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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가 망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95화 (95/124)

제95화

천관산의 우두머리들은 최소 100년 이상을 살아왔다.

몬스터의 수명 자체는 꽤 긴 편이라고는 하지만, 실상은 끝없는 투쟁으로 인해 웬만한 인간보다도 못 산다는 걸 생각해보면.

나이가 많다는 건 곧 강하다는 걸 의미했다.

[이건 내 먹이라했다!]

[아니! 이건 내 거지! 너희가 뭘 했는데?! 어?!]

[그러는 너야말로 뭘 했느냐, 리우르! 그 날개를 찢어버리기 전에 비켜라!]

다만 강함이 지혜를 가져다주진 못했다.

이들이 배운 건 사냥감을 더 잘 사냥하고, 어떻게 하면 더 강해지느냐였지, 더 현명하게 사는 법이 아니었다.

이는 용, 아니 이무기라도 되고자 하는 지룡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비켜라! 그 시체는 나의 것이다!]

‘개판이네.’

우우우웅-!

이전과 달리 별 거부감 없이 현실로 돌아온다.

예전에는 천천히 근처의 감각이 돌아왔던 것에 반해, 지금은 돌아온 순간부터 온전한 상태로 돌아왔다.

“다들 멀쩡하지?”

“으으… 조금 어지러워요.”

“괜찮아. 나중에 또 적응할 거야.”

“전 괜찮아요.”

“그래. 그러면.”

난 신기한 듯 근처를 두리번거리는 후드를 내버려 두고, 여기서 내려가는 길을 바라봤다.

“튀자.”

“……?”

“……네?”

내 말에 둘이 잘못 들었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왜요? 자기들끼리 싸우는데, 이때를 이용해서 잡는 게 낫지 않아요?”

“저리 멍청해 보여도, 나름대로 역할들이 있어.”

천마신교에서 평범한 신도들이 내려오지 못하도록 길을 막는 역할.

물론 강자들이 직접 행차한다면, 우두머리들을 속수무책으로 찢겨나갈 테지만.

그들은 한창 교단 내에 박혀 있을 때였다.

그러니 괜한 놈들은 여길 쉽게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할 터.

‘혹시 원래 게임의 흐름에서 크게 벗어났나 싶었지만…….’

천마에 대한 정보가 잠금이 된 걸 보고, 아직 그들이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무리 바뀌었다고 해도, 천마에 대한 그 광기가 지워졌을 리가 없다.

더 짙어졌으면 짙어졌지.

‘이놈들이 또 벗어나면 모르지만.’

우두머리들은 누구보다 영역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아무리 내게 화가 났다고 해도, 영역을 버리고 내려올 리 없으며.

설령 그런 짓을 한다 해도, 자신들의 존재가 발각될 위험이 생기니 천마신교가 직접 나서 막을 것이었다.

“그럼 가자.”

“…네.”

“공주 떨어트리지 말고. 오늘은 돌아가서 바로 쉬자고.”

난 한 번 스칼라를 고쳐매고, 이내 땅을 박차며 숲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자, 잠만! 저 자식 밖으로 나왔어!]

[뭐?!]

뒤늦게 발견한 우두머리들이 우릴 보며 괴성을 내질렀지만.

시원하게 엿을 날려주고 다시 달렸다.

오늘따라 공기가 유독 시원했다.

* * *

신체 능력이 워낙에 향상되어서 그런가, 천관산을 오르는 데에 2~3일이 걸렸던 것에 것과는 달리 내려오는 데에는 하루면 충분했다.

금세 도시를 둘러싼 거대한 장벽이 눈에 들어온다.

난 뒤를 따라오던 아벨라와 데자트에게 살짝 눈짓했다.

둘은 고개를 끄덕였고, 데자트는 나와 속도를 맞추어 내 손을 잡았다.

<그림자 밟기>

스윽!

한순간에 마력과 마력 사이를 넘어 공간을 크게 도약한다.

다시 눈을 뜨니, 우리들은 어느새 아즈벨라 도시 안에 들어와 있었다.

꽤 먼 거리를 도약했음에도 전혀 지치지 않고, 오히려 신난 듯한 데자트가 말했다.

“바로 여관으로 가요?”

“그래. 가서 애들 좀 눕히고, 내일부터 움직인다. 일단 애들부터 좀 깨워. 밥 먹자.”

“아싸!”

데자트는 신난 듯, 주먹을 움켜쥔 채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앞장섰다.

여관 위치는 아나? 싶었지만, 역시 배가 고픈 엘프답게 빠르게 길을 찾았다.

빠르게 자리를 차지한 데자트는 반짝이는 눈으로 메뉴판을 바라봤다.

“먹고 싶은 거 아무거나 시켜도 돼요?”

“어.”

돈이 담긴 주머니는 귀속에 보호 기능까지 들어간 값비싼 아티팩트였다.

덕분에 그 전투 속에서도 멀쩡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예전에 빚이니 뭐니 했던 건 잊어버렸는지 먹고 싶은 걸 잔뜩 시켰다.

“이거랑 이거랑 이거랑, 이거……. 앗. 라온. 이거 드실 거죠?”

“내가 안 먹어도 먹을 거잖아.”

“에이, 양이 부족하잖아요. 그럼 이거 5인분 주시고…… 아! 샤흐! 얼른 일어나봐요! 밥 먹어야죠!”

“에… 에?”

밥이란 단어에 입을 헤 벌린 채 잠들어 있던 공주가 깨어났다.

“얼른 드시고 싶은 거 골라보세요!”

그녀는 비몽사몽 한 눈으로 데자트가 내민 메뉴판을 보곤, 몇 개를 콕콕 찍고 다시 잠들었다.

용케도 불편해하지 않고 잠든 모습을 보니, 엘프보다는 다른 종족이 떠올랐다.

‘…나무늘보족?’

뭐, 사실 피곤해하지 않는 게 이상하긴 하지만.

‘구미호랑 싸우기만 해도 죽을 맛일 텐데, 현무의 힘까지 빌려서 비를 내리게 했으니까.’

그런 상태에서 자지 않으려고까지 했다고 하니, 아마 피곤함이 배로 느껴질 터.

‘그래도 덕분에 살았지.’

난 부드러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역시 동료로 영입하기 잘했다니까.

물론 완전히 동료로 영입한 건 아니지만, 이대로 관계만 유지된다면 동료가 되는 건 시간문제였으니.

난 지나가는 점원에게 손짓했다.

“네, 손님. 필요하신 게 있으실까요?”

“방금 시킨 음식들, 전부 3인분씩 더 늘리고, 와인 대신에 원기 회복 포션을 담아서 가져다줘.”

“네. 금방 가져다드리겠습니다.”

덕분에 돈이 엄청나게 깨졌지만 상관없었다.

적어도 먹을 때는 돈을 아껴선 안 된다.

내가 돈을 모은 건, 이럴 때 든든히 먹이기 위함이니까.

“샤흐, 샤흐!”

“으으… 졸려어….”

“밥 먹고 다시 주무세요!”

“으으… 바압….”

스칼라가 눈을 비비적거리며 포크를 쥐었다.

당장이라도 놓칠 것 같아 옆에서 도와줄까 싶었지만.

“맛있어…….”

‘어떻게 저리 잘 집는 거지?’

굳이 젓가락이 아니라 포크를 잡은 이유를 보여주겠다는 듯.

기가 막힌 에임으로 음식을 찍고, 입에 넣고, 또 찍어서 입에 넣었다.

음, 내가 도와줄 필요는 없겠네.

난 적당히 고기를 잘라서 입에 넣었다.

오랜만에 먹는 고기라 그런가, 입에서 살살 녹는 기분이었다.

“너도 많이 먹어.”

“네에…!”

아벨라가 두 볼을 빵빵하게 부풀 정도로 음식을 집어넣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다람쥐 같네. 여기서 수인은 스칼라 한 명뿐인데 말이지.

정작 동물인 스칼라는 내 손을 꼭 잡은 채 잠들어 있었지만 말이다.

어차피 스칼라는 내 마력만 먹으니까 별문제는 없었다.

“…….”

“…….”

한참 동안 식기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났다.

3일 동안 굶었어도 많이 먹지 못하는 나와는 다르게, 모두 그동안 못 먹은 걸 모두 먹어 치우겠다는 듯 싹싹 긁어먹었다.

분명히 전부 다 10인분 이상 시켰는데… 어떻게 바닥이 벌써 보이지?

‘무한리필집에 가면 사장이 울겠네.’

아마 그만 먹으라고 쫓아내지 않을까.

“끄윽….”

그렇게 한참을 먹던 데자트는 입을 가린 채 트림을 뱉었다.

그래도 소리가 다 들린지라 빤히 쳐다봤지만.

그녀는 내 시선을 느끼지도 못한 듯, 손수건으로 입을 닦으며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배부르다……. 공주님은요?”

“나도!”

밥을 먹으면서 졸음을 떨쳐낸 공주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얼마나 배가 부른지, 그동안 조금씩 신경 쓰던 체면은 온데간데없고 의자에 기댄 채 배를 쓰다듬고 있었다.

음, 빵빵한 게 한번 찔러보고 싶은데.

‘그럼 화내겠지?’

그나마 화를 안 낼 사람은 스칼라뿐인데, 스칼라는 마력만 먹으니 배가 나올 리가 없으니 원…….

“어? 라온은 왜 그리 적게 먹었어요?”

“배불러.”

“진짜요??? 겨우 2그릇인데?”

갸우뚱.

평범한 로브인 척하고 있는 천갑이가 후드를 갸우뚱거렸다.

천갑이가 고개를 갸웃거린 의미를 알아차린 데자트는 웃으면서 주먹을 들었다.

“로브. 그러다가 저한테 죽어요.”

!!!

천갑이는 처음으로 느끼는 살기에 바들바들 떨며 쭈그려졌다.

태연하게 입가를 휴지로 닦은 데자트가 물었다.

“그보다, 이제 어디로 갈 거예요?”

“그러게.”

난 물을 한 잔 마셨다.

“당장은 안 정했어.”

원래는 바로 다음 무기를 가지러 가려고 했다.

내가 강해질수록, 메인 스토리는 더 빠르게 진행할 수 있고, 아직 힘이 완전하지 않을 때 끝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모두 스펙업이 필요해.’

데자트는 그렇다 치고, 나머지는 너무 ‘변수’에 의존해야 했다.

만약 운이 좋지 않다거나, 상황이 좋지 않아 변수가 일어날 수 없다면?

그대로 죽음이다.

이 세계가 게임이 아닌 현실인 지금, 죽음은 재시작이 아닌 곧 끝을 의미했다.

‘우선 스칼라가 무조건 속성을 개방해야 해.’

구미호의 불꽃을 막은 것.

순수 그녀의 능력은 아닐 테지만, 그게 발현될 수 있도록 한 건 그녀의 재능이다.

저 뛰어난 재능을 뒷받침해줄 기본 능력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선 속성도 개방해야만 했고.

원래는 기다리려고 했는데…… 왠지 너무 시간을 끌어서 좋을 것 같지는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확실하게 개방하는 법은 모르지만, 구미호의 화기를 삼킨 지금.

도전해볼 만한 방법은 있었다.

그다음 문제는 아벨라.

‘아벨라가 기술을 배우는 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니……. 신체 능력을 키우는 데에 집중해야 해.’

암살자는 누구보다 신체 능력치가 중요하다.

물론 기사도 신체 능력치가 굉장히 중요하지만, 마력을 사용하는 기술도 많다는 점에서 부족한 점을 메꿀 순 있다.

하지만 암살자는 그게 불가능하다.

순수 능력치만으로 적을 암살해야 하므로, 아벨라에겐 여기 중 누구보다도 신체 능력치가 필요했다.

‘구미호만 한 ‘업’을 가진 놈을 또 죽였으면 좋겠는데.’

그걸 쉽게 구할 수가 있어야지.

설령 구한다고 해도, 몬스터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더 고민을 해봐야 한다.

사람을 막 죽여서 좋을 건 없다.

오히려 죽음으로서 세상에 도움이 될 강자라면 암왕 정도?

그런데 그 양반이 전면에 나설 리 없으니, 다른 놈을 구해야 했다.

‘일단 이건 나중으로 미루고.’

또 그다음으로는 공주.

현재 그녀의 경지는 중위 마법사.

창을 쓰는 전투는 본 적이 없으니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

‘마법사로서라도 벽을 넘겨야 해.’

그래야 모두 살아남을 수 있다.

“모두 좀 더 강해져야 할 필요가 있어. 구미호랑 싸우면서 느꼈지?”

…끄덕.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중엔 데자트도 섞여 있었는데, 그녀는 당장 급하지는 않았지만 강해질 필요는 있었다.

뭐든 강하면 좋으니까.

“그래서 수련을 좀 하려고. 스칼라.”

“으응…?”

“마력은 좀 어때.”

“잘… 모르겠어… 아직 안 써봐서….”

“그럼 오늘 써보자. 소화가 덜 됐겠지만, 미리 도전해보는 것도 소화에 도움이 될 거야.”

스칼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첫 번째 목적지는 아벨라의 속성을 개방할 만한 곳으로…….

“저… 실례합니다. 물건을 두고 가셨습니다.”

“?”

모자를 깊게 눌러써 얼굴을 볼 수 없는 한 남자가 내게 물건을 건네고 지나갔다.

난 그가 건넨 물건 안을 살피곤 침음을 삼켰다.

“……아벨라 일보다 내 일부터 해결해야겠네.”

갸웃갸웃?

천갑이가 무슨 소리냐는 듯 갸웃거렸지만.

아쉽게도 천갑이처럼 순수한 애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 편지를 받고 3일 이내로 에이드 가문으로 와주게.]

[발신인 - 에이드 가문]

이건, 일종의 정치였으니까.

“내일 에이드 영지로 간다.”

“에이드 영지…? 아! 그 유명한 관광 명소 맞죠?”

“어. 오늘 푹 쉬어 둬.”

“으음… 그래도 소화를 좀 하고 싶은데.”

데자트는 날 보며 주먹을 슬쩍 들었다.

“저랑 한 판 하실래요?”

“가볍게?”

“가볍게.”

가볍게라.

“그래. 한 번 정도는.”

나도 한 번 정도는 새로 얻은 힘을 확인해봐야 했으니까.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관 바로 뒤편에 있는 대련 장소로 향한다.

그리고.

투쾅!

“데자트! 위험해!”

“와…….”

벽을 등지고 데자트는 자신의 바로 옆에 생긴 주먹만 한 크레이터를 보곤 식은땀을 흘렸다.

“이건 좀, 많이 위험한데요?”

‘너무 많이 세졌는데?’

난 내 쇠사슬을 두른 주먹을 바라봤다.

보조 마법을 쓰지도 않았건만.

상급 기사인 데자트를 상대로, 잠시나마 우위를 점했다.

잘하면 목숨까지 뺏을 수 있는 수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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