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망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15화 (115/124)

제115화

다음 날 아침.

“흐으음… 뻐근하군.”

우드득! 침낭에서 몸을 일으킨 헬레나가 기지개를 켰다.

죄수들이나 찰 법한 쇠사슬로 온몸을 칭칭 감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안색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아 보였다. 누가 보면 어젯밤에 휴가를 잔뜩 즐기고 왔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진짜 이상한 사람이야….”

스칼라는 웅얼거리며 내 품에 기댔다.

난 말없이 그녀의 머리를 토닥였다. 내 손길이 마음에 드는 듯, 그녀가 작게 갸르릉거리며 내 손에 머리를 기댔다.

헬레나는 우리들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태연한 목소리로 물었다.

“오늘 아침은 뭔가?”

“그냥 수픈데요.”

“라온이 끓인 건가?”

“……아뇨? 제가 끓였는데요?”

“라온이 끓였군.”

묘하게 빛나는 눈이 거슬렸는지, 오늘 아침 배식 담당인 데자트가 급히 말을 돌렸지만.

헬레나는 이미 눈치채버렸다.

그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내가 살면서 라온이 직접 만든 음식을 먹어볼 줄이야… 맛도 훌륭하군.”

“진짜 변태 같으니까, 그 이상은 말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

“그러지.”

헬레나는 더 이상 떠들지 않으며 조용히 식사를 즐겼다.

난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했건만, 앞으로의 고난과 역경이 보이는 것 같았다.

‘저걸 어떻게 떼지?’

그냥 죽이고 묻을까?

불가능한 건 아니다. 차라리 지금 상황에선 제일 좋은 선택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너무 극단적이다. 만약 들키기라도 한다면 뒷수습이 아예 불가능하다.

‘심지어 헬레나 스토리는 내가 알지도 못해. 갑자기 헬레나만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생긴다면….’

제국 분열을 넘어서 대륙이 물리적으로 반으로 쪼개질 수도 있었다.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 이때까지 내가 노력한 게 말짱 도루묵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니 나도 죽이고 싶은 걸 꾹 참는 거다.

‘글라스크 가문에 잡아가라고 연락을 좀 넣어놔야겠네.’

우선은 그게 최선이려나.

난 한숨을 삼키며 빈 그릇을 내려놓았다.

그릇을 챙긴 아벨라가 물었다.

“더 드실 거예요?”

“아니. 넌?”

“전 다 먹었어요!”

“그래? 그러면 슬슬 떠날 준비 해. 여기에 너무 오래 있었어.”

“네! 그런데 저희 어디로 가요?”

“지금 그걸 고민 중이야.”

암왕이 찾아온다. 이를 대비해야만 한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제일 좋은 방법은 가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무리 암왕이라고 해도, 리그벨토 가문의 감시를 뚫고 들어올 순 없다.

‘하지만 포섭은 가능하지.’

마벨. 그놈이 불안하다. 언제 내게 비수를 날릴지 모르는 변수.

아무리 가주가 있다고 해도, 가주는 모든 걸 다스리는 ‘신’이 아니다.

자신의 등을 노리는 적의는 알아차릴지 몰라도, 나 같은 타인을 향한 적의는 알아차리기 어렵다.

‘아버지에게 잡아달라고 부탁해?’

…그건 차선책이다. 정말, 절대로 그를 잡을 수 없다고 판단됐을 때 해도 늦지 않다.

아마 연락 한 통이면 그대로 공간을 접어 뛰어올 것이고, 암왕의 허리를 반으로 접어 땅에 처박아줄 것이다.

그만큼 그와 암왕의 격차는 컸다.

‘하지만 그래선 우리가 성장할 수가 없다.’

이 위기는 우리가 헤쳐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성장할 수 있다.

“헬레나.”

“음?”

“암왕에 대해서 아나?”

“알고 있지.”

탁!

그녀는 그릇을 내려놓았다. 아벨라가 그릇을 치워주자, 아벨라에게 빙긋 웃어주었다.

“고맙네.”

“…아니에요.”

“설명이나 해.”

“그러지. 암왕. 현 시점에서 범죄자들의 왕이라 불리우는 자지. 가장 큰 마약 공급 장소인 마약촌을 운영하는 자이기도 하고. 또한 강자 사냥을….”

“그건 다 알아. 내가 묻고 싶은 건, 그놈을 잡을 수 있느냐야.”

“흠.”

헬레나가 잠시 고민에 빠진다. 붉은 눈동자가 차례로 우리를 훑었다.

척!

그녀의 손가락이 세 명을 가리켰다.

“이 세 명이 빠지고, 우리 셋만 나선다면, 음. 한 명 죽는 정도에서 죽일 수 있을 것 같군.”

“네가 아는 모든 정보를 동원해도?”

“물론.”

샤흐가 자존심이 상한 듯, 인상을 찌푸렸다. 헬레나가 그녀를 달래듯 말했다.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말게. 그자는 저 엘프와 나, 그리고 라온보다도 높은 경지에 오른 자일세. 자네가 뛰어난 건 알지만, 그 정도의 실력차는 의미가 없지. 게다가 우린 서로에게 살의가 없었지만, 그자는 오로지 우릴 죽이기 위해 달려들 것이야. 지금과 상황이 다르네.”

“…알고 있어요.”

“만약 우리 수준의 강자가 한 명 더 추가된다면?”

난 헬레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내 질문에 잠시 헬레나가 고민에 빠지더니, 이내 내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마법사? 검사?”

“마법사.”

“가능하지. 한 명이 더 추가된다면, 우리 중 누구도 죽지 않고 이길 수 있네.”

‘그렇다면.’

방법이 떠올랐다.

암왕을 크게 다치지 않고 잡는 방법이.

어쩌면, 스칼라, 아벨라, 샤흐에게도 업을 나눠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먼저 만날 사람이 필요하겠네.’

마침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암왕이 그전에 찾아오면 곤란하지만….’

“암왕은 며칠 전에 강자 사냥에 성공했다고 하더군. 그자는 강박적으로 2주라는 시간을 맞추는 자야. 이번엔 심장에 타격이 갈 정도로 꽤 큰 데미지를 입었다고 하니, 시간적 여유는 있네.”

헬레나는 정보를 알려주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가자.”

“알겠네.”

난 그녀를 칭칭 감은 쇠사슬을 당기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헬레나는 불편할 만도 하건만, 조금의 불평 없이 얌전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모습을 본 스칼라가 작게 중얼거렸다.

“…죄수 호위… 읍읍!”

“쉿, 쉿! 그런 말 하면 안 돼!”

“괜찮네. 내가 보기에도 좀 웃긴 모습이라 말이야.”

참… 이상하단 말이지. 싸움을 할 때엔 저런 미친년이 있을까 싶었는데, 지금 보니 나름 괜찮다.

인성도 그렇고 가진 정보도 그렇고.

‘그래도 파티엔 안 넣을 거지만.’

궁금한 게 한 가지 생겼다.

“넌 기분 안 나쁘나?”

“음?”

내 질문에 잠시 헬레나가 머리 위에 ?를 띄우더니, 이내 납득한 표정을 지었다.

“아아, 이 상태 말인가. 나름 기분이 좋다네. 수련을 다 하고 마력이 바닥났을 때, 딱 그 기분이 들거든.”

“진짜 변태 같아….”

동의한다 샤흐.

얜 정상이 아니었어.

* * *

“그래서 우린 어디로 가는 거지?”

“아무도 모르는 곳.”

이히힝!

말이 울부짖으며 열심히 숲을 가로질렀다.

말이 달리는 길에는 검에 베인 사체, 물어뜯긴 사체, 발톱에 베인 사체가 가득했다.

헬레나가 코를 틀어막았다.

“역하군.”

“몇 구는 네가 죽인 시체냐?”

“맞네. 자꾸 귀찮게 달려들어서 말이지. 평범한 사람이면 참아보겠지만… 모두 사람보다는 짐승에 가깝더군.”

“마약이 그렇지, 뭐.”

“그래서 달려드는 놈들은 모조리 죽였네. 뭐, 굳이 내가 죽이지 않아도 웨어울프들이 알아서 죽이고 있어서 괜찮았겠지만.”

헬레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보다 자네는 왜 여기까지 온거지?”

“주리남에 볼 일이 있어서.”

“마약을 해도 그 마력 때문에 의미가 없을 거고. 요한 백작에게 볼일이 있었나?”

“어. 그자가 마약왕이었거든.”

“그렇군.”

그녀는 꽤 기밀 정보를 들었음에도 그냥 그러려니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는 그런 걸 생각하는 역할이 아니라나 뭐라나.

“넌 언제 도착했지?”

“달이 저물기 1시간 전에. 숲이 울창하고 너무 달려드는 인간이 많아서 오래 걸렸지. 요한 백작이 마중도 나오질 않아서 말일세.”

“그땐 이미 죽었으니까.”

“영혼으로라도 나올 줄 알았네.”

난 웃음을 지은 헬레나를 힐끔 쳐다봤다.

“그래서. 넌 어떻게 나를 찾아왔지?”

“쌍둥이 별이 알려줬네. 그대에겐 나중에 따로 사례를 하겠다고 하더군.”

“사례는 필요 없고, 한 대씩만 때린다고 전해.”

“자네가 전달하기 1분 전에 말해주겠네.”

절대 안 떨어진다는 걸 돌려서 말하네.

난 혀를 차면서 말을 조금 더 강하게 몰았다.

말이 이히힝! 소리를 내며 조금씩 더 빠르게 달리기 시작한다.

슬슬 숲을 벗어나기 시작하는 게 보였다. 하늘이 맑은 것이, 돌덩이가 마구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음?”

“……어?”

이변이 일어났다.

저 멀리. 푸른 하늘에 거대한 그림자가 시작한다.

아니, 그림자가 지는 게 아니었다. 그림자라 착각할 정도로 거대한 뭔가가 일어서는 것이었다.

뚜렷한 시야 너머로 그림자의 정체가 보였다.

“……거인?”

“맞아.”

거인이 일어선다.

꽤 떨어진 이곳에서도 보일 정도로 거대한 크기.

“저, 저거 뭐예요?”

“신경 쓰지 마. 적어도 지금은 별 해를 안 끼치니까.”

마녀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나 없다.

찾아가는 방법을 모른다면, 아무리 대마법사나 소드마스터라고 해도 찾을 수 없는 신출귀몰한 존재.

하지만 난 그녀가 어디에 있고, 어떻게 찾아가는지 알고 있다.

「나를 떠올리며 숲을 가로질러라. 거인이 너를 마중나갈지이니. 그자의 시험을 통과해야만 나를 마주할 자격을 갖출 것이다.」

지금 보이는 저 거인이 바로 일종의 문지기다.

자아가 희미한 동물은 보지 못하나, 우리처럼 뚜렷한 자아와 나름의 경지에 오른 이만이 보이는 신기루 같은 존재.

묵직한 음성이 머릿속을 강타했다.

[모두 돌아가라. 나는 너희에게 입장을 허락하지 않았다.]

“!!!”

“!!!”

아벨라와 스칼라가 귀를 틀어막으며 몸을 움츠렸다. 다른 애들도 움츠릴 정돈 아니지만,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목소리 더럽게 크네.’

난 혀를 차면서 거인에게 말했다.

“지금 허락받으려고 가는 길인데.”

[허락을 받고 들어오라.]

무슨 ‘경력직만 받아요. 그래서 경력을 쌓으려고 왔잖아요. 네. 경력 쌓고 오세요.’ 같은 소리인가 싶지만.

저건 그냥 오지 말라는 뜻이었다.

거인은 인간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전에는 숲의 거리를 닦고, 말 같은 동물을 받으며 거래를 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대륙에서 모습을 감추고, 홀로 남은 저 거인은 인간을 혐오했다.

‘뭐, 나랑은 상관없지.’

“그러니까 지금 받으러 간다고.”

[지금 물러나지 않는다면 공격하겠다.]

“그러던가.”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아니. 누구보다 죽기 싫어서, 이러고 있다.”

쿵. 쿵. 쿵.

[오늘 넌 죽을 것이다.]

‘뭐지? 예전보다 훨씬 예민한데.’

이건 좀 예상 밖인데.

그래도 대처가 가능한 범위 안이다. 이 정도라면, 얼마든지 치울 수 있다.

이놈을 치우고 마녀를 만난다.

찰그락!

헬레나가 쇠사슬을 툭툭 쳤다.

“이걸 치워주게. 나의 쓸모를 증명하겠네. 저 거인을 해치우면 되는 거겠지?”

그새 그녀의 눈동자는 투기로 물들어 있었다.

이래서 기사는 안 돼.

누가 봐도 못 이기는 상대다. 아무리 호승심이 강하다고 해도, 수준도 모르고 덤벼들면 죽는 게 뻔한데. 저리 달려들려고 하다니….

난 혀를 차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너 혼자 나서는 거 아니야.”

“그럼?”

“검 쓰는 사람은 전부 나설 준비해. 그리고 스칼라도 좀 무리할 거 주의해두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난 하늘을 쳐다보았다.

거인이 조금씩 움직인다. 몸을 아래로 숙인 듯, 잠시 그림자가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손에 뭔가가 한가득 쥐어져 있었다.

‘온다.’

“전부 준비.”

으드드득!

손에 쥐고 있던 돌덩이가 으스러졌다. 작은 산 봉우리 정도는 될만함에도 거인의 손엔 작기 그지 없었다.

그리고 방금.

저 돌은 엄청난 무기가 되었다.

쿠우우우웅…….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한 거대한 울림과 함께 거인이 자세를 취했다.

투구(投球) 자세.

“오…… 저건 또 뭔가?”

“뭐긴. 돌이지.”

마음 같아선 나도 막고 싶지만, 그래선 계획이 꼬인다.

“지금부터 나는 이제부터 마차를 모는 데 집중할 거야. 이제 한 번도 멈춰선 안 돼. 그러니 너흴 믿는다.”

“얼마든지요.”

헬레나를 빼고 모두를 믿는다.

이런 상황에서 믿고 맡길 수 있을 정도로 키워놓았다.

그러니, 지금 난 내 역할에 집중한다.

‘예전에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있었는데.’

게임은 아니고, 에니메이션에서 비슷한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던져진 돌덩이들에 죽을 걸 알고서도 돌진하는 장면.

그때 그 캐릭이 외쳤던 대사가 뭐더라?

피식.

‘뭐, 상관없나.’

난 그들처럼 죽지 않는다.

반드시 살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이곳에 찾아왔으니.

“심장을 바치진 마라. 모두 살아라.”

“당연하죠.”

“그럼, 온다.”

화르르르르륵!

스칼라의 불꽃이 마차 근처를 둘러쌌다.

그렇게 완전한 준비가 끝난 순간.

……후우우우욱!

거인이 돌덩이를 투척(投擲)했다.

마치 메테오가 쏟아지듯.

엄청난 양의 돌덩이가, 하늘을 가득 메운 채 우리에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전군!!!”

이히히힝!

난 말 채찍으로 정면을 가리켰다.

“돌격!!!”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