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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가 망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04화 (104/124)

제104화

화륵-

스칼라의 손끝에서 불꽃이 피어오른다.

한 번 피어오른 불꽃은 꺼지지 않고 손끝부터 시작해 팔, 그리고 머리까지 천천히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온몸에 불꽃을 두른 스칼라는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권법처럼 보이기도 하고, 춤사위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한 기묘한 움직임.

겉모습은 아직 어린아이 그대로라 살이 조금 오른 예쁘장한 7살 여자아이의 모습에 불가했으나.

뿜어내는 불길만으로 근처의 공기를 뜨겁게 데우고 짓누르는 모습은, 마치 어린 악마를 연상시켰다.

스칼라의 손끝이 꿈틀거렸다. 불꽃이 손끝을 중심으로 응축되며 모여들고, 주먹이 쥐어진 순간 불꽃이 주먹을 휘감는다.

화륵!

스칼라가 정면으로 주먹을 내뻗었다. 주먹을 휘감은 불꽃이 허공을 강타한다. 역할을 다 한 불꽃은 사라져야 정상이건만, 불꽃은 사라지지 않고 다시 되돌아와 스칼라의 주위를 둘러쌌다.

“음.”

기묘한 컨트롤을 보던 데자트가 감탄했다.

“훌륭한데요? 진짜 믿기지가 않아요. 설마 짧은 시간 내에 이 정도로 컨트롤할 수 있을 줄이야.”

“헤헤….”

스칼라는 바보처럼 웃음을 흘리면서 자연스럽게 내게 머리를 내밀었다. 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놀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화기를 깨우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불꽃을 뿜어내고 회수하는 것까지 가능할 줄이야.

‘누군가가 가르쳐주는… 아니, 가르쳐줘도 불가능한 일인데.’

아무리 훌륭한 스승이라고 해도, 본인이 직접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약 이게 누군가가 가르쳐주어서 낸 성과라면. 그녀의 몸 안에서 직접 보면서 알려주는 수준이 아니고서야…….

‘안에서?’

설마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만약 구미호의 사념이 흡수되었다면, 가능한 일이긴 해.’

스칼라는 꼬리 하나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덕분에 업을 온전히 집어삼켜 체내에 많은 화기를 쌓고 높은 통제력을 얻었지만.

‘온전히 업을 흡수했다는 건, 업에 섞인 사념까지도 흡수되었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어.’

사실 그 위험도는 별 크지 않다. 사념은 말 그대로 사념일 뿐이고, 그녀의 영혼이 가진 저항력에 의해 사념은 남아있지 못한다.

그래서 별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데…….

‘우연히 스칼라와 궁합이 잘 맞았다면?’

사념의 정신이 뚜렷하고, 서로의 궁합이 잘 맞는 수천만의 확률을 뚫고 사념이 생존했다면?

그게 남아 스칼라 안에서 화기를 통제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면?

‘속성에 뒤섞인 여우불…… 믿기지 않을 정도로 늘어나는 통제 실력…….’

증거는 충반하다. 다만, 결정적이지는 않다. 지금 내가 확신을 가진 것도 사실상 심증이었고 말이다.

“스칼라.”

“으응…?”

그래서 난 돌직구로 나가기로 했다. 어차피 고민해봤자 답은 안 나올 테니까!

“솔직히 말해. 머릿속에 구미호 목소리 들리지.”

흠칫.

“무슨 애한테 그런 소리를 해요?”

데자트는 내가 헛소리한다고 생각한다고 뭐라 했지만.

난 분명히 봤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모습을!

“지금 말하면 혼 안 낼게.”

“…정말?”

“어. 하지만 지금 거짓말하고 넘어갔다가 나중에 들키면, 그땐 진짜 혼낼 거야. 그날은 금식이야.”

“!!!”

스칼라의 귀가 충격으로 쫑긋 세워졌다. 귀뿐만 아니라 눈동자에 꼬리까지 덜덜 흔들리는 모습이, 하루 동안 굶는다는 게 너무 충격적인 모양이었다.

고개를 푹 숙인 그녀가 잔뜩 시무룩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들려….”

“협박으로 거짓말하는 거 아니죠?”

“으응…….”

난 잔뜩 시무룩해진 채로 머리에 착 달라붙은 귀를 바라봤다. 이리 보니 고양이보다는 강아지 같다. 스칼라도 목욕은 좋아하니까.

“또.”

“또.”

“…또…?”

“또 나한테 말 안 한 거 있잖아. 지난번에 여우불을 왜 다룰 수 있는지 모른다며?”

흠칫.

사실 나도 이 정도로 넘어가 주고 싶었지만, 그냥 넘어가기엔 그녀가 남긴 거짓말이 있었다.

나도 그녀가 내게 모든 사실을 터야한다는 건 아니다. 당연히 개인적인 비밀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안전과 직결된 문제에서, 보호자나 다름없는 나는 알 권리가 있었다.

“그것도 말해야지.”

“…으응… 사실 알았어… 머릿속에서… 구미호가 알려줬어….”

“왜 말 안 했어.”

“미안….”

“오늘은 네가 직접 말해줬으니까 넘어갈게. 하지만 다음부턴 바로 말해줘야 해?”

“알겠어…. 미안해….”

“괜찮아. 자. 이리 와.”

난 미안함에 작게 훌쩍거리는 스칼라를 끌어안았다. 내 품에 안긴 스칼라는 옛날보다 조금 더 묵직해져 있었다.

‘키도 좀 컸나.’

그보다 몸이 좀 따뜻한 거 같다. 그녀가 다루는 화기의 영향인가? 자세히 보니 눈동자 깊은 곳에서도 불꽃이 이글거렸다.

‘슬슬 폭발적으로 성장할 땐데.’

아마 반년 정도가 지나면 중학생 수준으로로 성장할 것이었다. 키는 평균보다 더 클 지도 몰랐다.

그때 되면 안고 싶어도 잘 안 안길 거고, 손도 잘 안 잡을 테니 지금 좀 안아두기로 했다.

“…그리 말하니까 진짜 아빠랑 딸 같네요.”

“나이 차이가 너무 부족하지 않아?”

“분위기가 그렇다는 거죠.”

내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자, 데자트가 옆에서 실실 웃었다. 왠지 기분이 나빠서 그녀의 발목을 걷어찼다.

“악! 아파요!”

“아프라고 친 거야.”

“씨이… 진짜 치사하게….”

많이 아팠는지 눈물까지 글썽거리는 사이, 아벨라가 헉, 헉, 거친 숨을 내뱉으며 우리에게 다가갔다.

“헉… 왜요…? 헉… 무슨 일… 있어요?”

아벨라는 온몸에 무거운 돌을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근래에 수없이 많은 흡수한 신체에 익숙해지기 위함.

난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야. 열심히 해.”

“네!”

아벨라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난 그녀와 보폭을 맞추며 훈련에 합류하는 엘프를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보다, 샤흐는 왜 저기에 있는 거야?”

“원래 공주님은 마법사가 아니시니까요. 평소에 하던 육체 훈련이에요.”

“그래? 왜 난 못 봤지?”

“그동안 여유가 없었으니까요? 시간도 별로 없으니, 육체 훈련은 가볍게 하고 ”

그래서 못 봤던 건가?

‘그보다 창은 끝까지 안 쓰네.’

이번 마력 포식자의 전투에서 그녀가 전력을 다하려면 창을 사용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창을 사용하지 않았다. 분명히 드문드문 한계까지 몰리는 게 보였고, 손끝까지 꿈틀거리는 게 보였는데 말이다.

이전에는 데자트가 죽어서 사용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녀가 멀쩡히 살아있다.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

직접 물어보고 싶었지만, 왜인지 물어보아도 대답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뭐.

‘스스로 꺼내게 만들어야지.’

무슨 방법이 좋을까?

‘그보다 이제 다음으론 어디로 가야 하지?’

부족한 아티팩트를 채우려면… 또 고위 던전을 클리어해야 할 텐데, 지금 시기에 열릴 만한 게 있나?

펄럭펄럭!

깐죽거리는 천갑이를 대동한 채로 잠시 훈련에서 이탈했다. 훌쩍거리던 스칼라는 다시 훈련하겠다고 데자트에게 합류한 상태였다.

고민에 빠진 채로 홀로 저택을 걷고 있는데, 고민 어린 표정으로 흰 가루가 담긴 봉지를 들고 있는 브루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앞에서 시종이 열심히 말하는 걸 보면 심각한 일인 모양이었다.

시종이 사라진 후, 난 그녀에게 슬쩍 다가갔다.

“또 무슨 일 있습니까?”

“아, 그게 말이죠.”

브루아이가 한숨을 대폭 쉬었다.

“근래에 마약이 대량으로 들어오고 있어요. 저희가 최대한 걸러내고는 있지만, 정말 용케도 섞여 들어오네요. 몇몇은 아예 동물의 뱃속에 숨기기도 했고, 아니면 몸에 숨기기도 했고요.”

“마약은 그겁니까?”

“네. 상당히 독한 거예요.”

마약이라.

‘마약과는 나도 연이 좀 있지.’

아버지와 어머니는 마약 사범이셨다. 마약 중독자 출신이었다가 마약 사범이 된 케이스라, 본인들도 마약에 중독되어있었고, 또 다른 이들을 마약 중독으로 이끌었다.

그래서 난 마약을 혐오했다. 마약 하나 때문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내 인생이 망하는 데에는 마약이 꽤 큰 일조를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라온도 상태가 안 좋으면 마약에 중독되는 이벤트가 있었다. 물론 그 경우엔 되살리는 게 불가능한지라, 바로 다음 회차로 넘어가야 했다.

마약은 신성력으로도 손쉽게 치료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제국에서도 마약은 엄격하게 금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유통되기 시작했다는 건…….

‘슬슬 지금 즈음인가.’

원래라면 나와는 관련이 없었을 이벤트.

후반으로 갈수록 제국이 혼란스러워지도록 만드는 ‘제국 분열 이벤트’가 슬슬 시작된다는 것이다.

제국은 후반으로 갈수록 점차 분열되기 시작한다. 압도적인 힘을 자랑하는 공작가나 황실은 꿈쩍도 하지 않았지만, 그 아래의 가문들은 각기 전쟁을 일으키거나 마찰을 일으키며 대륙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 시작이 바로 마약 유통이었고.

“이거, 또 다른 데에 유통됩니까?”

“아뇨. 일단 저희 영지 내에서만 발견되었어요. 아마 이들도 저희 영지를 먼저 노리겠죠. 저흰 중간 지점으로 쓰기 참 좋은 곳이니까요.”

“이걸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차선책으로는 유통이 불가능하도록 사범들을 모두 잡는 거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일단 수요를 모두 없애는 거지만. 그건 불가능하니…”

쉽게 말해서 마약을 만들지 못하도록 재료를 싸그리 없애버리면 된다는 거 아닌가?

난 그 재료들이 어디에 있는지 모두 알고 있었다.

지금 상황이 어떤지도 알고 있었고.

‘괜찮은데?’

난 손가락을 튕겼다.

“그거 좋네요.”

“……네?”

“마약 재료들의 원산지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거든요.”

거긴 대륙의 뒷면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뒷세계의 귀족인 암왕이 다스리는 마약촌이 아닌, 대륙의 귀족이 직접 통치하는 곳이자.

게한 영지보다도 더 지독한 곳에서 마약들을 재배하는 곳이기도 했다.

마약촌은 마약을 만들긴 하지만, 자라나진 않는다. 하지만 거긴 정말로 마약을 키우고 재배했다.

‘거기가 제국 분열의 시작점이기도 하지.’

마약의 장점은 돈이 잘 벌린다는 것이다. 마약 판매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 귀족은 더 높은 직위를 탐내었고, 돈을 미친 듯이 뿌리고 분란을 일으키며 제국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아직은 시작하지 않았다.

‘세르바 리그벨토도 아직 안 노렸을 거고.’

그는 쾌락에 중독되어있다. 마약보다 더한 쾌락에 중독된 그는, 마약을 하기보다는 마약을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

후반에는 아예 한 번 섭취한 순간 뇌를 온전히 망가트려 버릴 정도로 독한 마약을 만들기도 했었고 말이다.

‘그러니, 지금이 제격이다.’

좋아. 다음 목적지를 정했다.

난 만족스럽게 웃었다.

‘가는 김에 샤흐도 성장시킬 수 있겠어.’

샤흐는 많은 걸 배워가야 한다. 그리고 난 그녀에게 많은 걸 가르쳐줄 생각이었다.

세상의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들을.

그녀의 멘탈을 깨트릴 생각은 아니다. 다만, 난 왕으로서 없애야 하는 더러운 면들을 미리 보여주고, 내버려두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보여주고 싶을 뿐이었다.

적어도 범죄자, 그놈들에게는 폭군이 되어야만 한다. 그래야 일반 백성에게 성군이 될 수 있다.

게임에서는 보지 못한 여왕 샤를로트의 미래.

난 이번 삶에서 기꺼이 이를 만들 생각이었다.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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