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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가 망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18화 (118/124)

제118화

아벨라가 돌아오는 데에 걸린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좋지 않은 걸 보기라도 한 듯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다.

난 쇠사슬을 늘어트린 채 아벨라에게 다가갔다.

“괜찮아?”

“…네….”

“왜. 무슨 일 있어?”

내 물음에 아벨라가 힐끔힐끔 내 눈치를 본다.

뭐지? 무슨 일이 있었길래 내 눈치까지 보는 거야?

“저… 도련님.”

“응.”

“부탁 하나만 드려도 돼요?”

“뭐.”

“만약에… 정말 만약에….”

말을 늘어트리기까지 하며 망설이던 그녀는, 이내 결심을 굳힌 얼굴로 말했다.

“제가 미쳐버린다면 그때 도련님의 손으로 저를….”

“야.”

난 그녀의 말을 끊었다.

아벨라가 놀란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네?”

“누가 그런 불길한 소리 하래?”

뒤에 이어질 말은 뻔하다.

죽여달라, 막아달라.

어찌되었던 우리 서로에게 상처 밖에 남지 않을 결말.

“개소리하지 마. 누가 널 미치게 만든 데?”

“그…… 그니까…… 별이 저를 그렇게 만든다고…….”

“별? 무슨 별.”

“천살성이요….”

그건 또 뭐야?

“그게 뭔데?”

“네?”

내가 모른다고 하자, 그녀가 깜짝 놀랐다. 왜 저래?

“분명히 거인님이 도련님이라면 아실 거라고 하셨는데….”

“난 몰라. 그게 뭔지. 그리고, 만약 내가 그에 대해서 안다고 해도, 내가 할 말은 달라지지 않아. 미쳐버리면 죽여달라고? 제정신이야?”

“하, 하지만…… 잘못하면……”

“벌써 실패를 생각하면 안 되지. 그럼 성공할 일도 성공 못해.”

내 단호한 말에 아벨라가 눈에 띄게 시무룩해졌다.

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니까, 너무 불안해하지 마.”

“……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확신이 아니다.

난 미래를 볼 줄 모르니까.

하지만.

“내가 그렇게 만들 거야.”

미래란 내가 만들어가는 것.

내가 만들어갈 미래에, 그녀가 미쳐버리는 엔딩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다신 그런 소리 하지 마.”

“……네. 죄송해요.”

“그래. 미안한 거 알면 됐어.”

난 그녀의 머리에서 손을 뗐다.

순간적으로 아쉽다는 감정이 표정에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그녀는 더 쓰다듬어달라 같은 소리는 하지 않고, 머리를 정돈했다.

내가 선물해준 초커를 마스크 형태로 바꾸고, 단검을 손에 쥔다.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거인을 바라보았다.

“수련… 시작해주세요.”

“네?! 저희 조금도 못 쉬었는데?!”

“괜찮아요. 저 혼자 하면 되니까.”

“끄응….”

내 쇠사슬에 몇 대 얻어맞은 탓에 퉁퉁 부운 엉덩이를 쓰다듬던 데자트가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단검을 들고 아벨라의 바로 곁에 선다.

“그래도 나름 제가 스승인데, 쉴 수는 없겠죠….”

[그럼 다시 시작하겠다.]

“네.”

아벨라가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거인이 다시 무기를 치켜들었다.

……잠깐. 무기?

[이번엔 나의 무기를 막아내 보거라.]

후우우웅!

콰아아아앙!

대검이, 우리가 서 있던 자리를 내리찍었다.

* * *

[이제 30분도 채 남지 않았군. 수련은 여기까지 하겠다.]

“헥….”

“끄아아….”

모두가 근육통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몸 상태를 살폈다.

정말 이렇게 한계까지 싸운 게 얼마 만인지, 상급 기사의 수준에 이른 육체가 그만하라고 소리지르는 게 느껴진다.

‘그래도 성과는 훌륭하다.’

압도적인 힘 앞에서 내가 얼마나 무기력해질 수 있고, 내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가 몸에 새겨진 느낌.

이대로라면, 암왕에게 당하지 않을 수 있다.

당연히 나뿐만 아니라 애들도 모두 마찬가지였고.

‘게다가 암살자들까지 직접 불러내 실전 경험까지 하게 해주셨으니….’

오랜 세월을 산 거인은 많은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중엔 언데드는 아니나, 비슷한 존재를 다룰 수 있는 능력도 포함되어있었고.

이를 이용해 암살자 양산품을 만들어내어 수련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감사합니다. 많은 걸 배웠습니다.”

난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거인 아쿠루샤가 고개를 끄덕이며 무기를 회수한다.

뒤이어, 구석에 처박힌 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헬레나가 이제야 정신을 차렸다.

“허억!”

거칠게 숨을 내뱉은 그녀가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그녀는 다급히 근처를 둘러봤다.

“서, 설마 다 끝났나?”

“어. 다 끝났다.”

“마, 말도 안 돼!”

[말도 안 되기는. 내 주먹을 정통으로 맞았으면 죽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

거인 아쿠루샤의 말에, 그녀가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군다.

“이럴 수가….”

이때까지 본 모습 중 제일 침울해 보였다.

아니, 이게 저렇게까지 침울해할 정도인가?

“거인과 싸울 기회가 이리 허무하게 날아가버리다니….”

“나중에 가면 거인보다 센 사람과 질리도록 싸우게 될 테니 일어나기나 해.”

“젠장….”

헬레나는 눈에 띄게 침울해진 상태로 내 뒷정리를 도왔다.

지친 상태로 그대로 잠들어버린 아벨라와 스칼라는 마차 짐칸에 넣어주었다.

얼마나 피곤했는지, 내가 옮기는 와중에도 깨지 않고 잠들어 있었다.

‘그나마 샤흐와 데자트는 상대가 나은가.’

다만, 정말 나은 수준이지, 실제론 처참했다.

샤흐는 버티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고, 데자트는 샤흐를 껴안은 채 졸음을 겨우 참고 있었다.

이제는 좀 가볍다고 느껴지는 그녀를 들어올린다. 데자트는 질린 표정을 지었다.

“아니… 무슨 체력이 그래요….”

“그건 내가 할 말인데. 넌 왜 체력이 그 모양이야.”

“다 이유가 있다구요… 으으 공주님….”

“윽. 다, 답답….”

뒤엉키는 그녀들도 그냥 마차의 짐칸에 집어 던졌다.

알아서 자고 일어나겠지.

지금 경지에선 그냥 잠만 자도 웬만한 피로나 부상은 해결되니, 그냥 내버려 둬도 문제는 없을 터.

이히힝!

거인은 말 한 마리를 데리고 돌아왔다. 그는 내게 고삐를 넘겨주었다.

[선물일세.]

“감사합니다.”

[비록 내 먹이로 기른 말이긴 하나, 마차 정도는 충분히 끌 수 있을게야.]

난 마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웬만한 명마 수준은 되는 거 같은데.’

대식가가 아니라 미식가였군.

“…그보다, 그대는 어딜 다녀온 건가?”

“여기에 찾아온 목적.”

마차를 점검하며 묻는 그녀에게 가볍게 대꾸해준다. 그녀는 살짝 놀란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거인이 아니었단 말인가?”

“그래. 더 윗선의 사람을 만나고 왔지.”

“그래서 그렇게까지 한 건가….”

그녀가 ‘그렇게까지’라고 말한 게 뭔지 알 것 같았다.

말이 죽어버린 탓에 내가 대신해서 마차를 이끈 것.

“왜. 너무 추해서 정이 다 떨어졌나?”

“아닐세. 그냥….”

헬레나의 눈이 빛났다.

“너무 멋져서 그러네.”

기사란 누구보다 힘을 갈망한다.

그 과정에서 명예나 고귀함은 필요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라온은 누구보다 기사들이 호감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더한 힘을 가지기 위해 직위고 뭐고 신경 쓰지 않고 나선다.

뼛속부터 시작해 뇌수까지 ‘기사’인 헬레나에겐 너무나 매력적인 모습이었으니.

“난 오히려 좋네. 그런 모습을 더 보여주면 좋겠어.”

‘…대체 왜 호감도가 더 오르는 거지?’

정작, 기사의 마인드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라온은 의문이었지만 말이다.

&

점검이 끝난 후, 우린 곧바로 출발했다.

[다음에 또 볼 수 있다면 보지.]

“예.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잘 가게.]

거인의 배웅을 받으며 마녀의 영역을 벗어난다.

벗어난 순간, 멈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허공에 멈춘 나뭇잎이 다시 휘날리기 시작한다. 불어오는 바람에 수풀이 흔들리고, 곳곳에서 벌레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제 어디로 갈 건가?”

“많이 고민을 해봤는데. 역시 이곳이 나을 거 같아서.”

난 지도의 한 곳을 가리켰다.

헬레나가 놀란 눈을 했다.

“여긴 설산이지 않는가.”

“그래. 여기에 숨어 있는 은거 기인을 찾으러 갈 거다.”

“기사인가?”

“아니. 마법사.”

헬레나가 눈에 띄게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난 어이가 없어졌다.

“…지금 우린 싸우러 가는 게 아니다. 협동하러 가는 거지.”

“알고 있네. 하지만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면 주먹을 써야하지 않겠는가.”

분위기만 보면, 주먹을 쓰지 않을 상황에도 그냥 주먹을 쓸 거 같다.

“절대 먼저 나서지 마. 내 지시를 최우선으로 따라. 그러지 않는다면 난 널 내 파티에서 추방할 수밖에 없어.”

“알겠네. 걱정하지 말게. 자네의 명령을 어길 정도로 난 무식하지 않으니.”

그녀는 빙긋 웃어보였다.

하지만 믿음이 가지 않는 건 사실이었다.

그동안 한 일이 있으니…….

“그보다, 워프 게이트를 탈 생각인가? 여기에서 거기까진 너무 멀지 않….”

그녀는 말하다 보인 광경에 입을 다물었다.

나 또한 그녀가 바라보는 것을 바라봤다.

저 멀리. 초록색의 나무들과 정반대되는 새하얀 나무로 뒤덮인 산이 눈에 들어온다.

“……이상하군. 내 눈이 잘못된 건가? 왜 설산이 보이지?”

“내가 미리 부탁을 해놨으니까.”

마녀의 영역은 딱 어디에 위치하는 것이 아니다.

조건을 충족한다면, 그대로 길이 트어 안으로 들여보내는 방식.

보통은 나갈 때에는 들어온 장소로 해주지만, 이는 내가 미리 부탁을 해놨었다.

“훌륭하군….”

“내 로브 주머니에서 두꺼운 옷들 꺼내서 입어. 슬슬 추워질 거니까.”

“난 없어도 상관없네만….”

“입으라면 입어.”

“알겠네.”

헬레나는 주섬주섬 두꺼운 옷을 꺼내 입었다. 두껍고 빵빵한 탓에 한순간에 몸이 커졌다.

“후드까지 쓰고.”

그녀가 털이 수북한 후드를 썼다.

난 그녀의 후드를 살짝 잡아당겨 꾹 눌러주었다.

그러자 콧대와 입술만 보였다.

“좋네.”

“…내 앞이 안 보이네만.”

“괜찮아.”

“내가 안 괜찮네.”

헬레나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후드를 젖혔다.

난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헬레나는 굉장히 불만이 많아보였지만, 이제 더 말하지 않고 나 대신해서 애들 옷을 갈아입혀 주었다.

그 와중에도 조금도 깨지 않았다. 저러다 도착하고 나서도 안 깨는 거 아닌가 싶었다.

‘뭐, 상관없나.’

어차피 우리만으로 충분하니까.

“여기서 멈추지.”

“음. 여기부턴 말이 못 들어가겠군.”

난 아공간 안에 짐을 모두 쑤셔넣고, 마차를 끌고 근처 동굴로 향했다.

동굴은 다행히 곰 같은 짐승이 자리 잡은 곳이 아니었다.

혹시 모르니 꼼꼼히 확인한 후, 마차를 안에 집어넣는다.

말 먹이를 잔뜩 쌓아두고, 동굴 입구를 막아놨다.

이러면 몬스터가 들어오지 못할 것이고, 또 말들도 나가지 못할 테니 잃어버릴 걱정도 없었다.

“그럼 가자.”

“…모두 업은 채로?”

“아니.”

난 아공간 안에서 휴대용 짐 썰매를 꺼냈다. 그녀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건 왜 안에 있는가?”

“혹시 몰라서 챙겨놨는데.”

이 정도는 당연한 거 아닌가?

난 그녀의 의문을 뒤로한 채로, 애들을 짐썰매에 올리고 단단히 묶었다.

“끌고 가자.”

“……내가?”

“반반씩.”

우린 짐썰매를 하나씩 끌며 설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초입이라 그런지, 추위 속에서도 살아남은 몬스터나 짐승이 많았다.

크르륵-

서걱!

하지만 초입에 불가한 지라, 수준은 그리 높지 않았다. 헬레나가 칼 한 번 휘두르자 단칼에 목과 몸이 분해된 채 바닥을 나뒹군다.

“별로 강한 놈들은 없군. 아쉬워.”

“그 짐썰매 부서지면 네가 만들거나 고쳐야 되는데.”

“…안전 면에선 없는 게 좋겠지.”

고치거나 만들긴 싫었는지, 뒤늦게 말을 덧붙인다.

난 피식 웃으며 짐썰매를 끌었다.

“으응….”

“응…? 생매장…?”

시간이 지나자 한 명씩 깨어났다.

먼저 일어난 건 스칼라.

그녀는 일어나 불꽃으로 우리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었고, 뒤이어 일어난 이들도 모두 뎁혀주었다.

“따뜻하네.”

난 내 다리 사이에 앉은 스칼라의 정수리에 턱을 올렸다.

스칼라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모닥불을 조금 더 강하게 피웠다.

데자트가 항의했다.

“치사하게 독점하는 게 어디 있어요!”

“여기.”

“그런데 저희 어디까지 올라가야 해요?”

난 고개를 들어, 구름이 많이 사라져 힐끔 보이는 산 꼭대기를 가리켰다.

“저기 있는 성까지.”

샤흐는 고기를 삼키며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희가 찾아가는 사람, 무슨 공주병이에요? 왜 설산에 성을…?”

“어허.”

공주병이 아니라 왕자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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