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7화
아쿠루샤는 내 말에 모른 척 시치미를 뚝 뗐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군. 내게 무슨 가르침을 달라는 거지?]
“마녀에게 당신에게서 가르침을 받으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마녀께서?]
마녀는 그에게 모든 걸 설명하지 않은 모양이다. 마녀가 명령했다고 하자 깜짝 놀란 모습을 보였다.
난 태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예. 그러니 저에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
아쿠루샤는 대답하지 않고 날 지그시 응시했다.
나 또한 그를 지그시 응시한다.
거인의 눈동자이다 보니, 평범한 사람의 머리통보다도 더 거대한 눈동자는 묘한 압박감을 품고 있었다.
[먼저 하나 묻겠다.]
“예.”
[너는 내가 두렵지 않으냐?]
거인은 나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종족이다.
신에게 축복받은 거대한 몸집과 힘, 태어난 순간부터 중급 기사를 웃도는 압도적인 종족 능력치.
왜 멸족에 가까워졌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종족이었으니.
“예.”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쫄 이유는 조금도 없었다.
“제가 두려운 건, 당신 같은 존재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제가 실패하고, 죽음을 맞이해 다시는 도전할 수 없어지는 것.”
미지란 내게 두려운 영역이다.
하지만, 그게 죽음보다 더 두려운 건 아니다.
다시는 도전하지 못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결말을 보지 못하는 것.
그것이 내가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다.
“제 두려움은,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군.]
아쿠루샤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어째서 마녀께서 내게 ‘길’을 보여주는 눈을 다시 돌려주었는지 이해가 되는군.]
그는 육중한 몸을 일으켰다.
[네게 가르침을 주겠다.]
“감사합니다.”
[아, 그전에.]
“?”
아쿠루샤는 손을 뻗었다.
부러진 나무 사이에서 붉은 머리의 여인이 그의 손아귀에 끄집어내 졌다.
난 인상을 찌푸렸다.
‘…쟤는 왜 저러고 있어?’
[이 아이는 적당한 곳에 데려놓거라. 또 내 말을 전하거라. 투기는 좋지만, 상대를 잘 보고 덤벼야 한다고.]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난 근처에서 불안한 듯, 귀를 흔들고 있던 데자트를 불렀다.
“데자트.”
“넵!”
후다닥 달려온 그녀에게 헬레나를 던져줬다.
공주님 안기 자세로 헬레나를 받는다.
헬레나를 받아든 그녀는 내게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당신이 강한 건 알지만, 여긴 그 강함이 통용되지 않는 곳이에요. 다치지 마요.”
“알아. 걱정하지 마.”
난 뻐근한 목을 풀었다.
지금 몸 상태는 최상이다. 마녀가 지금의 내게 당장 필요한 축복을 준 건 아닌 듯했지만, 별 아쉬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미래의 중요한 순간에 도움을 주겠지.’
마녀의 축복이란 그런 것이니.
“너희도 그동안 놀지만 말고 수련하고 있어.”
“알겠어요!”
내가 데자트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거인은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대화를 끝내자, 거인도 고개를 아래로 내린다.
[마녀께서 내게 너에 대한 말을 남기셨다.]
“예.”
[걱정은 하지 마라. 나는 그 누구도 만나지 않으며, 말할 수조차 없으니.]
“알고 있습니다.”
[좋다. 그렇다면, 지금 네게 가장 필요한 걸 가르쳐주마. 저기 간 네 동료도 모두 불러와도 좋다.]
“……?”
대체 뭘 가르치려고?
우지끈!
거인이 나무 한 그루를 뽑아 들었다. 웬만한 사람보다 훨씬 큰 거대한 나무였다.
[너희에게 어떤 위기가 오던, 압도적인 강자로부터 살아남는 방법을 알려주마.]
급히 달려온 동료의 눈이 커지는 게 보였다. 난 다급히 쇠사슬을 풀어헤쳐 바닥에 늘어트렸다.
[그게 지금 네게 필요한 것이니.]
그 말을 끝으로.
“……스칼라!”
“응……!”
화르르르르륵!
콰아아아아아아앙!
급하게 펼쳐진 불의 장막에 나무가 내리꽂혔다.
***
거인의 가르침은 10시간 동안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쭉 이어졌다.
숲이 잔뜩 그을리고 움푹 파인 채 초토화되었다.
내 손을 잡은 채 겨우 탈진을 면한 스칼라가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헥… 흑… 헤엑….”
[음. 역시 이런 공격으론 뚫지 못하나.]
10시간 동안 나무로 내리찍을 뿐만 아니라 발길질을 하거나 손바닥을 후려치는 등, 여러 광범위한 공격을 날린 거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격을 막아내고 바닥에 처박혀 있던 데자트가 끙 소리를 내며 기어 올라왔다.
“으으… 온몸이 쑤셔요….”
“그걸 무식하게 온몸으로 받았으니까 그러지.”
마지막 순간에 스칼라의 마력이 바닥을 드러낸 탓에 온몸으로 나무를 막아냈다.
겨우 저 정도의 경상에서 그친 게 다행이다.
[다들 훌륭하도다. 다만, 거기 호위 기사여. 자네는 몸을 조금 더 아낄 필요가 있어. 방금 같은 상황에선 몸으로 막을 생각하지 말고 검기로 박살 내거나 흘려보낼 생각을 하게. 자네는 몸을 더 아껴야 하네. 한 하나뿐인 공주의 호위 기사가 아닌가.]
자신의 정체를 뚫어본 거인의 말에, 데자트가 맥이 탁 풀린 듯 바닥에 엎어졌다.
“……진짜 정체를 열심히 숨긴 의미가 없네.”
[거기 암살자여.]
“?”
[잠시 이야기를 나누지.]
아벨라는 내게 슬쩍 고개를 돌렸다. 다녀와도 되냐는 눈빛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와.”
왜 거인이 아벨라에게 관심을 둔 지는 모르겠지만.
저 정도의 존재라면, 그녀가 이토록 빠르게 성장하는 이유를, 그는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최대한 많은 걸 얻고 가야 해.’
“스칼라.”
“응…?”
“아벨라 기다리면서 명상하고 있어.”
“응….”
스칼라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리에 앉았다.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입에 들어간 모래를 뱉고 있는 데자트에게 다가갔다.
“퉤퉤! 으… 입에서 모래 씹는 느낌이…….”
“데자트, 샤흐.”
“네.”
“네?”
“둘 다 무기 들어.”
난 쇠사슬을 길게 풀었다.
데자트는 진짜? 설마? 아니죠? 하는 눈빛을 보냈고.
샤흐는 군말 없이 창을 들었다.
‘그래. 샤흐처럼 굴면 얼마나 좋아.’
난 씨익 웃었다.
“그거 맞으니까, 둘 다 덤벼.”
“……진짜로 때릴 거예요?”
“응.”
어차피 여기에선 안 죽는다.
거인은 일부러 말하지 않았지만, 진작에 알아차렸다.
그렇지 않았다면, 즉사해도 이상치 않을 공격을 날리지 않았을 테니까.
그렇다면.
‘그걸 최대한 이용한다.’
“자. 3. 1. 시작.”
“2가… 없잖아요…!”
데자트가 그림자에서 튀어나오며 검을 휘둘렀다.
난 그녀를 마주 보며 쇠사슬을 휘둘렀다.
카아아아앙!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미치광이 데자트가 아닌, 호위 기사 데자트와의 전투… 아니 훈련이 시작됐다.
* * *
거인은 아벨라를 데리고 ‘달맞이산’으로 향했다.
과거, 달에 닿고자 했던 한 거인이 쌓아 올린 산.
비록 지금은 산을 지은 거인의 이름조차 잊혔지만, 세웠던 산만큼은 남아 그가 지키고 있었다.
[저기 달이 보이느냐?]
“……네.”
잔뜩 긴장한 표정의 아벨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인은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
[너무 겁먹지 말거라. 난 그저 너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데리고 왔을 뿐이니.]
“왜… 저죠? 저보다 뛰어난 사람은 많잖아요.”
[알고 있다. 저 중에 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한 이는 없지.]
아벨라는 알고 있다는 듯,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직 거인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하나, 그건 ‘지금’일 뿐.]
“……?”
[난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 비록 현실이 두려워 이곳으로 도망쳤으나, 오랜 시간을 산 덕분에 신비한 능력을 하나 얻었지. 그건 바로 별을 보는 능력이다.]
거인의 손가락이 하늘에서 빛나는 별을 가리켰다.
기분 탓일까.
순간 별이 붉어진 것 같았다.
[저 별이 보이느냐?]
“…네. 보여요.”
[저건 그대를 비추고 있는 별이다. 정확히는, 그대를 눈독 들이고 있는 별이지.]
아벨라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표정.
거인은 친절히 설명을 덧붙여주었다.
[별들은 하늘에 닿을 재능을 가진 이들에게 눈독을 들인다. 비록 자네의 근처에 있는 이들이 너무나도 빛나서 묻힐 뿐, 자네 또한 찬란히 빛나는 빛날 재능을 가지고 있어. 그러니 별들이 그대를 눈독 들이고 있는 것이지.]
“자, 잠시만요. 별이 눈독을 들인 다뇨? 별에 자아가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다.]
“……!”
아벨라가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그저 밤하늘을 밝히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한 것이, 실제론 자아를 가지고 있다니 놀란 것이다.
게다가 눈독을 들이고 있다고 말할 정도라면, 힘도 강하다는 이야기 아닌가?
[이 이상은 아직 그대가 듣기엔 너무 이르네. 아마 너의 주인은 이에 대해 알고 있을 테니, 때가 되었을 때 듣거라.]
“…알겠어요….”
[그럼 이야기를 이어서 하지. 내가 별에 대해 언급한 이유는, 자네에게 눈독을 들인 별이 너무나도 위험하기 때문이지.]
그뿐만이 아니다.
아까 말했다시피, 거인은 ‘길’을 볼 눈을 돌려받은 상태였다.
단순히 별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앞으로 걸어갈 길을 볼 수 있는 능력.
‘너무나도 험난하구나.’
비록 곁에 있던 라온보다는 아니겠지만, 길에는 피와 시체가 흥건할 것이고, 본인도 상처투성이가 될 것이다.
그러한 길에, 한 별이 눈독 들였다.
[천살성이라고 들어보았느냐?]
“…천살성이요?”
[그래. 살(殺) 그 자체를 상징하는 흉악한 별이지. 이 별이 눈독을 들인 자들은 모두 살에 미쳐 모두를 죽여버리고 세상을 피로 씻는다. 그 별이 너에게 눈독을 들인 것이다.]
“……!”
아벨라의 손이 충격으로 떨렸다.
“그렇다면… 도련님도 제가…?”
[그건….]
그것까진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천살성(天殺星)이 눈독 들인 이가 재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고, 목숨을 대가로 더한 힘을 가진다고 한들.
과연, 마녀의 관심을 받고 살(殺)의 근본적인 목표인 ‘죽음’을 수없이 겪어온 라온을 죽일 수 있을까?
[…그렇지.]
하지만 여기서 아니, 라고 대답할 순 없었다.
라온은 아니더라도 근처의 이들 모두를 죽일 수 있다.
이중엔 미래에 왕이 될 엘프 공주도 포함되어 있었고.
만약 여기서 경각심을 가지고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않는다면, 천살성이 바라는 대로 이 세상을 피로 물들일 수도 있었다.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둘 다 이루어질 가능성은 적지만.
최대한, 이 가능성에 걸어보는 수밖에.
거인이 두 손가락을 펼쳤다.
[하나는 네가 별의 힘을 온전히 받아들여, 네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실수하거나 무너진다면, 너를 살의에 미친 괴물로 만들 것이고, 근처 사람은 물론 너 자신마저도 죽이게 되겠지.]
아벨라가 입을 꾹 다물었다.
당장에라도 ‘그 방법은 안 돼요’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지만.
만약 이게 정말 ‘최선’이라면, 거부하고 싶어도 거부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두 번째 방법은 그대의 주인에게 말하여 없애는 것이다. 그라면 충분히 방법을 알고 있을 터이니.]
“…라온 도련님을 말씀하시는 거죠?”
[그렇다.]
그녀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거인이 생각하기에, 제일 좋은 방법은 후자였다.
라온은 누가 보아도 아벨라를 아끼고 있었다.
아무리 별을 지우는 게 힘들다고 한들, 아마 도와줄 가능성이 컸고.
아벨라가 그에 빚을 졌다고 생각하고 힘들어할진 몰라도, 갚아나가며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을 테니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무조건 미치는 건가요?”
하지만 그녀는 전자를 선택했다.
대체 왜?
거인은 이해하지 못했으나, 그녀가 내린 선택을 존중했다.
[아니. 허나 고통스러울 것이다. 숨을 쉴 때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을 것이고, 살아 숨 쉬는 생명을 볼 때마다 죽이고 싶은 충동이 들 것이며, 너를 죽이러 오는 이들을 죽이고 난 이후엔 시야가 뻘겋게 변한 채 광기에 휩싸이겠지. 하지만 네가 무너지지 않고 버틴다면, 그만한 힘을 내어줄 것이다. 그것이 별의 법칙. 하지만 아직 그걸 해낸 이는 없다. 천재라 불리는 이들도 별이 내리는 힘과 살의에 젖어 완전히 미쳐버렸지.]
이는 최초의 거인 암살자이자, 왕인 그의 선조조차도 이루어내지 못한 업적.
이겨내기 직전까지 다다랐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완전히 미쳐버렸고, 동족의 수를 절반으로 줄여버리는 일을 저질러버렸다.
아마 그녀가 천살성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적어도 라온, 그 남자를 제외하곤 모두 죽을 것이다.’
저 왕이 될 운명을 가진 소녀마저도 말이다.
[어찌하겠느냐?]
과연 이 일의 부작용을 감당할 것인가? 이를 감당할 정도로 힘을 원하는가?
아니면, 힘을 원하는 게 아니라.
‘그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하는 건가?’
“저는…….”
아벨라가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