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1화
두근, 두근, 두근.
손에 잡힌 심장이 박동 소리를 내며 뛴다.
구미호의 가슴에서 튀어나온 손은, 다름 아닌 내 것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앞에 열린 포탈의 출구가, 바로 구미호의 등 뒤에 생겨난 것이다.
……뭐야. 대체 누가 포탈을?
[이것이…… 나의 한계…….]
그때 머릿속에서 묵직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이건…….
현무의 목소리?
[선물을 하나 주마, 인간이여……. 마지막 막타 정도는… 네가 해야 하지 않겠느냐……?]
[현무… 네놈이 감히……!]
[그대 같은 인간을 처음 보았다. 부디 살아서 다음 기회에 또 보았으면 좋겠군…….]
현무가 날 도와주었다는 걸 느낀 구미호, 아니 호조사가 울부짖었지만.
이미 그녀의 심장은 내게 잡힌 상태.
난 망설이지 않고 손에 힘을 주어 심장을 터트렸다.
[끄르으윽……!]
심장이 터진 호조사가 눈을 까뒤집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하지만 죽지는 않았다.
아니, 이게 무슨…….
[아직… 나의 여우 구슬이… 남아있다…!]
아, 시발.
무슨 바퀴벌레도 아니고 계속 살아난다.
이 정도면 지겨워 죽겠다, 증말.
‘팔 하나는 내줘야 하려나.’
여우 구슬이 폭발한다면, 대부분 쇠사슬로 상쇄시킬 수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건 대부분이지, 몸을 관통한 내 팔까지 포함은 아니었다.
현무의 도움을 받고 싶긴 하지만, 스스로 마지막이라 언급했으니 힘들 터.
하늘에서 내리는 비도 그쳤고, 사라졌어야 할 기운을 나와 심장 사이에 통로를 연 것으로 다 쏟아부은 거 같으니 말이다.
‘뭐, 팔이야 새로 붙이면 되지.’
돈만 있다면 팔 정도야 재생시킬 수 있다.
그래도 심장이 멈추면 죽는 건 마찬가지이니,
그 순간.
“오빠…!”
“……!”
스칼라의 목소리에 고개를 홱 틀었다.
분명히 아벨라에게 잘 데리고 있으라고 했거늘, 스칼라가 내게 달려오고 있었다.
데자트가 막으려고 했지만, 어째서인지 그녀는 스칼라를 잡았다.
“너, 빨리 뒤로……!”
[크… 크흐…… 너…… 저 아이를 아끼는 모양이로구나. 고양이족의 인간이라…… 좋다! 둘 다 싸그리 불태워주마……!]
호조사의 머리 위에 떠오른 여우 구슬이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부푼다.
난 팔을 아예 잘라낼 작정을 하고 힘을 주었다.
그 순간.
화르르르륵!
여우 구슬에서 폭발하듯이 내뿜어지는 불꽃이.
허공에서 멈추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
[……!]
폭발을 멈춘 건 호조사가 아니었다.
[너…… 내 마력을…….]
스칼라.
본래 헤이즐 색이었던 눈동자가 붉게 물들어 있고, 머리카락 또한 타오르는 불꽃처럼 위로 치솟아 있다.
아직 그녀는 속성을 다루지 못하는 상태.
당연히 마력을 통제하는 법도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
하지만…….
[무슨… 괴물이더냐….]
그녀는 오로지 재능만으로.
심지어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이의 마력을 조종해 막아낸 것이다.
“저 정도의 불꽃은… 통제할 수… 있어….”
스칼라가 눈을 부릅떴다.
두 눈에서는 피가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심장이, 내게 말했어…….”
“……일단 잘했다.”
난 뻐근한 팔을 움직여 쇠사슬로 여우 구슬을 박살 냈다.
여우 구슬에 담긴 기운이 쇠사슬에 빨려 들어오며, 이내 불꽃이 꺼지고 형태가 무너진다.
더 이상 살아날 방법이 없는 호조사가 힘없이 바닥에 널브러진다.
털썩!
이제 생명의 기운이라곤 조금도 남지 않은 호조사가 스칼라를 보며 말했다.
[……하하, 괴물이 하나인 줄 알았더니 여럿이었구나. 아무리 내가 꼬리가 하나도 남지 않았다고 한들, 내 여우불을…….]
내가 할 말이 그 말이다.
아무리 스칼라의 재능이 뛰어나도, 엄연히 다른 이의 불인데도 저걸 막았다고?
순수 재능으로?
“…일단 이거 먹어.”
“오빠… 부터….”
“일단 먹어.”
눈에서 흐른 피를 닦아주고 억지로 입에 포션을 물렸다.
스칼라는 고개를 저으며 내게 먹이려고 했지만, 그건 내가 거절했다.
결국 꼴깍 삼키기 시작한 그녀를 보고 있자니, 호조사가 그녀에게서 무언갈 본 듯 감탄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호라. 그렇구나. 그런 거였어. 그대에게서 본녀의 운명이 보이는구나…….]
뭔 개소리야?
[……좋다. 너희가 궁금해졌다. 나의 꼬리를 가져가라. 그 재능을 발휘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터이니. 본녀, 호조사가 주는 선물이느니라…….]
말을 끝낸 호조사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그 순간, 수많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하늘을 버린 호조사(狐祖師)를 사냥하였습니다.]
[현재 당신의 신체 능력치가 봉인된 상태입니다.]
[업이 흡수되지 않습니다…….]
……
[……호조사의 드높은 격으로 인해 한계치가 돌파되었습니다. 업이 정상적으로 흡수됩니다.]
[현재 보유 마력이 최대치까지 성장한 상태입니다.]
[일부 업이 신체에 깃듭니다.]
[신체가 성장합니다.]
[신체가 성장합니다.]
[신체가 성장…….]
[신체가…….]
……
[신체의 모든 능력치가 20 상승하였습니다.]
[신체 능력치가 일부 해방되었습니다. 30 -> 41]
[마력 제어력이 1.0 상승하였습니다.]
[나머지 업은 함께 사냥한 파티원(아벨라, 스칼라, 데자트, 샤를로트)에게 공헌도에 따라 분배됩니다.]
수많은 메시지창이 시야를 어지럽히지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쓰러진 호조사에게 다가갔다.
아까까지만 해도 사라졌던 꼬리가 엉덩이에 새롭게 달려 있었다.
‘꼬리의 업은 모두 사라지지 않았다.’
정확히는 내가 흡수할 수 없는 업이 남아있었다.
그냥 내버려 둬도 알아서 분배되겠지만, 그보단 이게 낫다.
난 불의 기운이 유독 뚜렷한 꼬리를 뜯었다.
“스칼라.”
“으응….”
“먹어.”
내 말에 스칼라가 잠시 꼬리를 바라봤다.
손가락만 한 크기의 꼬리.
좀 보기 역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먹어야 했다.
먹는다면 그녀가 가진 화기를 온전히 흡수할 수 있을 테니.
……꿀꺽.
스칼라는 입을 벌려 내가 내민 꼬리를 삼켰다.
그 순간, 그녀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한순간에 몸의 온도가 올라가며 뜨거워진다.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내 손을 붙잡았다.
“오… 빠….”
“힘든 거 알아. 그래도 하나도 놓치지 마.”
“으응….”
그 말을 끝으로 스칼라는 기절했다.
웬만하면 제정신을 유지하는 게 좋긴 하지만… 아직 어리니 제정신으로 버티는 것보단, 충분한 휴식을 통해 몸에 녹아드는 방식도 나쁘지 않았다.
업을 토해내진 않을 것이다. 직접 먹이기도 했고, 시스템적으로도 분배된 업을 뱉을 순 없으니 알아서 흡수될 테니까.
[…….]
[…….]
난 하이에나마냥 어슬렁거리는 우두머리들을 바라보았다.
한 것도 없는 주제에, 눈에 탐욕을 가득 담은 채 호조사의 시체를 노리고 있었다.
심지어 지룡까지도.
‘뭐, 상관없나.’
딱 보니 내가 업을 가져간 건 모르는 모양이다.
“먹던가.”
난 호조사의 꼬리를 하나 더 뜯어낸 다음, 그들에게 내던졌다.
그러자 우두머리들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나의 것이다!]
[아니! 나의 것이다! 하늘에서 깃털만 날린 놈은 뒤로 빠져라!]
[뭐야?! 넌 땅만 뒤집은 주제에!]
[음모오오오! 다 비키지 않는다면 박아버리겠다!!]
[…….]
방금까지 싸웠던 전우애 따윈 없이, 오로지 호조사의 사체를 얻기 위해 서로를 보며 사납게 으르렁거린다.
저러니 짐승을 못 벗어나지.
난 혀를 차면서 구미호가 지키고 있던 푸른 구멍을 바라보았다.
마치 얼른 내게 들어오라는 듯이 벌렁거리는 구멍.
“아벨라, 스칼라, 데자트, 공주.”
“…네.”
“이제 다시 공주라고 부르네….”
“몸은 괜찮아요?”
난 내게 다가온 데자트에게 스칼라를 안기고, 푸른 구멍을 가리켰다.
“저 안으로 돌진해.”
“…네?”
“지금 바로?”
“나 10초 있다가 쓰러진다. 당장 진입해.”
“네!”
휘청!
나도 바로 움직이려고 했는데, 10초가 아니라 1초였는지 온몸에 힘이 빠졌다.
눈이 당장이라도 감길 거 같다.
난 억지로 눈을 뜨고, 아벨라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벨라. 나 좀 들고 가라.”
“네!”
“저도 도와줄게요.”
아벨라와 공주가 양옆에서 날 부축하며 들었다.
서로 시선을 마주친 둘은, 그대로 던전 입구로 돌진했다.
[잠시만! 이 시체에 업이 전혀……!]
오, 저걸 눈치채네.
뒤늦게 속았다는 걸 알아차린 우두머리들이 우리를 노려보았지만.
이미 우리는 입구에 도달한 상태.
난 힘 없는 손가락을 억지로 움직여, 그들에게 엿을 날렸다.
쿠구구궁!
그러게, 누가 속으래?
난 통쾌함을 느끼면서.
들어가는 입구 속에서, 정신을 잃었다.
* * *
천관산.
대륙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위험한 산. 사람이 살기엔 너무 산길이 험하고 짐승이 많은 곳이기에 인적이 드문 곳.
하지만, 천관산의 꼭대기 부근에는 사람 한 명이 아닌 몇백 명은 살 수 있을 거 같은 거대한 건물이 세워져 있었다.
그뿐이랴?
건물 앞에는 수많은 인파가 모여 있었으니.
“어이! 동상이 조금 깎이지 않았나! 빨리 보수해!”
“예, 예! 죄송합니다!”
“거기 허리가 틀렸다! 허리를 조금 더 오른쪽으로 틀어!”
“목소리가 작다!!!! 더 크게 소리쳐라!!!!”
“모든 건 천마를 위하여!!!!!!!”
그들 모두는 천마를 모시는 천마신교의 신도들이었다.
버젓이 존재하는 빛의 신이 아닌 다른 신을 믿는 이교도의 집단.
천마라는 존재는 한 번도 대륙에 기적을 행사하지도, 모습을 드러내지도, 역사가 있지도 않거늘.
그들은 천마를 위해서라면 심장을 뜯어 바칠 광기와 신앙심을 보이고 있었으니.
“…….”
하지만, 아무리 많은 신도가 신앙심과 광기를 보인다고 한들 이 남자보다 더할 순 없을 터.
한 부대를 이끄는 대주는 고개를 든다.
오로지 천마를 직접 옆에서 모실 수 있는 대교주만이 앉을 수 있는 옥좌.
대교주, 유다 이스펠라.
“……대교주이시여.”
“무엇이 그리 궁금한가, 대주.”
“어째서 나서지 않으십니까.”
그렇기에 대주는 의문이었다.
기껏해 봐야 짐승들이 우두머리의 자리를 걸고 싸우는 게 다인 천관산을 시끌벅적하게 만드는 저 무리들을 왜 처리하지 않는가.
위대한 하늘의 무기가 잠든 곳을 지키는 어리석은 여우가 사냥당하고 있거늘, 왜 직접 나서지 않는가.
천마를 모시기 위해 자신이 계승 받을 왕국 하나를 멸한 그가 어째서 움직이지 않는가?
그의 머릿속에 수많은 의문이 떠오른다.
하지만, 모든 의문은 대교주의 말 한 마디에 사라졌다.
“하늘이 내게 그리 명하셨다.”
그들의 유일한 하늘.
누구나 보살피는 척하지만, 실상은 그 누구에게도 제대로 된 관심을 주지 않는 저 가짜 신과는 다른 진정한 신.
“호조사가 죽어, 그 업을 온전히 저들이 먹게 할 수 있으라고.”
이 대륙 위에 존재하는 모든 걸 집어삼키고.
위대한 왕들마저도 다스리는 왕들의 왕인 ‘황(皇)’에 다다를 진정한 악(惡).
저 빌어먹을 푸른 하늘을 검게 물들일 그들의 신.
“나의 이름이 이루어진 순간을 만들어지도록 말이다.”
천마(天魔).
그가 명령하셨다면, 이해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모든 건, 천마의 뜻이 있을 터이니.
“……뜻을 따르겠나이다.”
“모든 건 천마의 뜻대로.”
“모든 건 천마의 뜻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