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망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88화 (88/124)

제88화

내가 전력을 다하기 위해선 조건이 한 가지 필요하다.

비.

내 전력이라 함은 뇌기를 다룰 수 있는 상태이며, 뇌기를 다루기 위해서는 비가 반드시 와야 했으니까.

그렇다면 비는 어떻게 내리는가?

증발한 물이 하늘로 향해 구름으로 만들어지고, 구름이 빗방울이 되어 땅으로 떨어진다.

바꿀 수 없는 자연의 순환 구조.

당연히 나는 이를 조작할 순 없다.

‘하지만 앞당길 순 있지.’

물론 평소에 가능한 건 아니다.

지금처럼 천관산이라는 국한되고 불안전한 공간과 계속해서 피어오를 불꽃, 그리고 그걸 꺼트릴 수 있는 물까지.

이러한 조건들이 겹쳐져야 하는데, 다행히도 지금 이 모든 조건이 갖추어졌다.

물론 마법은 내가 쓸 게 아니지만.

“네? 물이요?”

“어.”

“어… 그, 제 마력은 조금 특이한데… 속성이 배경에 따라 정해져서요….”

“알아.”

난 발아래를 가리켰다.

“그래도 물은 많아.”

“네? 아니, 여기에 어디… 근처에 강이라도 있나요?”

“아니. 이 밑에 엄청 커다란 호수가 있어.”

먼 옛날, 이 천관산을 지탱했다고 알려지는 현무(玄武)의 후손이 사는 곳.

비록 지금은 천마신교에 의해 완전히 봉쇄되어, 내가 아는 길이 아니고서야 들어갈 수 없는 곳이지만.

아무튼 이곳에 있는 건 사실이었다.

바로 이 밑으로 쭉 가면 말이다.

“봐야 하는데….”

“아니. 넌 할 수 있어.”

그녀가 착각하는 게 있는데, 그녀의 속성은 보이는 것에 따라 변하는 게 아니다.

그녀의 속성은 환경으로 비롯된다.

환경은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수많은 구성 요소가 있다.

지금처럼 숲이라고 해서 나무나 그런 것만 다룰 수 있는 게 아닌, 자잘한 돌이나 풀, 혹은 하늘까지 포함하여 다룰 수 있다.

물론 이건 숙련도가 높아야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지금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어.’

나중에 가면 물이라곤 조금도 남지 않은 화산 지대에서도 쓰는데, 이런 데서라고 못 쓰겠는가.

물론 힘들기야 하겠지만… 난 그녀를 믿었다.

왕의 후계자니, 공주니 뭐니를 떠나서- 오로지 그녀만의 가능성을.

“한 번 너를 믿어봐.”

“…진짜해요?”

“안 하면 우리 다 죽어.”

물론 조금 과장한 거긴 하지만, 내가 없다고 가정하면 다 죽는 게 맞긴 했다.

아무리 다들 재능이 뛰어나도, 저렇게 미쳐 날뛰는 구미호로부터 피해 없이 도망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바로 하기 어려우면 일단 연습해봐. 아직은 저 우두머리들이 버틸만하니까.”

쿠구우우우우우!

지룡이 휘두른 꼬리와 구미호의 꼬리가 맞부딪혔다.

보면 볼수록 단순한 패턴이다. 지성을 가졌다고는 하나, 결국 경험적인 측면에서 부족하니 어쩔 수 없는 모양.

저대로면 아마 길어도 10분이면 알아서 도망칠 것 같았다.

자존심이 살지야 않겠지만, 몬스터에겐 일개 자존심보다 생존이 더 중요했으니까.

“……저, 자신이 없어요. 천 년 묵은 지룡도 못 이기는데, 제가….”

“아니. 넌 할 수 있어.”

난 기운 없이 대답하면 그녀에게 단호히 말했다.

“저 지렁이보다 네가 훨씬 잘났으니까.”

쿠우우우웅!

내 말에 샤흐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안 그래도 두 눈이 크다 보니 흔들리는 게 더 잘 보인다.

입술을 깨문 채 고민하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저, 그러면 하나만 여쭤봐도 돼요?”

“?”

“지금 당신은…… 공주인 저를 믿는 거예요, 아니면… 그냥 저를 믿는 거예요?”

저 질문에 왠지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이 몸에 빙의하기 전.

본래 ‘라온 리그벨토’의 스트레스 치수가 아슬아슬할 때, 동료에게 던지는 질문.

‘리그벨토인 나를 믿는 거야, 아니면 라온인 나를 믿는 거야?’

어차피 성과 이름이 아니냐 할 수 있지만.

그 당시 라온은 극심한 우울증에 빠져 있었다.

스트레스 수치를 관리해주지 않으면 자고 일어나있더니 자살해있기도 하고, 갑자기 길을 가다가 돌발 행동으로 죽기도 하고, 우울증에 빠져 온갖 상태 이상에 빠지기도 하고…….

그걸 생생한 VR을 통해 직접 겪은 나로서는 샤흐가 왜 저런 질문을 한 지 알았다.

‘리그벨토라는 가문의 귀족으로서가 아닌, 자기 자신을 보고 있느냐에 대한 질문이지.’

샤흐의 질문도 결은 똑같다.

본래 게임에서는 공주인 자신도, 자신의 본래 모습인 샤흐도, 기억해주는 사람이 없어 공주라 불리길 원했으나.

지금은 공주로 기억해주는 사람이 남아있고, 공주보다는 그냥 엘프인 샤흐로서 남아주길 원하는 것 같으니.

난 오랜만에 그녀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샤흐. ‘너’를 믿는 거지.”

“…….”

내 말에 그녀가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또 뭐가 마음에 안 드나 싶어 잘 보니, 그녀의 귀 끝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왜 저래?

한 1분가량 가만히 서 있던 그녀가 손을 들었다.

그러곤.

짝!!

듣든 내가 아플 정도로 강하게 자시 뺨을 후려쳤다.

“???”

진짜 왜 저래?

내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니, 두 뺨이 벌겋게 달아오른 샤흐가 날 흘겨보았다.

“평소에는 공주라고만 부르더니….”

“몇 번 안 불렀는데.”

“됐어요.”

그녀는 뺨이 많이 아팠는지, 아야야 소리를 내며 자기 뺨을 매만졌다.

그러곤 날 힐끔 보며 내 앞에 섰다.

“……이제 본 지 며칠 안 된 당신이, 왜 저리 저를 믿는지 모르겠지만.”

완전히 굳은 결심이 선 듯, 그녀가 품에서 내가 건넸던 발찌를 꺼내 들었다.

“해볼게요.”

“그래.”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마법이란 기적의 산물이다. 본래라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마력을 대가로 하여 인위적으로 일으키는 것.

그리고 믿음이야말로 기적을 일으키는 기초 조건 중 하나였으니까.

“믿는다.”

“…알겠어요.”

마력 강화 발찌(상급). 내가 준 발찌를 찬 순간, 그녀의 마력이 한순간에 치솟았다.

“후우우…….”

마치 폭발하듯 강하게 치솟던 마력이 그녀의 체내에서 꿈틀거렸다.

만약 나였다면 그대로 몸이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겠지만, 그녀는 나와 달리 마력을 통제할 수 있었다.

샤흐가 눈을 감고 마력을 통제하자, 마력이 금세 안정을 되찾고 가라앉는다.

잠시 눈을 감았던 샤흐가 다시 눈을 뜬다.

신비롭기 그지 없던 푸른 눈동자는, 이 근처를 보여주듯 푸른색과 검은색, 그리고 녹색이 마구잡이로 섞인 색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지이이잉-

그녀의 손바닥 위에 기다란 창이 만들어졌다.

오로지 마력으로만 만들어진 창.

난 준비를 끝낸 그녀에게 말했다.

“저 여우불을 싸그리 물로 덮어버려.”

“……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 순간.

“데자트.”

“네, 공주님.”

“가자.”

투쾅!

공주와 수호자가 동시에 돌진했다.

때마침 타이밍 좋게 지룡이 땅에서 치솟은 여우 불로 이루어진 기둥을 처맞고 허공으로 떠올랐다.

지룡의 머리를 밟고 나타난 둘이 서로를 보며 끄덕인다.

동시에, 샤흐가 정면으로 창을 내질렀다.

“우든 스피어.”

쿠구구구구!

마력이 형상화되며 거대한 나무 창이 이루어졌다.

마치 누군가가 조종하듯이 움직이는 나무 창이 그녀의 자세에 따라 움직인다.

샤흐가 양 손으로 창을 잡고, 아래에 있는 고기를 잡듯 강하게 내리쳤다.

쿠우우우우우웅!

나무 창이 구미호가 있던 자리에 내리 꽂혔다.

샤흐가 옆으로 몸을 비틀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그녀가 있던 자리에 여우 불이 스쳐 지나간다.

데자트의 몸이 가속했다. 여우 불과 함께 나타난 구미호의 머리를 노리고 장검이 휘둘러졌다.

쿠구구구구궁!

단순한 충돌임에도 불구하고, 아까 우두머리와 충돌했던 것처럼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둘 중 힘에서 밀려난 건, 놀랍게도 구미호였다.

[쯧.]

<수호자>. 오로지 공주를 지키기 위한 직책.

인간 세상, 혹은 다른 몬스터들로부터 고귀한 혈통을 보호하기 위한 직책인 그녀는 공주와 함께 싸울 때 능력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

밀려난 구미호를 보며 눈을 빛낸 데자트의 다른 손에 대검이 생겨났다. 한 손으로 잡은 대검으로 그녀의 머리를 베어내기 직전, 여우 불이 머리 위를 휩쓸었다.

화르르르르륵-!

“칫.”

혀를 찬 데자트가 뒤로 물러났다.

방금까지 그녀가 있던 자리에서 물이 작게나마 치솟는다.

치이익!

물과 불이 맞닿자, 물은 불을 꺼트리지 못하고 역으로 꺼졌다.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마력을 보며 구미호가 샤흐를 향해 비웃었다.

[평범한 엘프가 아니로구나. 설마 나무뿐만 아니라 ‘물’까지 다룰 줄이야.]

“…….”

[배경에 따라 바뀌는 속성…… 그대가 엘프들의 공주인가?]

저거, 대체 얼마나 잘 아는 거야?

저런 놈이 원래 스토리에 있었다면 난이도가 더 올라갔을 게 분명하다.

‘문제는 지금 저놈을 잡아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지금 당장은 물 마법을 사용할 수 없을 터.

최소한 시간을 벌어야 한다.

다만, 문제는…….

[대기의 마력이 거칠게 휘몰아칩니다.]

[폭주도가 상승합니다.]

[폭주도 74%…….]

무슨 일이라도 벌이려는 건지, 마력이 미친 듯이 휘몰아치며 내게까지 영향을 주고 있었다.

이대로 잘못 움직였다간, 몸이 터져 죽는다.

진짜 망캐 같으니….

[대답하지 않을 생각인가?]

“…….”

[뭐, 말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어차피 본녀에게 죽을 테니. 기뻐하거라. 본녀가 십미호로 거듭날 수 있는 발판이 될 기회를 줄 터이니.]

“발판도 없으면 못 올라가나 봐?”

[이루지 못한 이들이 무얼 알겠느냐?]

구미호는 더 이상 데자트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여우의 동공이 지그시 샤흐를 응시한다.

데자트가 잔뜩 불쾌한 표정을 지으면서 검기를 날렸지만.

[물을 다룰 줄 아는 것 같던데.]

화르르르륵-!

아까보다 더 강하게 타오르는 여우 불과, 더 영롱하게 빛을 뿜어내며 몸집을 뿜어내는 꼬리에 묻혀 사라졌다.

3페이즈까지는 아니나, 그 직전.

[한 번 이것도 막아내 보아라.]

비대해진 꼬리가 하늘을 뒤덮기 직전까지 커졌을 때.

구미호가 하늘을 향해 양손을 내뻗었다.

[부디 최대한 발버둥 쳐다오. 그래야 본녀가 업을 삼킬 때 맛이 있을 터이니. 남자였다면 침대에 올라가야 하니 내버려 두었겠지만, 아쉽게도 여자를 취하는 버릇은 없어서 말이야.]

“……공주님, 피해요!”

[너의 업은 내가 취하겠노라, 엘프 공주여.]

“-!”

데자트가 다급히 그녀를 끌어안고 크게 도약했다. 하지만 그 직전.

[여우비.]

구미호가 시동어를 내뱉음과 동시에.

세상이 밝게 변했다.

…화륵, 화르륵-

곳곳에서 불꽃이 피어오른다.

마치 수많은 도깨비가 모습을 드러내듯이.

어둡게 변했던 숲이 밝게 빛날 정도로, 수없이 많이 생성된 여우불이 하늘을 뒤덮었다.

오로지 구미호, 하나에 의해서.

문지기.

고위 던전을 지키는 존재.

허주 따위가 지내는 던전이 아닌, 천마라는 절대적인 존재가 다루던 검을 보존하는 던전을 지키는 문지기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퉁!

“큿!”

마력 사이에 스며들지 못한 데자트가 튕겨 나왔다.

이유는 오로지 하나.

이 공간 전체가, 구미호의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 힘까지 쓰는 건 오랜만이로구나…… 너무 저항하진 말거라. 이 영역 안에선, 본녀가 곧 하늘이었으니.]

“……진짜 미친 갈X년.”

데자트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도망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듯, 자리에 멈춰서고 검을 치켜든다.

그 모습에 난 가만히 생각했다.

‘내가 나서야 하나.’

이 공간이 구미호의 영역이 되면서, 서로 다른 마력이 충돌하여 일어나던 불균형이 사라져 마력이 안정화가 되어버렸다.

즉.

[폭주도: 69%]

나서려면 지금 나서야 한다는 뜻.

정말 나서야 하나?

…아니.

아직이다.

당장이라도 나설 것처럼 꿈틀거리는 손을 붙잡았다.

믿어야 한다.

아직 기초조차 잡지 못한 이들과 다르게, 공주는 시련이 찾아와도 이겨낼 힘을 가졌다.

그러니…… 믿는다.

“공주님, 빨리 피하세요. 지룡이 들어간 구멍 안으로 들어가면 안전할 거예요. 제가 시간을 벌어볼 테니까-”

“…괜찮아.”

“공주님?!”

“난 할 수 있어.”

샤흐는 데자트의 만류를 뿌리치고 앞으로 나섰다.

구미호가 흥미롭다는 눈으로 그녀를 쳐다본다.

그녀는 샤흐가 무얼 하려는지 보려는 듯,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하늘을 뒤덮은 여우불의 열기 때문에 피부가 녹아내릴 거 같다.

나름 고통에 익숙한 나도 이러한데, 그녀는 어떨까.

아까보다 훨씬 더 안색이 창백해진 그녀가 입술을 깨물었다.

“……날 믿어준다고 했어.”

“공주님-”

“데자트. 널 빼면 처음이야.”

하지만, 어느 때보다 그녀의 눈동자는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정도는 보답해줘야지.”

[아름답구나.]

구미호가 만족스럽게 웃으며 부채로 입가를 가렸다.

[아름다운 사랑을 하는 이들의 심장만큼 별미인 게 없-]

“사랑이 아니야.”

샤흐는 구미호의 말을 단호하게 끊었다.

“존경이지.”

[뭐. 어찌 되었던 좋다.]

구미호의 입가를 가리던 부채가 타오른다.

타오른 부채는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형태로 응축되었다.

영롱한 빛을 뿜어내는 푸른 빛의 구슬.

구미호의 정수이자, 힘을 몇 배로 증폭시켜주는 ‘여우 구슬’.

[어차피 그대들은 나의 여우 구슬 일부가 될 거니까.]

쿠우우웅-!

여우 구슬로부터 엄청난 기운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이미 이 근처의 영역은 여우 구슬에 의해 완전히 장악된 바.

여기서 여우 구슬이 한 번 더 구미호의 능력을 강화해버리면, 단순히 여우불이 하늘을 덮은 수준이 아니라 지옥이 펼쳐질 것이다.

‘그걸 싸그리 물로 뒤엎어버린다면 바로 비를 불러올 수 있겠지.’

문제는, 그녀에게 그럴 만한 능력이 있는 가다.

아마 엘프 공주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터.

하지만, 그녀는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는 듯해 보였다.

“넌, 여기서 죽을 거니까.”

[너희가 어찌? 저 수호자를 제외한다면 모두 본녀의 발끝에도 닿지 못하거늘.]

“…내 역할은 당신을 죽이는 게 아니야.”

그녀가 발아래를 바라본다.

“내 역할은 이 불을 모두 꺼트리는 것.”

쪼르륵.

나도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왜인지 모르지만, 발아래에서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이 느낌은…….

“나는…….”

현무?

“할 수 있어.”

[자연이 나를 부르는구나…….]

“!!”

[!!]

“!!”

우리 모두가 놀란 눈으로 발 아래를 쳐다 본다.

모두에게 들린 목소리.

느긋하고 묵직한, 듣는 것만으로도 듬직함이 느껴지는 음성.

[자연이여…… 그대의 요청에 따라 힘을 빌려주겠노라…….]

현무(玄武).

어떻게 한 건지 모르지만…… 샤흐기 현무의 힘을 끌어온 것이다.

오로지, 구미호의 불꽃을 꺼트리기 위해서!

“물의 장막.”

[여우 구슬.]

여우비와 현무의 기운이 동시에 치솟았다.

여우와 거북이의 대결.

마치 두 거인이 직접 대적하듯, 등 뒤로 두 존재의 형상이 덧씌워졌다.

그와 동시에.

[집어삼켜라.]

“전부 다 꺼버려.”

불꽃과 물이 충돌했다.

쿠구우우우우우우우우우!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순간적으로 치솟는 마력 폭주도에 급히 마력 흡수량을 조절하며 몸을 웅크렸다.

완전히 폭발이 끝나기 직전-

“끄으으…….”

짧은 단말마와 고통 어린 소리에, 망설임 없이 몸을 집어 던졌다.

쿠우우우웅!

한 번 더 폭발.

완전히 시야가 어둑해졌다.

등에서 엄청난 열기와 쓰라림이 느껴졌다. 아예 살갗이 녹아내린 거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었다.

엄청난 수증기가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

화르르륵-

근처에서 불꽃이 타오르는 소리와 함께, 시야를 어둑하게 가리던 검은 연기가 사라진다.

그러자 보인 건, 나와 데자트에게 안긴 샤흐.

완전히 안색이 창백해진 그녀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하아… 하아… 하아….”

“공주님, 괜찮아요?!”

“샤흐. 괜찮나?”

“으응….”

다행히 상처는 없어 보였다.

난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를 내려놓았다.

품에서 포션 하나를 꺼내어 입에 문다.

마력을 한 번에 쏟아부은 대가로 시야가 잠시 멀어버린 것인지, 멍하니 눈을 깜빡이던 샤흐의 초점이 돌아왔다.

“?!”

그녀가 날 보며 경악했다.

“왜, 왜 여기에….”

“네가 다칠까 봐.”

난 이들이 죽는 걸 너무 많이 봐왔다.

지금은 게임을 리셋할 수도 없으니, 죽는다면 되돌릴 수도 없다.

그러니 다칠 거면 내가 다치는 게 맞다.

적어도 내게 책임이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이.

“다친 덴 없지?”

“……네. 하지만… 다… 못 껐어요….”

“아니. 이 정도면 충분해.”

난 손바닥을 앞으로 뻗었다.

툭, 투두둑-

내뻗은 손바닥 위로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다.

난 고개를 위로 올렸다.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에서-

쏴아아아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뇌기(雷氣)가 해방되었습니다.]

“넌 충분히 할 일을 다 했어.”

설마 현무와 동조하여 물을 소환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내 기대 이상의 결과.

그녀가 내 믿음을 초월할 정도로 강하게 부응해주었으니…….

[아름다운 사랑이로구나. 종족을 넘어선 사랑이라니. 여는 너무나 감동…….]

“이제 내 차례다.”

내가 기대를 부응해줄 차례겠지.

파지지직-

<천벌>

쿠르르르르르릉!

거대한 벼락이.

여우의 머리에 내리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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