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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가 망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96화 (96/124)

제96화

데자트는 이마에 흐른 식은땀을 훔쳤다.

손이 얼얼한 듯, 주먹을 쥐었다가 핀 그녀가 말했다.

“방금, 뭘 하신 거예요?”

“그냥 이제 네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게 된 거지.”

예전에는 능력치가 부족했다 보니 모든 경로를 예측하고 미리 무기를 휘두른다는 느낌으로 다루었다면.

지금은 충분히 눈으로 움직임을 쫓고 공격을 받아치며 역으로 공격을 날리는 게 가능했다.

단순히 그것 하나뿐인데, 그것만으로도 대련이라지만 데자트를 위험하게 한 것이다.

“…그 로브도 엄청 거슬리네요.”

천마갑주의 장점은 빠른 착용과 자유로운 움직임이다.

상대방의 시야나 손발을 묶을 수도 있고, 집중력을 흩어놓을 수도 있고, 한 사람을 보호할 수도 있다.

그런 전투 방식에는 이골이 날 정도로 익숙한 나였기에, 데자트가 더더욱 까다롭게 느낀 모양이다.

으쓱으쓱!

난 어깨 부분이 뾰족하게 솟는 천갑이의 후드를 쓰다듬어주고 데자트를 쳐다보았다.

“더해볼래?”

“……아니요. 괜히 더하다가 호승심이 들 거 같아요.”

“그래. 다치면 안 되니까.”

난 쇠사슬을 거두었다.

천갑이에게 눈치를 주자, 천갑이가 알아서 내 쇠사슬을 수납해주었다.

물론 마력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있긴 하겠지만… 그만큼 차오를 테니 별 상관은 없겠지.

애초에 수치 조절을 해놓으면 상관없었고.

“그럼 다음으론 스칼라.”

“…응.”

“한 번 속성을 끌어내 봐.”

긴장한 듯, 표정이 굳은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바로 옆에 선 그녀가 천천히 숨을 몰아쉬며 정면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후우우우…….”

그녀가 숨을 내뱉은 순간,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화르르르륵-

아주 자그마한 불꽃이 그녀의 손바닥 앞에 피어난다.

너무나도 작아 제대로 보지 않는다면 보이지 않을 수준이지만.

그녀가 불꽃을 피웠다는 사실 그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성공했어……!”

“드디어 불꽃이 피어났어요!”

“와, 색이 진짜 너무 이쁜데요?”

“그러게.”

‘그런데 내 기억 속이랑 좀 다른데.’

겉으로 보면 비슷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그녀의 불꽃을 봐온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불꽃 성질이 원래 설정과는 아주 미세하게 다르다는 것을.

‘대체 왜?’

이때까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는데?

한 번은 일부러 바꾸어보려고 했지만, 그녀의 불꽃은 생명력과 마찬가지였다.

종족 자체를 바꾸지 않는 한, 결코 바뀌지 않는 고유의 성질.

‘너무 일찍 개방했나? 아니면 뭐가 섞였나?’

난 불꽃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지금은 다른 불꽃을 익히지 않았으니, 그녀의 불꽃은 본질적인 역할에 맞게 모든 걸 불태울 것처럼 사나워야 했다.

하지만 사납기는커녕 잔잔하기 그지없고, 무언갈 불태우기보다는 홀리는 듯한…….

이런 느낌의 불꽃은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여우불?’

도대체 어떻게?

아무리 구미호의 업을 삼켰다고 해도, 불꽃의 성질까지 영향을 줄 리가 없는데?

모방했다고 해도, 저 느낌까지 완전히 따라 할 순 없었다.

저건 다른 구미호에게 여우불이라고 말해도 믿을 수준이었다.

푸쉬익-

불꽃을 한 1분 정도 유지한 스칼라가 땀에 흠뻑 젖은 채 손을 아래로 내렸다.

스칼라는 땀을 손수건에 닦은 채, 바닥난 마력을 내 손을 잡은 채 충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게 잘했냐는 듯 반짝거리는 눈으로 올려다본다.

마음 같아선 잘했다고 해주고 싶지만.

“스칼라.”

“응…?”

“왜 여우불을 쓸 수 있어?”

적어도 이 사실은 알아야 했다.

내가 단호하게 묻자, 스칼라가 아주 잠깐 움찔거린다.

내가 아니고서야 알아차리지 못할 변화였으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알아차릴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거짓말하네.’

대체 왜 거짓말을 하는 거지?

여우불은 오로지 오랜 시간 업을 쌓아 아홉 개의 꼬리를 단 구미호만이 다룰 수 있는 불이다.

그만큼 강력한 불이지만.

강력한 만큼,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으니.

‘만약 다룬다면 더 강해질 수는 있지만.’

굳이 리스크를 감당해야 하느냐? 라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다.

그녀는 그것 말고도 강해질 방법이 수도 없이 많았으며.

그 모든 방법을 내가 기억하고 있었다.

‘추궁해야 하나?’

난 뭐라 하기 전에 먼저 스칼라의 눈을 빤히 바라봤다.

스칼라의 재능은 알고 있다.

만약 그녀라면 여우불이 위험하더라도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건 그녀의 의지에 달렸다.

여우불은 인간을 홀리고 정신적으로 무너트리는 데에 특화되어있다.

만약 조금이라도 그녀의 의지가 약해 보인다면, 망설임 없이 여우불을 어떻게든 봉인할 생각이었다.

미안하지만, 여우불은 의지가 약한 사람이 다루기엔 너무나도 위험한 능력이었으니까.

“이 불…… 다룰 수 있어…….”

스칼라는 내 생각을 대충이나 짐작했던 것인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의지를 내비쳐 보였다.

“이거 다루면… 강해질 수 있어… 다른 불꽃을 다루는 것보다 훨씬 더.”

“…….”

“그러니까….”

그녀는 불꽃을 꽉 쥐었다.

분명히 여기까지 열기가 느껴지건만.

그녀는 조금도 뜨거움을 느끼지 않았다.

“한 번 믿어줘.”

‘…허.’

난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내가 너무 어리게 봤나?’

솔직히 그녀의 의지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봉인해둘 생각이었지만.

망설임 없이 불꽃을 잡는 걸 보고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그녀는 불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구미호의 화기를 별문제 없이 받아들였을 정도로.

그리고 무엇보다…….

‘내게 도움이 되고 싶어 한다.’

너무 기특하지 않은가.

마치 딸이 조막만 한 손으로 아버지를 위한 선물이랍시고 뭘 만드는 것 같은 기분이다.

하지만 좋은 기분과는 별개로 걱정이 든다.

‘내게 너무 의존적으로 키우면 안 돼.’

만약에라도 내가 없어졌을 때, 스스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내게 힘이 되는 게 목표가 되어버린다면, 내가 없어졌을 때 길을 잃을 가능성이 컸다.

다른 애들은 다 성인이거나 성인에 가까우니 다시 일어설 수 있겠지만.

아직 스칼라는 어리니까.

‘……그래도 한 번 믿어준다.’

하지만, 만약 조금이라도 위험하다면 개입할 것이다.

그 정도의 보험은 들여놔야겠지.

만약 불꽃에 잡아먹힌다면, 그건 배드 엔딩보다 더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좋아. 대신에 약속 두 개만 하자.”

“…응?”

난 손가락 두 개를 펼쳤다.

“첫 번째. 강해지는 건, 내가 아니라 너를 위해서.”

“…….”

“앞으로 넌 계속 강해질 거야. 원하든, 원하지 않던. 그러니 방향을 잘 잡아야 해. 타인이 아니라 너를 위한 방향으로.”

“…하지만….”

“내게 도움이 되면 너무 좋지. 하지만 항상 생각해둬. 나보다 너 스스로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걸. 세상에서 믿을 건 오직 너 하나야.”

“…….”

“알았지? 이거 약속 안 하면 허락 안 해줄 거야.”

난 단호하게 말했다.

다른 건 양보해도 이건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거였으니까.

“……알았어…….”

스칼라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와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그리고 두 번째.”

“…또…?”

“만약 조금이라도 통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내게 말해. 정 안 되면 여기 천갑이한테 말하고. 불은 장작만 있다면 끝없이 타오를 수 있어. 너 같은 장작이라면 몇 배로 타오르겠지. 쉽게 죽지도 않을 거고. 그러니까 꼭 말해. 알았지? 천갑. 너 얘 말 잘 들어.”

으쓱!

천갑이는 양어깨를 위로 뾰족하게 세웠다.

마치 ‘걱정하지 말라고!’라고 하는 듯한 모습에….

왠지 믿음이 안 갔다.

‘자신감이 너무 넘치는데.’

“……알겠어.”

하지만 스칼라에겐 나름 믿음이 가는 모습이었던 건지.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다시 나와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약… 속….”

“난 네가 강해지는 것보다 네가 안전한 게 중요해. 알았지?”

“응….”

“무슨 일이 있어도 화내지 않을 거니 알아두고.”

“으응….”

난 조금 시무룩해진 스칼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양이 수인이라 그런가.

머리카락을 만지는 것도 마치 고양이를 직접 쓰다듬는 것 같은 신기한 기분이었다.

“그동안 열심히 했네. 많이 늘었어.”

“!!”

내 말에 그녀의 꼬리와 귀가 쫑긋 세워졌다.

기분이 좋다는 듯, 꼬리와 귀가 살랑거리며 흔들린다.

내 손길을 느끼듯, 작게 갸르릉거리는 그녀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어주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직. 아직 조금 부족해.’

방금 피어오른 불꽃으로 그녀의 속성이 완전한 개방에 가까워졌다는 건 사실이었지만.

아직은 완전히 입구가 열리지 않았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마 이 입구를 열기엔 상당한 시간이나 노력이 필요할 것이고, 이를 단축시키기 위해선 계기가 필요했다.

예를 들어 죽기 직전까지 몰린다거나.

혹은.

소중한 사람이 다친다거나.

‘…그런 일은 없어야겠지.’

그러니 최대한 안전한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게 방향을 잡아야겠지.

난 스칼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 *

그날 밤.

…번뜩.

잠든 듯, 조용히 눈을 감고 있던 스칼라의 눈이 떠졌다.

어둠 속에서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고양이처럼 눈이 요묘하게 빛난다.

근처를 이리저리 둘러보던 스칼라는 라온과 잡고 있던 손을 슬쩍 놓고, 발소리가 나지 않게 살금살금 걸으며 방을 벗어났다.

역시 비싼 여관답게 문소리가 조금도 들리지 않아, 자연스럽게 빠져나갈 수 있었다.

쏴아아아-

찬바람이 불어온다.

스칼라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돈했다.

여름이긴 하지만, 밤이다 보니 조금은 쌀쌀함을 느낄 만도 하건만.

그녀는 조금도 추위나 시원함을 느끼지 않았다.

[달이 밝구나. 그렇지않느냐, 아가야?]

왜냐하면, 그녀의 몸속에 있는 ‘그’ 존재는 추위 따위를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스칼라가 인상을 팍 썼다.

“…아가… 아니야….”

[아직 말도 더듬으면서 무슨. 그리고 네가 설령 다 큰 여인이라고 한들, 본녀에겐 어린아이나 다름없다. 본녀의 나이가 몇인 줄 아느냐?]

짧게 웃어보인 구미호가 숨을 들이켜는 소리를 냈다.

[공기가 아주 맑아. 내 머리도 그렇고. 이리 머리가 맑은 건 아주 오랜만이로구나. 아주 상쾌한 날이로고.]

“밤은… 추운데. 낮이 더 좋아….”

[하늘을 저버린 본녀에게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있을 리가 있겠느냐. 내겐 이런 밤하늘이면 충분하다. 너도 묘족이라면 그러할 텐데?]

“…시끄러워… 무단침입자….”

[본녀 시대엔 그런 단어가 없었거늘. 그리고 내가 이곳에 있는 건 자업자득 아니더냐. 내 꼬리를 굳이 먹였으니, 내 사념이 사라지지 않고 이리 남아있을 수 있던 것이니.]

분명히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사라졌어야 할 구미호의 자아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라온이 먹인 꼬리 때문이었다.

꼬리는 구미호의 업을 상징한다.

단순한 힘의 증표가 아니라 존재 자체를 상징하는 것이기에, 자연스레 구미호의 사념이 깃든다.

그중에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꼬리에는 완벽한 분신으로 빚어낼 수 있을 정도로 짙은 사념을 품고 있었다.

본래라면, 구미호가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모두 사라져야 정상이지만.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사라지기도 전에 라온이 강제로 뜯어낸 탓에 업이 바로 사라지지 않았고.

[사실 나도 놀랐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이리 적합도가 높을 리가 없을 터인데. 모든 걸 흡수하는 네 체질과 깊은 관련이 있는 모양이구나.]

그 업을 스칼라가 모두 삼켜서 ‘소화’해냈다.

그녀가 쌓아 올린 화기와 불에 대한 업.

그리고 구미호의 사념까지.

만약 스칼라가 이미 불꽃을 개방했다면 불가능했겠지만, 아직 화기를 쌓는 단계에 그쳤기에 온전히 흡수할 수 있었고.

본래 붉은색에 그쳤어야 할 그녀의 불꽃에 여우불이 뒤섞이게 되었다.

물론 그녀의 고유 불꽃은 그대로였지만 말이다.

이는 라온조차 파악하지 못한 변수였다.

“…난… 그런 거 몰라….”

[그래. 그 괴물 같은 사내도 이건 모르던 모양이지. 다만 네가 거짓말한 건 모두 알아차린 모양이더구나.]

“!”

[분명 둘은 피도 뭣도 이어지지 않았거늘, 어찌 그리 믿음을 줄 수 있느냐?]

“……믿음…….”

[나였다면 네 의견 따위 무시하고 그냥 봉인해버렸을 텐데. 네 체질이나 재능이 아니었다면, 내 여우불은 진작에 네 정신을 불태웠을 것이다.]

나를… 믿어줬어….

구미호는 그녀의 사념에 자리 잡았기에 이런 속마음도 모두 들을 수 있었다.

물론 지금 그녀는 무대에 말을 올릴 수 있는 방청객에 불가하기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지만.

‘즐겁구나.’

몇백 년 동안 기억도 남지 않을 정도로 던전에서 지루한 시간만을 그녀에겐 충분한 즐길거리였다.

“…오빠는 날 믿어줬어.”

[그래. 아주 보기 드문 믿음이더군. 누가 보면 딸과 아빠인 줄 알겠-]

“그러니까, 보답할 거야.”

스칼라는 자신의 가슴팍을 내려다봤다.

사실 그녀도 구미호가 어디에 자리 잡았는지 몰랐다.

하지만 그동안 그녀가 화기를 다루지 않도록 경고를 날리고 차단을 해준 역할은 심장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심장을 보며 말했다.

“알려줘. 불꽃을 다루는 법.”

[본녀가 왜?]

스칼라는 잠시 고민했다.

어떤 말을 해야 구미호가 도와줄까?

돈이나 그런 건 의미가 없다. 스칼라가 구미호가 원하는 무언갈 줄 자신도 없었다.

그렇다면…….

‘협상이란 말이죠. 상대방이 무서운 걸 가져다두고 협박하는 거예요. 협박 아니냐고요? 에이, 상대방은 안 죽어서 좋고 저흰 원하는 걸 얻어서 좋고. 일석이조잖아요?’

[무슨 애 교육을…….]

“…우리 오빠가 혼내줄 거야.”

[어린 아이다운 협박이로구나.]

구미호는 어이가 없었지만.

기꺼이 그녀와 한 번 어울려주기로 했다.

[좋다. 네 협박에 어울려주마. 그 괴물에게 또 걸리고 싶진 않으니 말이다.]

무서운 건 아니다.

절대로.

[그러고 보니 괴물이라 하니 재밌는 이야기가 하나 떠오르는구나.]

구미호가 웃음기를 머금은 채 말했다.

[본녀는 본디 하늘을 모시는 이였다. 지금처럼 새까만 하늘이 아닌, 낮의 그 푸른 하늘을 말이다.]

“……?”

[궁금하지 않느냐?]

구미호는 그녀에게 속삭였다.

[어째서 본녀가 이 어두운 밤하늘을 모시게 되었는지. 이 호조사(狐祖師)가 말이다.]

아직도 생생했다.

아직은 사념으로 그쳐 있던 시절에조차 깊숙한 곳에 박힌 강렬한 존재감.

[본좌는 천마다.]

그저 존재만으로 호조사를 짓누르고, 하늘을 가장 가까이 모시던 위대한 여우를 던전의 문지기 따위로 격하시켜버린 위대한 존재.

그녀의 말투가 바뀐 기원이자, 단순히 하늘을 집어삼키는 걸 넘어서 그 너머로 나아가고자 하는 자.

현 세계의 몇 없는 왕(王).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나아가는…….

[그는 괴물이다.]

그녀는 그에게 괴물이란 호칭을 붙이는 데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아니. 안 궁금해.”

[?!]

하지만 스칼라에겐 그러한 두려움이 조금도 전달되지 않은 모양이다.

관심 없다는 눈을 한 그녀가 빨리 그녀에게 재촉했다.

“빨리… 가르쳐줘. 불꽃을 다루는 방법을.”

[…뭐, 좋다. 뭐부터 배우고 싶으냐?]

“여우불. 그리고 네가 아는 불꽃 전부.”

구미호는 스칼라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차렸다.

[모든 걸 베낄 셈이냐.]

“베끼는 게… 아니야….”

스칼라의 눈이 자색으로 영롱하게 빛났다.

“내 걸로 만드는 거지….”

[…좋다. 그 검을 꺼내어 보거라.]

스칼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전에 라온의 어머니를 만났을 때 받았던 검을 꺼내었다.

암살자의 습격 이후로 한 번도 꺼내지 않은.

정확히는 꺼낼 틈이 없던 무기.

[훌륭한 무기지. 너의 불꽃을 다루는 데에 충분한 보조 역할을 해줄 게다. 자. 안에서 도와줄 테니, 불꽃을 한계치로 끌어올려 보거라.]

화르르륵-

동시에, 그녀의 몸에서 불꽃이 피어오른다.

이는 라온이 기억하는 붉은색이 아니었다.

보다 일찍이. 그리고 어느 때보다 뚜렷한 목적을 가진 이.

그리고… 세계로부터 ‘불꽃의 축복’을 받은 이만이 다룰 수 있는 불꽃.

그녀의 불꽃을 본 구미호가 감탄사를 토해냈다.

[……아름답구나.]

분명 눈도, 귀도, 무엇도 존재하지 않건만.

만약 몸이 있었다면, 구미호마저 홀렸을지도 모르는.

[……마치 도깨비불 같도다.]

아름다운 자색의 불꽃이 밤하늘 아래에서 휘날렸다.

비록 아직은 실전에서 쓸 수준은 아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충분히 아름답고 위험한 불꽃이었으니.

그리고.

“…….”

이 모든 걸, 한 엘프 공주가 바라보고 있었다.

펄럭!

등 뒤엔 천갑이를 대동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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