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8화
“지금 바로요?”
내가 설마 바로 하자고 할 줄은 몰랐는지, 브루아이의 표정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저런 반응을 보면 그리 급한 건 아닌가.
날 급하게 데려온 것치고는 꽤 느긋한 반응이다.
“일은 빨리 끝낼수록 좋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한데요…….”
보통은 이렇게 바로 일을 진행하지 않기는 한다.
아무리 중요한 일로 모였다고 한들, 하루 정도는 초대한 가문에서 보이는 성의를 받고 하루 정도 시간을 보내는 게 정상이니까.
하지만 그것도 평범한 일이지, 지금처럼 공작가에서 직접 나서야 하는 수준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한시가 급할 텐데?
“잠만. 아직 그리 급할 필요는 없단다.”
스테파니가 말했다.
“지금은 해결하고 싶어도 해결할 수가 없어. 접근이 아예 불가능하거든.”
“접근이 불가능 하다고요?”
“그래. 게다가 마치 자기를 보호하는 고치를 짜듯이 마력으로 몸을 두르고 있더구나. 지금은 어떤 공격을 날려도 먹히지 않을 게야. 가장 나약할 때가 바로 그 작업이 끝난 순간이니, 그때를 노려야 해.”
“그렇습니까.”
“그래. 그동안 마력 포식자를 막아온 선대가 남긴 기록이니 믿어도 좋네.”
선대의 기록이라고 모든 게 확실한 건 아닌데.
난 내가 경험한 것만 믿는 편은 아니었다. 어쩔 때는 내가 직접 판단하기보다는 남을 통해 들은 것이 더 정확할 때가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왠지 기분이 묘했다.
왜 이건 ‘틀린 쪽’에 속하는 것 같지?
“그래도 한 번은 두 눈으로 보고 싶습니다. 그 정도는 가능하겠죠?”
“물론일세. 다만 조심해야 해. 웬만한 이들은 다가가자마자 빨려 들어갈 테니까.”
“빨려 들어간다고요?”
“그래. 마력만 빨아들이는 게 아니라, 근처의 물건들도 끌어들이더군. 사람도. 덕분에 우리 가문의 기사 한 명을 잃었어.”
‘무슨 자석도 아니고.’
대체 얼마나 강한 거야?
마력 포식자라. 일단 이름부터 마력을 잡아먹게 생겼다.
하지만 마력뿐만 아니라 다른 것까지 집어삼킨다면…….
‘탐(貪).’
나중에 나올 보스몹 중 하나.
모든 걸 집어삼키고 종래엔 자기 몸마저 집어삼키고 사라질 종말의 괴물.
최종 보스인 고밀라의 등장 이전까지는 실질적인 최종 보스로 불리던 괴물이다.
‘설마 그게 여기에 있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내 기억으로 분명히 탐은 우주에서 내려온 생명체다.
탐을 최초로 죽이고 난 후, 정보에 대해 접근할 권한을 얻은 나이니 확실하다.
분명히 ‘우주로부터 내려온 탐욕스러운 포식자’라고 설명이 적혀 있었으니, 이 마력 포식자가 탐일 가능성은 없다.
아니, 없어야만 했다.
‘지금 나타나면 안 돼.’
탐은 모든 걸 집어삼킨다. 탐보다 강한 가주와 황제, 퓨수엘 같은 존재를 제외한다면 모두가 삼켜질 것이다.
나마저도.
지금은 삼켜진다면 되돌릴 수 없으니, 그래선 안 되었다.
“……전 괜찮습니다. 바로 확인하겠습니다. 너희들은 여기에 있어.”
“저도요?”
“어.”
지금 가는 건, 나 하나면 충분하다. 나 하나라면 얼마든지 몸을 내뺄 수 있으니까.
‘같이 갈 사람이 한 명 더 있긴 하지만.’
알아서 몸은 지키겠지.
이 가문에서 관리하던 것이고, 이런 상황에 대비해 철저히 준비해두었을 것이다.
안해두었다면 그날 이 가문은 멸문하는 것이고 말이다.
“네가 다녀오거라, 브루아이.”
“제가요?”
“흘흘. 이 할미는 슬슬 힘에 부쳐서 말이야.”
“알겠어요. 제가 데려다 드릴게요.”
브루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집무실 책상에서 무언갈 꺼낸 그녀는 주머니에 넣고, 문으로 다가갔다.
“절 조심히 따라오세요.”
“그러죠. 다녀올게.”
“다녀오세요!”
“다녀… 와….”
“다치지 말고 와요.”
동료들의 배웅을 받으며 집무실을 나섰다.
브루아이는 텅 빈 복도를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적당히 걸음을 맞추어 걷자, 이내 그녀가 한 층 한 층 아래로 내려간다.
3층에서 2층으로, 2층에서 1층으로, 1층에서 0층으로…….
이윽고 도달한 건, 지하 4층의 지하실.
지하실에는 단단한 문 하나만 존재했다.
‘평범한 문이 아니군.’
검은색에 가까울 정도로 어두운 회색 문에는 가주 정도가 되는 대마법사가 직접 걸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복잡한 술식이 빼곡이 채워져 있었다.
모든 술식이 오로지 안에 존재하는 것을 봉인하기 위함이다.
저 정도라면, 아무리 나라고 해도 저길 못 벗어날 것 같았다.
하지만, 안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이 문을 뚫고 스멀스멀 기어올라와, 영지 전체에 영향을 주고 있었으니.
“자. 이걸 가져가요.”
브루아이는 익숙한 듯, 마스크와 헬멧을 쓰고 내게 팬던트 하나를 건네주었다.
“이건 귀환을 하게 해주는 팬던트에요. 위기의 순간, 바로 이 입구로 돌아오게 해주죠. 이 안은 사람이 없다면 자동으로 닫히도록 되어있으니, 뒷감당은 걱정하지 마세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브루아이가 주의 사항을 덧붙였다.
“안에서 제 말 이외의 행동은 하시면 안 됩니다. 지금 상황에서 폭주해버린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요.”
“주의하죠.”
“그럼, 들어가겠습니다.”
내가 다시 고개를 끄덕이자, 내게 마스크와 헬멧을 건네준 그녀는 문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렸다.
문에 설치된 수십 개의 마법진이 붉인 빛으로 빛나며 빛을 내뿜는다.
[에이드 가문의 혈통을 확인했습니다.]
끼이이이익-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엄청난 기운이 바람처럼 몰려왔다. 헬멧을 쓰지 않았다면 머리가 다 뒤로 젖혀질 정도의 위력이었다.
그뿐이랴. 온몸이 저릿저릿하고, 마치 수십 마리의 거머리가 달라붙어 마력을 빨아들이는 기분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다행히 몸을 끌어당기는 건 없나. 마력을 조금씩 갉아먹기만 하고.’
그렇다면 별 문제는 없다. 난 작게 숨을 몰아쉬고 앞으로 발을 내밀었다.
보조 마법이라도 사용할 수 있다면 모를까, 지금은 그런 것조차 다룰 수가 없다.
이미 선물은 받았으니, 아즈벨라 가문에 부탁할 순 없다. 아즈벨라 가문은 암시장을 혐오하니 마력을 흡수한 대가로 마법을 쓸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아티팩트를 구할 수 있을 리도 없었다.
그래서 맨몸으로 왔건만.
‘좀 무리라도 했어야하나?’
지이이잉-
그때, 내 쇠사슬이 울부짖었다. 자신의 주인 마력이 다른 놈에게 빼앗기는 것에 분노한 것인지, 진동이 느껴질 정도로 울부짖으며 역으로 마력을 흡수하기 시작한다.
천갑이 또한 마찬가지. 몸에 아무런 영향이 없던 수준을 넘어설 정도로 마력 포식자의 힘이 강해지자, 내 온몸을 더 단단히 둘러 싸매며 몸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난 쇠사슬의 마력 보유량이 치솟는 걸 확인하고, 일부러 내 흡수량을 줄였다.
여유가 생긴 쇠사슬이 더욱더 미친 듯이 역으로 마력을 빨아들이고, 덕분에 바람이 조금씩 잦아들고 기운이 안정화되기 시작했다.
“허억, 허억…….”
“괜찮으십니까?”
“후우…… 네. 어제보다 더 강해져서 적응을 못 했어요.”
브루아이는 기사나 마법사가 아니었지만, 나름 잘 버텼다.
괜히 귀족은 아니라 이건가.
에이드 가문이라는 이름하에 쌓아 올린 업은 굳이 신체를 단련하지 않아도 튼튼하고 건강하게 만들어준다.
체질적으로 허약한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건 굉장히 운이 좋지 않은 경우이고 에이드 가문 정도 된다면 수련하지 않아도 웬만한 기사 지망생 정도는 상대할 수 있었다.
“그보다. 슬슬 안정되었으니, 안을 한 번 보셔도 좋아요.”
난 천천히 근처를 둘러보았다.
천장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고, 웬만한 대저택은 상회할 정도로 넓은 공동이다.
벽은 오랜 시간을 보낸 걸 증명하듯 이곳저곳이 풍화되어있었고, 색이 시꺼멓게 변질 되어있었다.
마치 지하에 가두어진 이교도의 신전을 연상시키는 이곳의 중앙에는.
새까만 거대한 고체가 있었다.
“저게…….”
“네.”
브루아이의 눈동자에 아주 잠시 두려움이란 감정이 깃들었다.
“‘마력 포식자’입니다.”
[마력 포식자를 조우하였습니다.]
덤덤한 시스템 메시지.
하지만, 저 고체는 결코 덤덤하게 볼 수 없었다.
마치 애벌레의 고체처럼 보이긴 하나, 그 크기가 너무나 거대했다.
“엄청나게 크군요.”
버스가 한 5대는 세로로 세워져 있어야 비슷할까 싶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
왜 지하 4층인지 알 것만 같았다. 그 정도의 깊이가 아니고서야, 이런 공동이 숨겨져 있을 수가 없을 테니까.
‘둘러싼 건… 형상화된 마력인가?’
얇은 마력의 선이 고체를 이루고 있다.
너무나 얇아서 건드려도 끊어질 것 같지만, 그 수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쇠사슬로 저걸 후려친다고 한들, 뚫릴 리가 없었다.
우우웅.
쇠사슬이 불만족스럽게 울부짖었지만, 사실은 사실이었으니.
“아마 선조분들의 기록이라면…… 저 상태면 대략 일주일 뒤에 완성될 겁니다.”
“저기서 더 뭐가 완성된다고요?”
“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난 고체를 훑었다. 상급 기사, 완숙한 경지에 오른 수준의 감각이 고체를 하나하나 훑는다.
“아무래도 정보가 잘못된 거 같군요.”
“네?”
“언제 나올지 모릅니다. 이미 이놈은 완성됐어요.”
“네?!”
저 마력의 실은 이미 끊어질 준비를 맞췄고, 안에서 박동하는 어떠한 존재의 생명 또한 건재하며 안정적이다.
즉.
이 구체는 이미 부화(孵化)할 준비를 끝냈다는 것.
더 이상 뭔갈 흡수하지도 빨아들이지도 않을 것이다.
이미 구체 안의 존재는 배가 가득 찬 상태였으니까.
왜인지 모르지만, 단지 깨어나지 않을 뿐이다.
“말도 안 돼…….”
“마지막으로 깨어난 게 언제입니까?”
“……한 100년 정도 전에…….”
그럼 미리 알았어야 정상 아닌가?
저게 100년 동안 만들어졌다고 한들, 그 사이에 이 가문에서 몰랐을 리가 없다.
세대 고체가 충분히 일어날 만큼 긴 시간인데 말이다.
내 시선을 느낀 에이드가 소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구체가 만들어진 건 얼마 안 됐어요…….”
“그럼 구체가 아니라 본체에 힘을 집중한 모양이지요. 아주 은밀하게. 하지만 그래도 저 정도면 이미 알았어야 할 텐데요.”
이 봉인을 뚫고 영지 전체에 영향을 줄 정도다.
못 알아차렸다면, 진작에 성을 반납했어야 정상이다.
가문에 무슨 문제가 있지 않고서야.
“……사실 저희 가문에는 잠시 분란이 일어났었어요. 그땐 이 마력 포식자에게 온전히 정신을 쏟지 못했죠. 아무래도 그 공백을 노린 모양이에요.”
“큰일이군요.”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놈은 탐이 아니라는 것이다.
탐은 이렇게 힘을 비축하지 않는다.
비축할 힘마저 집어삼키고, 온 세상을 집어삼켜 소화해내야 적성이 풀리는 자식이다.
만약 그걸 기다릴 수 있는 힘이 있었다면, 우리가 절대 그놈을 잡을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
“바로 1시간 후에 돌입하겠습니다.”
“…알겠어요. 어떤 걸 도와드릴까요?”
“필요한 아이템들을 구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내 말을 모두 들은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30분 내로 가능해요.”
“그럼 일단 돌아가죠. 이 팬던트는 아끼겠습니다. 혹시 모르니까.”
“알겠어요.”
브루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곧바로 복귀했다.
구체는 굳이 힘을 빼지 않기 위함인지, 더 이상 우리에게 어떠한 기세도 내비쳐 보이지 않았다.
난 돌아가면서 천갑이에게 아주 작게 속삭였다.
“천갑.”
펄럭?
“내 몸을 잘 부탁한다.”
펄럭펄럭!
지금 시점에서 저 정도의 괴물을 붙잡으려면…… 한 가지 도박도 필요했다.
뭐든지 처먹는 괴물을 잡는 방법은 오로지 하나.
끝없이 처먹이는 것이다.
그리고.
‘먹는 걸 그만두지 못하게 만드는 것.’
난 서늘한 눈으로 공동을 바라보았다.
과연 이게 가능할까 싶긴 했지만.
그런 의문은 내게 필요하지 않았다.
불가능하다면 가능하게 만든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더 강해지기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