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AA 엔터 연습생의 첫 무대(1)
왜 여기에 있는 건지 물어보려고 했으나, 금금이는 내 시선을 피하며 입을 다물었다. 지금 HI 엔터는 키오를 데뷔시키려고 혈안이 되어 있을 텐데.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거지?
“우리 막내~”
“네.”
정요셉이 손으로 내 입꼬리를 위로 끌어 올렸다.
“웃어~ 카메라가 너 찍는다.”
그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긴 방구석도 아니고 연습실도 아닌, 방송국이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금금이와 대결 구도로 편집이 될 수도 있고… 나는 미소를 지으며 카메라를 쳐다보았다.
“카메라 의식은 좀 하자~?”
“감사해요.”
근데… 왜 내 볼을 당기세요…….
정요셉은 지치지도 않는지 계속 볼을 만졌다.
“…볼이 아파요.”
“그랬어? 그건 형이 몰랐네.”
나도 장난스럽게 받아쳤다. 다시 정면을 보면서 다른 그룹을 기다리는데 거대한 모니터에서 화면이 떠올랐다.
[익명:저는 꼭 아이돌이 될 거예요. 그래서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저희 열심히 할 테니까, 꼭 뽑아주세요.]
간절한 소망을 담은 메시지.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어 누군지 알아볼 수 없었으나, 화면 밑에 자막으로 ‘FG 엔터’라고 적혀 있었다.
“아.”
주이든이 긴장한 목소리로 허벅지를 꼬집었다. 주이든은 긴장하면 몸을 꼬집는 버릇이 있었다.
“FG 엔터 연습생입니다. 박수로 맞이해 주세요!”
MC가 소리치자 안대를 쓴 FG 엔터 연습생들이 스튜디오로 들어왔다.
“자, FG 엔터 연습생들은 안대를 내려주세요!”
유독 빛나는 은발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FG 엔터 연습생들의 안대가 벗겨지는 동시에…….
“천사 아니야?”
“진짜 예쁘게 생겼다…….”
“내 얼굴 뭐냐.”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쟤가 걔잖아. AA 엔터에서 나간…….”
“아…….”
그래서인지 벌써 카메라는 나랑 저 연습생을 주목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FG 엔터 연습생입니다!”
“FG 엔터는 아직 정해진 그룹 이름이 없나요?”
“…몇 개월 안 된 신생 연습생 그룹이라서 아직 이름이 없습니다! 저희를 뽑아주신 시청자 여러분의 의견을 반영하여 이름을 정할 예정입니다!”
“신생 연습생 그룹은 처음이네요! 그런데 한 FG 엔터 연습생 때문에 주변이 소란스러운 거 알고 있나요?”
저 질문으로 인해 정확하게 알아버렸다. 돌연프의 어그로는 나와 저 연습생이라고. 금금이는 문제가 아니었다, 젠장. FG 엔터 연습생은 마이크를 들고 입술을 움직였다.
“알고 있습니다.”
“왜 그런 건지 알고 있나요?”
“…제 얼굴 때문에? 하하.”
솔직한 대답에 연습생 모두가 수긍했다. 그만큼 FG 엔터 연습생의 얼굴은 파급력이 셌다.
“지금까지 FG 엔터의 신생 연습생 그룹이었습니다! 보라색 의자에 앉아주세요.”
보라색 의자도 우리 옆자리였다. 왼쪽은 HI 엔터, 오른쪽은 FG 엔터. 그야말로 완벽하게 삼각 구도를 이루며 어그로를 끌 수 있었다. 더군다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그 FG 엔터 연습생은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것도 카메라가 보는 앞에서. 사람 속 뒤집으려고 하는 건지 아니면 원래 인사성이 밝은 건지.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FG 엔터 연습생의 손을 잡았다.
“제 이름은 이남주. 잘 부탁해요!”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범나비입니다.”
나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면서 표정을 유지했다.
“알고 있어요. 연습생들 사이에서 유명하잖아요?”
“제가 유명한가요?”
“굉장히 유명했는데… 그래서 보고 싶었어요.”
나 놀리는 건가?
“우리 잘해봐요.”
왠지 이남주랑 잘해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엔터에서 나온 11팀!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찍기 전에, 우선 돌연프 개인 순위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거대한 모니터에 11팀 멤버들의 개인 순위가 떠올랐다.
“이 개인 순위는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의 프로필이 공개되고 난 뒤, 프로님들이 투표해 주신 순위입니다.”
나는 그중 39위. 인지도 측면에서 괜찮은 순위였다. 커뮤니티에 안 좋은 이야기가 많았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팀 순위입니다.”
AA 엔터의 순위는…….
“…뭐야, 순위가…….”
7위. 상위권에서 중위권으로 내려갔다.
“마지막으로 순위 확인했을 때 몇 위였어?”
“4위였나~?”
내가 들어오고 나서 순위가 계속 하락한 모양이다. 팀 순위는 중복 투표가 가능했으니까.
“확실히 중복 투표 영향이 큰 것 같아.”
“괜찮아. 꼴찌 할 수도 있지……!”
중복 투표를 하겠다는 댓글이 종종 있긴 했다. 아무래도 중복 투표를 이용하여 우리 팀을 꼴찌로 만든 모양이다.
“팀으로 이루어진 만큼, 개인 순위가 높지 않으면 당연히 팀에게 불리해지겠죠?”
돌연프가 악질로 유명한 데는 이유가 다 있었다. 돌연프는 방송 내내 말도 많고 탈도 많았으니까.
“그리고 돌연프에는 취소표라는 게 있습니다. 탈락한 팀의 표는 취소표로 풀리게 되는데요.”
돌연프가 악질으로 유명한 또 한 가지 이유는,
“그 취소표를 다른 팀에게 투표하면 투표 횟수가 깎이게 됩니다.”
“뭐?”
“…헐, 취소표?”
자신이 응원했던 팀이 탈락하면 그 표로 다른 팀의 순위를 깎을 수 있는 취소표가 나오기 때문이었다.
네스트가 이거 때문에 2위가 되었다는 소문이 돌았지, 아마.
“그리고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에서는 카테고리에서 마음에 드는 장르를 골라 무대를 꾸밀 수 있는데요. 잠시 모니터 화면을 봐주세요.”
어느새 모니터 화면에는 개인 순위가 사라지고 카테고리가 떠 있었다.
《카테고리》
디스토피아
아포칼립스
메타버스
행복
게임
청춘
“이 카테고리는 미리 각 엔터에 보냈는데요. 연습생 여러분, 카테고리를 받으셨죠?”
“네!”
제일 인상적인 게 디스토피아긴 했다. 임팩트를 주기에 좋은 카테고리.
『363점 – HI 엔터
362점 – FG 엔터
.
.
355점 – AA 엔터
.
.
343점 – RT 엔터
342점 – HOR 엔터
333점 – 개인팀』
우리 점수는 355점. 나 때문에 낮은 점수를 받았다, 젠장. 거짓 소문의 여파가 큰 화를 부르긴 했다.
“먼저 첫 번째 무대를 펼칠 그룹을 뽑겠습니다.”
첫 번째 무대를 하는 것은 딱히 좋지 않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일단 진행 시간이 기니까.
“자, 그럼 뽑겠습니다.”
…안 뽑혔으면 좋겠는데. MC가 상자 안에 손을 넣고 종이를 뽑은 뒤 곧바로 그 종이를 펼쳤다.
“첫 번째 무대는! 개인팀입니다.”
다행히 뽑히지 않았다. 그런데 개인팀?
“개인팀은 QTQ 방송국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자체적으로 만든 팀은 은근히 제작진의 억압이 있을 텐데.
“우, 우리래. 내려가자…….”
검은색 의자에서 일어난 개인팀 멤버들은 무대로 걸어 나갔다. 헤어, 메이크업, 코디까지 개인팀이라는 분위기가 풍겼다.
“안녕하세요. 개인팀입니다……!”
개인팀의 인사가 끝나고 곧바로 무대가 시작되었다. 음… 무대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만큼 처참한 무대였기 때문이다.
다음 무대도, 그다음 무대도. 심사 위원의 마음을 빼앗을 수는 없었다.
“…다 별론데?”
“제발 마음에 드는 무대를 보고 싶어.”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팀이 영 없네.”
엉망진창인 무대가 이어지며 심사 위원들의 기대치가 점점 낮아졌다. 그때…….
“이번 무대는 AA 엔터입니다!”
우리다. 빨간색 의자에서 내려와 무대 위로 오르자 넓은 스튜디오가 나를 압박했다.
“안녕하세요, AA 엔터 연습생분들?”
“안녕하세요!”
“무대를 보기 전에… 범나비 연습생?”
MC가 큐카드를 보면서 나를 불렀다.
“AA 엔터 연습생들에게는 예전부터 팬이 많았다고 들었거든요. 이번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에서 제일 기대되는 그룹으로 뽑히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번에는 왜 낮은 점수를 받았을까요?”
대본에 있는 질문인지 MC의 말투가 딱딱했다. 나는 마이크를 들었다. 나를 공격하는 질문이니 어물쩍 넘어가면 더 큰 화를 초래할 것이다.
“저 때문인 것 같습니다…….”
“왜 범나비 연습생 때문이라고 생각하나요?”
“제가 HI 엔터에서 AA 엔터로 옮기면서, 좋지 않은 이미지가 생기는 바람에…….”
지금도 커뮤니티에서는 거짓 소문으로 내 개인 순위를 낮추고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좋은 무대를 보여주면 순위가 올라가지 않을까요?”
“네, 좋은 무대 보여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마이크를 내리자마자 손이 떨렸다. 수백, 수천 번을 뛰었던 무대였다. 실수만 하지 말자, 실수만. 속으로 되뇌며 마음을 잡았다.
“그럼 AA 엔터 연습생 무대가 시작됩니다!”
나는 대형에 맞춰 화목현 뒤에 선 다음 넥타이로 눈을 가렸다.
“2000년대 곡인 ‘DISS’를 어떻게 편곡했을지가 키포인트네요. 그리고 프로필을 보니까 범나비 연습생이 메인보컬이라고 하네요?”
“…이번에 AA 엔터로 들어갔다고 했죠?”
“어떤 무대를 보여줄지 궁금하네요.”
이내 심사 위원의 목소리가 묻히고 노래가 잦아들었다. 모두가 넥타이로 눈을 가린 채 무릎을 꿇었다.
-여기 들어오지 마세요!
위험합니다!
인트로인 빗소리가 들렸다. 중앙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던 화목현이 눈을 가렸던 넥타이를 내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카메라를 향해 입을 열었다.
-BAD BAD BAD (탕!)
BAD BAD BAD (탕!)
날 살려줄래?
손으로 카메라를 가리자 경고음이 발생했다.
-삐용! 삐용! 삐용!
사상자 발생! 사상자 발생!
(I don't wanna go)
(I don't wanna go)
널 찌르는 칼날의 소리가
세상에 울려 퍼지네
***
I.P는 아이돌 그룹으로 활동하다가 솔로 가수로 전향한 14년 차 가수였다. ‘믿고 듣는 아이피’라는 수식어가 있을 정도로 파급력이 대단했다.
이번에 보컬 심사 위원으로 들어온 I.P는 각 소속사 연습생들에게 카테고리에 맞춰 무대를 준비하라고 지시했지만 퀄리티는 딱히 기대하지 않았다. 연습생은 연습생이지 않은가.
그러나 AA 엔터의 방향성에는 솔직히 놀라고 말았다. 디스토피아 컨셉에 사랑 노래 같은 걸 준비했다면 흥미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을 혐오하는 좀비의 탈출 일기 같은 노래를 들으며 I.P의 볼펜은 박자를 탔다.
‘…AA 엔터가 이를 갈았네.’
거기다가 넥타이라는 소품을 제대로 활용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이거지.”
“이를 갈았다는 게 보이네요.”
그리고 범나비를 활용하는 방식이 좋았다. 뮤지컬스러운 연출과 더불어 다이내믹한 피아노의 선율 역시 인상적이었고.
보컬 심사 위원으로 들어온 I.P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게 연습생에게 나올 만한 바이브인가?
-너를 향한 신호탄
나를 가르는 붐!
(BOOM)
(BOOM)
중반부를 향하는 랩 파트가 끝나면서 피아노의 선율이 끊겼다. 그리고 범나비가 넥타이를 풀더니 바닥에 떨어트리며 손으로 목을 긁었다.
-타오르는 세상 속에서
우리의 미래, 과거의 상상은
살아갈 수 없어
목을 긁으며 고음을 지르는 처절한 목소리에 심사 위원들은 하나같이 놀랐다. 평탄하게 올라가 시원하게 뽑은 고음에는 음 이탈이 없었다. AA 엔터에서 왜 범나비를 데려왔는지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때.
“이런.”
“실수했네요.”
“가벼운 실수라면 괜찮은 것 같은데, 제일 중요한 군무에서 틀리니까, 이건…….”
마지막 안무에서 범나비가 왼쪽으로 가야 하는 다리를 오른쪽으로 틀어버린 것이었다.
-New world
군무가 끝나고 다시 앞으로 나왔던 화목현이 중앙으로 들어가 범나비의 입가를 가리며 무대는 끝이 났다.
범나비는 심사 위원의 반응이 나올 때까지 카메라를 노려보며 숨을 골랐다. 여유로움이 섞인 미소를 지으면서.
심사 위원 몇 명은 고개를 끄덕였고, 다른 몇 명은 고개를 저었다. 먼저 I.P가 마이크를 잡았다.
“…보컬은 흠잡을 데가 없네요.”
“감사합니다……!”
“대중을 잡기 위해 퍼포먼스 위주로 준비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근데 범나비 연습생?”
화목현에게 갔던 마이크가 다시 범나비에게로 돌아왔다.
“AA 엔터로 언제 옮겼나요?”
“이제 일주일하고 이틀 되었어요.”
“그러면 안무를 언제 외웠죠?”
“5일 동안 외웠습니다.”
안무를 5일 동안 외웠다는 말에 주변이 술렁거렸다.
“아, 그래서 실수를 했나요?”
댄스 심사 위원이 마이크를 들었다.
“죄송합니다. 마지막 부분이 헷갈려서.”
“어차피 센터가 아니라서 그 부분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5일 동안 그 정도 실력이라면 대단하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범나비 연습생에게 부담감이 있었는지 춤이 무겁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칭찬과 독설이 섞인 말에 범나비는 허리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했다. 화목현은 기죽지 말라는 듯이 범나비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무반주로 단체 안무를 한 번 더 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