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의 1군 가이드-7화 (7/235)

7. AA 엔터 연습생의 첫 무대(2)

그동안 실수라곤 전혀 안 했던 내가 안무 실수를 해버렸다. 과도하게 긴장한 탓에 다리를 어디로 옮기는지 까먹은 탓이었다.

젠장… 실수하면 안 되는데…….

“실수한 부분이 아깝기도 하고. 또 보고 싶기도 해서.”

다행히 단체 안무를 한 번 더 보여달라는 말에 모두들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안무 틀려서 죄송해요.”

“괜찮아. 큰 실수도 아니니까.”

“맞아. 미리 걱정하지 말자~ 노래 실수도 아니고~”

이번 무반주 단체 안무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잘해야 했다. 그래서 한 번 더 기회를 준 것이다. 합류가 늦은 만큼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달라는 뜻으로.

“단, 노래를 틀지 않는 조건으로.”

무반주로 춤을 춰달라는 건가?

“노래를 안 틀어도 될까?”

주이든이 걱정하자 정요셉이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 이든이? 그 정도는 해낼 수 있어~ 각자 자리로 돌아가자!”

분위기가 부산스러웠지만 멤버들은 각자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곧바로 나는 화목현과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넥타이로 눈을 가린 채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실수는 한 번으로 충분했다.

이건 대중 평가다. 연습실에서 진행하는 월말 평가가 아니라. 속으로 박자를 세면서 안무를 시작했다. 그리고 최대한 멤버들의 발을 밟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팔을 뻗었다.

“오.”

“…실수를 전혀 안 하는데?”

“노래가 재앙이네.”

노래가 없으니 심사 위원의 말이 귀에 울렸다. 드디어 실수했던 부분이 다가왔다. 몸에 힘을 주고… 이번에는 실수를 하지 않았다.

다시 중앙으로 걸어간 뒤 화목현의 눈빛을 보면서 무대를 끝냈다. 실수는 없었다.

“…이번에는 실수가 없네요?”

“실수가 없도록 열심히 했습니다.”

“이미 데뷔해 본 아이돌처럼 잘해서 깜빡 속을 뻔했다니까.”

옆에서 말을 덧붙이는 심사 위원의 말에 속으로 깜짝 놀랐다. 데뷔를 해보긴 했지.

“무반주 단체 안무 잘 봤습니다. AA 엔터 연습생들은 자리로 돌아가 주세요!”

자리로 돌아가는 길, 죄송하다고 말하자 형들은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씩 웃었다. 그때 정요셉이 내 등을 때렸다.

“죄송하다는 말은 그렇게 쉽게 하는 게 아니야~ 심사 위원 말 들었잖아. 그 정도면 잘한 거고.”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고마워요.”

“우리 막내, 얼굴은 양아치 같은데 속은 막내 같다니까~ 우리가 시키지도 않은 것까지 했으면서~?”

정요셉은 가만히 나를 보고 있는 주이든을 향해 말했다.

“이든이도 우리 막내한테 칭찬해 볼까~?”

“음… 잘했어……!”

“야, 그게 뭐냐. 길게 해줘야지, 길게~”

“아, 정요셉! 떨어져!”

기겁하는 주이든의 모습이 재밌는지 정요셉은 집요하게 주이든을 안으려고 했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나는 흐린 눈을 하면서 의자에 앉아 물을 마셨다.

“이번 무대는…….”

MC가 눈을 크게 뜨며 카메라에 종이를 보여주었다.

“FG 엔터입니다! 놀랍게도 AA 엔터와 똑같은 카테고리인 디스토피아를 골랐다는데요? 무대로 모셔보겠습니다.”

입안에 있던 물이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쉴 새 없이 엮어대는 돌연프 진행 방식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돌연프에서 여지를 주지 않았다면 FG 엔터가 디스토피아를 고를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건 내 추측이지만.

“AA 엔터랑 카테고리가 같네. 이건 인연이 아니라 운명이지. 진짜 재밌다.”

“저기요, 선생님. 우리는 심사를 하러 온 거거든요?”

“아니, 시청자 입장에서는 재밌지 않겠어?”

하긴 원래 치열한 경쟁 서사가 재밌는 법이니까.

***

“잠깐 쉬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FG 엔터 차례가 되자 카메라 렌즈까지 새롭게 갈아 끼우는 모습에 모두들 혀를 찼다.

“부럽다. 카메라 렌즈도 바꾸고.”

“…우리도 돈 좀 썼으면 좋았을 텐데.”

주변의 부러움을 사는 FG 엔터 연습생들의 겉모습은 앞의 개인팀과 차이가 확 났다. 헤어, 메이크업, 코디까지 완벽한 삼합을 이루었으니까.

“이제 FG 엔터 연습생의 무대를 보겠습니다!”

의외로 FG 엔터는 우리와 카테고리는 같았지만 컨셉 자체가 달랐다. 우리는 좀비와 생존의 투쟁을 벌였지만, FG 엔터는 끝까지 생존하자는 주제가 담긴 컨셉이었다.

거기다가 ‘빛의 바람’이라는 2000년대에 유행했던 노래를 편곡했다. 전주만 들어도 눈물이 흐른다는 치트키 노래를 쓴 것이다.

“확실히 앞에 했던 AA 엔터의 컨셉과 달라서 색다른 무대네요.”

“이남주 연습생 노래 실력이 수준급이라서 듣기가 좋네요.”

신이 만든 것 같은 얼굴에 노래 실력까지 수준급이라… 역시 신은 없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내가 회귀하기 전만 해도 이남주는 네스트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FG 엔터로 갔다고?

“FG 엔터는 신생 소속사야.”

“신생이요?”

“아이돌 노래만 만들었던 프로듀서가 이번에 직접 만든 아이돌이거든.”

“…아.”

친절한 화목현의 설명에 어떤 소속사였는지 얼추 감이 잡혔다. 내 기억 속, 승승장구했던 소속사가 하나 있었다. 그 소속사가 FG 엔터였던 모양이다.

사실 AA 엔터도 나쁘지는 않았다. 네스트를 혹독하게 굴린다는 소문이 간간이 들리기는 했지만. 다음 아이돌을 만든다고 네스트의 컴백을 미룬 적도 있었지, 아마?

이 정도 행패는 어느 소속사든 있기 마련이니까.

그건 그렇고.

FG 엔터 다음 차례인 HI 엔터의 무대는 무척이나 어수선했다.

“…흐음, 뭐 하러 왔죠?”

“노래와 안무가 영…….”

이건 나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HI 엔터 연습생들은 엉망이네요.”

“고등학생들밖에 없어서 걱정하긴 했는데… HI 엔터에게 실망했습니다.”

“곡 선정은 좋았는데… 이게 무슨 일이죠?”

곡은 훌륭했다. 카테고리인 메타버스에 맞춰 90년대 애니메이션 OST를 선정했으니까.

차원의 아이들을 만난 소년들에게 벌어지는 이야기가 ‘메타버스’라는 카테고리와 잘 어울렸다. 하지만 HI 엔터 연습생들은 연습을 안 한 건지 멤버들끼리 부딪히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가사까지 틀리기도 했다.

“이금금 연습생?”

“네, 네……!”

무엇보다 나는 금금이에게 충격을 받았다. 금금이가 저렇게 못하다니? 금금이는 소문난 연습 벌레였다. 내가 하지 말라고 해도 웃으면서 ‘열심히 해야죠’라고 말했던 녀석이다.

“노래랑 안무 연습을 하긴 했습니까?”

“네, 했습니다…….”

“며칠 했습니까?”

“한 일주일…….”

“일주일로 잘할 수 있을 줄 알았던 겁니까? 아니면 방심한 겁니까?”

“…죄송합니다.”

“누가 봐도 하루 연습한 것처럼 보여서요. 곡은 훌륭하고 좋은데 그룹이 곡을 못 따라가니 안타까워서 하는 말입니다.”

보아하니 내가 나가고 난 뒤 HI 엔터 연습생들이 돌연프에 투입된 모양이다. 안타까움이 컸다. 저렇게 혼날 아이가 아닌데. 기어코 금금이는 눈물을 보였다. 그러고는 애써 눈물을 닦으며 죄송하다는 말을 연신 내뱉었다.

“프로필을 보면 이금금 연습생이 HI 엔터 리더라고 적혀 있는데.”

“네…….”

“리더가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우는 모습을 보여주면 다른 멤버들이 불안해할 수도 있어요.”

포지션이 리더로 바뀐 우유부단한 녀석이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앞으로 잘할 수 있을까…….

금금이는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네, 앞으로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HI 엔터의 무대가 끝나고 쉬는 시간을 가졌다. 땀으로 화장이 지워진 연습생들은 다시 화장을 받았고, 화장실에 다녀오고 싶을 경우에는 스태프와 동행하여 갈 수 있었다.

주황색 의자에 홀로 앉아 있는 금금이에게 묻고 싶었다. 내가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고. 하지만,

“안 돼.”

“…네?”

이정진이 나를 막았다.

“카메라.”

“카메라… 아.”

이정진이 가리키는 곳에는 돌연프 비하인드 카메라가 돌고 있었다.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쪽쪽 빨아먹겠다는 돌연프의 의도를 읽고 속으로 감탄했다.

“저…….”

“형.”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

“응, 형이라고 불러.”

이정진은 친한 사람이 아니라면 ‘형’은커녕 이름으로 불리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고 들었다.

“…네, 형.”

“부담스러워?”

“아, 아니요. 입에 붙지 않아서.”

그렇게 대답하자 이정진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넌 우리 막내잖아.”

“…막내.”

…막내긴 하지. 낯간지러운 단어에 손등을 긁고 있으니 화장실에서 나온 정요셉이 나에게 다가와 손에 있는 물기를 털었다.

“아.”

“둘이 무슨 대화를 했길래 핑크빛이야?”

“그냥 대화했어요.”

“흐음? 우리 막내가 정진이 형 꼬신 건 아니고~?”

아니라는 말을 꺼내려는 찰나, 언제 왔는지 화목현이 초콜릿 하나를 입에 넣어주었다.

“초콜릿 가져오길 잘했네. 맛있어?”

“네… 맛있어요.”

“기운이 없는 것 같아서.”

나는 초콜릿을 오물거리며 물었다.

“근데 언제 왔어요?”

“방금.”

화목현이 내 앞자리에 앉더니 고개를 들고 말했다.

“요셉이는 원래 저런 성격이니까 화내지 마.”

“리더~ 내가 무슨 성격이라고~?”

정요셉에게 적응하는 팁까지 주면서.

“조용히 있자. 카메라 돌잖아?”

“역시 우리 리더는 재미없어~ 카메라가 돈다고 날 거부하다니~!”

“너도 재미없어.”

“아닌데~ 나는 재밌는데~?”

뒤늦게 화장실에 간 주이든이 돌아오면서 카메라가 무대 쪽으로 돌아갔다.

“광고도 보고 왔겠다. 이제 첫 번째 미션을 확인해야겠죠?”

MC가 무대 위로 올라왔을 때 느꼈다. 돌연프 맛보기는 끝났다.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의 테마곡을 공개합니다! 테마곡 제목은 ‘돌아온 연습생’입니다.”

한 번은 들어본 ‘돌아온 연습생’. 확실히 노래 제목은 구렸지만 돌연프를 각인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프로님들 사랑합니다!

그대로 나를 뽑아줘! 뽑아줘!

기대하게 해줄게!

…가사도 별로긴 하지만. 돌연프 측에서 수능 금지곡을 노린 테마곡이었다. 후크송다운 절도 있고 쉬운 안무로 구성돼 있지만, 열심히 안 하면 확연히 티가 나는 안무였다.

저 안무로 잘하는 연습생과 못하는 연습생을 구분할 예정인 건가.

“연습생분들은 3일간 연습을 한 뒤, 너튜브에 올라갈 춤 평가 동영상을 찍게 됩니다. 그 평가 동영상의 실시간 조회수를 합산하여 센터에 설 연습생을 뽑겠습니다.”

“조회수?”

“너튜브에 올라가는 건가…….”

조회수로 뽑는 거라면 인기 많은 연습생에게 유리한 미션이다. 어떻게 끼를 부려야 할지 고민해봐야겠네.

“그리고 5위 안에 들어간 연습생은 팀에 베네핏 50점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 좋은 성적을 받으려면 당연히 프로님들에게 잘 보여야겠죠?”

완벽한 팬덤 싸움을 일으키기 위한 떡밥. 경악스러운 돌연프의 행보에 곳곳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나는 묵묵히 머리를 굴렸다.

HI 엔터는 금금이가 불쌍하다는 여론을 형성하여 프로님들의 마음을 흔들 수 있었고, FG 엔터는 이남주 얼굴의 덕을 볼 수 있었다.

그나마 AA 엔터에는… 정요셉이 있지.

“우리 막내, 왜 나를 보는 거지~?”

“그냥 봤어요.”

“그으냥~? 그으냥이 아닐 텐데?”

“잘생겨서 봤어요.”

“…흐음? 수상쩍은 시선이었어, 분명!”

정요셉은 몇 년 전 인기 있는 어린이 드라마의 주연으로 출연해 인지도가 높았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을 뒤에서 몰래 도와주는 ‘탐정 요셉이!’라는 어린이 드라마였지.

게다가 정요셉은 연기를 곧잘 했다.

회귀하기 전 기억에 의하면, 정요셉은 아이돌 데뷔를 하자마자 QTQ 방송국의 느와르 드라마에 출연했다. 연말 콘서트를 돌다가 우연히 OTT 플랫폼에서 정요셉이 나오는 드라마를 발견하고 몇 편 시청한 적도 있지.

아이돌이라고 믿기 힘든 수준의 연기력을 선보여서 놀랐던 기억이 어렴풋이 뇌리에 박혀 있었다.

정요셉은 연기면 연기, 노래면 노래, 예능이면 예능 뭐든 잘했다.

아이돌이 연기자로 전향하면 대개 연기자 뽕에 취한다. 그러나 정요셉은 무엇 하나 소홀히 하지 않고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았다. 연기도, 아이돌 활동도.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에 참여한 여러분은 데뷔조 이름을 불릴 수 없습니다.”

네스트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없다는 건가.

“AA 연습생?”

“네!”

우리가 대답하며 의자에서 일어나자, MC는 재밌는 장난을 쳤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이제부터는 이렇게 불리게 됩니다.”

…이제부터다,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

“자, 연습생 여러분, 그럼 기숙사로 이동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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