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망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11화 (111/124)

제111화

본래 내 파티는 스칼라, 샤흐, 나, 필요할 때마다 고용하는 사제 NPC, 이렇게 총 넷으로 구성되어있었다.

마법사(검사도 가능), 검사, 그냥 앞에 나서는 놈(나), 힐러.

꽤 깔끔한 밸런스로 구성된 파티였지만.

‘지금은 균형이 좀 무너져있어.’

앞에 나서 직접 전투를 벌이는 인원만 세 명이다. 나, 데자트, 아벨라.그리고 샤흐까지.

이대로면 정면에서 나서는 사람만 네 명, 후방에서 공격할 수 있는 사람이 스칼라밖에 남지 않는다.

‘전투력 자체는 올라갔지만.’

마법사란 존재가 전투력을 올려줄 뿐만 아니라 안전성 면에서도 도움을 준다는 걸 생각해보면, 지금 파티는 조금 위태로웠다.

그래서 그냥 샤흐를 마법사로 내버려둘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못할 짓이야.’

그녀의 가능성은, 오로지 ‘창’을 쥐어야만 개화된다.

데자트는 그리 말했었다.

‘공주님이 태어났을 때, 먼저 쥔 게 바로 창이었어요. 그때부터 공주님의 길은 창으로 정해진 거나 다름없죠.’

‘못 바꾸나?’

‘바꿀 순 있지만, 저희 엘프들에겐 처음으로 선택한 길이 너무나 중요해서요. 아마 한계에 갇히게 될 거예요.’

아마 그래서 그녀도 한계를 뚫지 못하고, 후반에 일어나는 이종족 전쟁에서도 제대로 각성하지 못한 것일 터.

그러니, 이번엔 반드시 그녀는 창을 다루어야만 했다.

‘내가 마법을 쓸 수 있다면 문제가 될 게 아니지만.’

못 쓰는 걸 어쩌겠는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내가 마법을 사용하지 못함으로서 생기는 공백을 모두 내가 채우는 것이다.

그게 내 최선이다.

콰르르르르!

바람이 거칠게 불어오더니, 이윽고 호수에서 용오름이 치솟아 올랐다.

이무기가 빠진 자리로 공격을 날리려던 두 암살자는 혀를 차며 뒤로 빠졌다.

용오름 사이로 이무기가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다. 찬물을 잔뜩 뒤집어써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광증이 조금은 가라앉은 것 같았다.

[……그래. 인정하겠다, 이 하찮은 미물들아. 너희가 감히 내 역린을 건드릴 수 있는 자들임을.]

“그걸 이제야?”

[그러니, 나도 전력을 다해 너희를 상대하겠다!]

그의 선언과 함께 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온 세상을 덮듯이, 뿜어져 나온 은빛이 하늘을 덮으며 이 공간 전체를 지배한다.

‘고유 영역!’

아니, 무슨 정신이 저리 오락가락해? 어떻게 고유 영역까지 사용할 수 있는 거지?

‘그래도 완전하지는 않나.’

본래라면 시야가 멀 정도로 찬란히 빛나야 하건만, 지금은 그저 은하수를 연상시키는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이걸로도 충분히 위험했다.

‘어그로는 우리가 모두 끌어야 해.’

자칫해서 스칼라에게 공격이 닿았다간, 어떻게 될지 몰랐다.

“데자트. 스칼라를 지켜.”

“……네? 제가요?”

“나머지는 나랑 같이 어그로를 끈다.”

난 잔뜩 긴장하여 손끝을 떠는 스칼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무 부담감 가지지 마. 어차피 시간을 끌면 우리가 이긴다.”

“…네.”

은룡 아오렌. 그는 달이 뜨는 시간대에만 수련을 거듭하여, 달로부터 힘과 신비를 불러오는 법을 익혔다.

밤의 시간대에선 웬만한 이무기를 압살할 힘을 가지지만, 반대로 달이 뜨지 않는 시간대면 다른 이무기들에 비해 약해졌다. 아무리 ‘물’이란 배경이 있더라도 말이다.

그걸 반영하여 레이드 뛰는 시간대에 따라서 힘이 달라졌다.

절대 공략에 도전해선 안 되는 시간대가 바로 달이 중앙에 떠 있을 시간.

하지만 지금은 거의 달이 저물어간다.

길어도 1시간이면 다시 해가 모습을 드러낼 터.

‘보상이 적어지겠지만.’

게임에선 난이도가 적어진만큼 보상을 줄였다.

만일 여기거 게임이라면 그냥 포기하고 재도전을 하겠지만,

지금은 그거라도 먹어야 했다.

게임에서의 레이드 실패는 기회를 날린 것에 불가하나, 여기선 죽음이란 결과를 낳으니.

아우우우-

늑대들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느새 웨어울프 무리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리더를 허망하게 잃은 것을 복수하겠다는 듯, 하우링을 토해냈다.

‘힘들겠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난 해낸다.

그게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이니까.

“그럼 간다.”

“네…!”

[월광탄.]

수십 개의 달빛으로 이루어진 구체가 떠오름과 동시에.

내 쇠사슬이 벼락처럼 휘둘러졌다.

&

달빛을 머금은 수십 개의 원형의 구가 바닥으로 쏘아졌다.

하나하나가 웬만한 건물 한 채를 날려버릴 위력!

하지만 땅에 닿기 전, 아래에 있는 남자가 기묘한 움직임으로 쇠사슬을 휘둘렀다. 길게 휘둘러진 쇠사슬에 월광탄이 닿자마자, 마치 흡수되듯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모든 월광탄이 사라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찌르는 소리와 함께 뾰족한 창기(槍氣)가 날아왔다.

깡!

‘까다롭구나.’

마약 중독자도 정신이 제자리를 찾을 때가 있다. 그에게 있어서 그 순간은 바로 지금이었다.

목숨의 위험!

저기서 한 수인 꼬맹이 한 명을 지키는 기사가 진심으로 나선다면 큰 상처를 입을 것이고, 저 수준이 두 명 온다면 그는 도망쳐야만 했으며, 네 명이 온 경우엔 상대조차 하지 말아야 했다.

하지만 여기서 강자는 한 명뿐이다. 이무기의 눈에는 라온이 가진 하자가 뚜렷하게 보였다.

마력을 다룰 수 있는 기관이 전혀 없다는 건, 곧 마법사로서 실격이라는 의미였으니.

‘그런데 어째서 이리 강한 것이냐!’

이것 또한 운명이란 말인가?

이것 또한 신이 점지한 길이란 말인가?!

이무기는 자신이 용이 되지 못하고 추락했을 때를 떠올렸다. 그는 총 두 번, 용이 되기 위한 승천을 준비했다.

하지만 한 번은 그가 가진 심장, 모든 이무기의 근원이 되는 여의주가 더럽혀진 탓에 승천에 실패했다.

겨우 두 번째 기회를 얻었을 때엔, 갑작스레 찾아온 인간이 ‘뱀이다!!’라고 외친 순간에 허무하게 승천이 꺾였다.

두 번이나 실패한 이무기는 원인을 찾고자 용한 예언가를 찾았다. 나이가 들고 곧 죽을 기색이었던 예언가는 이무기가 실패한 원인을 점지했다.

‘그대에겐 용으로 완성되는 운명이 보이지 않소. 앞으로 그 어떤 도전을 하던, 그대는 결코 용이 될 수 없을 것이오.’

이에 분노한 아오렌은 그대로 그 예언가를 씹어먹었다. 하지만 그 늙은 입이 남긴 말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용이 될 수 없다.

어째서? 운명이 아니라서?

그럼 저들은?

어째서 저들은 될 수 있는가? 단순히 운이 좋다는 이유로, 그가 한 모든 고생이 무의미해지도록 만드는 게 옳은가?

자신은 절망하여 마약에 빠져들기까지 했는데?

‘……이들은 모두 여기서 죽어야만 한다.’

그가 더 초라해지기 전에.

더한 재능으로 용의 자리를 차지하기 전에!

이 세상에 그가 아닌 다른 용이 태어나기 전에!

[크아아아앙!]

그가 울부짖음에 따라 하늘이 쿠구구 움직였다. 검은 먹구름이 하늘로 모여들고, 은빛이 모여든다.

뒤이어 번쩍-! 시야가 하얗게 물들면서 벼락이 떨어졌다.

이번에 목표는 창을 든 엘프. 하지만, 어느새 나타난 라온이 벼락을 막은 듯, 벼락은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째서, 어째서 그 모든 공격을 막을 수 있단 말이냐!]

아무리 운명이라고 한들, 이게 말이 되는가?

그의 세월에 반도 살지 않은 단명족이다.

아무리 많은 전투를 했더라도, 그보다 덜하다는 이야기다.

무한대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어서 계속 도전하지 않는 한!

우우우우!

그의 분노를 알아차린 웨어울프가 울부짖으며 그들에게 덥치듯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달려드는 늑대마다 머리가 꼬챙이가 된 채 즉사했다.

자유자재로 창을 다루는 그녀는 일점에 상대방의 머리를 꿰뚫어버리고, 또 파고드는 척을 쳐내고, 또 필요할 땐 마법까지 다루며 완전히 방어에 성공해내었으니.

[죽여라! 죽이란 말이다! 어떻게든!!]

만약 웨어울프 왕이 있었더라면 먹히지 않았을 운명이지만, 지금 그는 없는 상태.

달빛을 받아 진화하는 종족인 웨어울프의 완벽한 상위 존재인 은빛 이무기의 명에 따라, 웨어울프가 목숨을 내던지고 미친 듯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촤악! 촤아악! 우드득!

미친 듯이 쇠사슬과 창이 난무한다. 드문드문 나타난 단검이 숨통을 끊고 이무기를 노렸다.

하지만 이무기에겐 어느 공격도 닿지 않았고, 완전히 힘을 빼겠다는 의지로 뒤로 물러나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촹! 콱! 꽈드득!

라온의 움직임이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달려드는 웨어울프를 후려치고, 조르고, 쳐내고, 물어뜯는다. 말 그대로였다. 무기가 없어 공격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물어뜯어서라도 치명타를 입혔다.

[저게… 무슨….]

크아앙!

그를 완전히 위험하다고 느낀 웨어울프가 그만을 노리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가 걸친 신기한 갑주가 공격으로부터 보호한다. 이를 믿는 듯, 그의 움직임은 보다 거칠어지고 날카로워지며, 또 짐승에 가까워졌다.

어느새 라온의 온몸은 웨어울프의 피로 흠뻑 젖어있었다.

‘후욱, 후욱, 후욱…….’

일부러 호흡을 유지하며 움직이는 라온의 시야는 붉게 변해있었다. 어딜 보든 달빛을 머금은 채 튀는 피밖에 보이지 않는다.

몸은 이성보다는 본능에 따르는 손을 움직였다. 날아드는 웨어울프의 목을 휘감아 강하게 조이고, 날아오는 발톱을 웨어울프를 통해 막았다.

우드득!

삐죽 튀어나온 발톱을 잡고 그대로 힘을 주어 부러트렸다. 부러진 발톱을 역수로 쥔 채 달려드는 웨어울프의 눈을 몇 번이고 찔렀다.

라온의 팔에 웨어울프의 이빨이 박혔다. 하지만 그 순간에 팔을 휘감은 천갑이에게 막혀 뚫지 못하고, 날아드는 주먹에 맞아 튕겨나갔다. 튕겨나간 웨어울프는 아벨라의 단검에 베여 숨통이 끊겼다.

“후우… 후우….”

라온의 근처에는 웨어울프의 시신이 가득했다. 더 이상 웨어울프는 그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그를 완벽한 포식자라고 인식한 듯, 오히려 겁을 먹은 채 뒤로 주춤주춤 물러난다.

“…라온! 정신 차려요!”

마찬가지로 피로 얼룩진 샤흐가 그와 등을 맞대며 외쳤다.

아벨라도 피로 흠뻑 젖은 채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를 본다.

라온은 고개를 털며 말했다.

“나 제정신이야. 그보다, 준비는?”

“준비… 끝났어….”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완전히 붉게 물든 스칼라가 말했다.

라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 사이 준비를 끝낸 건, 그도 마찬가지인 듯 아가리 사이로 어마어마한 마력이 응축되고 있었다.

만약 저거랑 스칼라의 마력이 맞붙는다면…….

‘당연히 불이 꺼지겠지.’

그렇다면.

“샤흐. 스칼라. 둘이 힘을 합쳐. 네가 모은 불을 샤흐의 창기와 합치는 거야.”

“……응……?”

“할 수 있지?”

라온은 믿음을 담은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여기서 그의 믿음을 배신할 순 없다. 스칼라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할 수 있어. 날 믿어.”

“그래. 호조사에게 최대한 도우라고 해.”

라온은 그리 말하고 숨을 몰아쉬었다.

“둘이 시작해.”

“후우우우…….”

샤흐가 창을 집어던질 투창 자세를 취했다. 스칼라의 불꽃이 머리 위로 피어올라, 이내 그녀의 창으로 전달된다.

“으으으……!”

엄청나게 뜨거운 듯, 그녀에게서 탄 내가 풍겨오고,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얼핏 붉어졌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가 가진 속성이 바뀐다.

불 속성. 불 속성을 가진 이는 대부분 불에 대한 내성을 가지기 마련.

“일점에 모든 걸 집중해. 할 수 있어.”

일점(一點).

그녀의 창이 완전히 불에 휘감겼다. 더 이상 근처로 마구 불이 튄다거나 하는 현상은 일어나지 않고, 오로지 창에만 힘이 집중된다.

동시에.

[내가 그리 둘 것 같으냐!]

하늘에서, 달빛이 우리에게 적의를 가진 채 쏘아졌다.

엄청난 크기의 광선을 본 샤흐의 입술이 떨렸다.

“이걸론… 못 뚫어요…!”

“알아.”

탁!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바를 읽어낸 데자트가 도약했다. 옆에서 아벨라도 함께 도약한다.

“부탁한다.”

“네.”

데자트의 온몸에서 마력이 피어올랐다. 그녀가 가진 장검이 마력에 휘감긴다. 옆에 함께 뛴 아벨라의 무기와 온몸에도 마력이 휘감겼다.

그리고.

“흐아아아아아!”

기합과 함께.

……촤아아아아아아악!

광선이 갈라졌다.

하지만 완전히 가르진 못했다. 적어도 한 번 더 갈라야 했다.

“한 번 더……!”

“그래.”

난 가진 아티팩트를 전부 꺼내 장착했다. 보조 마법을 중첩하고, 또 중첩한다.

<강화> <강화> <강화> <강화>

쨍그랑! 쨍그랑! 쨍그랑!

[마력 폭주도가 상승합니다!]

[마력 폭주도: 92%]

깨져나간 아티팩트로 사이로, 완전히 뜨겁게 달구어진 쇠사슬이 떨구어졌다.

그리고.

“흐으으으으읍…!”

온힘을 다해 휘둘렀다.

광선과 쇠사슬이 맞부딪힌다. 은빛의 광선과 쇠사슬이 부딪히며, 한 쪽은 뚫으려고 하고, 한 쪽은 미친 듯이 빨아들이며 광선을 부수고자 하였다.

그리고 결과는.

……쩌어억.

쇠사슬이 힘을 잃고 추락했다.

그리고.

광선이, 잔뜩 작아진 채, 우리 향해 쏘아졌다.

‘힘이 부족했…….’

“이 정도면 됐어요.”

내 생각을 읽은 듯.

바로 옆에서, 샤흐가 말하며 창을 던졌다.

촤아악!

쏘아진 창을 둘러싼 불꽃이 광선을 역으로 집어삼켰다. 거대하게 몸집을 부풀린 화염에 온전히 광선이 지워진다.

경악으로 일그러진 아오렌의 눈동자에 쏘아진 창이 가까워진다.

그리고 일점이.

[……말도, 안 돼. 어떻게 엘프왕의 창을…….]

이무기의 심장을,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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