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의 1군 가이드-2화 (2/235)

2. 아이돌 노트

AA 엔터에서 새로운 연습생을 찾는다는 목적으로 우리 HI 엔터에 왔던 기억이 있었다. 내가 안 된다며 거절 의사를 내비치자 웃어주며 응원했었지.

나중에 듣고 보니 나를 제외하면 괜찮은 연습생이 없어서 AA 엔터는 아무도 영입을 안 했다고 했다.

“우리한테 좋은 연습생 안 준다고 했잖아요?”

“그거야 연막이었지.”

“연막이 너무 셌어요. 긴장하고 왔는데.”

뇌가 얼어 있던 시절이라 이런 대화를 했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정말로 내가 과거로 돌아온 걸까?

“왜 새로운 연습생을 넣는다는 거야? 4명도 출중하다고 들었는데.”

“한 명이 문제아거든요.”

“문제아면 뭐? 얼굴만 좋고 이미지메이킹 잘하면 되지.”

“그건 초반에만 먹히는 거고. 나중에는 다~ 들켜요.”

전무님의 말을 듣지도 않고 AA 엔터 팀장님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조목조목 따지는 느낌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근데 잘생겼다.”

“…감사합니다.”

옆에서 전무님이 칭찬을 거들었다.

“이런 얼굴 흔치 않지. 팬덤 형성하기에는 딱 좋은 얼굴이야.”

“제가 찾던 얼굴이긴 해요.”

AA 엔터 팀장님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괜찮으면 우리 회사로 와줄래요? AA 엔터로 오면 멤버들과 전체적인 밸런스가 맞을 것 같거든요.”

“아, 전…….”

“그리고 범나비 연습생이 AA 엔터에 들어오면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에 합류할 거예요.”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요?”

“네, QTQ 방송국에서 연습생들을 모아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진행할 거예요. 근데 최근에 예기치 못한 사정으로 연습생이 나가는 바람에… 새 멤버가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필요하다는 말씀이신가요?”

AA 엔터 팀장님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범나비 연습생이 꼭 필요해요.”

“제가 들어가면 욕을 먹지 않을까요?”

“아마 어느 정도는 그럴 거예요. 우리 애들 얼굴은 이미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데다 기존 팬덤도 형성되어 있어서… 하지만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괜찮을 거예요.”

“…아.”

“잘 생각해 봐요. 이 바닥은 항상 선택의 갈림길에 서야 해서. 꼭 우리 쪽에 오라는 건 아니고요.”

나는 시선을 내리며 바닥을 주시했다. 내가 정말로 과거로 돌아왔다면…….

“이만 저는 가볼게요.”

“그래, 그래. 내가 잘 설득해 볼게.”

“설득 안 해줘도 돼요. 본인 선택이 중요하니까.”

AA 엔터 팀장님이 일어나는 동시에 나도 고개를 들며 일어났다. AA 엔터 팀장님은 나랑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래도 와줬으면 좋겠어요. 좋은 대접 해줄 테니까.”

라고 하더니 돌아보지도 않고 떠났다. 졸지에 고민을 하게 된 나는 AA 엔터 팀장님이 떠난 자리를 보면서 전무님을 쳐다보았다.

“…전무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왜 하필 저를?”

“AA 엔터 측에서 네가 좋을 것 같다고 해서.”

AA 엔터가 나를 선택했다는 건가. 내가 망설이는 태도를 보이자 전무님이 말을 이었다.

“나비야, 잘 들어. 사실 연달아 키운 애들이 망해서 엔터에 빚이 많아졌거든. 그런데 너희를 키우려고 하니까… 돈이 부족한 거야.”

“네?”

“위에서 너희가 흩어졌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오긴 했거든.”

이건 몰랐던 사실이다.

“AA 엔터가 우리한테 제안하더라. 연습생 한 명을 보내주면 투자하겠다고… 미래를 보면 그게 너한테도 좋고, 우리한테도 좋잖아? 어떻게 보면 네가 속했던 키오도 아이돌로 데뷔도 하고?”

키오로 활동하던 당시, 4년 동안 정산금을 받지 못했다. 회사에 빚이 많다는 이유였다. 이래서 전무님이 각종 예능에 내보냈던 거구나.

“전무님, 저한테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그래, 넌 다른 애들과 다르게 똑똑하니까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 거야. 이 바닥 생태계 알지? 무조건 꿈만 좇는다고 성공하는 건 아니잖아…….”

그 말이 맞다. 꿈만 좇는다고 성공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다. 특히나 빠르게 변하는 아이돌 시장에서는.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아, 이거.”

전무님이 나에게 뭔가를 건넸다. AA 엔터 팀장님 명함. 나는 인사를 하고 그대로 나왔다.

옛날엔 어떻게 대처했는지 생각해 봤더니 전무님한테 가기 싫다고 울었던 기억밖에 없었다. 절 버리지 말아달라고.

정말 철이 없었지. 나는 한숨을 깊게 내쉬면서 연습실로 향했다. 곧장 금금이가 나를 반겼다.

“형, 전무님이 왜 불렀어요? 혹시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죠?”

“무슨 일이 있긴 있었지.”

내가 쥐고 있던 명함을 보자마자 금금이의 눈이 커졌다.

“그거… 명함이에요?”

“응, 맞아.”

“설마, 형… 다른 엔터로 가요?”

“확정된 건 아니고… 제의는 받았어.”

금금이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형, 안 가면 안 돼요? 어차피 우리랑 데뷔하면 좋잖아요. 저도 형이 편한데…….”

과거엔 금금이의 말에 안 간다고 했었지. 그랬는데… 왜일까. 이번에는 AA 엔터로 가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네스트와 키오의 미래를 알고 있어서 그런 걸까.

“나는 잘 모르겠다, 금금아.”

“…내가 붙잡는다고 형이 안 가는 것도 아니니까.”

“미안.”

“형이 뭐가 미안해요.”

시무룩한 금금이의 목소리에 금금이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연습실 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다시 눈을 뜨면 여기가 아닐 수도 있는데 말이야. 이런 고민을 하는 게 웃겼다.

손에 쥔 명함을 바지 주머니에 넣을 때였다.

“아차! 형!”

“응?”

“이거. 형이 매일 들고 있던 노트.”

빨간색 노트. 내가 연습생 시절부터 일기를 적었던 노트였다.

“연습실에 놔두고 갔던데요? 형은 이런 점에서 허술하더라. 물건 좀 잘 챙겨요.”

“…고맙다.”

“제 마음, 아직 좋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먼저 갈게요. 형은 연습실 불 끄고 가요.”

금금이가 나가는 순간 노트를 열어보았다. 편의점에서 천 원에 샀던 노트였다.

노트에 어떤 글을 적었나 싶어 노트를 펼친 나는 노트를 그대로 바닥에 떨어트릴 수밖에 없었다.

【범나비, 또 우정을 선택하려고?】

이런 글이 적혀 있었으니까.

***

그랬다. 침대에 누워서 잤을 뿐인데 과거로 돌아왔다. 나는 빨간색 노트에 적혀 있는 글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20XX. 2. 10

키오 데뷔! 너무 좋았다!

팬들도 만나고!

행복한 이 마음이 이대로 쭉 갔으면 좋겠다.]

[20XX. 10. 19

음방에서 첫 1위 한 날.

울고 싶어도 기뻐서 눈물이 나오지 않던 날.

팬들한테 사랑한다고 고백해서 뿌듯했다.]

[20XX. 3. 12

선우가 사고를 쳤다.

교통사고란다.

다행히 사람을 치지는 않았지만 음주 운전이라서 컴백은 뒤로 미뤄야 했다.

너무 슬프다.

팬들 만날 생각에 설렜는데.]

[20XX. 5. 31

나보고 리더 할 자격이 없단다.

멤버 통제도 못 한다면서.

너무나도 미안했다.

우리를 좋아해서 그런 말을 했을 테니까.]

[20XX. 8. 28

4주년 콘서트에서 팬들한테 고맙다고 말하며 울어버렸다.

처음으로 흘린 눈물에 팬들도 울었다.

팬들을 울릴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날 생각했다.

나를 선택해 준 팬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기로.]

[20XX. 11. 11

큰일 났다. 이번에는 마약이란다.

매일 밤 어디 가는 거냐고 물어보면 별거 아니라고 했으면서 다 거짓말이었다니.

이번 5주년 컴백은 할 수 있을까.

팬들한테 미안하다…….]

[20XX. 1. 30

선우의 탈퇴가 결정됐다.

웃기지 않나. 마약 투여를 한 이유가 힘들어서란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는 뭐가 되는 건지.]

[20XX. 10. 28

나를 좋아했던 팬이 다른 아이돌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걸 알아버렸다.

슬프다.]

[20XX. 12. 30

나는 실패했다.]

[20XX. 1. 1

이제 그만둘 차례다.]

슬픔이 고스란히 적혀 있는 일기를 보니 가슴이 꽉 막힌 것처럼 묵직해졌다. 그리고,

【범나비, 또 우정을 선택하려고?】

마지막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왜 이렇게 마음에 와닿는 걸까. 그리고 이 글은 누가 적었을까. 나는 빨간색 노트를 덮으며 연습실 천장을 쳐다보았다.

“…실패한 인생을 살 건가?”

운명은 바꿀 수 있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또 실패하면? 또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지면?

나는 또 실패한 인생을 살게 되는 거잖아. 하지만 실패한 인생을 살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이 시기의 나에게는 분기점이 있었으니까.

“AA 엔터테인먼트…….”

그곳에 가는 것. 그런데 내가 AA 엔터에 가면 어려운 점이 많을 것이다.

첫 번째, 네스트에서 나간 연습생 얼굴이 공개된 상태.

두 번째, 멤버 간의 관계.

세 번째, 연습생 팬덤.

그중 이 세 가지가 제일 마음에 걸렸다. 네스트에서 나간 연습생 얼굴이 공개된 상태라면 말이 달라진다. 팬들은 연습생 시절부터 함께한 멤버가 그대로 쭉 가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들어가도 팬들이 나를 좋아해 줄까? 이건 도박이다.

키오 팬덤에는 관계성을 중요시하는 팬들이 많았다. 오래된 연습생 멤버들과 성장하는 아이돌 이미지는 팬들에게 좋은 영향을 줬으며 쉽게 영업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내가 들어가서 멤버들 간의 관계를 깨트린다? 그걸 좋아할 팬은 없었다.

“…그래도.”

한 번쯤은 도전해 봐도 괜찮지 않을까? 그래도 내가 실력은 되잖아.

그 뒤로는 내 행동이 관건일 거고. 그렇게 별생각 없이 다음 페이지를 넘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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