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망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12화 (112/124)

제112화

아무리 이무기라고 한들 심장이 뚫리면 살 수 없다.

달빛을 잃은 이무기가 아래로 추락했다.

첨벙!

물에 빠진 순간, 내 다리에 힘이 풀렸다. 온몸에 긴장이 풀린 탓에, 더 이상 내 다리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 여파인지 체내의 마력이 크게 울렁인다. 난 다급히 스칼라에게 손을 뻗었다.

“스칼라…!”

“으응…!”

한 번에 마력을 쏘아낸 탓에 잔뜩 지친 스칼라가 달려와 내 손을 붙잡았다.

마력이 빨려 들어가며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하고, 쇠사슬이 달빛을 울컥울컥 뱉어내며 안을 비우고 내 마력으로 빈자리를 채웠다.

그제서야 겨우 꿈틀거리던 마력이 진정된다.

‘큰일 날 뻔했다.’

난 입에서 흐른 피를 닦아냈다.

아마 조금 더. 아니, 길어도 10초만 더 마력 폭주도가 높은 상태로 유지했다면 그대로 폭주했을 수도 있었다.

‘여기까지 예상한 건 아니었는데.’

최소한 90%에 이르는 건 예상했지만, 마지막에 날린 이무기의 일격이 생각보다 강력했고, 또 웨어울프들을 죽이니 뿜어져 나오는 은빛의 마력은 예상 범위 밖이었다.

‘천갑이에게 다 막히긴 했지만… 설마 단순히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이상해질 줄은.’

만약 천갑이가 없었더라면, 진작에 폭주하거나, 운이 좋아 폭주하지 않았더라도 정신이 나갔을 것이다.

달의 진짜 모습을 보면 미쳐버린다고 하던데, 그게 마력의 형태로 다가올 줄은 몰랐다.

펄럭!

“어, 난 괜찮아. 그러니까 가만히 있어.”

난 펄럭이는 후드를 누르고, 이무기가 빠진 자리를 쳐다봤다. 아주 조금씩 기포가 올라오고 있다.

아직 완전히 죽진 않은 건가?

“저거나 꺼내와. 다들 업은 얻었어?”

“아뇨… 아직.”

“딱히 모르겠어요.”

“확실히 다 안 죽었나 보네. 데자트. 조심해서 저거 가지고 와.”

“넵.”

첨벙!

데자트는 바지를 걷어 올리고 호수를 가로질러, 안에 빠져 있던 이무기를 억지로 끄집어냈다.

[그… 그르윽….]

물 속에서도 계속 불에 데미지를 입고 있던 것인지, 상처 부위에선 매캐한 냄새가 잔뜩 풍겨왔고, 벌어진 입에서도 탄내가 올라왔다.

본래의 은빛을 잃은 이무기가 날 바라본다.

난 데자트에게 손짓했다.

“죽여.”

“옙.”

[자, 잠-]

서걱!

데자트의 검이 이무기의 목을 잘라냈다.

그 순간, 몸을 제한하고 있던 한계가 뻥 뚫리며 청량감이 온몸을 지배했다.

[업을 획득하였습니다.]

[스스로 용이 되기를 포기한 달의 이무기를 사냥하는 데에 성공하였습니다.]

[현재 신체를 억압하는 모든 한계치가 삭제됩니다.]

“……!”

마력을 대부분 흡수하는 쇠사슬을 착용하는 대가로 봉인된 능력치들이 모두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온몸에 힘이 돌고, 시야가 뚜렷해지며, 머리가 맑아졌다.

‘상급 기사 수준에 다다랐다…….’

아무리 늦어도 중반부에서도 꽤 후반으로 가야만 다다를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이걸로 내가 죽을 확률은 확 줄었어.’

단련된 육체는 감히 마력의 조금 꿈틀거리는 것만으론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

당연히 외부의 마력으로부터 자극받는 것도 줄어들고, ‘나’라는 존재가 확고히 정립되는 시기에 마력이 가장 안정적인 상태이기도 했다.

다만, 기쁨보다는 불안감이 먼저 치솟았다.

왜냐하면.

‘암왕이 존나게 강하긴 한가보네….’

플레이어의 캐릭터를 갑작스레 성장시키는 이유는 스토리 진행이 가능하게 만들기 위함이니.

즉. 이 정도의 스펙은 있어야 이벤트를 깰 ‘최소’ 조건을 맞추었다는 것이니.

암왕은 내가 상급 기사 수준은 되어야 잡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진짜로 자칫하면 다 죽는다.’

이건 내 예상 안이 아닌데.

후계자를 직접 죽이고 강자 사냥에 성공한 암왕은, 대체 얼마나 강한 거지?

아니, 그럼 그놈을 죽이게 된 후계자는 얼마나 강한 거지?

후계자와 나는 직접적으로 충돌할 일이 없었다. 다른 캐릭터들도 후계자와 직접 충돌할 일이 없었다.

암왕을 죽이고 새로이 암왕에 오른 후계자는, 황위에 도전하였고, 안 그래도 혼란스러운 황실을 더 혼란스럽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그 부하와 싸우는 일은 있어도, 그와는 싸울 일이 없었으니.

‘대비를 어떻게 해야 하려나.’

일단 애들의 상태 확인부터.

난 데자트에게 물었다.

“몸 상태는?”

“멀쩡해요. 지금 저는 단순히 업을 쌓는 수준에서 성장할 게 아니라… 깨달음이 필요한데….”

“일단 다음 경지로 넘어가기 위해 노력하도록 해. 근시일 내에 필요할 테니까.”

“…네?”

난 멍한 소리를 내는 그녀를 뒤로하고 아벨라를 쳐다봤다.

“넌?”

“…신체 능력이 엄청 올라간 거 같긴 한데.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못 쓰던 기술 써봐.”

아벨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단검을 꺼내 들었다.

그녀의 발아래에 있던 그림자가 꿈틀거리며 검을 휘감는다.

그 모습을 본 데자트가 깜짝 놀랐다.

“어… 그거 지금 닿을 경지가 아닌데….”

“왜?”

“암살자가 부족한 파괴력을 어디서 끌어다 쓰겠어요? 힘이나 무기의 힘을 빌려야 하는데, 그것만으론 동급의 실력자를 상대하기 어렵잖아요. 그래서 보통 그림자… 그러니까 암살자 고유의 기운을 쓰는데….”

“용건만 말해, 용건만.”

“암튼 지금 다루긴 어려운 거라는 거예요….”

‘재능이 대단하긴 한가 보네.’

“그럼 대충 경지는?”

“중급… 끝자락…? 그 즈음?”

“벌써요?”

잔뜩 지친 채 자리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던 샤흐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데자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 너무 놀랍네요. 진짜 누가 떠밀어주나?”

“…….”

난 하늘을 쳐다보았다.

누가 떠밀어 준다라.

‘아벨라의 성장 속도가 비이상적으로 빨라졌다.’

본래라면 아벨라의 업이 이 정도 속도로 쌓이는 건 비정상이다.

몸이 받아들이는 ‘재능’도 중요하거니와, 본인이 이에 적응도 해야 하고, 세계로부터 인정도 받아야 한다.

지금은, 마치 이 과정 중 하나가 사라진 거 같다.

마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함인 것처럼.

* * *

“전부 다 정리 끝냈어?”

“네.”

“그럼 가자.”

주리남에 우리가 있던 흔적까지 싹 다 지우고 떠날 준비를 끝냈다.

물론 이대로 떠났다간 괜히 뒤처리가 곤란했다.

주리남엔 수많은 범죄자가 모여든다. 본래라면 웨어울프 같은 놈들과 켄타우로스 기사가 걸렀을 테지만, 지금은 하나도 빠짐없이 죽은 상태다.

막을 구석도 없으니, 아마 많은 범죄자가 모일 것이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싹 다 복구는 못 시키게 만들어놨으니까.’

“아벨라. 이걸로 가문들에 좀 연락해. 여기 뒤처리 좀 하라고.”

“넵!”

난 그녀에게 수정구를 건넸다. 아마 나보단 편지를 더 잘 쓰겠지.

‘제일 편한 건 황실에 보내는 거지만……. 황실의 힘이 너무 커지는 건 안 돼.’

황실은 공작가들을 발아래에 두고 싶어 한다. 힘이 많이 차이 나지 않으니 가만히 있을 뿐, 만약 모두 확실히 밟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다면 그대로 밟으려 들 것이다.

분열을 일으키는 게, 마약 때문이 아니라 황실 때문일지도 몰랐다.

‘용사 가문이 황실일 가능성도 배제해선 안 되고.’

그렇다면 차라리 우리 가문에 맡기는 게 낫다. 어차피 곧 크게 힘이 줄어드는 시기가 온다. 잠시간 4개의 가문 균형이 흔들릴 시기이니, 조금은 주어도 괜찮겠지.

“다른 가문엔 정보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조심….”

난 말하다 문득 느껴진 마력의 파장에 입을 다물었다.

예전에 한 번 느껴본 적 있는 기운.

‘왜 아즈벨라 도시에서 느꼈던 기운이……?’

설마 여기까지 우릴 쫓아온 건가? 아니면 그냥 여기까지 왔다가 우연히 우리가 만난 건가?

하지만 턴이 너무 짧으며, 아즈벨라 가문과 주리남의 위치는 너무나 달랐다.

완전히 극과 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위치!

난 굳은 얼굴로 손을 올렸다.

“전원 전투 준비.”

모두 이 마력의 파장을 느낀 것인지, 군말 없이 전투를 준비했다.

……쿠구구구!

뒤이어 엄청난 양의 마력이 우리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천갑이가 잔뜩 긴장한 채로 펄럭거렸다.

난 다급히 아벨라를 불렀다.

“아벨라!”

“네!”

마스크로 입을 가린 아벨라가 크게 도약하며 날아드는 검기를 쳐냈다.

시뻘건 검기, 상대방을 모두 불태우고 나서야 꺼질 것 같은 뜨거운 열기!

난 저 검기를 보고 나서 습격자가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설마?”

“오랜만이군.”

쾅!!

굉음과 함께, 아벨라가 뒤로 튕겨 나갔다.

근처의 나무를 붙잡고 겨우 자세를 잡은 아벨라가 당황한 눈으로 고개를 올렸다.

이제 막 해가 떠올라 주홍빛으로 물든 하늘 아래에서 붉은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라온 리그벨토와 같이 플레이어가 직접 플레이하는 캐릭터이자, 성능이나 인기 면에선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사기 캐릭터.

“헬레나 글라스크.”

“그동안 잘 지냈나?”

그녀는 온몸에 투기를 휘감은 채 이빨을 훤히 드러내며 웃었다.

“네가 왜 여기에 있지?”

“나의 친우를 찾으러 왔네.”

분명히 말투나 기세, 외형은 모두 내가 기억하는 그대로였지만.

지금 그녀가 뿜어내는 기운은 익숙하지가 않았다.

‘쟤 눈이 좀 이상한 거 같은데.’

강한 열망, 욕망… 온갖 감정이 뒤섞인 눈동자.

저 눈만 본다면 주인공이 아니라 광인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는 날 보며 작게 몸을 부르르 떨고, 환희에 가득 찬 미소를 지었다.

“원래라면 참으려고 했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군!”

“?”

“사죄는 나중에 하지.”

쿵!

그녀가 땅을 강하게 벅차며 내게 달려들었다.

내게 닿기 직전, 뒤에서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마치 달려드는 먹잇감을 집어삼키는 뱀처럼, 불꽃이 그녀를 삼킨다.

수십 개의 선이 그어지며 불꽃이 베였다. 다시 모습을 드러낸 그녀에게 아벨라가 달려들었다.

캉! 카가강!

단검과 장검이 연신 맞부딪혔다. 헬레나는 그녀와 검을 나누며 웃음을 터트렸다.

“많이 달라졌군, 아벨라! 훨씬 강해졌어! 이제 누가 그댈 보고 하녀라고 생각하겠나!”

“갑자기 나타나서 이게 무슨 짓이에요!”

“아, 그게 문제인건가? 음… 뭐라 할 구석이 없지만. 이건 라온이 나쁜 걸세. 라온이 너무 강해지지 않았나.”

저게 뭔 개소리야?

난 정색했다.

아벨라 또한 정색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다시 달려들었다.

<그림자 도약>을 통해 그녀의 등 뒤로 이동한다. 헬레나의 몸이 크게 회전하고, 장검이 붉은 빛에 휘감긴 채 휘둘러졌다.

쾅!!!!

다시 한 번 엄청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아주 짧은 사이에 단검과 장검이 다시 교차하며 부딪혔다.

승자는.

쾅!

“끄으으….”

역시나, 헬레나였다.

헬레나는 굳이 아벨라를 끝내지 않았다.

아벨라의 옆에 착지한 헬레나는 너무 상심하지 말라는 어투로 말했다.

“그대가 빠르게 성장한 건 맞지만, 그동안 나도 열심히 해서 말이지. 그대와 내가 쌓은 시간은 격이 달라.”

저건 나도 동의하는 말이다.

설마 아벨라가 헬레나를 이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다만 문제는…….

‘설마 그 사이에 상급 기사 수준에 오른 건가?’

그게 말이 되나?

원래 성장 속도도 빠른 편이지만, 저 정도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녀는 초반엔 사기캐가 맞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조금씩 힘이 빠지는 것이 특징이었다.

원래라면 중급 기사의 끝자락에서 허비하고 있어야 할 텐데…….

“하아… 아직 회복이 다 안 됐는데….”

창으로 몸을 지탱하며 일어난 샤흐가 몸에 마력을 둘렀다.

“제가 먼저 나설까요?”

“아니. 아무리 봐도 저 여자가 원하는 건, 우리와 한 번 붙어보는 것 같으니까… 내가 먼저 나서볼게. 데자트가 나보다 더 강하잖아.”

난 샤흐에게 포션 하나를 던졌다. 샤흐는 감사의 눈짓을 보내고, 포션을 마셔 체력을 회복했다.

입가를 쓱 닦은 그녀는 스칼라를 바라봤다.

“일단 내가 먼저 나서볼게. 스칼라. 도와줄래?”

“응….”

“좋아. 가자.”

샤흐는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헬레나도 기다려주겠다는 듯, 검을 길게 늘어트렸다.

스칼라가 크게 숨을 몰아쉬며 전투를 준비했다.

이러니 뭔가 느낌이 묘했다.

‘무슨 주인공 레이드 하는 거 같네.’

“아직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말 안 했지?”

잠시 상념에 빠진 사이.

“나도, 업을 먹고 얼마나 강해졌는지 보여줄게.”

굳은 결심이 선 샤흐가 정면으로 창을 내질렀다.

“!!!”

헬레나가 다급히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완전히 막아내지 못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창으로 빗겨내는 것뿐.

“…….”

“…….”

난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녀가 창을 내지른 정면이.

뻥 뚫려 있었다.

한 그루의 나무도 남기지 않고, 아주 깔끔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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