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2화
용사 파티.
순간적으로 ‘그게 대체 뭔데?’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얘네는 또 뭐야?’
새로운 인물인가?
또 새로운 인물이야??
그리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을 때.
이전에 재의 영웅이 말해주었던 게 떠올랐다.
[내 동료는 총 3명이었다. 한 명은 궁수, 한 명은 방패술사, 한 명은 검사였지.]
“종족은?”
[궁수는 엘프, 방패술사는 드워프, 검사는 인간이었지.]
들은 순간, 용사 파티라는 이미지가 떠올랐던 파티 구상.
설마 시스템이 말하는 후손이, 이전에 재의 영웅이 말했던 영웅들의 후손인가?
가능성은 있었다. 평범한 판타지에선 마왕을 잡는 역할은 대부분 ‘용사’이며, 영웅의 문에선 그런 설정은 고증을 지키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몇 가지 의문이 피어오른다.
왜 시스템은 이들을 영웅이 아닌 용사라 부르는가?
재의 영웅은 왜 용사가 아니라 영웅이라 불리는가?
왜 용사로도 불리었고, 후에 영웅으로서 업까지 쌓은 이들이 지금까지 남아있지 않는가?
‘후손들이라 하면 제대로 씨를 뿌렸다는 이야기인데…….’
게다가 나중에 더한 재앙을 불러온다는 걸 보면, 업도 나름대로 물려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름을 못 떨치고 있는 거지?
‘이상한 데에 들어갔나?’
대륙은 넓고 미친놈들은 많다. 버젓이 존재하는 신이 아닌 다른 신을 신앙하는 이들도 많으며, 이를 광신하며 모든 걸 바치는 이들도 있다.
아니면 내가 정보를 알 수 없는 곳인 음지에 몸을 숨긴 걸 수도 있고.
아니, 용사 파티의 후손들이라며.
나름 영웅이라고 불리던 것들의 후손이라며.
이렇게 존재감이 없어도 되는 거야?
‘정보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라나?
난 한숨을 내쉬며 품에서 포션을 꺼냈다.
천갑이가 열심히 보호해준 덕분에 외상은 없지만, 온몸의 근육이 부풀기라도 한 듯 뻐근하고 쑤셨다.
대충 포션을 입 안에 털어 넣고, 애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다들 괜찮아?”
“아니요… 온몸이 아파요….”
“배고파….”
“전 양팔이…….”
“크게 다친 덴 없나 보네.”
다들 극심한 근육통이나 마력 탈진 증상만 보이지, 심한 외상은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면 선방, 아니 완벽하다고 볼 수 있다.
‘예상보다 너무 쉽게 잡았다.’
내가 너무 강해진 건가?
아무리 내 능력치가 봉인되었다고 한들, 중간 보스인 천마신교와 직접적으로 충돌하는 중반부까지는 이전의 능력치로 진행했다.
당연히 그때보다 능력치가 훨씬 높아졌으니, 어찌 보면 이 결과는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다들 힘들겠지만, 일단 일어나. 끝났으니 여길 벗어난다.”
“네에… 끄응….”
“으으….”
다들 끙끙거리긴 했지만 어찌어찌 자리에서 일어섰다.
물론 스칼라는 마력 공급을 위해 손을 잡아주어야만 했지만 말이다.
“……?”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난 스칼라와 맞잡은 손을 바라봤다.
왜… 이전보다 더 마력이 빨리는 기분이지?
“…오빠… 왜 그래…?”
스칼라는 갑작스레 멈춘 날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부러 더 많이 먹는 건 아닌 거 같은데.
벌써 먹는 양이 늘었나, 하기엔 아침까지만 해도 이 정도 양은 아니었다.
‘설마?’
“다들 마력 포식자가 죽고 나서 무슨 변화라도 생겼어?”
“네? 네. 전 몸이 조금 더 강해졌어요….”
“나도 몸이….”
“저도요.”
그럼 마력은?
‘설마 전부 다 스칼라한테?’
난 스칼라를 바라봤다. 스칼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더… 많이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네가 제일 업을 많이 먹었나 보네.”
경지가 드높을수록 상대방을 죽임으로써 얻는 업은 현저히 적어진다.
이미 본인이 쌓은 업이 있으니, 본질이 다른 업을 굳이 받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스칼라는 그런 게 딱히 없다. 그녀가 채워나갈 그릇은 현저히 빈 상태. 그렇다 보니 제일 많은 업을 흡수한 것 같았다.
설마, 마력 포식자의 ‘포식’을 조금이나마 물려받을 줄이야.
“또 다른 건?”
“…으음… 모르겠어…. 그냥 ‘얻었다’라는 느낌만 들어서….”
능력은 좀 더 써봐야 알려나.
그래도 이 정도면 엄청난 선방이다.
저런 괴물을 죽인 것치고는 내게 돌아온 보상이 너무나도 적었지만….
그거야 내가 망캐이니 어쩔 수 없었다.
“슬슬 나가자.”
“네…!”
“응…!”
끼이익-
“기운이 왜 가라앉은 거지… 설마 당한 건 아닌… 어?!”
굳게 닫혔던 문을 열고 나가자,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홀로 중얼거리는 브루아이와 눈에 들어왔다.
가볍게 고개를 꾸벅 숙여보이자, 그녀는 놀란 눈으로 한걸음에 다가왔다.
“다… 잡으신 겁니까?”
“예. 마력 포식자는 죽었습니다. 안을 보시면 알 겁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내가 생각해도 그래. 빨리 잡아도 너무 빨리 잡았어.
브루아이는 직접 공동 안을 들어가 확인했다.
두 눈으로 보고 나서야 마력 포식자가 죽은 걸 알게 된 그녀가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설마 이렇게 쉽게 잡다니…….”
“일단 사제 좀 불러주세요. 다들 좀 쉬어야 할 거 같아서요.”
“아, 아! 죄송해요. 정신이…… 금방 사제를 불러오겠습니다.”
제정신을 차린 브루아이는 우리가 전부 쉴 수 있는 곳으로 옮겨주었다.
혹여 다 다른 방으로 옮겨지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다행히 내 이런 생각을 예상했던 것인지 다들 어떤 상태인지 볼 수 있도록 넓은 방 안에 모두 모아주었다.
“으윽.”
“괜찮으세요? 금방 치료해드릴게요.”
“아악! 사, 살살!”
“아유 근육 뭉친 것 좀 봐! 이런 건 미리미리 풀어줘야 돼요! 그러다 흉져!”
“으으….”
약한 주제에 제일 열심히 움직인 아벨라는 어딜 누르든 끙끙거리며 침대에 엎어졌고, 스칼라는 진작에 잠들었다.
샤흐도 마력 탈진만 빼면 별문제가 없었고.
“제가 치료해드릴 게 없는데요?”
데자트는 그냥 완전히 멀쩡했다.
아마 나도 비슷할 테니 그냥….
“어떻게 움직이세요?”
“?”
“몸에 멀쩡한 부분이 없어요. 이 정도면 움직이는 게 용한데? 온몸의 근육이 퉁퉁 부었어요. 뼈 안 아파요?”
“이 정도는 원래…….”
“원래는 개뿔이. 됐고 빨리 누워요. 온몸을 확 묶어버리기 전에.”
아니, 나 안 아픈데.
그보다 나 귀족인데 왜 반말을….
내가 무어라 해명하기도 전에 억지로 눕혀졌다.
‘……왜 이리 세냐?’
평범한 사제 맞아?
반항하자면 할 순 있는데, 해서 얻을 게 없으니 가만히 있기로 했다.
얌전히 눕자, 사제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내게 힐을 걸어주었다.
“힐링 걸어드릴게요. 이런 부류의 상처는 바로 낫기보다는 천천히 낫게 하는 게 나으니까요. 재생력에 기대어 조금 더 성장 가능성을 키우는 게…….”
“저, 성녀 후보님?”
“앗. 죄송해요. 제가 또….”
아니, 인제 보니 보이는 팔뚝이 장난 아니다.
온몸을 덮을 정도로 옷이 크고 전체적인 선이 얇아서 그렇지, 실전 압축 근육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보다 성녀 후보라.’
게임에선 별로 나오지 않는 캐릭터다.
영웅의 문에서 사제 캐릭터는 굉장히 비중이 적었고, 흔히 있는 신전의 타락 이벤트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분량이 적다는 거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아니라는 건 아니다.
‘높으신 분이 오셨군.’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공작가도 나서는데 신전에서라고 안 나서겠는가.
오히려 성녀 후보 정도는 와야 사건사고가 터져도 수습이 가능할 테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잠만. 그런데 성녀는 보통 용사 파티에 있지 않나?’
용사 파티에 성녀가 빠지면 오히려 이상하다.
‘한 번 물어볼까?’
성녀 후보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는 알고 있지 않을까.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뭔가요?”
“혹시 용사나 영웅에 대해서 아십니까?”
“……용사나 영웅이요?”
내 질문에 성녀 후보가 곰곰이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동화 속에 나오는 용사 말씀하시는 건가요?”
“음… 뭐, 비슷하죠. 정말로 성검을 뽑을 수 있는 용사… 뭐 그런 게 있나 싶어서요.”
“물론 있죠.”
그녀는 순순히 대답했다.
“정말 있습니까?”
“네. 하지만 기록에 남기만 했지, 실제로 나타난 건 100년 전의 일이에요. 기록이 분명히 남아있어 있다고 할 순 있지만, 지금 어디에 있냐고 하면 대답하긴 조금 곤란해요.”
그건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기록이 남아있는 게 다행이었다.
약간의 정보라도 없는 것보단 낫다.
특히 이런 걸 찾아야 하는 경우에는 말이다.
“제가 그에 대해서 알 수 있습니까?”
“으음… 어차피 크게 기록된 것도 없고, 그냥 설화(說話)처럼 내려오는 거라… 100년 전에 나타난 것도 아주 잠시여서요.”
“괜찮습니다. 요새 워낙에 괴상한 놈들을 많이 본지라, 힐링이 필요하거든요.”
아하. 그녀는 내 왜 굳이 용사에 대해서 알려고 하는 지 알아서 납득했고, 이내 친절한 목소리로 설명을 해주었다.
“그럼 좀 옛날 얘기부터 시작을 해볼까요. 아직 제국이 세워지기도 전, 혼란스러웠던 시대에 용사님께서 나타나셨어요.”
혼란스러운 시대에 신의 부름을 받고 나타난 용사는 성검을 뽑았고,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동료를 모았다.
혼란스러운 시대를 잠재우고 주신의 빛을 널리 퍼트리기 위해.
그리고.
“그 뒤로 실종이 되셨죠.”
“……?”
그게 끝?
난 진심으로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거밖에 없습니까?”
그녀도 내 황당함을 이해하는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네… 어릴 적의 저도 이에 의문을 가지고 찾아봤는데, 정말 딱 이 정도였어요. 어떤 위업을 달성했고 어떤 위협을 떨쳐냈고… 뭐 그런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그럼 100년 전에 나타난 용사는?”
“분명히 사제도, 성기사도 아닌데 빛나는 검을 들고 나타나 ‘내가 용사다!’라고 외치신 분이죠. 그리고 얼마 뒤. 그분은 실종되셨답니다.”
“…….”
뭐야, 그게.
용사가 아니라 개복치였던 건가?
‘진짜 있던 흥미도 사라지네.’
내 짜게 식은 표정을 본 성녀가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
“다만 재미있는 낭설은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낭설 말씀이십니까.”
“네. 이 지하의 마력 포식자를 봉인한 이가, 사실 제국을 세운 태초의 황제가 아니라 용사라는 낭설을 말이죠.”
저 말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난 왜 그동안 용사가 내가 접근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높은 사람이었다는 걸 고려하지 못했는가?
현재 공작가들은 용사와 전혀 연관이 없다. 검을 다루는 가문인 글라스크 가문이나 오스큘라 가는 다른 플레이어들에 의해 웬만한 사실은 다 까발려진 바.
절대 이들은 용사와 관련이 없었고, 리그벨토 가문이나 아즈벨라 가문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더 위는 누구인가.
황실뿐이다.
어떤 유저도 제대로 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은 미지의 영역.
만약 황실이 용사의 후손이라면? 용사의 업이 모두 황실에 있다면?
‘……그리고 그놈들이 사고를 치는 거라면?’
그러면 내가 막을 수준이 아닌데?
아무리 내가 상식을 벗어난 일을 한다고 해도, 적정선이라는 게 있다.
황실이 직접 나서서 사고를 친다?그걸 내가 어떻게 막아.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최소한 이름만이라도….
‘아.’
직접 물어볼까?
마침 이 근처에 재의 영웅이 잠든 곳이 있다.
이전에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용사 파티에 대한 정보가 개방되었으니, 더 많은 정보를 줄 수 있을 터.
아마 성녀 후보에게서 듣는 것보다 더 확실할 것이다.
‘한 번 만나야겠네.’
“참. 이번에는 제가 여쭤봐도 되나요?”
“예. 뭡니까?”
“그….”
성녀가 두 볼을 붉히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근육… 어떻게 키우시는지… 전 공자 같은 슬림하게 근육을 키우는 게 좋거든요…. 고중량 반복이신지, 저중량 반복이신지… 또 어떤 부위부터 하시는지….”
눈이 무섭다.
이성으로써의 호감이 아니라 정말로 근육에 미친 눈이었다.
근육에 누구보다 진심인 눈!
“……그런데 성녀 후보께서는 왜 그리 근육에 관심이 많으신지.”
“인체에 대해 공부하다 보니 푹 빠졌달까요…. 그래서, 네? 근육은 어떻게 단련시키셨나요?”
난 다급히 데자트에게 시선을 던졌다.
나와 달리 그녀는 차분히 경지를 올리었을 테니, 나보다 더 잘 알 터.
그러니까 나보단 네가…….
“…….”
데자트는 말없이 내 시선을 피했다.
야!
* * *
“여어. 오랜만.”
결국 몸이 회복될 동안 성녀 후보에게 괴롭힘당한 후, 스톤 서클로 올 수 있었다.
인적이 드문 밤에 다가가자 시야가 뒤바뀌며 영웅의 무덤으로 초대된다.
잿빛으로 이루어진 형상에게 다가가자, 오랜만에 보는 재의 영웅이 모습을 드러냈다.
[……벌써 후손을 만난 거냐?]
“뭔 소리야?”
오랜만에 본 재의 영웅이 기쁜 표정을 지었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빴다.
[너에게서 성녀의 냄새가 나는구나! 아주 훌륭해. 만나려면 좀 걸릴 줄 알았는데, 훨씬 빠른…….]
“뭔 개소리야, 갑자기. 성녀가 왜 나오냐고.”
[그게 무슨…….]
“네가 말한 동료 중엔 성녀가 없었잖아.”
[내가… 말하지 않았다고?]
재의 영웅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이상하군. 내가 절대 그럴 리가 없는데.]
“나이를 너무 많이 먹은 거 아니야?”
[이미 난 죽은 몸. 나이 따위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다. …잠만. 지금 신전의 힘은 어떻지? 나라를 세웠나? 제국을 지배하고 있나?]
“싹 다 아닌데.”
신전의 존재감이 강하긴 하지만, 딱 그 정도다.
나라를 세우지도 않았고, 정치에 그리 큰 개입도 하지 않았고, 지배는커녕 영지도 없다.
신전은 그냥 신전이었다.
그것도 타락하지 않은 신성한 신전!
[말도…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