은 정보도 얻을 수 있고.”

사건사고가 팔뚝을 한 대 더 때리려고 했지만, 정요셉이 나서서 사건사고와 나 사이를 막았다.

“그마안. 우리 막내를 때리면 제가 아파요~!”

“내가 때려봤자 아픈 것도 아니고. 아니면 막내라고 감싸고도는 거야?”

“우리 막내는 아껴줘야 하는 막내라서 어쩔 수가 없네요~”

“아아, 아끼는 척은 아니고?”

“무척 아끼죠~”

정요셉은 은근 멤버들이 난처한 상황에 처했을 때 나서서 도와주는 면이 있었다. 나는 정요셉의 소맷자락을 잡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불필요한 싸움은 체력만 소모한다.

“각자 자리로 가면 안 될까요?”

“어쩌냐. 나는 범이 옆자리인데.”

약 올리는 사건사고의 말에 정요셉이 나를 쳐다보았다.

“우리 막내, 형이 나중에 올게.”

“…마음대로 하세요.”

정요셉이 내 이마에 가벼운 꿀밤을 놓더니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동시에 PD가 마이크를 잡았다.

“이남주 연습생, 앞으로 나와주세요!”

이제 돌아온 연습생 합동 무대를 할 차례인 것 같았다. 나도 정해진 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사람이 많은 무대에서는 그저 카메라를 향해 끼를 부리면 된다. 나는 손바닥에 미리 그려놓은 하트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이윽고 PD의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온 연습생, 시작합니다!”

***

돌아온 연습생 합동 무대가 끝나자마자 MC가 찾아왔다. 다들 힘들어서 지친 상태였는데 MC가 나타나자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이어 MC의 손에 들린 미션 봉투를 보고는 연습생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바로 미션 시작인가? 도무지 쉴 시간을 안 주네.

“안녕하세요, 여러분. 힘드시죠?”

“아니요!”

“안 힘들어요!”

힘드냐는 질문에 힘들다고 대답하는 연습생이 몇 명이나 있을까…….

“힘들지 않다고 하셨으니까 두 번째 미션을 진행해도 되겠죠?”

“두 번째 미션?”

“바로… 돌연프 심사 위원의 노래로 진행하는 카테고리 팀 미션입니다.”

돌연프 심사 위원의 노래라…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번 돌연프 심사 위원은 보컬과 춤으로 특히 유명한 분들을 모셨다.

한마디로 못하면 욕을 먹는 것과 동시에 흑역사가 생긴다는 소리였다.

“근데! 카테고리를 쉽게 내줄 수는 없겠죠?”

카테고리 찾기인가?

“각 팀의 리더들에게 건물 내부 지도를 드리겠습니다.”

MC가 건물 내부 지도를 리더들에게 건네주었다.

“건물 내부에 카테고리와 노래 제목이 적혀 있는 종이가 있을 겁니다. 아차! 어떤 카테고리가 있는지 알려 드려야겠죠? 종이 뒤편을 봐주세요.”

나는 화목현에게 다가가 종이 뒤편을 살펴보았다.

《카테고리》

2010년 – 청량, 집착

2015년 - 비극

2018년 – 하이틴

노래 제목은 가르쳐 주지 않았다.

“카테고리 4개와 노래 11개가 섞여 있습니다. 무대 순위 1위를 차지한 팀에게는 베네핏 300점을 드리겠습니다. 이 베네핏은 중간 순위 발표 때 팀 순위에 유리하겠죠?”

베네핏 300점은 크다.

“회의 시간은 10분을 드리겠습니다.”

회의 시간을 주겠다는 말에 연습생들은 한곳으로 모여 회의를 시작했다.

“지도에 장소가 다 적혀 있네~”

“요셉이 말대로 종이 뒤편에 있어.”

정요셉이 건물 내부 지도를 보았다. QTQ 방송국 1층과 2층을 쓰는 모양이었다.

“카테고리 고르자.”

이정진의 말에 카테고리를 확인했다.

“비극이 끌리는데~?”

“나도. 비극이 끌려.”

2015년도에 카테고리가 비극이라. 그 시대에 떠오르는 곡은 딱 하나. I.P 선배님의 곡인 ‘죄인’. 떠난 연인에게 집착하며 그 집착이 얼마나 큰 비극을 낳는지 말해주는 곡이었다.

내 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분명 그 곡일 거라고.

이 노래로 I.P 선배님은 연간 차트 1위를 차지한다.

이 노래는 퍼포먼스가 없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한번 퍼포먼스 위주인 곡을 했더니 노래를 못한다는 여론이 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 노래로 가고 싶었다.

“비극으로 가죠.”

내 의견에 주이든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찬성.”

“찬성이요~”

화목현은 왜 비극을 골랐는지 물었다.

“퍼포먼스만 잘하는 그룹으로 낙인찍히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우리를 보면서 노래는 못할 것 같다고 하더라고? 우리가 노래를 왜 못해!”

“그래서 노래 위주로 무대를 짜면 괜찮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내 말에 화목현도 일리가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비 말이 맞아. 퍼포먼스가 아닌 노래로 승부를 보는 것도 좋겠다.”

정요셉은 턱을 만지면서 한숨을 쉬었다.

“노래로 승부를 보는 건 좋지만… 문제는 비극 카테고리에 있는 노래가 분명 I.P 선배님 노래일 텐데 못하면…….”

원래 유명한 노래를 부르면 그에 따라오는 꼬리표를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정요셉이 걱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연예계에는 이런 말이 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유명한 노래를 부르면 망한다는 속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준비가 덜된 연습생들에게나 통하는 소리지.

“정요셉, 우리 잘해.”

가만히 말을 듣던 이정진이 톡 쏘듯이 말했다.

“뭐야. 형이 그런 말을 하니까 우리 팀에 대한 신뢰가 올라가는 것 같네~”

이정진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하더니 화사하게 미소를 지었다. 항상 속에 있는 말을 잘 꺼내지 않던 사람이 저렇게 말하니까 나 역시 신뢰감이 높아졌다.

“그럼 여기로 간다, 나비야.”

“네? 네, 가요.”

“나비도 좋다고 하니까. 비극 카테고리로 가자.”

화목현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잔웃음을 흘렸다. 정요셉이 너무 막내를 아낀다면서 놀리긴 했지만.

“땡! 10분이 지났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카테고리를 찾으러 가볼까요?”

***

입덕의 경계에서 줄다리기하고 있는 이백수는 오늘도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오늘도 봐? 입덕 아니라며.”

친구는 웃음을 터트렸다.

“입덕 아니라니까? 라이트로 보는 거지.”

“라이트가 입덕이야.”

라이트와 입덕의 기준은 애매했다. 하지만 이백수의 입덕은 차원이 달랐다.

“입덕하게 되면 못생긴 모습을 봐도 귀여워하고 좋아해. 무슨 행동을 해도 입꼬리가 올라가고 어느새 돈을 쓰고 있다니까?”

“아, 알았어!”

7년의 덕질이 망가졌는데 어찌 또 아이돌을 팔 수 있을까. 그저 얼굴이 잘생겼으니 보고 있을 뿐이었다.

[범나비 악편 손가락 6개?]

너튜브 알고리즘에 뜬 범나비 영상을 보고 이백수는 자연스럽게 손가락을 눌렀다. 이건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 아닌 습관이었다.

[렉카 : 범나비가 돌연프에서 싸가지 없는 연습생으로 욕을 많이 먹고 있죠? 그런데 어떤 분께서 범나비 0점 영상에 손가락 6개가 찍혔다는 사실을 제보해 주셨습니다.]

손가락이 6개? 자세히 보니 범나비의 엄지손가락에 하나 더 올라가 있는 손가락이 보였다.

[렉카 : 돌연프 스태프가 커뮤니티에 범나비는 싸가지 없는 연습생이 아니라고 인증도 해주셨습니다.]

“어제 이거 때문에 돌연프 커뮤니티 난리 났었는데 몰랐어?”

“요즘 바빠서 못 봤는데?”

“솔직히 범나비 성격이 안 좋았으면 증거로 뭐라도 올라왔을 텐데 소문만 무성하고 인증은 없었잖아.”

“나도 안 믿긴 했는데.”

“그렇지? 그럼 이거 봐.”

친구는 손가락을 몇 번 놀리더니 이백수에게 ‘범나비 착했음’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을 보여주었다.

“어, 커뮤니티에 범나비 착했다는 인증 글 올라왔는데……?”

“저런 건 누구나 쓸 수 있지 않나?”

“그래도… 한번 볼 수는 있지.”

하도 범나비를 까는 글이 많이 올라오자 돌연프를 안 보는 타 팬 덕후들도 범나비라는 이름을 알 정도였다.

“어디에 있어?”

“내가 보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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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안녕하세요. 나비가 까이는 모습이 안타까워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

그렇게 까일 친구가 아니라서요.

제가 전학을 오고 친구가 없을 때 먼저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 나비였어요.

옆에서 말을 걸어주고 밥도 같이 먹어줬거든요.

그러면서 학교에 적응하고 친구도 많이 생겼습니다.

한 학년 올라가고 나비가 집안 사정으로 학교에 못 오고 있을 때, 나비는 저를 보고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잘 지낸 것 같네. 다행이다.’라고요.

몇 년 뒤 나비가 엔터 연습생으로 들어가서 아이돌 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나비가 좋은 연예인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그러니 무분별한 욕은 하지 말아주세요.

(중학교 인증_jpg)

(중학교 수학여행 사진 인증_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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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옛날 일이지 지금은 모르는 거 아닌가?

└ 응 아니야 인터뷰에 악편 증거 나옴 ㅅㄱ

└ 범나비 팬들 난리 나겠네ㅋㅋ

└ ㅋㅋ 네가 난리 나겠죠 손가락 못 놀려서~

-ㅅㅂ 싸가지가 없었으면 AA 엔터에서 받아주겠냐고

└ ㅇㅈ

└ 22 AA 엔터 이미지가 있지

└ 33

-ㅠㅠ 나비야 이제 맘 편하게 덕질할게 믿고 있었다고

-ㅋㅋ 너무 옛날 증거 아님? 아닐 수도 있는데~

└ 네 다음 악플러

└ 이게 악플? ㅈㄹ

덕질하지 않겠다는 이백수의 마음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이미 마음에 담았고, 눈에 담았다.

“사람들 너무하다. 아니라고 인증 글까지 올렸는데 오히려 그 사람을 욕하네…….”

“하, 진짜!”

라이트 덕질은 무슨. 이제 이백수가 댓글을 쓸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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