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6화
짐승은 본능에 충실하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싶으면 잠을 자고, 교미하고 싶다면 교미를 맺는다.
그런 짐승처럼 행동하는 인간은 조금 더 교활했다. 그런 짐승 중에서 사람을 탈을 쓰고 사는 놈들이 있었다. 그들은 직접 마약을 팔면서 수없이 많은 비참한 삶들을 마주했고, 그 삶들을 자기 것인 양 연기하며 동정심을 사려 했다.
하지만 그게 우리에게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린 이후로는 더 이상 연기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여자! 여자다!”
“신선한 인간 고기! 먹고 싶어!”
“배고파! 배고파아아악!”
촤아악!
“으으, 진짜 싫다.”
데자트는 검에 묻은 끈적한 피를 털어냈다.
마부석에 짐을 놓아두는 자리에 몸을 숨기고 있던 스칼라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녀의 눈짓에 작게 불꽃이 피어올라 끈적한 피를 지워냈다.
“오, 고마워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몇 없으니까….”
“너무 그런 걸 신경 쓰지 마요. 원래 맞는 역할이 있는 거예요.”
“아니야… 그래도… 뒤에서 보살핌만 받긴 싫어….”
“…진짜 왜 이리 귀엽지? 지금 막 뽀뽀해달라고 유혹하는 거죠? 그런 거죠? 나중에 막 뭐라 하면 안 돼요?”
“으응?”
데자트가 스칼라를 와락 껴안은 채 뽀뽀 세례를 퍼붓는 사이, 난 마차에 매달린 아벨라를 쳐다보았다.
“아벨라. 괜찮아?”
“네.”
촤악!
그녀는 지친 표정으로 또 달려드는 인간을 베어냈다. 도중에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동족의 팔을 물어버린 인간이었다.
“숫자가 너무 많은 걸 빼면요.”
“아마 슬슬 줄어들 거야. 곧 있으면 초입부를 벗어나거든.”
초입부는 정말 미친 듯이 사람이 모여 있었다. 사람들 중 특히나 짐승에 가까운 것들.
이는 주리남에서 의도한 바였다. 이런 것들이 많아야 웬만한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으니까.
그렇다고 선을 넘으면 황실에서 직접 사람을 파견할 테니, 소문이 퍼지지 않도록 돈을 먹이며 절묘하게 소문을 조절했다.
마약을 미친 듯이 팔아넘기며 돈이 쌓인 주리남에서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조금만 참아. 곧 이 숲을 벗어나니까.”
“후우우… 차라리 몬스터를 상대할래요… 아무리 짐승 같은 놈들이어도, 모습이 비슷하니 꺼림칙해요.”
“그러게.”
사실 지금 그녀가 나서는 상황 자체가 조금은 꺼려지긴 했다.
초반엔 그렇게 암살자로 키우지 않으려고 했거늘, 결국 그녀는 암살자로서 성장했으니까.
하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스스로의 힘이 없다면 본인을 지킬 수 없을 테니까.
“아. 그런데 혹시해서 묻는 건데.”
“?”
“사람을 죽이는 거, 거부감 안 들어?”
“도련님이 저들은 사람이 아니라고 했잖아요. 그리고, 저 고아 출신이에요. 이런 풍경은 어릴 때부터 보면서 자랐다구요.”
하긴. 이 세계의 고아들은 좀 강하지.
“저 지금 걱정하시는 거예요?”
“어.”
“……네?”
예상과 다르게 내가 바로 긍정적인 의견을 내비쳐 보이자 그녀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얼마나 당황한 것인지 그녀의 귀 끝이 붉게 변해 있었다.
“도련님… 원래 그러신 분이 아니셨는데…….”
“원래 사람은 변해.”
사실은 원래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게 맞긴 하지만.
이제는 컨셉이고 뭐고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다시 컨셉을 잡기엔 늦었다.
‘계속 까탈스러운 모습을 보일 필요도 없고.’
지금의 나는 완전히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안정화된 상태다. 천갑이를 통해 외부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단단해진 육체 덕분에 마구잡이로 뭉개지지 않는다.
그동안 내가 까탈스러운 태도를 보인 이유는 단 하나, 마력 폭주로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위기감 하나다.
그게 사라진 지금, 내가 굳이 까탈스러운 태도를 유지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애들 교육에 안 좋기도 하고.’
아니, 근데 애초에 이런 데에 오면 안 되지 않나?
내가 생각해도 모순이 가득하긴 했지만, 어쩔 수 있는가.
모두 겪어야 하는 시련이거늘. 차라리 원망을 받더라도 내가 받는 게 나았다. 적어도 상황만큼은 내가 원하는 대로 이끌 수 있으니 말이다.
스칼라는 자연스럽게 내게 다가와, 내 무릎에 머리를 기대고 편하게 누웠다. 마치 날 달래듯이 손으로 내 허벅지를 토닥였다.
“괜찮아… 오빠는 오빠니까….”
“아주 셋이서 꿀이 떨어지네요.”
데자트가 투덜거리면서 달려든 인간과 짐승을 한 번에 베어냈다. 이번엔 아예 인간 폭탄이 되려고 했던 것인지, 폭탄이 잘린 몸에서 떨구어졌다.
퍼엉!
폭탄이 마차를 휩쓸기 전, 나무 줄기가 폭탄을 휘감아 폭발의 위력을 줄였다.
“잘했어, 샤흐.”
“…네에.”
샤흐는 힘이 없었다. 그 짧은 사이에 너무 많은 정신 공격을 받은 여파로 보였다. 난 슬쩍 데자트에게 눈짓했다.
‘나중에 좀 보살펴줘.’
‘물론이죠.’
마음 같아선 머리라도 쓰다듬어주고 싶은데, 아마 지금은 내가 꺼려질 것이 분명하니 굳이 나서지 않았다.
대신에 스칼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기분 좋은 듯 살랑거리는 꼬리는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었다.
혹시 나중에 저 꼬리가 구미호의 꼬리처럼 되는 거 아니겠지?
‘아, 그러고 보니.’
난 문득 떠오른 궁금증에 스칼라에게 물었다.
“스칼라. 호조사랑 계속 대화 나누고 있지?”
“으응….”
“내가 자기 존재를 알아차리니 뭐라하든?”
내 말에 그녀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잠시 망설이는 듯 해보였지만, 내가 괜찮다는 시선을 보내자, 쭈뻣쭈뻣한 태도로 말했다.
“괴물 같은 인간이라고…….”
“칭찬 좀 할 줄 아네. 호조사가 너한테 잘해줘?”
“으응… 잘해줘….”
“만약 너 괴롭히면 말해. 혼내줄게.”
“자기는 사념인데 어떻게 할 거냐는데…?”
“다 방법이 있지.”
사람한테 깃든 사념을 없애진 못해도 고통을 줄 순 있으니까.
난 정면을 바라보았다. 슬슬 이 숲의 끝이 보이고 있었다.
“정지.”
히이잉!
고삐를 잡아당기자, 말이 자리에 멈춰 섰다. 아벨라가 왜 멈추냐고 물어보려 했지만, 이전에 귀신같이 인간들이 물러나는 걸 보고 입을 다물었다.
“……무슨…….”
“여긴 영역이 다르거든. 저 겁쟁이들이 그걸 감수할 정도로 달려들진 않아.”
난 마차에서 내려 말의 상태를 살폈다. 물약을 먹이며 강화한 말이다보니 튼튼했지만, 이번 길이 워낙에 험했다 험해서 잔뜩 지쳐 있었다.
“데자트. 얘 좀 돌봐줘.”
“네엡.”
“나머지는 좀 쉬어도 좋아. 여기서부턴 내가 할 테니까.”
아우우-
저 멀리서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하늘을 쳐다봤다. 방금까지만 해도 별이 가득한 밤하늘이었거늘, 지금은 별이라곤 하나도 남지 않고 오롯이 달 하나만 떠 있다.
보름달.
아우우우!
인기척이 우리가 있는 곳 근처를 가득 메웠다.
내 말에 편하게 쉬기 위해 침낭을 깔던 애들의 얼굴이 굳었다.
각자 무기를 꺼내 드는 그들에게 손을 들어 제지하고, 나무 사이로 위풍당당하게 걸어 나오는 놈을 쳐다보았다.
온몸을 둘러싼 회색 털, 2M는 훌쩍 넘어 보이는 큰 키, 보름달을 닮은 회색 눈동자.
“네가 왕이냐?”
[그렇다. 내가 이 웨어울프들의 왕이다.]
웨어울프 왕.
짐승과 인간들이 접근하지 못하는 이유인 이 ‘영역’을 통치하는 우두머리.
하지만, 그 강함은 천관산의 우두머리와 비슷한 정도다. 아니, 더 약한가.
보름달만 뜨는 특이한 지형 때문에 평균적으로 강화되어있을 뿐, 태생적으로 강하지 않은 종족이니까.
[그러는 그대는 누구인가? 그대는 왕인가?]
“설마. 내가 왕일 리가. 내가 왕으로 보여?”
[그대가 가진 마력은 그만한 양처럼 보인다만. 왕이 아니라…… 그럼 그대는 왜 내 앞에 무릎을 뻣뻣이 세우고 있는가?]
우우우우-
웨어울프의 온몸에서 마력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보름달을 고스란히 옮겨 닮은 듯한 은빛의 기운.
그는 당장이라도 날 물어뜯을 것처럼 으르렁거렸다.
[무릎을 꿇어라, 왕을 마주한 자여. 그대는 응당 정당한 예우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내가 왜?”
난 피식 웃었다.
“왕이 왕다워야 따르지, ”
[10초 주겠다. 10초 안에 정당한 예우를 갖추지 않는다면 찢어발겨-]
“샤흐. 잘 봐. 나 같은 별종은 수두룩해. 왕이 왕답지 않다고 생각하면 존중하지 않지.”
난 그의 말을 끊고 샤흐를 돌아봤다. 아까보다는 조금 더 진정된 샤흐의 눈동자. 안심하라는 의미로 가볍게 웃어주었다.
“그러니, 넌 이걸 찍어누를 줄 알아야 해.”
[감히 인간이 건방지게!]
뚜두둑!
웨어울프 왕이 분노했다. 온몸의 근육이 잔뜩 부풀며 체구가 1.5배는 커졌다. 내 머리통만 한 주먹이 날아들었다.
난 주먹을 덥석 붙잡았다.
[!]
“백작에게 사육되는 주제에-”
분명히 웨어울프의 힘은 나보다 강했다. 하지만 내게는 힘보다 기술이 있었다. 날아드는 힘을 그대로 이용해 뒤로 날려버렸다.
“어디서 왕을 지칭해?”
콰아아아앙!
땅에 처박힌 웨어울프 왕이 마른 기침을 토해냈다. 제정신을 차리기 전에 쇠사슬을 날렸다.
촤르르르르르륵!
쇠사슬이 목을 휘감는다. 웨어울프 왕이 뒤늦게 쇠사슬을 쳐내기 위해 손톱을 날카롭게 세우고 휘둘렀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
뻐어어억!
텅 빈 품으로 파고들며 주먹에 쇠사슬을 휘감은 채 턱을 후려갈겼다.
피를 한 움큼 토해낸 웨어울프가 핏발 선 눈으로 내게 손톱을 휘둘렀다.
이미 손톱의 궤적은 다 보인다. 하나하나 쇠사슬로 쳐냈다. 그리고 뒤이어 움직일 것까지 예상하여 쇠사슬을 휘두른다.
카카카캉!
손톱과 쇠사슬이 연신 부딪혔다.
당연히 멀쩡한 건 쇠사슬이었다. 웨어울프 왕이 잔뜩 닳아버린 자신의 손톱을 보고 울부짖었지만, 무시하고 강하게 쇠사슬을 휘둘렀다.
촤르륵-!
쇠사슬이 마치 뱀이 기어오르듯이 웨어울프 왕의 팔을 휘감았다. 반응하기도 전에 강하게 잡아당겼다. 힘없이 당겨오는 머리를 무릎으로 찍었다.
콰아아아아앙!
마지막 순간에 눈동자가 붉게 물들며 광폭화가 되려고 했지만, 내가 무릎으로 찍는 게 더 빨랐다.
광폭화는 스스로 뇌의 제어를 푼다. 하지만 그 이전에 뇌에 충격을 줘버린다면 제어를 풀 수 없게 만든다. 내가 노린 것 또한 이것.
난 웨어울프 왕의 머리를 짓밟았다.
“이게 끝?”
[크… 크으으…….]
“수하를 부르든 뭘 하든 해봐. 그래봤자 죽겠지만.”
이제 이걸 어떻게 할까. 제일 좋은 방법은, 본보기로 보여주기 위해 목을 매달아 놓는 것이다.
웨어울프는 위계질서가 확실하다. 자신을 이끌던 우두머리가 죽었으니 그 자리는 탐내겠으나, 우두머리를 죽인 괴물에게 덤벼들진 못한다.
‘하지만 이건 좀 너무 잔인하지.’
그렇다면.
[이거 풀어라! 풀란 말이다-!]
덜컹, 덜컹!
집 지키는 개마냥 목에 쇠사슬이 감긴 채 나무에 묶인 웨어울프 왕이 날뛰었다.
하지만 쇠사슬에 계속해서 쇠사슬을 통해 마력이 빠져나가는 이상, 그가 나무를 부러트릴 순 없었다.
난 적당히 안전거리를 가늠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쯤이면 되겠네.”
[이거 풀어라-!]
“얘들아. 밥 먹자.”
“네에.”
아벨라는 익숙하게 끓인 수프를 우리에게 나누어주었다. 뭘 넣고 끓인 진 모르겠지만, 냄새나 비주얼이 꽤 괜찮았다.
난 금세 수프를 비웠다. 워낙 먹는 양이 적은지라, 수프 한 접시를 먹었다고 벌써부터 배가 불렀다.
나와 달리 순식간에 다섯 그릇을 비운 데자트는 입가에 묻은 수프를 혀로 할짝 핥으며 말했다.
“…참. 둘이 싸울 때, 약간 그거 같았어요.”
“?”
“둘 다 머리가 회색이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왕에게 도전하는 웨어울프 혼혈 같았달까. 사실 당신 웨어울프 혼혈인 거 아니에요?”
“우리 엄마 아빠 다 인간인데. 그리고 웨어울프면 내가 이리 약하겠어?”
덜컥 덜컥!
“약하다는 말에 발작하는데요? 하긴, 당신이 약한 거면 저 웨어울프 왕은 얼마나 약하겠어요?”
“가만히 있어.”
[개… 같은 자식….]
“개는 너고.”
다음날 아침. 아침이 되어 해가 떠오르자, 웨어울프 왕은 눈에 띄게 왜소해져 있었다.
이래서 웨어 울프는 안 된다니까.
난 혀를 끌끌 차며 웨어 울프를 질질 끌고 와 마차에 단단히 묶었다. 그가 당장 풀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무시하고 머리를 걷어찼다.
퍽!
“넌 갈 동안 내 호의나 하고 있어.”
[반드시… 풀면… 죽여버릴 거다…!]
그의 저주를 무시하고
영 말이 없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저런 모습을 보인 마음이 조금 아팠다.
“내가 원망스러워?”
“네?”
내 물음에, 잠시 놀란 듯해 보이던 그녀는 고개를 천천히 내저었다.
“……아니요. 당신은 저에게 악의를 품고 여기에 데려온 게 아니니까요. 다만… 궁금한 게 있어요.”
“뭔데.”
“당신은….”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또렷한 눈동자로 날 쳐다보았다.
“이만큼 거친 곳에서… 자라났나요?”
거친 곳에서 자라났냐고?
“욕하려는 건 아니에요. 다만… 평범한 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험한 면이 있는 것 같아서요.”
‘…틀린 말은 아니지.’
내 부모는 마약쟁이였다.
그리고 내가 자라난 곳은, 햇빛이 들어오는 곳이 아닌 지하. 배가 고프면 바퀴벌레라도 잡아먹어야 했고, 툭하면 폭력과 약에 노출되었다.
그런 곳에서 자라난 만큼, 나는 내가 뭐가 문제인지 알고 있었다. 지식은 지하를 벗어난 이후로 채울 수 있지만, 태어나서부터 학습하지 못한 도덕은 드문드문 비어있다.
그리고 지금이야 빙의함으로써 현실이 되었으나, 이전에는 그저 데이터 쪼가리인 이들에게 몰입하고 집착했으니.
게임 중독자를 넘어선 몰입자. 그게 제정신은 아니다. 나는 적어도 그리 생각했다.
“비슷하지.”
“비… 슷….”
그녀에게 이 정도 답변이면 충분했던 것인지, 더 이상 질문이 날아오진 않았다. 난 분위기를 환전시킬 겸 다른 질문을 던졌다.
“괜히 분위기 잡친다. 다른 궁금한 점은 없어?”
“……얘도…… 왕이예요?”
“적어도 이 웨어울프의 무리들에겐 그러겠지. 왜. 너무 약해 보여서?”
“…네. 제가 아는 왕이라는 이미지가 조금-”
“맞아. 힘이 없는 왕이란 원래 이렇지. 그러니까 넌 강해져야 해.”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넌 왕이 될 거니까.”
이는 공주로 태어난 그녀의 운명. 아무리 내가 거스르게 만들고 싶다고 해도 거스를 수 없으리라.
히이잉!
난 저 멀리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마차 속도를 천천히 줄였다. 아벨라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자, 말소리가 들린 곳을 눈짓했다.
“손님이 왔어.”
“손님…?”
“어.”
이윽고 수풀을 드러내며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켄타우로스.
본래 하체가 있어야 할 자리에 말의 몸뚱어리가 달린 종족이자, 말 수인의 돌연변이.
천 쪼가리 하나 걸치지 않고 탄탄한 육체를 드러낸 그가 날 오만한 눈동자로 바라봤다.
“백작 각하께서 그대를 찾으시오.”
“그래?”
날 찾을 백작이라고 하면 한 명뿐이다.
주리남을 다스리는 백작, 요한 간돌프.
난 피식 웃으며 말 채찍으로 마차를 툭툭 쳤다.
“직접 오라고 해.”
“……뭐?”
“백작따리가 어디서 날 불러?”
여태까지 나는 어느 정도 몸을 수그렸지만.
여기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내가 이곳을 싸그리 불태워도, 내가 어떻게 움직였고 어떤 짓을 했는지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러니.
‘아주 개박살을 내주마.’
“빨리 튀어나오라고 해. 요한 백작. 아니, 마약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