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망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10화 (110/124)

제110화

본래 암왕은 자신이 직접 키운 후계자에 의해 살해당하고 사라질 캐릭이었다.

강렬한 존재감에 비해 별 역할이 없는 캐릭터.

그는 어떤 캐릭으로 플레이를 하든, 어떤 루트를 타던, 언제나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더한 곳을 넘본다니…….’

암왕은 주로 강자 사냥을 즐기며 업을 수집했다.

만일 그가 시간을 더 보냈더라면, 소드마스터 그 이상의 경지를 넘었을 것이고, 꽤 까다로운 보스가 될 것이라 얘기했는데.

아무래도 그게 현실이 된 거 같다.

‘후계자는 왜 죽은 거야?’

마지막에 있는 ???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돌발 이벤트에서 ???로 표시된 보상이 한 두 개도 아니고, 공식 이벤트에도 ???가 가득한데 여기라고 없을 이유가 없었으니 말이다.

‘후계자가 왜 죽은지 알아보고 싶어도 방법이 없으니…….’

이건 완전히 원래 스토리에서 버산 흐름이다.

나는 이걸 어찌해야 하는가?

‘일단 암왕과 충돌은 피할 수 없다.’

패널티가 절대 무시할 수도, 무시해서도 안 되는 수준이다.

아니, 설령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해도 난 무시해선 안 됐다.

“얘들아. 계획 변경이다.”

“?”

“?”

“이무기 잡으러 가자.”

“…이무기를요?”

“어.”

지금 수준으로 암왕을 잡을 수 있는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암왕을 한 번도 잡아본 적이 없었으니.

그렇다면.

“암왕을 조지러 가야 할 거 같으니까.”

최대한 스펙을 업하는 수 밖에.

부족한 실력은 능력치로 때우면 그만이다.

* * *

주리남이 불타올랐다. 살아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모두 마약에 완전히 중독되었으니 별 고통은 없었겠지.’

마약은 인간의 뇌와 신경을 망가트린다. 어떤 행위를 하던 쾌락을 느끼지 못하고, 더이상 세상으로부터 즐거움을 얻지 못한다.

조금의 가공도 거치지 않은 마약을 그대로 흡입한 이들이니, 아마 고통도 없었을 것이다.

애초에, 더 이상 그들을 같은 사람으로 봐야할지도 의문이었다. 아마 인간보다는 좀비에 가까운 상태일 테니.

“어때. 위치는 찾았어?”

“네…… 진짜 마약이 무섭긴 한 가보네요. 이무기 한 마리를 이리 망가트리다니.”

“저놈은 아마 몇십 년은 했을걸.”

“몇십 년이요?!”

이미 인간이라면 진작에 죽었어야 하거늘, 멀쩡히 돌아다니는 건 온전히 이무기의 저항력 때문이었다.

심지어 저놈은 한 번 마약을 흡입할 때 몇 톤씩 하기도 했던 놈이니.

“그래서, 어떻게 잡으실 거예요?”

“일단 마약을 좀 맥여야지.”

난 요한의 저택에서 훔쳐 온 마약들을 꺼냈다. 원래라면 불태웠겠지만, 이무기를 잡으러 계획을 바꾸었으니 챙겨왔다.

“…마약을요?”

“어.”

챙겨온 건 마약뿐만이 아니었다.

요한의 저택에 있던 무기나 아이템들.

넘쳐나는 돈으로 쓸어 담은 무기들이나 아이템이 워낙에 많아, 내 아공간이 푸짐해졌다.

‘내가 원한 건 없지만.’

하긴 내가 원하는 건 저주템에 가깝다.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저택에 물건을 쌓아둔 요한에게, 내가 원하는 아이템이 있을 리가 없었다.

겨우 구한 게 몇 개 있긴 했지만, 전부 다 부작용이 없는 대신 내구성이 굉장히 약해서 1회용에 가까웠다.

대신에 무기나 포션 같은 걸 가득 챙기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대검은 왜 챙기라고 한 거예요?”

“쓸 데가 있어서. 샤흐. 여기서 쓸 수 있는 마력 속성은 뭐야?”

“숲… 이랑 바람 정도네요.”

“달빛은?”

“저건 속성이 아닌데….”

“숲은 되면서? 널 한계에 가두지 마. 네 능력은 생각 이상으로 유용하니까.”

난 스칼라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넌 계속 마력을 모아. 네 한 방으로 끝낼 수도 있으니까.”

“…호조사가… 왜 애한테 그런 걸 시키냐고… 전하래….”

“마법사가 뒤에서 마법만 날려야지, 그럼 앞에 나서냐?”

“그럼 댁은 뭐냐고….”

“그건 내가 이상한 놈인 거고.”

난 호조사의 의견을 가벼이 넘기고, 아벨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내가 도우러 가기도 전에 호위 기사들을 모조리 죽여버린 그녀의 분위기는 조금 바뀌어있었다.

이게 나쁜 쪽인지, 좋은 쪽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아벨라.”

“…네.”

“괜찮아?”

“…괜찮아요.”

아벨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겨우 이 정도에 막히면, 뭣도 될 수 없으니까…… 전 괜찮아요.”

“힘들면 말해. 약속.”

“약속.”

“나랑도… 약속….”

아벨라는 나와 스칼라와 직접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물론 이게 효력이 있을까 싶긴 했지만… 그래도 도움은 되겠지.

“자, 그럼 레이드 하기 전에 설명한다.”

난 미리 짜놓은 계획을 설명했다.

설명하는 동안 입을 벌린 것도 모른 채 집중해서 듣던 샤흐가 감탄했다.

“와… 어떻게 이런 방법을….”

“어때. 다들 할 수 있겠어? 미리 말하지만, 전투는 나와 데자트가 맡아서 한다. 아벨라와 샤흐, 둘 다 절대 무리하지 마.”

“알겠어요.”

이윽고 우린 이무기가 머물 것 같은 장소에 도착했다.

사실 찾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다.

이무기는 주로 물속에 서식하며, 강이나 호수에 서식한다.

그놈의 능력이라면 하늘과 가까운 높은 위치에 서식할 가능성이 컸고, 이 숲에서 이무기가 지낼만한 호수는 한 군데밖에 없었다.

퓨후우우….

“저기 있다.”

호수 위에 고고히 떠 있는 은빛의 이무기를 발견한다.

마약을 섭취하지 못한 탓인지, 멍한 채로 있는 그의 등을 보며 손짓했다.

“그럼 진입한다.”

“바로 공격하는 거 아니죠?”

“어. 대신 날아오는 건 조심해.”

우린 일부러 소리를 내며 접근했다.

호수가 바로 발치에 닿을 정도로 접근하자, 아오렌이 우릴 쳐다본다.

마약 중독자답게 멍한 눈을 한 그는 정신을 차리고 내게 물었다.

[……너흰? 내게 공물을 바치려고 찾아온 것이냐?]

“어. 좀 미안해서 선물 좀 주려고.”

[달이 끝나기 전에 찾아오다니, 운이 좋구나. 낮이었다면 진작에 찢어 죽였을 텐데.]

아니. 그건 네가 될 거다.

난 품에 넣어둔 마약을 꺼냈다. 밀봉된 마약을 본 아오렌의 눈빛이 변했다.

[내놓아라!!]

“그래. 가져가라.”

난 온힘을 다해 마약을 집어던졌다. 아오렌의 몸이 움직였다. 그 이전에 샤흐를 다급히 불렀다.

“샤흐!”

“네!”

샤흐의 마력이 움직였다. 근처의 배경에 따라 바뀌는 속성. 이번에는 ‘바람’으로 선택되고, 바람이 투명하고도 날카로운 창이 되어 마약을 꿰뚫었다.

푸확!

[!!!]

밀봉된 봉지가 찢어지자, 마약 가루가 우수수 쏟아지기 시작했다.

지금이다.

데자트가 뒤에서 대검을 거세게 휘둘렀다.

후우우웅!

검풍이 마약 가루들을 날려버렸다.

바로 아오렌에게로.

예상외의 속도로 날아오자, 아오렌이 입을 쩍 벌렸다.

“스칼라.”

화르르르륵-

내가 말한 타이밍에 정확히 스칼라가 불꽃을 날렸다. 영룡한 빛을 품은 불꽃이 기다란 불줄기가 되어 쏘아졌다. 불은 정확히 가루들을 불태웠다. 불꽃이 가루들을 장작 삼아 더 뜨겁고도 화려하게 타올랐다.

꿀꺽!

아오렌은 장작이 된 마약도 아깝다는 듯이 그대로 불꽃을 삼켜버렸다.

아무리 이무기라도 입 안까지 튼튼하진 않을 텐데, 그는 그마저도 느껴지지 않는 듯 웃음을 흘렸다.

[흐… 흐흐… 좋구나….]

‘역시 이 정도로 안 되나?’

마약 중독자는 이래서 상대하기 까다로운 건데.

난 스칼라에게 다음 공격을 캐스팅하라고 명령하고, 호수를 바라봤다.

이무기의 능력은 물이 가까울수록 더 강해진다.

그렇다면.

‘여길 싹 말려버린다.’

그러기 위해선 시간을 아주 많이 벌여야 했다.

“스칼라.”

“응….”

“이 호수를 싹 다 말려버릴 거야. 얼마나 시간이 필요해?”

“…응?”

내 말에 스칼라가 잘못 들었나 싶어 눈을 깜빡였지만.

내가 굳이 다시 고치지 않자, 그녀는 곰곰이 고민에 빠졌다.

“…30분은 필요해… 아무런 방해 없이….”

“호조사가 보조해서?”

“응… 호조사가 이 정도 걸린댔어….”

“알겠어.”

그렇다면, 최대한 시간을 버는 수밖에.

“샤흐.”

“네.”

“30분. 시간 벌 수 있겠어?”

“네.”

샤흐는 단단하게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약에 찌든 이무기 정도는, 상대할 수 있어요.”

창을 쥔 그녀의 기세는 이때까지 본 어떤 기세와도 달랐다.

검을 다루는 그때는 날것 그대로였다.

하지만 지금은? 절제된 기세와 자세. 단순히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백이 뿜어져 나왔다.

‘이 정도라면…….’

상급 기사 수준은 될 거 같은데?

하지만 마약으로 이지가 흐려진 이무기에겐 다르게 보인 모양이다.

그는 창을 보며 코웃음 쳤다.

[창? 그런 꼬챙이로 날 뚫을 수 있을 것 같으냐?]

“그거 아나요? 인간이 먹이사슬의 최정상에 설 수 있게 만든 것이 바로 이 창이라는 걸. 저희 엘프 선조들도 초창기엔 모두 창을 사용했죠.”

[문명이 발달하지 못한 원시인들이나 다루던 것들이지. 그걸 다루고 날 사냥하려던 인간은 많았다. 너 또한 그와 다를 바가 없어 보이는구나.]

“아뇨.”

그녀가 몸을 낮추고 자세를 잡았다.

그 순간, 근처의 공기가 바뀌었다.

“창은 완벽한 무기예요.”

휘두르고 베고 찌르고 던지는 게 가능하고.

상대방의 공격을 흘려보내거나 막아내는 것도, 1~2M 정도로 안전거리를 확보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품으로 파고드는 공격에는 약한 면이 있다. 허나, 그건 저런 대형 몬스터를 상대할 때는 문제가 되지 않는 요소였다.

“특히나 당신 같은 ‘몬스터’를 잡을 땐 더더욱이요.”

[……몬스터? 내가?]

“제가 당신 같은 몬스터를 앞에 두고서, 이리 열심히 설명을 해 주는 이유는, 누군가가 이걸 들어줬으면 해서예요.”

그녀가 힐끔 날 바라본다.

“제가 얼마나 더 도움이 되고, 더 강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제가 창에 대한 긍지가 얼마나 강한지.”

그녀의 창이 마력에 둘러싸이기 시작했다. 창대의 끝부터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 마력이 창을 온전히 감싸 안는다.

“그에 대한 긍지와, 이를 다시 꺼낼 수 있게 도와준 감사.”

창은 어느새 달빛을 머금은 채 빛나고 있었다.

[감히…… 나의 달빛을……!]

이무기가 포효했다. 하지만 바로 마법이 날아오진 않는다.

난 곧바로 그의 상태를 알아차렸다.

“샤흐. 도발 좀 더 해봐.”

저런 상태로 마법을 쓸려고 하면 쓸 수야 있지만, 딱 그 정도다. 위력이 강한 마법은 못 날린다.

마약이란 이리 무서운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더 나아간다면?

아예 마법을 못 쓰는 것도 기대할 수 있다.

[감히 귀쟁이 따위가!!]

“당신의 달빛도 이젠 절 비추고 있어요. 그럼 이제 그대에겐 무엇이 남았죠?”

[시끄럽다!!!]

“당신은 이무기. 용이 되고자 수련했지만, 그조차 스스로 버렸군요. 지금 당신에게 남은 건, 오랜 시간을 바쳐가며 얻은 마력과 깨우친 마법뿐이에요. 당신은 더 이상 이무기가 아닌 똑똑한 뱀. 아니, 약에 찌든 뱀에 불가해요.”

[닥치라 하였다!!!]

이무기가 완전히 이성을 잃은 채 몸으로 달려들었다. 어느새 그를 둘러싼 은빛은 빛을 조금씩 바래고 있었으니.

“잘 도발했다.”

난 1회용에 가까운 아티팩트 하나를 발동시켰다. 붉은빛과 함께 아티팩트가 박살 난다. 하지만 딱 한 번 보조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강타>

마력에 둘러싸인 쇠사슬이.

짜아아악!

[커허억!]

달려드는 이무기의 면상을, 그대로 후려쳤다.

이무기는 크게 피를 토하며 튕겨 나갔다. 그대로 호수에 큰 파동을 일으키며 물로 추락했다.

이는 마치, 이무기가 승천하기 직전, 그를 본 인간이 ‘뱀이다!!’라고 외쳐 승천에 실패한 이무기 같았다.

난 데자트와 아벨라에게 손짓했다.

“레이드를 시작한다.”

동시에, 두 암살자가 그림자에서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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