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9화
“1시간 후, 바로 전투라 이거죠?”
애들에게는 시간이 없는 만큼 짤막하게 설명했다.
다행히도 모두가 자세하지 않은 설명에도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단 한 명만을 제외하고.
“너무… 무리… 하는 거… 아니야…? 가진 아티팩트도… 거의 다… 박살났잖아….”
“뭐, 그거야 어쩔 수 없지.”
스칼라의 걱정에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래도 비슷한 것들로 급하게 구해놨으니, 그리 큰 문제는 생기지 않을 거야. 부족한 만큼 신체 능력치도 꽤 많이 올랐으니까.”
“으응….”
“이번엔 너야말로 조심해야 해. 이번에는 너도 참여한다.”
“!”
내 말에 스칼라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내가 그동안 그녀를 얼마나 애지중지해왔는지는 그녀 본인이 잘 알았다.
당연히 이번에 내가 참가시킨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이제 넌 불을 다룰 수 있지. 그리고 그 불은 특별해. 그놈을 잡는 데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을 거야.”
원래라면 참가시키지 않을 것이지만, 그녀의 속성에 깃든 여우불은 이번에 참가시키도록 결정을 내린 요인이 되게 해주었다.
여우불은 그 누구에게도 삼켜지지 않는다.
그게 설령 마력을 모조리 빨아들이는 포식자라고 한들.
그리고, 스칼라는 마력을 빨리는 역할이 아니었다.
역으로 잡아먹는 타입이었지.
‘그리고 부족한 실력도 싸우다 보면 알아서 채워질 거야.’
솔직히 말해서 이들을 참가시키지 않고 싶었다.
하지만 위기 없이는 성장할 수 없다.
그리고 마력 포식자가 ‘포식’ 행위를 멈춘 지금이, 유일하게 저놈을 잡을 수 있는 기회다.
또, 갑자기 초식 행위를 시작한다고 해도.
그땐 최대한 많은 업을 쌓아 성장했을 때이니 버틸 수 있을 것이고, 위험하다 싶으면 밖으로 귀환시키면 됐다.
“난 이번 기회로 너희들을 성장시킬 생각이야.”
내 목적은 이들을 최소한 상급 기사, 상위 마법사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다.
‘공주가 아직 창을 쓰지 않으니 전력은 아니지만.’
창을 쓸만한 상황이 나온다면, 알아서 꺼낼 것이다.
지금은 그녀를 마법사로 상정하고 대우하는 것이 옳았다.
“100년간 숙성. 그리고 그 이전부터 오랜 시간을 살아온 놈이다. 당연히 쌓아온 업이 상당하겠지. 그걸 우리가 잡아서 나눈다고 해도, 한 명 한 명이 벽을 넘어설 정도는 될 거야. 하지만 조심해. 정말로 죽을 수도 있어.”
모두가 긴장한 채로 고개를 끄덕인다.
좋은 긴장이다.
난 분위기를 환산시키기 위해 손뼉을 쳤다.
“짝을 지어줄게. 데자트와 아벨라. 스칼라와 샤흐. 둘 다 어떤 역할인지는 알겠지?”
근접전이 가능한 둘과 원거리가 가능한 둘. 짝이 된 서로가 서로를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벨라가 전력을 다하지 않은 데자트를 따라잡을 순 있겠지.’
아마 가능할 것이다.
이 싸움에서 데자트가 전력으로 싸워야 할 때에는 내가 보조할 거니까.
아벨라는 그전까지만 보조해주면 적당하다.
“잠시 의문이 있네.”
“어떤 겁니까?”
“다들 실력이 너무 부족하지 않은가? 자네가 원하지 않아 기사는 지원해주지 않지만… 그래도 실력이 다들 너무 부족한 거 같은데.”
스테파니의 의문은 합당했다.
여기서 전력으로 쓸만한 건 데자트와 샤흐 정도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건 저놈을 상대해보지 못한 놈이나 할 수 있는 이야기다.
“마력 포식자는 직접적으로 전투에 나서는 놈이 아닙니다. 아마 자잘하게 마법을 날리는 식의 공격을 할 거예요. 혹은 쌓아온 마력에 깃든 사념을 활용해 수족을 부릴 수도 있고요. 이들은 그들을 상대할 거예요.”
정확한 건 아니다.
다만, 저런 구체 형태를 한 놈들은 많이 상대해봤다.
움직이는 데에 제약이 있기 때문에, 당연히 전투 방식에도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몸을 직접 움직여 짓누를 일도 없지 않은가. 그랬다가 약점이 드러나면 그대로 죽는데.
“자네는 어떻게 그리 잘 아는가?‘
난 대충 둘러댔다.
“고위 던전에서 비슷한 놈을 잡아봤습니다.”
“고위 던전….”
“예. 이놈이 그놈보다 더 강한 거 같긴 하지만, 본질은 비슷하죠.”
난 발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직은 기세가 더 강해지거나 하지 않았다.
하지만 폭풍 전야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좀 서두르는 게 좋겠지.’
난 모두의 컨디션을 확인했다.
“모두 준비됐어?”
“…네.”
“준비됐어요.”
난 고개를 끄덕이며 아까 브루아이가 가져다준 팔찌를 손목에 장착했다.
찰칵.
[마력 저장 팔찌(중급)를 착용하였습니다.]
움직이는 데에 지장이 없게 최대한 가벼운 걸 가져와 달라고 했지만, 자체 제작이라 그런지 꽤 무게가 있다. 잘못하다간 싸움 도중에 손목의 회전을 방해할 정도로.
‘역시 고위 던전의 아티팩트가 훨씬 수준이 높군.’
게다가 그냥 마력만 담았을 뿐인데, 벌써부터 아티팩트의 내구도가 확 줄어들었다.
아마 많아도 10번, 적으면 7번.
고위 던전에서 얻은 아이템들은 최소한 단단하기라도 했다. 오랜 시간 모든 걸 갉아먹는 마력에 노출되다 보니, 자연스레 진화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건 인간, 혹은 드워프의 손길을 거쳐 만든 것들.
‘아쉽지만 그냥 써야겠지.’
이걸로 준비는 끝났다.
난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레이드를 시작한다.”
* * *
마력 포식자.
제국의 역사가 쓰이기 시작했을 때부터 존재해오던 오래된 생명체.
이 세상에는 몇 없는 개체이나, 그만큼 개체 하나하나가 강력하며 모든 걸 집어삼키는 탐욕스러운 존재다.
대부분은 진작에 사냥당하여 세상에서 사라졌지만.
유독 강력했던 마력 포식자는 죽이지 않고 지하에 봉인되었다. 죽는 순간 어떤 짓을 벌일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자칫해서 폭주 및 각성하여 대륙 전체를 흡수해버린다면?
그만한 대참사도 없기 때문에, 몇 세기마다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폭주를 감당하는 조건으로 봉인해두었다.
배고파… 배고파…
계속된 봉인은 마력 포식자를 쇠약하게 만들고 수명을 갉아먹었다.
왕이 되기 위해서 태어난 마력 포식자이기에 이때까지 몇백, 아니 몇천 년이나 되는 세월을 버텨온 것이다.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 만일 이번에도 해방에 실패한다면 죽음에 이르리라.
‘이번에는… 그 얄미운 것들이… 안 와….’
이전에는 끝없는 탐욕만큼이나 크기에 집착했지만, 이번에는 목적을 달리했다.
집중은 핵.
한 번에 모든 걸 삼켜 몸집을 부풀릴 수 있도록 힘을 비축한다.
최대한 은밀하게 하긴 했지만, 만약 운이 좋지 않거나 가문에서 직접 확인했다면 들켰을 것이다.
하지만 운이 좋았던 것인지, 가문에선 사람을 보내어 확인하지 않았고, 덕분에 힘을 안전하게 쌓을 수 있었다.
100년.
보통은 2~300년 주기로 폭주하는 것에 비해 한참이나 짧은 시간.
시간은 짧았으나, 쌓은 힘은 어느 때보다 방대했다. 그도 본능적으로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걸 인지했기 때문이었다.
맛있는 거…… 맛있는 거……!
줄어든 수명은 맛있는 걸 먹으면 채울 수 있다.
맛있는 음식은 그만큼 위험하니, 몸을 보호하고 한 번에 삼켜야 했다.
몸을 보호하는 동안 자신을 대신해서 적을 죽여줄 사념들도 모았다.
힘을 비축하면서 모은 마력은 주인을 잃은 마력들. 주인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던 마력에는 사념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에 그 모든 사념을 끌어모아 지배했다.
언제 올까? 언제 올까?
그는 기다렸다. 이때까지 자신이 힘을 쌓고 폭주할 때마다 막았던 그 괴물 놈들을.
이번에는 반드시 삼킬 수 있으리라!
키에엑……!
하지만 마력 포식자의 자신감은, 이번에 그를 막으러 온 실력자를 본 순간 사라졌다.
이때까지 그를 막아온 그 어느 실력자보다 방대한 마력. 저 정도의 마력을 보유한 이라면 그만한 업을 쌓은 게 보여야 하나, 보이지 않는 것이 의문이기는 했지만.
그런 의문조차 종식 시킬 정도로, 너무나 방대한 마력이다.
마치 바다를 직접 목도한 기분.
먹고 싶어… 먹고 싶어……!!
그는 두려움보다는 탐욕스러움을 느꼈다.
저걸 삼킨다면 이 대륙을 모두 집어삼키고, 그 너머의 하늘을. 그리고 하늘 너머에 존재하는 미지(未知)의 세계인 우주마저도 삼킬 수 있으리라.
마력 포식자는 타고난 사냥꾼이었다. 어떻게 하면 사냥꾼을 사냥하러 온 사냥꾼을 잡을 수 있는지 알았다.
아무리 저리 방대한 마력을 가진 이라고 해도, 마력이 무한대일 리가 없다.
그에 비해 자신은 100년간 힘을 쌓아왔다.
이미 한 번 잃어버렸다고 한들, 잃어버릴 걸 예상하여 잔뜩 그릇을 늘려놓았고 그 안을 가득 채웠으니, 장기전에서 훨씬 유리하다.
모두 뱉어내고 먹을 거야! 뱉어내고 먹을 거야!
결국 상대방은 왕은커녕 초월에 이르지 못한 인간에 불가했으니.
중요한 부분을 제외하고 필요없는 걸 쏟아내어 힘을 뺀다.
그리고 잡아먹는다.
만약 적이 마력을 빨아들인다거나 그러면 위험하지만, 상관없었다. 마력 포식자로부터 마력을 빨아들일 수 있는 놈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끼이이익!
다시 문이 열리면서 그 괴물이 등장했다.
옆에 여러 동료를 대동한 채로.
하나같이 군침이 도는 냄새를 풍기는 놈들!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키에에엑!
마력 포식자의 비명과 함께.
실타래에서 떨어진 수많은 마력의 사념이 그들을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다.
* * *
촤아아악!
고릴라의 모습을 한 사념이 베였다.
그림자에서 튀어나와 사념을 베어낸 아벨라는 망설임 없이 그림자를 밟고 뛰어넘었다.
방금까지 그녀가 있던 자리에 사마귀의 앞발이 휘둘러졌다. 사마귀 사념의 머리 위에 나타난 아벨라의 단검이 사념의 머리를 박살냈다.
으직!
아벨라는 머리카락에 묻은 사념들을 털어내며 손을 쥐었다가 폈다.
이전에 천관산을 오르면서 쌓아올린 업으로 강화된 신체가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아직 그녀의 성장 한계치는 한참이나 남은 상태.
덕분에 사념을 죽이는 족족 사념의 업이 몸에 흡수되어 들어왔고, 그에 따른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힘이… 계속 강해지고 있어….’
아벨라의 신체는 태생적으로 강인했다.
그 덕분에 엘프 고유의 암살을 익힐 수 있었고, 라온의 쇠사슬을 들고다니는 등의 일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저 태생적인 힘일 뿐이다. 이때까지 기술을 익히느라 후천적으로 힘을 쌓을 제대로 된 기회가 없었지만.
이번에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이거라면… 도움을 드릴 수 있어.’
그녀의 주인이자 그녀의 구원자.
삶을 뒤바꾸고, 목적을 생기게 해 준그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이런 노력을 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반드시 도움이 되리라!
이런 다짐을 한 건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화르르르르르륵!
거대한 불길이 일었다.
불꽃이 일어난 곳은 스칼라가 있던 자리.
붉은 불꽃에 휘감긴 그녀는 아직은 완전히 불꽃을 통제하기 어려운 듯, 숨을 몰아쉬었다.
“후, 후, 후우….”
[통제 못할 걱정은 버리거라. 여기선 힘조절할 필요가 없으니까.]
“으응…!”
화르르르르르르르르륵……!
그녀를 중심으로 일어난 불꽃은 근처의 모든 마력의 사념을 불사질렀다.
하나하나가 완전히 불에 타 사라지는 순간, 그녀에게 업이 쌓인다.
처음에는 미미했지만, 하나, 둘, 셋… 태우는 사념의 수가 늘어날수록 유의미하게 힘으로 쌓였고, 점차 불곷이 그녀의 통제에 따르기 시작한다.
[…대단하구나. 이 모든 게 그 괴물이 노린 것인가. 왜 참가시키는가 했더니.]
이것이 라온이 노린 바.
게임 시스템처럼 수치로 표기되는 건 아니지만, 실제로 업은 쌓이고 신체 혹은 마력은 강해진다.
또한 세계는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들이 강해지길 원한다.
맨날 억까당하는 라온을 제외하면 모두가 올바른 방향으로 업이 분배되었고, 스칼라 같은 경우도 현재 가장 필요한 ‘통제력’에 업이 몰리고 있었다.
[마력도 아주 넘쳐나. 그 괴물의 마력이라 이건가. 질이 아주 좋군. 만약 이걸 그 괴물이 다룰 수 있었다면… 상상도 하기가 싫어.]
“후우…!”
화륵!
그녀가 작게 숨을 몰아쉬며 앞으로 불꽃을 뿜어낸다.
그냥 무식하게 뿜어냈던 아까와 달리 나름 형태를 갖춘 채 정면으로 뿜어졌다.
힘의 낭비 없이, 오롯이 한 사념체가 타오르자, 샤흐가 감탄했다.
“마법도 안 쓰고 이 정도라니… 대단해.”
“아직… 멀었어….”
“아니. 이대로 마법을 바로 배워도 되겠어. 내가 도와줄게.”
원래라면 단순히 불을 통제할 수 있다고 해서 마법을 익힐 수 있는 건 아니다.
마법이란 술식을 통하여 원하는 형태로 구현해내는 것.
당연히 이론적으로도 빠삭해야하고, 마력 통제 능력도 뛰어나야 한다. 부족하면 도구의 도움을 빌려야 하고.
“넌 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스칼라는 통제할 수 있는 순간부터 마법을 익힐 수 있는 씨앗이 보였다.
마법사와 검사, 둘 다 병행할 수 있으면서도 둘 다 극의에 다다를 수 있는 천재 중의 천재.
어쩌면 천재보다는 괴물이란 이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는 그녀의 재능 덕분이었다.
물론, 샤흐도 그런 재능을 가진 이 중 하나였기 때문에 저런 모습을 조금도 이상해하지 않았지만.
“파이어볼.”
화르르륵-!
불덩이가 손바닥 위에 피어올랐다.
여태까지 그녀가 단순히 형태를 이룬 것과는 달랐다.
상대방을 불태우고 파괴하는 데에 특화되도록 술식을 구상하고 마력의 성질을 결정한다.
마법이란 기적을 의도적으로 끌어내는 것. 그를 위해 술식을 구상하고 형태를 이루어낸다.
기초 마법에 가까울 정도로 단순한 마법이지만, 마법사가 되기 위한 최소 조건을 확인할 수 있는 마법이기도 했다.
샤흐는 파이어볼로 달려드는 사념체를 불태우며 설명을 덧붙였다.
“시동어를 내뱉는 게 더 효과는 확실하지. 실패할 확률이 확 줄어들거든.”
“그런데… 왜 다들 안 뱉어…?”
“실패할 확률을 고려하지 않을 정도로 강할 수도 있고, 아니면 어떤 마법을 쓰려는지 숨기려는 걸 수도 있고. 자, 직접 해봐. 혹시 위험하면 내가 막아줄게.”
스칼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감았다.
방금 파이어볼을 본 순간, 본능적으로 알았다. 어떻게 술식을 구상하고 짜야 할지. 그래야 효율적으로 몸집을 부풀리고 위력을 키울 수 있을지.
그녀의 불꽃은 수많은 불꽃의 성질을 가질 수 있다. 선을 불태우는 흑염부터 악을 불사지르는 백염까지.
모방(模倣).
그녀의 마력 성질은 이때 빛을 발휘했다.
[너도 한 괴물 하는구나.]
“파이어볼.”
화르르륵!
불꽃이 치솟으며 구의 형태를 이룬다.
처음이니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몇 초가 지날수록 형태는 정교해지고 완벽해진다.
파이어볼이 쏘아져 사념들을 불태웠다.
흐름이나 술식이 안정적인 걸 확인한 샤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너도 도와줘도 되겠어. 나랑 같이 서포터 해보자.”
“응…!”
때마침, 아벨라의 머리를 노리고 돌진하는 모기 형태의 사념이 눈에 들어왔다.
“저걸로 해보자.”
“알겠어…!”
두 날개를 불태운다. 덕분에 모기의 흐름이 바뀌었고, 뒤늦게 존재감을 느낀 아벨라의 검이 모기의 머리를 갈랐다.
갈라진 모기 머리 사이로 튀어나오려는 코뿔쏘의 두 다리에 불이 붙었다.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울부짖은 덕분에 빈틈이 드러난 코뿔쏘의 머리가 아벨라의 검에 잘려 나갔다.
탁!
“잘하는데?!”
“오빠 보고… 배웠으니까…!”
라온의 서포터는 딜러가 공격하기 편하도록 길을 터주는 데에 특화 되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약점이 드러나거나 하면 직접 나서 막아주고 역으로 공격하기까지.
그 정도는 아니지만, 스칼라는 어느 정도는 따라 할 수 있었다.
[저쪽을 공격하거라. 목소리만 내니 영 답답하구나. 목 말고 다리를. 하나가 엉키면 모조리 넘어질 구도야.]
‘알겠어…!’
게다가 바로바로 날아오는 피드백까지.
화르르르륵!
그녀는 미친 듯이 성장하고 있었고, 한 괴물의 재능 개방으로 인해 이 사태는 안정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적어도 지금만큼은 말이다.
[…나는… 누구… 지…?]
온몸이 시리다고 느껴질 정도의 냉기가 뿜어져 나온다.
반사적으로 단검을 들어올린 아벨라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갔다.
뒤늦게 그를 인지한 스칼라와 샤흐가 날린 마법이 냉기에 밀려 사라진다.
이윽고 드러난 건, 다른 사념을 잡아먹고 있는 거대한 기사였다.
“…데스 나이트!”
설마, 흑마력까지 빨아들인 건가?
“위험해요!”
데스 나이트는 최소 상급 기사 수준이다.
아무리 사념 형태가 약하다고 해도, 애초에 데스 나이트 자체가 죽음으로 인해 강해진 기사이고, 저것처럼 다른 사념을 잡아먹고 있다면 금세 전성기의 힘을 회복할 것이다.
그런 걸 느낀 건지, 데스 나이트로부터 사념들이 거리를 벌린다.
“거리를 벌려요! 지금 전 거기에 못 가요!”
“…아니, 괜찮아요.”
데자트의 외침에 아벨라는 숨을 몰아쉬며 자세를 잡았다.
거추장스러운 머리카락은 뒤로 질끈 묶었다. 전투폼으로 바꾸어 입가를 가린 마스크를 고쳐 썼다.
포니테일을 한 그녀의 모습은, 하녀보다는 기사에 얼핏 가까워 보였다.
“저는, 이길 수 있어요.”
어느 때보다 아벨라의 안광이 강렬하게 빛났다.
라온은 그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마저 불사지를 각오를 했다.
그러니, 그녀 또한 기꺼이 그러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