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망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05화 (105/124)

제105화

목적지가 정해진만큼, 난 빠르게 움직이기로 했다.

‘라온 공자. 너무 급하게 움직이는 거 아닌가요? 마력 포식자와 싸운 지 얼마나 됐다고…….’

‘그렇다고 느리게 움직일 이유도 없죠.’

언제나 시간이 생명이었다 보니, 빠르게 움직이는 게 버릇이 됐다. 이제 느리게 움직이면 몸이 답답함을 느꼈다.

그래도 애들은 아직 쉬고 싶을 테니, 하루 정도는 쉬기로 했다.

물론 애들만.

“여기부터 여기까지 싹 다.”

“예, 예!”

“아, 그리고 포션도.”

난 아티팩트와 포션들을 싹 쓸어 담았다. 갑작스러운 마력 포식자의 폭주로 인해 아티팩트 대부분이 먹통이 된 탓에 제대로 된 건 구하기 힘들었다. 그나마 멀쩡한 건 비싼 돈을 주고 만든 두꺼운 지하 창고에 보관되어있던 것. 그마저도 양이 얼마 되지 않아, 질 좋은 아티팩트는 거의 없었다.

‘그때 그 팔찌는 용케도 구해왔네.’

한 번 방출을 사용했다고 박살이 나버린 팔찌.

호조사의 전투로 부서져 버린 팔찌가 그리웠다.

그건 적어도 수복이라도 가능했는데.

‘수복하기도 전에 부서져 버리니, 원.’

난 혀를 끌끌 차며 텅 빈 아공간 주머니를 꽉꽉 채워 넣었다. 비상식량에다가 포션, 아티팩트까지 채우고 나니 반절 이상이 차 있었다.

혹시 몰라 옷들까지 싹쓸이하고 계산하는 와중에 검이 쭉 진열된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그보다 끝까지 검은 안 보내는군.’

이미 나에 대한 소문은 가문에 전달되었을 것이다. 이전에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물건을 안 보냈다고 쳐도, 지금은 위치도 알고 전달할 수단이 넘쳐나는데도 보내지 않는다.

즉, 마벨은 나와 손을 잡을 생각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뭐, 나야 상관없지.’

나는 마벨이 굳이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마벨은 나라는 세력 하나도 귀했다. 그걸 차버린 건 마벨이었고.

“얘들아.”

“으으… 근육통….”

“으응…?”

“왜요?”

그날 밤. 난 각자 잘 준비를 하는 애들에게 말했다.

“내일 어디로 좀 갈 거야. 다들 짐 잘 챙겨놔. 또 이 가문에 올 진 나도 모르겠으니까.”

“또 어디 가요?”

“어.”

데자트는 얼굴로 귀찮다는 티를 팍팍 냈다.

그 모습을 보니 어이가 없었다.

짜증 나는 건 아니다. 다만, 내가 너무 익숙해져서 그런지 그녀와 내가 계약을 맺은 이유를 까먹어버린 거 같다.

“데자트. 너 아직 빚 다 안 갚았다.”

“아.”

내 말에 데자트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자신이 고용된 입장으로써, 또 빚을 진 입장으로써 합당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는 것에 안색을 창백히 했다.

“그게… 그러니까….”

“됐고 일이나 해.”

“네에….”

뭐라 할 생각은 없다. 나도 굳이 빚에 얽매이는 걸 보고 싶진 않으니까. 다만, 너무 자신의 처지를 잊은 거 같아서 그런 거지.

또 그녀가 잊어버린 모습을 보이면, 그만큼 샤흐가 속에서 끙끙 앓을 테니 말이다.

위이이잉-

샤워실에서 나온 샤흐가 머리를 뜨거운 바람으로 말리기 시작했다. 축축히 젖은 수건을 어깨 위에 올려놓은 그녀는 귀를 쫑긋 세우며 내게 물었다.

“이번에도 또 누굴 잡는 건가요?”

“아니. 그런데 그만큼 위험할 거야. 어떤 일이 있을 수도 있고.”

난 가볍게 설명해주기로 했다.

“다들 마약 알지?”

“네. 알죠.”

샤흐는 진절머리 난다는 듯, 머리를 양옆으로 털었다. 초록색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휘둘러지며 물방울이 튀었다.

“숲에도 마약이 들어올 뻔했거든요. 마약도 결국 숲에서 자라나는 식물의 일종이라, 숲에서 재배하기 좋았거든요. 게다가 저희는 오래 살아요. 막 즐길 거리도 없으니, 마약처럼 숲에서 재배하면서도 쾌락을 주기 쉬운 것이니 몇몇은 손쉽게 빠져들었죠.”

이미 나도 아는 사실이다. 내가 죽인 다크 엘프가 그를 막기 위해 암왕과 계약을 맺었으니까.

비록 숲 밖으로 나와 떠돌고 있으나, 마음속에서만큼은 숲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암왕은 관심도 없었지만.’

정확히는 굳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가 옳은 이유겠다. 암왕이 왕으로서 남을 수 있던 이유는, 이길 수 있는 위기만 스스로 받았기 때문이다.

엘프는 오랜 시간을 살며 어떤 변수를 일으킬지 모르는 이들.

또한 나름 강자로서 업을 쌓고 세계에 대해서 알고 있을 테니, 편애를 받는 엘프를 굳이 죽이려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죽었던 것이고.

“그래서 저희 숲에서는 마약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어요. 아무리 자연의 일부라지만, 저희의 삶을 망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그건 왜요?”

“그게 자라나는 곳에 가려고.”

“네?!”

샤흐가 눈에 띄게 화들짝 놀랐다.

“왜요?!”

“싹 다 불태워버리게.”

아무리 뛰어난 마법사라도 없는 재료를 만들어낼 순 없다. 아마 싹 다 불태운다고 해도 다시 자라나기야 할 테지만, 최소 3년 이상은 걸릴 터.

그 정도면 충분하다. 그 안에 대마법사의 경지에 오른다. 그리고 강림할 재앙인 고밀라를 막아내고 메인 이벤트를 끝낸다.

그게 현재의 내 목표였다.

“내일은 조용히 움직여야 하니까, 다들 미리 푹 자둬. 새벽에 움직인다.”

“네엡”

“공주님! 이리 와요! 얼른 자야죠!”

어느새 잠옷으로 갈아입은 데자트가 자신의 옆을 팡팡 두들겼다. 샤흐의 귀 끝에 붉어지는 게 보였다.

“아니, 사람들이 다 있는데….”

“에이, 괜찮아요, 괜찮아. 어차피 신경 안 써요.”

그건 누구 의견이냐?

뭐, 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니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다만 그건 나뿐인 모양이다. 스칼라는 침대에 함께 누운 스칼라와 데자트를 보더니, 자신의 침대에서 내려와 내게 양팔을 벌렸다.

“……나도…… 안아줘…….”

“답답할 텐데.”

“괜찮아….”

부러웠나? 내가 양팔을 벌려주자 자연스럽게 안겼다. 갸르릉 소리를 내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홀로 덩그러니 남은 아벨라와 눈이 마주쳤다.

고독한 고양이가 잔뜩 그려진 잠옷을 입은 아벨라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저 따당하는 건가요?”

“그렇다고 내가 널 안을 순 없잖아.”

미리 말해두지만.

나와 아벨라는 미성년자다. 아직 성인식도 안 치른.

* * *

결국 스칼라가 아벨라와 함께 자는 걸로 결론이 났다.

어차피 나야 매일 혼자 자는 게 익숙하고 편했다. 괜히 발작이라도 일으키면 곤란해지니까.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새벽. 난 은밀하게 움직이기 위해 미리 구매해놓은 로브와 모자를 썼다. 애들도 나를 따라서 모두 후드를 꾹 눌러썼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건 제 직통 연락처에요. 여기로 연락을 보내시면 바로 답장을 해드릴게요.”

“밤에도요?”

“……제가 안 자면요?”

난 피식 웃으면서 그녀가 내민 수정구를 안에 넣었다. 아직은 그녀에게 큰 부탁하지 않은 상태였다. 딱히 뭐가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았으니까.

“그럼 이만.”

“그대의 앞길에 축복이 있길.”

가볍게 인사를 남긴 우리는 워프 게이트가 아닌 마차를 타는 곳으로 향했다.

미리 돈을 주고 고용해놓은 마부가 우리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 마차를 건네 주었다.

우리가 워프게이트르 탈 줄 알았던 것인지, 샤흐가 의아하게 눈을 깜빡였다.

“시간이 급하다고 하지 않았어요?”

“급하진 않아. 빠를수록 좋은 거지. 그리고 거긴 워프 게이트가 없어서 이거 타고 가야돼.”

“거기가 어딘데요?”

“주리남.”

“주리남…?”

“응. 마약 대부분이 거기서 재배돼. 인구수도 적고, 나무도 울창하지. 게다가 치안도 좋지 않아서 사람도 잘 오지 않고. 아마 백성 대부분이 마약 중독자이자 마약 사범일 거야.”

진짜 마약 사범은 마약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 정도로 진짜인 이들은 주리남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어차피 그들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나는 그냥 마약이 자라나는 곳을 싸그리 불태워버리기만 하면 되니까.

“그보다 가면서 범죄자나 짐승이 많이 덥칠 건데. 알아서 치울 수 있지?”

내 말에 데자트가 씨익 웃었다.

“물론이죠. 그 정도는 껌이에요.”

“그래야지. 자, 그럼 출발.”

이히힝!

* * *

덜그럭 덜그럭!

주리남으로 가는 길은 굉장히 험했다.

데자트나 샤흐의 마차 모는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을 정도였다.

그나마 초입이라 몬스터나 범죄자 같은 놈들이 나오지 않아서 다행이지, 만약 그놈들까지 나왔다면 온종일 걸렸을 것이다.

난 말의 고삐를 잡아당기면서 마차 속도를 조절했다.

‘가보는 건 처음이라 어렵네.’

나와 주리남은 엮일 일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아카데미를 벗어날 수 있을 때 즈음엔 동료를 영입하고 아티팩트를 악착같이 모아야 했으니까.

그나마 나중에 찾아갈 만한 여유가 생기긴 했지만, 그 당시 폭주하듯이 나타나는 고위 던전들을 깨부수고 아티팩트를 모으고, 또 날뛰는 메인 이벤트의 빌런들을 없애는 게 더 중요했다.

즉. 이번이 내가 처음으로 가는 셈.

난 아공간 안에 넣어둔 종이를 만지작거렸다.

미리 받아온 주리남에 대한 정보들.

직접 브루아이가 엄선하여 건네준 정보들이니 믿을 만하리라.

이히힝!

말이 울부짖었다. 난 불길한 기운이 스멀스멀 모여드는 게 느껴졌다.

저 멀리서 늑대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점차 많은 소리가 우리에게 접근해오기 시작한다.

“데자트.”

“드디어 나온 건가요?!”

“어. 데자트는 앞길을 뚫어. 아벨라는 접근하는 놈들을 없애고. 샤흐는 갑자기 길이 없어지거나 움직이기 곤란해질 때 마법을 써. 스칼라는 나서지 마. 괜히 불을 질렀다가 싹 다 태워 먹을 수도 있으니까.”

내가 정해준 역할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데자트가 마차 문을 열고 정면으로 벅차고 뛰어올랐다.

그녀의 검이 빛을 뿜었다.

쿠구우우우!

그녀의 검기가 나무들을 베어내며 길을 만들었다.

정면으로 달려오던 곰 한 마리가 반으로 갈라진 채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를 시작으로, 탐스러운 먹잇감을 인지한 짐승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흡.”

아벨라가 그동안 열심히 노력한 성과를 보여주겠다는 듯, 훨씬 빨라지고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달려드는 짐승들을 베어냈다. 손이 닿지 않는 위치에 있는 짐승들은 비수를 던져 죽이는 모습까지.

겨우 며칠 사이에 그녀는 진짜 암살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능숙해져 있었다.

“샤흐.”

난 말이 멈추지 않도록 채찍질하며

“지금부터 많은 걸 볼 거야. 넌 그 모든 걸 눈에 담아.”

“……마약을 파는 곳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맞아. 하지만 좋은 면만 봐선 안 돼.”

그녀는 지구처럼 짤막하게 5년 정도만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게 아니었다.

한 번 오른 순간, 적합한 후계자가 나타날 때까지 왕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말 많은 걸 봐야 할 필요가 있었다.

“왕으로서 최우선적으로 봐야 할 건 나라의 좋은 면이 맞아. 어떤 걸 발전시켜야 나라를 더 부강하게 만들 수 있을지 알아야 하니까. 하지만, 그만큼 중요히 봐야 할 건 어두운 면이야.”

스각! 난 뺨에 튄 짐승의 피를 닦았다.

“잘 봐둬라. 지금부터 제국의 이면이니까. 모든 걸 눈에 담고, 네가 이끌어갈 엘프들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야 할지. 그리고 만약에라도 대통합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앞에 사람들이 있어요! 어떻게 해요?!”

길을 완전히 튼 데자트가 내 바로 옆자리에 착지했다. 한쪽 고삐를 넘겨준 난 가볍게 말했다.

“사, 살려주십시오!”

“그냥 밟아.”

으직!

살려달라며 튀어나온 사람들이 말발굽에 치여 죽었다. 별 감정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샤흐는 충격이었던 것인지 날 바라봤다.

“어째서….”

“샤흐. 저길 봐.”

난 한 곳을 가리켰다. 사람들이 튀어나온 자리였다. 그 자리엔 구덩이가 파여있었고, 안에는 구더기가 들끓는 시체가 있었다.

시체엔 드문드문 직접 뜯어먹은 듯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샤흐의 눈이 더 큰 충격으로 물들었다.

“어째서….”

“그리고 저 시체들도 잘 봐봐. 하얀 가루가 가득하지 않아?”

내 말에 샤흐가 뒤를 돌아보았다. 우리가 짓밟은 사람들의 옆에는 하얀 가루가 가득 떨어져 있었다.

샤흐는 곧바로 하얀 가루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마약…?”

“맞아. 그리고 방금 봤지. 저 시체. 여기에 있는 놈들은 사람이 아니야. 스스로 인간이길 포기한 자들이지.”

“사, 살려주십시오!”

“귀족 나으리! 부디 자비를! 부디 저희도 데리고 가주십시오!”

“그리고 이 산길을 뭐라 부르는지 알아?”

“……뭔데요?”

으직! 애원하듯이 접근하며 달려들던 인간들의 목이 잘려나갔다.

몸 속에 숨기고 있던 무기들이 떨어졌다. 싸늘한 시체가 된 그들에게 짐승들이 모여들었다.

으적, 으적!

“짐승들의 도로.”

“짐승들의…?”

“인간도, 동물도, 모두 같은 짐승처럼 지내기 때문이지.”

동물과 짐승은 같은 의미다. 하지만 쓰이는 경우가 다른데, 대부분 짐승은 길들이지 않은 흉포한 날 것 그대로의 동물을 칭할 때 쓰이는 단어였다.

쉽게 말해, 여기선 인간이 날짐승처럼 지낸다는 이야기였다.

“넌 보게 될 거야. 인간이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지. 생명의 존엄성이 얼마나 가치 없이 버려질 수 있는지를. 그리고 그런 상황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내가 굳이 지금 보여주는 이유는.

차라리 지금 겪는 게 낫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은 멘탈이 깨지더라도 수습하고 더 강해질 수 있다.

하지만, 이후에 일어날 전쟁에서 멘탈이 무너지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끔찍한 것을 보고도 버티기 위해선 지금부터 강해져야 했다.

난 그녀가 죽는 걸 원하지 않으니.

그러니.

‘부디 여기서 멘탈이 강해지길 바란다.’

그래야만.

‘네가 살 수 있어.’

전쟁에서 패배한 왕과 왕의 혈통에겐 죽음밖에 남지 않으니까.

“미리 사과해놓을게.”

“……네?”

“아마 내가 원망스러울 수도 있거든. 굳이 널 여기로 데리고 왔다고 말이야.”

비록 말할 순 없으나.

나 또한 저들처럼 짐승와 다를 바 없이 자라났다. 약을 하지 않고 인간을 죽이지 않았을 뿐이지, 다른 이가 보기엔 다를 바 없는 놈이었다.

그러니 좀 험하게 가르치는 걸 부디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나중에 모든 게 끝났을 때.

‘라온 리그벨토’가 아닌 나와 얘기할 순간이 찾아올 때, 모든 걸 말해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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