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망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09화 (109/124)

제109화

난 보자마자 저 이무기의 이름을 알 수 있었다.

<이무기 아오렌>!

유명하진 않지만, 알 사람은 다 아는 레이드 보스다.

휘청거리고 마구 광란하며 싸우는 모습이 마치 마약에 취한 것 같이 굴기도 하고, 용에 가까운 존재임을 드러내기라도 하듯 쓰레기 같은 인성을 보였기에 취룡 혹은 마약룡이라고 불리기도 했었다.

‘설마 진짜로 마약에 중독되었었을 줄은.’

물론 이름이 그렇다고, 용에 가까운 존재가 마약에 빠져있을 줄은 몰랐지만.

그래서 그런 것일까.

‘내 예상보다 훨씬 약해.’

튜토리얼을 기준으로 최소 1년은 지나야 볼 수 있는 보스인지라 지금 시점에선 꽤 강할 거라고 예상했지만.

아오렌의 힘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상급 기사 2~3명 정도가 붙으면 이길 수 있는 정도.

아무리 용에 가까운 이무기라고 한들, 마약을 과하게 하면 찾아오는 부작용은 이길 수 없는 모양이었다.

‘이놈도 잡을 만하겠는데?’

레이드 보스의 보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에 대한 욕심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하지만, 난 억지로 억눌렀다.

잡을 만하다고 해도, 저 종족 자체가 잡는 게 까다로웠다. 잡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드는 건 물론, 상처 없이 이긴다고 장담은 할 수 없었다.

이무기 정도 된다면 어떤 힘을 숨기고 있을지 모르니까.

‘원래 계획대로 간다.’

쿠구우우우!

쇠사슬이 브레스를 온전히 삼킨 채 은빛을 토해냈다.

설마 내가 브레스를 막아내리라곤 예상하지 못한 것인지, 파충류의 동공이 살짝 커졌다.

난 그를 보며 코를 틀어막았다.

“너, 마약을 얼마나 한 거냐? 여기까지 약 냄새가 퍼진다. 어우, 입냄새.”

[네가 아직 즐거움을 모르는 게지.]

“모르긴 개뿔이. 약을 너무 해서 약해진 거 아니야? 겨우 이 정도 힘으로 용의 형태를 하고 있다고? 용한테 안 미안해? 양심 있으면 원래 뱀으로 돌아가지?”

[너희 인간은 언제나 혀를 놀려댔지. 그 중 대부분은 살아남지 못했다. 내가 어찌했는지 아느냐?]

“나야 모르지. 내가 어떻게 알아? 설마 마약을 너무 해서 지능이 떨어진 건 아니지?”

[혀를 뽑고 입 안을 태워버려 벙어리로 만들었다. 그 뒤론 남자면 남자들에게, 여자면 여자들에게 던져 인간이 존엄성을 짓밟았지. 보아하니 네 외모는 인간들 중에서도 빛나는 수준이로구나. 좋다! 오늘, 그 빛을 꺾어주겠노라.]

아오렌의 눈동자에서 광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보통 이무기라면 보이지 않을 광증.

저 상태라면 패턴도 단순해지고, 내가 원하는 대로 이끌 수 있다.

‘좋아. 내 목적대로.’

난 힐끔 요한을 바라봤다. 요한은 어느새 호위 기사들에게 둘러싸인 채 물러나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벨라.”

“네!”

그림자에서 불쑥 튀어나온 아벨라가 요한의 목을 노리고 단검을 휘둘렀다. 기겁한 요한의 눈앞에 마력으로 이루어진 방어막이 생겨났다.

깡!

뒤늦게 아벨라의 존재감을 알아차린 호위 기사들이 검을 뽑아 아벨라에게 휘둘렀다.

아벨라는 차분히 그들의 검을 쳐내며 다시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었다. 호위 기사들이 그녀를 놓친 채 급히 근처를 두리번거렸다.

푹!

요한의 발바닥에 단검이 틀어박혔다. 요한이 울부짖었다.

“크으으으! 뭐 하는 것이냐! 제대로 날 보호해라!”

“죄, 죄송합니다, 주인님!!”

‘좋아. 저기는 걱정할 필요가 없고.’

[어딜 보느냐?]

이제 문제는 나다.

내 근처로 은빛의 꽃들이 피어난다. 평범한 꽃들이 아니었다. 눈이 멀 정도로 환한 빛을 뿜어내는 꽃이 내 시야를 가리고, 몸에 침범하려 든다.

천갑이가 울부짖으며 마력으로부터 내 몸을 보호했다. 선글라스 형태로 급히 일부분을 변형시켜 눈을 보호하고, 뒤로 훌쩍 물러난다.

고고히 떠 있는 아오렌.

그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는 듯. 그를 중심으로 은빛이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넌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

쏴아아아아-

은빛이 새장의 형태를 갖추었다. 이 온 주변이 전부 다 새장 안에 갇혀 있었다.

용 계열의 보스 몬스터라면 모두 사용할 수 있는 고유 결계 <새장>!

[이무기의 결계에 진입하였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하락하였습니다.]

[마력 폭주도가 일부 상승합니다.]

하지만 이미 이것까지 예상한 바.

난 천갑이에게 속삭였다.

“천갑. 알아서 버텨라.”

펄럭펄럭?!

보조 마법이 있다면 더 쉽게 뚫을 수 있겠지만, 없으니 몸으로 때우는 수 밖에.

난 쇠사슬로 온몸을 둘러쌌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파지지직-!

“크흐으으!”

새장에 몸을 던졌다.

마력이 내 몸을 부서트리기 위해 덮쳐왔다.

만약 천갑이와 쇠사슬의 도움이 없었다면 뚫기는커녕 절대로 접근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둘의 도움이 있다면 뚫을 가능성은 생긴다는 것!

[마력 폭주도가 상승합니다.]

[쇠사슬이 이무기의 결계를 흡수합니다.]

결계를 이루는 은빛 또한 마력으로 이루어진 바.

쇠사슬이 미친 듯이 결계를 이룬 마력을 흡수하였고, 천갑이는 내 몸을 파고들려는 마력을 차단했다.

[결계를 벗어납니다.]

덕분에 온몸이 타오르는 고통과 함께 새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

설마 내가 이런 무식한 방법으로 벗어날 수 있으리라곤 예상하지 못한 듯, 아오렌의 눈동자에 당황함이 깃든다.

난 그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감히 내게서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으냐!]

이무기가 분노하며 내 뒤를 쫓았다.

은빛의 뱀이 하늘을 향해 고개를 젖혔다. 하늘로부터 달빛이 쏟아져 내려와 아가리에 모였다.

오로지 나를 죽이기 위해, 은빛의 광선을 토해냈다.

크아아아아아!

하지만 말했다시피 광증이 올라온 그의 패턴은 단순하다.

이 또한 이미 예상한바. 정확히 타이밍에 맞추어 몸을 날렸고, 방금까지 내가 있던 자리…… 정확히는 영지의 건물에 브레스가 내리꽂혔다.

콰아아아아아!

건물은 목재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손쉽게 타올랐다. 뒤늦게 뒤따라온 요한이 당황한 표정으로 외쳤다.

“자, 잠만! 내 영지는 불태워선 안 되오!”

[내 알 바인가! 인간! 그건 우리의 거래 내용에 없었다!]

“그리고, 날 두고 어디로 시선을 돌리는 거예요?”

“!!!”

아벨라의 단검이 다시 요한의 목젖 바로 옆을 스쳤다. 죽일 수 있으면 죽이라고 했으니, 잘하면 죽일 수도 있겠다.

난 뒤쫓아온 샤흐를 보며 말했다.

“잘 봐라. 무능한 수하를 두면 어떻게 되는지를.”

[감히 나를 우롱하는가!!]

번쩍! 쾅! 쿠르르!

연신 은빛의 광선이 내게 내리꽂혔다. 하지만 한 개도 내게 맞지 않았다. 열이 제대로 오른 듯, 아예 근처를 날려버리는 초고위 마법들까지 발현된다.

난 그 모든 공격을 피하며 목적지에 도달했다.

“여기다.”

월광초가 잔뜩 피어난 장소.

아무리 광증이 올라왔다고 해도, 여기를 불태울 정도는 아닌지 공격을 멈췄다.

대신 내가 굳이 여기까지 온 이유를 알아내려는 듯, 눈동자를 굴러갔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생각이 떠오른 듯, 비릿한 미소가 입가에 떠올랐다.

[이들을 모두 바쳐서라도 네 목숨을 구할 생각이냐?]

“아니?”

내가 미쳤다고?

내가 굳이 여기까지 온 건.

“스칼라!”

“응……!”

여길 불사지르기 위함이다.

내 부름에 스칼라가 데자트의 그림자 속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여기까지 달려오면서 계속해서 마법을 준비하고 있던 것인지, 눈동자와 머리카락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스칼라는 숨을 크게 들이키며, 정면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타올라라!!!”

순간적으로 그녀의 등 뒤로 환상이 보였다. 아홉 개의 꼬리가 등 뒤로 펼쳐진 환상. 동시에, 어느 때보다 강렬한 영롱한 불꽃이 은광초들을 향해 뿜어졌다.

콰아아아아아!

불이 닿기 직전, 은빛이 급히 불꽃을 감싸 안았다. 그대로 꺼트려 버리려는 듯, 은빛이 구 형태로 응축된다.

난 쇠사슬을 휘둘러 은빛을 풀어냈다. 하지만 뒤이어 날아온 공격에 혀를 차며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쿠구우우우-

월광초에 닿지 못하고 불꽃이 꺼졌다.

감히 자신의 마약을 불태우려했다는 사실에 아오렌이 크게 분노했다.

[감히 내 마약들을!! 싹 다 불태워주마!!]

마약의 단점은 생각을 단순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당연히 해야 할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

이는 마약에 찌들어 뇌가 망가진 아오렌조차 피해 가지 못했다.

“날 맞출 순 있고? 방금 같은 공격이면 난 또 피할 건데.”

[하! 네까짓 게 도망가지 못하도록 만들면 그만이거늘!]

“어, 해보던가.”

[아니! 그냥 이 근처를 싸그리 날려버리겠다!]

“오, 그건 좀 피하기 힘들 거 같은데.”

원래의 이무기라면 나를 묶은 채로, 나에게만 공격하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마약에 잔뜩 절여진 뇌가 아니라,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뇌를 가진 이무기라면 말이다.

[월광(月光)이여!!!]

다시 한번 그의 아가리에 달빛이 응축되었다.

이번엔 피하는 대신, 힘을 모았다. 이는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런 내 태도에 더 화가 난 듯, 달빛을 더 강하게 응축하고 모았다.

[싸그리 불태워주마!!!]

“으아악. 이건 못 피할 거 같. 아.”

그가 아가리를 쩍 벌린 순간.

용의 동공에, 내 얼굴이 비쳤다.

나는 웃고 있었다.

‘이런. 표정 관리를 못 했네.’

[……이런!!]

그는 뒤늦게 자신이 한 짓을 깨닫고 브레스의 방향을 틀려고 했다.

하지만 이 정도도 이미 내 계산 내에 들어와 있었다.

내가 미리 대기시켜놓은 샤흐의 목소리가 아오렌의 바로 아래에서 들려왔다.

“……솔직히, 아직은 익숙하지 않지만.”

그녀는, 창을 잡은 채 투창 자세를 잡고 있었다.

“전 도움이 되어야만 해요.”

쐐애애애액!

동시에 샤흐의 창이 쏘아졌다. 창은 정확히 아오렌의 입을 맞춰 방향을 다시 뒤틀었다.

입의 방향은 정확히 은광초가 자라나는 장소.

이윽고 은빛의 브레스가 월광초들을 덮쳤다.

콰아아아아아아!

화르르르륵!

“안 돼애애애애애액!”

“저런.”

요한이 울부짖었다.

난 혀를 끌끌 차며 천갑이를 로브 형태로 바꾸었다.

뒤늦게나마 광증을 이겨내고 제정신을 차린 아오렌을 보며 말했다.

“이거 어쩌나. 네게 줄 마약은 방금 싸그리 타 버렸는데.”

[…이건.]

“은룡 아오렌!!! 이 일은 그대가 망친 것이오!”

요한이 잔뜩 원망과 분노로 얼룩진 목소리로 외쳤다.

아오렌의 눈동자가 그에게로 향한다.

용에 가까워진 존재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그건 바로-

[내 알 바인가?]

인성이 정말 개쓰레기라는 것.

“……뭐라?”

[내 실수 때문에 이 마약들이 모두 탄 건 인정하겠다, 인간. 하지만 그뿐이다. 내 실수를 감히 인간 따위가 뭐라 하려는 것이냐?]

용(龍)이란 누구보다 고귀한 존재다. 앞에 수식어가 추가된 채 용이라 불리는 존재는 많지만, 오로지 ‘용’으로만 불리는 존재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은 너무나도 고귀한 존재이며, 신에 가장 가까운 신수이기에, 누구보다 오만하다.

설령 용이 아니라고 한들, 그에 가까운 이무기는 용 못지않은 자존심을 품고 있었으니.

“지금, 지금 당신의 실수 때문에 당신이 받을 신의 은총이 모두 없어진 것이오! 당신이 스스로 이 거래를 망친 거라고!”

[감히 인간 따위가 반말을!]

아오렌이 적반하장으로 분노했다. 요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무래도 저 달빛을 받아 쓴다는 특징 때문에 오해한 거 같은데, 이놈은 정상이 아니다.

애초에 마약에 찌든 놈이 어떻게 정상이겠어.

[허나, 이번은 내 실수가 맞기에 너의 목숨을 거두지 않겠다. 허나 이미 넌 나의 심기를 거슬렀다. 난 더 이상 이 싸움에 끼어들지 않겠다!]

“뭐, 뭐라?”

[이만 난 벗어나지.]

아오렌은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는 듯, 날개를 펄럭이며 떠올랐다.

요한이 붙잡기도 전에 이미 아오렌은 밤하늘 너머로 사라진 상태였으니.

“저래서 용이 욕을 먹는 거지.”

본인이 보상을 불태워놓고 그냥 떠나버리다니.

미리 말하지만, 난 용이란 생명체는 좋아했다. 서양의 드래곤과 달리 신 혹은 신수로 추앙받고, 자연을 다루며, 모든 짐승을 다스리는 존재.

다만, 어중간한 놈들이 더하다고 저런 놈들은 별로 안 좋아했다. 내가 몇 번이나 죽기도 했었고 말이다.

‘뭐, 지금이야 내게 좋지.’

난 쇠사슬을 쥔 채 요한에게 다가갔다.

본래 요한을 보호하고 있어야 할 호위 기사들은 아벨라에 의해 교란되고 있었다.

한 명은 겨우 따라오긴 했지만.

서걱!

데자트의 검에 목이 날아갔다.

죽음을 직감한 요한이 다급히 외쳤다.

“나, 날 죽이면 암왕이 찾아올 것이오!”

“오, 그래?”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찾아올 여력이 있나 모르겠네.”

“그게 무슨…….”

“뭐, 찾아와도 상관없어.”

서걱!

“어차피 내가 이기니까.”

요한에겐 업이 거의 존재하지 않아, 죽였음에도 별 차이는 느껴지지 않았다.

돌발 퀘스트도 없으니 따로 돌아오는 것도 없었고.

그래도 이걸로 후에 일어날 제국 분열 이벤트를 막았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었다.

‘그보다 암왕이라.’

마약 원산지를 없애긴 했지만, 마약촌에는 마약이 남아있을 것이다.

없앨 거면 확실히 없애야 한다. 물론 오래 가진 못할 테지만, 발악하듯이 무슨 사고를 칠지도 모르니.

마약촌을 없애기 위해선 무조건 암왕을 만나서 죽여야 하는데…….

‘내가 죽이기보단, 암왕의 후계자에게 넘기거나 아벨라에게 넘기는 게 낫겠지.’

그리 생각한 순간.

[돌발 이벤트 발생!]

[현재 대륙의 마약 생산지는 주리남, 마약촌, 총 두 곳입니다. 현재 주리남은 당신에 의해 궤멸 상태에 빠졌습니다. 허나 아직 마약촌이 남아있습니다. 후계자의 사망으로 인해 온전한 상태, 아니 그 이상을 넘보는 암왕을 제지하십시오.

[보상:

1. 능력치 봉인 일부 해방(5)

2. 마력 제어력 +3

3. ???

실패 시, 사망. 혹은 마력 제어력 10 하락, 혹은 모든 동료의 죽음.]

꽤 긴 글이었지만, 한 단어가 한눈에 들어왔다.

후계자의 사망.

‘…후계자가 죽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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