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돌아온 연습생 멘토 멘티(2)
다음 날. 안무 트레이닝 선생님을 만나는 날이었다. 약 30명의 연습생이 안무 트레이닝 선생님 앞에서 동시에 춤을 췄다. 잘하는 연습생은 잘했고, 못하는 연습생은 못했다. 이거, 사건사고가 걱정되는데.
그때 사건사고가 내 팔을 툭 쳤다.
“걱정하지 마.”
“…걱정은 안 해요.”
사건사고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걱정은 안 한다는 녀석이 인상을 쓰냐?”
“제가 언제…….”
때마침 앞 순서 연습생들이 들어왔다.
“이번에는 25번부터 30번까지 나와서 춤춰볼까?”
나는 사건사고를 보며 눈짓했다. 잘하라고. 사건사고는 내 눈짓을 봤는지 씩 웃었다.
‘알겠다는 뜻인가?’
안무 트레이닝 선생님의 손짓에 맞춰 돌아온 연습생 테마곡이 시작되었고, 나는 사건사고를 슬쩍 쳐다보았다. 사건사고는 대충 추는 것처럼 보여도 안무가 얼추 맞았다. 그래, 혼나진 않겠네. 그런데 갑자기 안무 트레이닝 선생님이 손을 들며 노래를 끊었다.
“28번, 범나비 연습생?”
“네?”
“새로 바뀐 나를 봐줘, 꿈을 이루어가는 나의 모습을. 이 부분 혼자 춰볼래요?”
간단하게 오른쪽 팔을 뻗은 다음 다시 안으로 들어가 가슴 바운스를 하는 안무였다. 안무 트레이닝 선생님은 내 춤이 마음에 드는지 고개를 까닥였다.
“저렇게 하면 되는데. 26번, 이금금 연습생?”
아… 왜 나를 부른 건지 알 것만 같았다. 화목현이 금금이를 데리고 와서 안무와 노래를 끝까지 도와주었다. 그러나 금금이는 안무를 외우기는커녕 이미 의욕을 잃은 상태였고, 상황은 더욱 안 좋아졌다.
“네, 네…….”
“노래에 맞춰 시작해 줘요.”
금금이가 앞으로 나오자 안무 트레이닝 선생님이 손짓했다.
노래가 시작되자 금금이는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어떤 거라도 추기만 하면 되는 건데 연습도 안 하고 기숙사에 누워 있었으니 간단한 안무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점차 안무 트레이닝 선생님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금금아, 3일 동안 뭐 했어?”
“…….”
“안무를 외우려는 노력은 해봤어?”
아무 대답이 없었다.
“안무를 외우려는 노력도 안 하고. 다른 애들처럼 따라가려는 태도가 보이면 혼내지도 않지.”
“죄송합니다…….”
이런 금금이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안무 트레이닝 선생님은 고개를 흔들며 다른 연습실로 가버렸다. 덕분에 연습실 분위기가 싸해졌다.
홀로 연습실을 멀뚱히 돌아다니던 사건사고가 입을 열었다.
“이야, 우리 범이! 너무 잘하던데?”
“조용히 하세요…….”
“잘하는 걸 잘했다고 하지? 뭐라고 해?”
사건사고는 손뼉까지 치면서 금금이의 속을 살살 긁었다. 이건 눈치가 없는 게 아니라 눈치가 있는데도 입을 다물지 않는 거다.
“역시 AA 엔터가 데리고 갈 만해.”
내가 하지 말라고 말해도 들어먹을 인간이 아니라서 그냥 대답을 회피했다. 대답하면 더 말할 사람이라. 그러는 동안 화목현이 금금이에게 다가가 무언가 말을 걸었다.
“잘했어. 너무 속상해하지 마. 다음에 잘 보이면 되지 않을까?”
그러자 금금이가 고개를 푹 숙였다.
“…형은 부럽네요.”
“어……?”
“우리는 리더가 사라졌는데… 형은.”
그러면서 금금이는 화목현을 밀치고 연습실을 나가 버렸다.
“…이게 무슨.”
홀로 덩그러니 서 있던 화목현은 본인의 잘못이 아닌데도 다른 연습생들한테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나는 화목현을 보면서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둘 사이에 트러블이 생길 줄 알았다. 나를 언급한 것을 보면 금금이는 화목현과 있는 동안 꽤 불편했던 모양이다.
“형, 괜찮아요?”
“…어, 나비야. 괜찮아.”
화목현도 나무가 아닌 사람인지라 상처를 받았는지 영혼이 빠진 것처럼 멍해 보였다. 그래서 바지 주머니에 있던 초콜릿을 건넸다.
“이거 먹어요.”
“…초콜릿?”
“힘내시라고.”
내게는 초콜릿을 바지 주머니에 넣는 습관이 있었다. 수시로 당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금금이한테 가볼 차례였다.
“제가 금금이 데리고 올게요.”
“어?”
“먹고 조금 쉬고 있어요, 형.”
***
연습실에서 나와 금금이가 갈 법한 곳으로 정처 없이 걸었다. 금금이가 그런 태도를 보인 까닭은 간단했다.
첫 번째, 내가 어떻게 나간 건지 모른다. 두 번째, 나 때문에 이번 해 데뷔가 무산되었다.
어떻게 HI 엔터가 돌연프에 나올 수 있을까. 데뷔 준비만 하기에도 모자를 시간에.
건물 뒤편으로 걸어가자 벤치에 앉아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금금이가 보였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금금이를 불렀다.
“이금금.”
“…….”
“…금금아.”
평소 같았으면 대답이라도 할 텐데. 대답도 안 하는 거 보니까 나랑 대화하기가 싫은 것 같았다. 그럴 만했다. 금금이는 내가 HI 엔터에서 나가지 않기를 바랐으니까.
“뭐, 너도 귓구멍이 있으면 내 말이 들리겠지.”
나는 금금이의 옆자리에 앉아 바닥을 기어가는 개미를 쳐다보았다. 개미도 열심히 사네. 본격적으로 말하기에 앞서.
“일단 금금아, 잘 지냈어?”
“…….”
“나는 잘 지냈다.”
그러자 무릎에 올려져 있는 금금이의 손이 움찔했다.
“나는 HI 엔터에서 나가고 HI 엔터가 어떤 상황인지 잘 몰라.”
“…….”
“네가 어떤 상태인지도 잘 모르고.”
나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금금이를 쳐다보았다.
“내가 나가고 데뷔가 무산된 거지? 금금아.”
“…어.”
데뷔가 무산…….
어쩔 수 없었다. HI 엔터는 돈이 없으니까.
그래서 어떤 조언조차 할 수가 없었다. 워낙 어릴 때부터 보았던 아이였다.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던 아이라 다른 멤버보다 금금이에게 마음이 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나가면 네가 리더인데 멤버들 잘 이끌고…….”
“그건 형이 나갔으니까 할 수 있는 말 아닌가.”
내 말을 끊은 금금이가 고개를 들며 소리쳤다.
“형이 안 나갔으면, 우리 키오 무사히 데뷔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형이 나가고 며칠 뒤 전무님이 데뷔가 무산될 것 같다고 말했어요. 왜 그런지 이유를 물어봐도 말은 안 해주고요.”
이유를 말해주지 않는다라.
“몇 번이나 무산됐지만 그래도 다시 준비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전무님이 오셔서 그러더라고요. 돌연프에 나가서 팬들을 모아 데뷔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
“…고작 5일 전이었어요.”
준비 기간이 나랑 비슷했구나. 힘들 만했다. 나는 회귀 전 습관이 있어 안무를 빨리 외웠지만 금금이는 아니니까.
“우리는 나가기 싫다고 했어요. 준비되지 않은 연습생을 누가 봐주겠냐고. 그랬더니…….”
“그랬더니?”
“전무님이 데뷔하고 싶지 않냐고, 데뷔하고 싶으면 일단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가래요. 욕을 먹더라도 인지도부터 쌓고 보자면서.”
요즘은 일반적으로 데뷔하는 것보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가서 인지도부터 쌓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고대하던 데뷔가 무산되고 상황이 갑자기 변하니, 금금이로서는 상황 판단력이 흐려질 수밖에.
“그래서, 데뷔 포기할 거야?”
“…….”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살아남지 못할 거면 데뷔도 안 하는 게 나을 거다.”
“형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해요?”
내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면 조언도 잔소리로 들릴 것이다. 섭섭하다는 듯 금금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런 금금이를 보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너, 데뷔할 거야.”
“…형?”
“내가 AA 엔터로 옮기는 조건으로 HI 엔터 돈 먹었거든.”
이 말을 하면 알아먹겠지, 어느 정도는.
“잠깐만… 형, 그게 무슨 말이에요?”
“들은 그대로.”
“들은 그대로요? 형…….”
나는 금금이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연습실로 향했다.
어차피 금금이는 쉽게 무너질 아이가 아니었다. 그리고 훗날 네스트에게는 키오라는 그룹이 필요했다.
누군가는 라이벌이 없으면 좋지 않냐고 묻겠지만 나는 라이벌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키오라는 라이벌이 있어야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다.
회귀 전, 라이벌이라는 화제성을 살려 다양한 컨셉을 선보이면서 사람들의 입방아에 제법 오르기도 했고. HI 엔터가 키오와 네스트의 라이벌 구도를 잘 살리긴 했다.
아무튼 키오는 버릴 수 있는 그룹이 아니었다. 그것이 내가 금금이를 달래는 이유였다.
다시 연습실로 들어가자 사건사고가 손을 흔들며 나를 반겼다.
“이제 와? 범아, 심심했다고.”
“심심해도 괜찮지 않나요.”
사건사고는 바닥에 누워 있었다.
“바닥에 누워서 뭐 해요?”
“뭐 하긴? 일하지.”
아이돌 할 생각 없어 보이는 거 너무 티 나잖아. 하지만 사건사고의 엔터는 힘이 있으니 아마 보기 좋은 장면으로 바뀌어 방송될 것이다.
“누구 찾아?”
“목현이 형이요.”
“아, 안무와 노래 미리보기 영상 찍으러 갔어.”
그래서 화목현이 없었구나. 사건사고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싱글벙글 웃는 낯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까 안무 트레이닝 선생님이 그러는데, 우리 케미가 좋대.”
“케미? 그 케미요?”
“그래, 그 케미. 그러니까 카메라에 좋은 화면을 보여줘야겠지?”
미친. 실실 쪼개는 사건사고의 얼굴에서 광기가 엿보였다. 아, 골치 아프다. 쉬고 싶네. 곧이어 금금이가 연습실에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그러더니 금금이가 자리에서 허리를 수그리며 사과를 했다. HI 엔터 멤버들이 그쪽으로 다가가 금금이를 다독여 주었다.
“뭐라고 구슬렸으면 저렇게 사과를 해?”
“조언만 했어요.”
“이야, 조언도 할 줄 알아?”
“조언은 별거 없으니까.”
“나보다 어린 게.”
어리긴 어리지, 겉모습은.
“형은 몇 살인데요?”
역으로 질문하니 사건사고가 고민도 없이 말해주었다.
“23살인데, 뭐?”
“허…….”
“너보다 밥 많이 먹었어.”
…말을 말자.
***
너튜브에 올라갈 ‘돌아온 연습생’ 안무와 노래 미리보기 영상을 찍고 기숙사에 들어왔다. 나보다 일찍 찍은 사람이 없는지 기숙사는 조용했다. 홀로 침대에 앉아 패드를 꺼내 바로 돌연프 첫 화를 틀었다.
[MC : 여러분은 지금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연습생들이 연습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 첫 화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 연습생 인터뷰는 AA 엔터에서 진행되었다.
[AA 연습생들 : 안녕하세요. AA 엔터 연습생입니다!]
[~역시 AA 엔터라는 이름답게 패기가 느껴지는 연습생~]
이상한 효과음과 함께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제일 먼저 내가 나왔다.
[AA 범나비 : 안녕하세요. AA 엔터 연습생 범나비입니다.]
[Q : 이번에 AA 엔터에 들어온 연습생이라고 들었습니다.]
[AA 범나비 : 네, 그렇습니다.]
여기까지는 지극히 평범했다. 다음 질문이 문제였지.
[Q : 범나비 연습생에게 묻고 싶습니다. 다른 팀에게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을 주고 싶으신가요?]
[AA 범나비 : 0점……?]
교묘하게 0점만 자르고 붙인 티가 났다. 나는 저걸 아니까 그냥 넘어가겠는데. 시청자들은 아닐 것이다. ‘감히 겸손하게 말하지 않고 잘난 척을 한다고?’라고 생각하겠지. 이거 악편의 파급력이 생각보다 클 수도 있겠는데.
[대단한 패기!]
[역시 AA 엔터로 옮긴 패습생.]
‘패습생’이라는 별명까지 붙였다. 나를 패기 넘치는 연습생으로 이미지 마케팅 하겠다는 전략이 엿보였다.
[Q : 반대로 본인의 팀에게 점수를 준다면?]
[AA 범나비 : 100점이요.(웃음)]
완전 어그로를 끌었군. 나라는 어그로 캐릭터가 생기니 신난 모양인지 돌연프 편집은 내 위주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렇게 첫 화에만 분량이 많으면 내가 어그로를 끈 보람이 없다. 돌연프는 이남주의 인터뷰와 교차편집을 하면서 나를 완전히 악역으로 만들었다.
“허.”
[Q : 다른 팀에게 점수를 준다면?]
[FG 이남주 : 99점? 1점은 저희 팀이요.]
이거 천사와 악마 아닌가? 그래도 괜찮았다. 어그로를 끈 이유가 다 있으니까. 과연 다른 연습생의 분량은 별로 없었다.
[역시 노력의 아이콘! 이금금 연습생.]
[HI 이금금 : 잘 부탁드립니다. 열심히 할게요!]
아무도 어그로를 끌지 않았네… 그렇다는 건 나만 어그로를 끌었다는 건가. 그제야 돌연프가 나에게 분량을 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Q : AA 연습생의 강점은?]
[AA 주이든 : 새로운 메인보컬?]
[AA 정요셉 : 컨셉 과몰입?(웃음)]
보컬이 탄탄한 한 아이돌 심사 위원은 그 말을 듣더니 AA 엔터는 기대가 되지 않는다며 말을 얹었다.
[Q : 이번 디스토피아 카테고리에 어떤 곡을 준비했는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AA 화목현 : 2000년대 락 발라드 감성 곡입니다.]
[Q : 락 발라드를 편곡했다는 거죠? 이거, 기대되는데요?]
[AA 화목현 : (인자한 미소)네, 기대해 주세요!]
그다음으로 우리와 같은 카테고리를 고른 FG 엔터 연습생들이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 나온 뒤, 우리의 연습 과정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 점은 괜찮네.
[AA 범나비 : 열심히 할게요.]
[AA 이정진 : 예쁘게 봐주세요.]
다음 교차 장면으로 우리의 무대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